< -- 2-6. 망자의 도시 -- >
벌써 몇 번이나 전투가 계속됐는지 어지간한 일로는 꿈쩍도 없는 1등급 이능력자들까지 피로가 가득한 얼굴이다. 그들 입장에서야 체력이 달릴 일은 없지만, 루마니아에 들어선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일정이 너무나도 격렬했던 탓에 정신적으로 꽤나 지쳐가고 있었다.
"뱀파이어라는 놈들의 의도를 모르겠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법 멀쩡한 얼굴을 한 김형준은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수천 수만의 감염자들을 베어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검을 무디게 만들고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스트리고이가 전에 부렸던 수작이야 당연히 이능력자들의 전력을 흔든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피의 의식이라는 것이 저들만의 살육제에 가까운 것이란 말인가. 중심에 다가설수록 뱀파이어들의 공격이 거세어진다. 전과 같은 은밀함도 집요함도 없이 그저 광폭함 하나만을 내세워 공격을 해대는 그들의 공격은 매서웠지만 전처럼 위협적이진 않았다.
마치 이성을 잃은 듯한, 그저 괴물이 되어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며 전진하다 보니 이동이 빠를 턱이 없다.
하루만에 루마니아를 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1등급 이능력자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 강대한 힘이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그저 수렁에 빠진 것처럼 발걸음을 간신히 옮기며 묵묵히 스트리고이를 향해 다가갈 뿐이었다. 통신기의 통신에 의해 그나마 조금씩이나마 가까워지는 스트리고이와의 거리가 명확해지니 현실감이 생겨난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네요."
김형준의 곁에 있던 전지현이 원정대를 살펴보며 말했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원정대의 이능력자들은 더 이상은 희생자를 내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는 뱀파이어들과의 전투가 꽤나 익숙해진 모습들이다. 물론 은밀함이 사라진 뱀파이어들의 공격이 덜 위협적인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익숙해진 탓이다.
대열을 이루는 이능력자들이 대규모 범위공격으로 뱀파이어들의 퇴로를 차단한 채 그대로 불 태워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형준은 이제껏 보지 못 했을
정도로 시끄럽게 신호음을 내뱉는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비단 경고음을 내뱉은 통신기가 그의 것만은 아닌지 대열의 이곳저곳이 소란스러워지며 통신기를 꺼내드는 이능력자들이 늘어났다.
'마스터 킴!'
통신기를 키자마자 들려오는 캐더린 우즈의 고함소리가 급박하기만 하다.
"무슨 일입니까?"
영문을 몰라 되묻는 김형준에게 캐더린이 빠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스트리고이가 움직였습니다!'
그 한마디에 김형준이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이제껏 루마니아의 중심 어딘가에 쳐박혀 있던 스트리고이가 움직였다니, 그로서는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이제껏 1등급 몬스터를 퇴치하면서 그들이 자리를 벗어난 적이 한번이라도 있던가.
그렌델은 늪에서 기운을 끌어모아 사용했다. 미노타우르스-모노케라스는 미궁과 권능 사이에 무언가 관련이 있는 듯 했다.
당연히 스트리고이도 자신의 은신처에 무언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김형준은 스트리고이가 움직였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그의 음성이 침착한 탓이었을까. 캐더린 우즈의 음성에서 조금은 다급함이 사라진다.
'스트리고이가 웅크리고 있던 부쿠레슈티를 주시하고 있던 수하가 보고한 사실입니다. 15분 전에 모습을 드러낸 스트리고이는 현재 남쪽을 향해 이동, 약 세시간이면 마스터 킴이 이끄는 원정대와 조우할 거예요.'
김형준이 끄응 하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무슨 이변이 일어날지 모르는 스트리고이의 은신처에서 전투를 펼치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한창 이동중에 스트리고이를 만나는 것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전투중에 혹여 트루 블러드를 포함한 뱀파이어들이 난입하기라도 한다면 가뜩
이나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게 분명한 스트리고이와의 전투가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세시간이라. 시간이 많지 않군요."
잠시 원정대를 살펴본 김형준이 대답했다.
세시간이라면 지금부터 전투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힘을 회복하기에 빠듯한 시간이다. 2등급 이능력자들은 차치하고서라도 1등급 이능력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상의 상태로 되돌려 놔야 했다.
김형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스터 킴은 모르시겠지만, 현재 원정대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대가 루마니아 현지에 도착한 상태입니다. 미국의 1등급 이능력자 필립 헨리 셰이던을 포함해 1등급 이능력자 넷이 포함된 지원대지요.'
행방을 알 수 없는 지원대긴 하지만 마지막 보고가 루마니아 현지에 도착했다는 것이니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기가 떨어질 원정대를 걱정해 던진 캐더린의 한마디에 김형준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트루 블러드, 스트리고이.
이번 전투는 변수가 너무도 많이 등장했다. 비록 자신들에게 유리한 변수들도 발생했지만 트루 블러드와 뱀파이어들의 존재는 너무나도 큰 부담이다.
게다가 전투 초기에 스트리고이의 수작질과 결계에 휩쓸려 실종된 1등급 이능력자들이 벌써 셋이다. 리옌제는 무력화되어 후방으로 후송되었고 그나마 자리에 남은 아야나미 로유미를 비롯한 이능력자들도 피로가 제법 쌓인 얼굴이었다.
그런 와중에 1등급 이능력자 넷을 포함한 원정대라니 김형준의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그나마 희망적이군요."
조금은 가벼워진 어조의 대답에 캐더린은 내심 미안한 감정이 생겼으나, 어찌 되었건 돕자고 보낸 지원대니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힘이 될 거란 계산을 하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스트리고이에 대한 추가 정보입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지금의 상황 설명정도야 이미 정보가 새어 다른 이능력자들에게 전달이 될 사실들이었지만, 지금부터 말하는 사실은 김형준에게만 알려져야 했다.
'지금부터 통신이 조금 끊길 수가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보안 절차에 의한 딜레이니 차분하게 제 설명을 들어주십시오.'
캐더린 우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지직 거리는 잡음이 수차례 반복되며 통신의 질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들리십니까?'
한참만에야 안정화된 통신기, 그 너머로 캐더린 우즈의 음성이 조금은 멀리서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네. 감이 조금 멀기는 하지만 들립니다."
김형준의 말에 캐더린 우즈가 보안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대꾸를 하고는 빠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이제껏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알려드리지 못했던 정보들을 알려드리겠
습니다. 정보의 신뢰성은 90프로 이상이며, 현시각 변동이 없는 팩트에 다름이 없는 정보이니 잘 들어주십시오.
'유난히도 무게를 잡는 캐더린 우즈의 태도에 김형준도 괜스레 주변을 살펴보고는 표정을 바로 했다.'
뱀파이어들이 난입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나 시나리오에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준비로 바티칸과 뱀파이어와 적대하는 이종들에게 정보를 흘려두었지요. 또한 결계와 다른 부수적인 사항들도 전부 대비가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캐더린의 말에 그제야 수 많은 늑대인간들이 어떻게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나 했던 의문이 풀린 김형준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습니다.'캐더린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김형준의 얼굴이 진지해진다. 그녀가 전해오는 정보들을 추리고 추리다보니 한가지 사실에 결론하게 된다.
김형준의 얼굴이 전에 없이 굳어버린다.
한참이나 이어지던 캐더린의 설명이 끝날 무렵에는 모두가 김형준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자국의 통신을 통해 스트리고이의 이동을 전해들었는지 술렁이는 원정대의 대열이 아직까지 통신기를 붙잡고 있는 김형준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한다.
김형준은 그런 그들의 시선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리를 차단하고는 캐더린의 설명에 집중했다.
'아셨습니까? 마스터 킴은 절대로 스트리고이와의 전투 외에는 나서면 안 됩니다.'
그게 마음 먹은대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김형준은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캐더린 우즈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자신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급조된 작전계획이긴 하지만 이것 말고는 대안이 없습니다. 그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절대적으로 성공해야 하니, 부탁드립니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북스러운 느낌에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가 설명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번 루마니아 원정은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이었던 탓이다.
그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당신이 인류의 희망입니다.'
캐더린 우즈의 한마디가 진지하기만 하다. 평소라면 넌더리를 내며 손발 낯 간지러운 말 집어치우라고 할 그가 지금은 오히려 전의를 다진다.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반드시!'
주변에 둘러선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이능력자들과 늑대인간들, 그리고 바티칸의 성가대를 바라보던 김형준이 입을 열었다.
"네. 꼭 성공시키죠."
그 한마디를 내뱉는데 얼마나 힘들었던가. 캐더린 우즈가 극비로 전달해준 사실들과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 무엇하나 가벼운 사안이 없다.
하지만 캐더린의 말마따나 자신이 아니면 가능성이 없으니 그는 각오를 바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대한민국의 괴수를 퇴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히어로즈도 전 세계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을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녀의 말에 김형준의 얼굴에 조금이지만 화색이 돌았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이고, 자신밖에 하지 못하는 일이건만 이번 일에 대한 대가로 대한민국을 원조하겠다니 차라리 잘 된 일이다.
김형준이 스스로를 그리 납득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을 마친 김형준은 한동안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전지현과 민용모. 우려와 호기심을 담은 눈빛을 보내오는 원정대의 인물들, 그저 무심한 눈동자 뒤에 투쟁심과 광폭함이 담긴 시선의 하얀 갈기 일족들.
그리고 탐색하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훑어보는 바티칸의 바오로까지.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김형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작전 계획 변경합니다. 각 조의 조장과 1등급 이능력자들은 이쪽으로 모여 주십시오."
그의 말에 몇몇 인물들이 대열을 삐져나와 김형준에게 다가왔다. 진즉부터 그의 근처에서 상황을 살펴보고 있던 1등급 이능력자들도 바짝 그에게 다가섰다.
"바람갈기 장로님도 들어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은발의 미녀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다가선다.
모두가 모인 것을 확인한 김형준이 전지현에게 부탁해 보다 확실한 방음 처리를 하려는데 멀리서 바오로가 어슬렁 어슬렁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태연한 신색으로 다가서는 바오로의 얼굴이 어찌나 밉살스러운지 근처에 있던 이능력자들이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 작품 후기 어제 업무가 바뻐 업뎃 못했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그냥 오늘 세네편 올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카드홀더님의 더 바이블. 여기서 넘어가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재미 있어 하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기성 작가는 아니고 처녀작 쓰시는 분 같은데,뭔가 기대되는 노블이라 코멘트로 연참을 강요해보독 하지요. 껄껄*제 들에 막 5달 지난 도고 아르헨티도 옥희 사진 업데이트 중입니다. 대형견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버 구경오세요^^ 그리고 독자님들 중에 개를 키우는 분들 많이 계신가요?
계시다면 견종과 성격이 어떤지 몹시 궁급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