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 망자의 도시 -- >
비명이 난무하고,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팔다리가 하늘로 치솟고, 욕설과 기합소리가 온 천지를 진동시킨다. 단 한순간의 충돌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벌써 수십의 이능력자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눈에 보이는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신경쓰느라 은밀하게 접근한 또다른 공격을 눈치채지 못하고 수많은 이들이 쓰러졌다.
각국에서 보내온 정예 이능력자들이었지만 그만큼 뱀파이어들의 은밀함이 상상을 초월했던 탓이다.
"이 개새끼야!"
이름 모를 이능력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양손에 그러모은 불꽃을 내쏘았다. 쓰러진 이능력자의 목에 송곳니를 밖아넣고 한참 만찬을 즐기고 있던 뱀파이어가 불꽃에 휩싸여 비명을 내지른다.
"지옥에나 가버려!"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던 이능력자가 곧이어 달려든 또다른 뱀파이어들에게 가려진다. 외곽의 이곳저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쓰러진 이능력자들에게 수없이 달려들어 사지의 한군데에 이를 박아 넣는 뱀파이어들의 모습.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격렬한 전투의 현장을 지켜보던 김형준이 시선을 돌렸다.
갖은 이능을 발휘해가며 전투를 펼치는 이능력자들과는 다르게 고요하게 대열을 유지하고 있는 성가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둘러싼 수백의 뱀파이어들은 기괴한 바람소리를 내며 눈을 번뜩일 뿐이다.
"그러고보니 트루 블러드가 전부..."
김형준의 말에 민용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티칸과 어둠이라면 상극이지. 둘중 하나가 다 죽을 때까지는 물러서지 않을
걸."
뱀파이어들의 대열에 흩어져 있던 트루 블러드 다섯이 어느 사이엔가 성가대를 에워싼 뱀파이어 무리에 합류해 있었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풍기는 기운만 해도 어마어마했는데 바오로를 포함한 성가대원들은 태연한 모습이다.
"형제들이여. 성구의 사용을 허가하겠소."
그리고 그 불편한 대치가 깨어진 것은 바오로의 한마디가 떨어지고 난 뒤였다. 바오로가 말하기가 무섭게 망토를 둘러쓰고 있던 성가대원들이 하나 둘 망토를 벗어던졌다.
촘촘하게 이어진 사슬갑옷 주변으로 기괴한 문양이 그려진 쇳덩이들이 박혀있다. 허리춤에 단단하게 묶인 벨트에는 일곱자루의 단검과 알 수 없는 주머니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마치 중세의 중갑 보병과도 같은 모습을 한 성가대원들이 양손에 무기를 그러쥔채 기묘한 읊조림을 내뱉었다.
성스러운 무구. 말과는 다르게 살벌하게 생긴 모습이 흉악하게 그지없는 모습이다. 성스럽기는커녕 야만적인 무구들의 생김 생김이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
푸려질 정도다.
철퇴는 애교스러울 지경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뾰족한 몽둥이에 잔뜩 가시가 돋아난 기이한 무기들도 한가득이다. 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백색의 섬광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고문도구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아아아아아아!"
짧은 읊조림이 끝나고 성가대원들이 일제히 허밍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술렁댄다.
"캬악!"
듣기 거북한 숨소리를 내뱉은 뱀파이어들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수백이나 되는 뱀파이어들이 단번에 뛰어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마치 검은 장막이 하늘을 덮듯 소리 없이 하늘로 솟구친 뱀파이어들이 순식간에 성가대원들과 충돌했다.
"캬아아악!"
온 사방에 뱀파이어들의 비명소리가 가득해진다. 잠깐의 충돌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성가대원들이 휘두른 살벌한 성구 앞에 뱀파이어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기교도 힘도 없이 그저 휘둘렀을 뿐인 성구들, 스치기만 해도 불꽃이 솟아오르며 뱀파이어들을 태워버린다.
김형준은 그 말도 안돼는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각국에서 추려온 2등급 이능력자들조차도 버거운 상대가 뱀파이어다. 그런데 성가대원들은 마치 파리라도 쫓듯 손쉽게 그들을 격퇴해나간다.
비명과 고함소리 섬광이 작렬하는 이능력자대열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광경이다. 격렬하고 처참한거야 양쪽 다 마찬가지지만 이쪽은 서로 격렬하게 치고 받는다 치면, 저쪽은 그저 뱀파이어들만이 열을 낼 뿐이다.
기이한 상실감과 허탈함에 김형준이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민용모가 어깨를 툭 쳤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뱀파이어만 잡아오던 놈들이야. 저 정도 해주지 않으면 바티칸이란 이름이 운다고."
민용모의 말마따나 바티칸은 설립 이후 천년이 넘는 시간을 밤의 이종들과 싸워오던 이들이다. 수천년간의 노하우가 집대성되어 과학과 맞물린 지금에야 말로 그 힘이 최고조에 오른 시점이다.
그런 그들이 뱀파이어들에게 고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저 정도면 1등급 괴수도 저들만으로 해결 되겠는데?"
그 모습이 지독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이라 김형준이 무심코 한마디 내뱉었다.
"아니. 저런 위력을 아무 때나 보인다면 반칙이라고. 잘 봐. 바티칸의 성구가 통하는 상대는 어디까지나 어둠의 이종들뿐이야. 일반 괴수를 만나면 2등급 이능력자만도 못한 게 성가대지."
민용모의 말에 김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저런 힘이 아무 곳에서나 통용된다면 피드백에 시달리며 싸워온 자신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한 그의 얼굴에 애매한 기색이 떠올랐다.
감탄이라도 해야 정상인 광경이지만, 마치 시체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뱀파이어들을 학살해가는 성가대원들의 모습이 지독하게 이질적이다. 인간대 뱀파이어가 아닌 인간 아닌 것들의 전투라도 보는 듯 꺼림칙한 광경이라 김형준은 차마 더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죽어! 이 박쥐새끼들아!"
어디선가 터져나온 욕설과 고함소리. 그래 차라리 이쪽이 인간적이다. 피와 살이 튀어오르지만 이쪽의 전장은 절박함과 필사적인 투지가 느껴져서 차라리 마음이 놓인다. 기계적으로 성구를 휘둘러 뱀파이어들을 쓸어가는 성가대원들보다는 이쪽이 보기 편하다.
"우리도 슬슬 나서 볼까?"
김형준이 전투 초기에 모아놓은 생명력을 다시 활성화시키며 말하자 주변에 있던 1등급 이능력자들이 일제히 자신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가장 먼저 전장에 뛰어든 것은 아야나미 로유미다. 시퍼런 예기를 뿜어내는 태도를 양손에 쥔 그녀가 붉은 안개속으로 뛰어들었다.
"끄아아악!"
피보라가 솟구쳤다. 뱀파이어 무리가 술렁인다 싶더니 새빨간 선혈이 안개처럼 사방을 에워싸고 비명소리가 쉴새 없이 터져 나왔다.
다른 이능력자들 역시 질 수 없다는 기세로 사방으로 흩어져 외곽의 전투를 돕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성가대쪽으로 많은 수의 뱀파이어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던데다가 트루블러드를 역시 전원 성가대쪽으로 몰려간 후였다.1등급 이능력자들을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성가대를 보고 비인간적이라 생각한 1등급 이능력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전투도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성가대원들보다 더욱 비인간적인 그들의 전투였다. 그저
스쳐간다 싶으면 주위에 몰려있던 뱀파이어들이 갈대처럼 쓰러지고 베어졌다. 피보라가 전장을 자욱하게 덮어가고 다른 2등급 이능력자들의 투지가 되살아났다.
여기 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오며 이능력자들이 힘을 쥐어짜 뱀파이어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김형준은 가시찔레꽃을 사방에 뿜어대며 뱀파이어들을 정리했다. 피의 결계를 성가대가 걷어낸 탓인지 전의 전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닥치는데로 사방의 뱀파이어들을 베고 쪼개고 하다보니 빠르게 생명력이 고갈되어간다. 잠시 주변의 대열을 살펴본 김형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혼전중이라 다른 이능력자들이 휩쓸릴까 저어되어 쓰지 못했던 흡혈의 이능을 발휘할 참이다. 이 정도 정리가 되었으면 피아의 식별이 어려워 엄한 이능력자가 휘말리진 않으리라.
김형준의 몸에서 폭발적인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섬뜩한 붉은 빛을 내뿜는 수천가닥의 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며 뱀파이어들을 에워쌌다.
"성가대를 욕할 처지가 아닌가."
이쪽도 비인간적인 것으로 치면 지지 않는다. 아니, 생명력을 흡수하는 자신의 꼴이 뱀파이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키아아악!"
안개로 변해봐도, 박쥐로 모습을 변형시켜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다. 가시찔레의 줄기는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생명력이 있는 곳을 탐욕스럽게 찾아가 그 근원에 틀어박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게걸스러운 식사. 그것이 그의 몸속에 숨겨진 가시찔레 본연의 모습이다.
"바이 바이다. 이 새끼들아."
어느새 소음이 잦아든 전장 속에서 모든 이들이 김형준이 만들어낸 광경을 주시하고 있다. 아야나미 로유미를 비롯한 1등급 이능력자들도 전투를 멈추고 사방을 가득 채운 붉은 줄기를 경이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미 몇 번이나 겪었음에도 전율스러운 광경이다. 수천제곱미터는 될법한 전장
을 촘촘하게 매운 붉은 줄기들이 게걸스럽게 꿀럭거리는 모습은.
한창 기계적인 표정으로 전투를 이어가던 성가대원들 역시 놀랍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피바라기의 권능인가."
바오로 역시 감탄한 표정으로 전장을 주시했다. 수천의 뱀파이어들이 붉은 줄기에 꿰뚫려 옴짝 달짝 못하는 모습이라니, 평생 다시 보지 못할 장관이었다.
"형제들이여! 집중하시오! 아직 진조가 남았다오!"
일부러 그리 한것인지 성가대와 뱀파이어들이 난잡하게 섞인 구간만큼은 붉은 줄기가 침범하지 않았다. 덕분에 성가대원들은 전투를 이어가면서도 곁눈질로 저 멀리 붉은 줄기가 모여드는 중심의 김형준을 바라보느라 부상을 입는 이들이 생기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역병과도 같은 존재. 작은 생채기라고 그대로 두면 곪고 썩어 마침내는 생명을 위협한다. 바오로의 낭랑한 외침에 성가대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라?"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던 김형준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붉은 줄기를 타고 무언가가 넘어오긴 하는데 생명력은 아니다. 뜨겁고 활기찬 생명력과는 다르게 음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이질적이기만 했는데, 수천의 뱀파이어들을 관통한 줄기를 통해 그 생소한 기운이 흘러들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이미 죽은 놈들이라 생명력이 없나?"
낮게 읊조리며 생각해보지만 답은 알수 없다. 다만 전해져 오는 기운이 다르다 뿐이지 뱀파이어들이 바짝 말라가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여느 생명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 그는 흡혈을 멈추지 않았다.
만약 갑작스레 느껴진 심장의 통증이 아니었다면 수천의 뱀파이어들은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모조리 기운을 갈취 당했을 것이다.
"크윽!"
갑작스레 가슴을 조여오는 통증에 김형준이 신음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 작품 후기 늘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네요. 광고 계약 건으로 장기 출장을 다녀온 상태라 업뎃을 못 했습니다.
업뎃 시간 재지 않고 남은 비축분 전량 풀도록 하겠습니다. 휴재한 만큼 연참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여섯시간 뒤에 두편 더 올리고 다시 또 올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