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70화 (170/223)

< --  2-6. 망자의 도시  -- >

러시아의 셰례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한 김형준은 비행기에 내리며 어마어마한 추위에 눈살을 찌푸렸다. 미리부터 장연수가 옷을 챙겨주긴 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추위에 강한 이능력자라도 큰일 날 뻔 했다.

"오! 시원하다!"

원래 설원을 달리던 하얀 갈기 부족의 일원이었던 민용모는 대한민국의 겨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찬 공기에 쾌재를 불렀다. 가벼운 차림의 그와는 다르게 그 뒤에 바짝 따라선 김도연은 두터운 털옷 덕에 몹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는데, 그녀 스스로도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연신 불평을 내뱉었다.

"역시 겨울은 여자의 적이야. 야! 용모! 보기만 해도 추워 보이니까 옷 좀 걸치라고!"

민용모는 김도연을 흘깃 쳐다보더니 온몸을 펴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가볍게 무시를 했다. 김도연은 연신 투덜거렸지만 자신들을 마중나온 러시아 현지의 인원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러시아의 첫인상은 폐를 에일 듯한 찬 공기로 시작되었는데, 마중 나온 러시아 현지의 인원들도 하나 같이 냉막한 인상이었다. 김형준을 둘러싼 장연수를 비롯한 일행들을 다시 한 번 둘러싼 그들과 함께 공항을 나서니, 공항 한켠에 무지막지한 덩치의 검정색 SUV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엄중한 보호를 받으며 SUV에 올라탄 김형준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차에 올라타기까지 막히는 것 없이 모두 물 흐르듯 지나갔지만, 왠지 모르게 주변을 둘러싼 건장한 사내들 탓에 답답함까지 느껴졌다.

장연수에게 물으니 이런 정도의 경호와 수행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 것이라지만, 1등급 이능력자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보호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막말로 그 스스로는 이 자리에 미사일이 떨어진다고 해도, 미리 대비만 하면 안전할 수 있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라의 위신이 달린 문제니만큼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종일관 정중함을 유지하고 있던 장연수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보이자 김형준도 더는 말하지 못했다. 그저 불편한 옷을 끼워 입은 듯한 거북함에 창밖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달려도 달려도 보이는 것은 새하얀 설원들 뿐.

모스크바와의 거리가 28km라는데 도로의 노면이 젖은 탓인지 차는 느린 속도로 달렸다. 그 뒤로 모스크바의 숙소에 도착한 것은 거의 한시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일단 저희에게 배속된 층은 15층이라니 그쪽으로 가시지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호텔이었지만, 그 장식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름 모스크바에서 역사가 있는 호텔이라는 장연수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배속된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하기 전에 보니, 이미 그 안에서 한차례 수색하도 한 모양인지 장연수의 부하직원들이 생소한 장비들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의례적인 절찹니다. 절차."

너무 요란하지 않은가 싶었지만, 왠지 피곤한 기분이 된 김형준은 알았노라 하고 그들을 서둘러 내쫓았다.

그렇게 겨우 혼자가 된 김형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폐부 깊숙한 곳에 있던 갑갑함까지 내뱉을 기세로 한참이나 숨을 내뱉으니 그제야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위치에 맞지 않는다 해도, 차라리 지난 영국행이나 그리스행이 홀가분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침대에 늘어져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김형준은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장연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장연수는 현지에서의 일정을 다시 한 번 브리핑을 하며 김형준의 의견을 물었다. 러시아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비행기에서 설명을 들은 내용이었지만, 김형준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이틀을 휴식한 뒤, 러시아 공군의 에스코트를 받아 흑해를 지나 루마니아 남쪽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다른 인원들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길을 잡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집니다. 그 이후에 일정에 관해서는 내용이 오는데로 정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꺼내든 지도는 위성을 이용하여 찍은 모양인지 정밀한 모습이었는데, 그

중앙의 루마니아를 중심으로 커다랗고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스트리고이의 영역을 가상으로 표기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김형준은 생각보다 넓은 영역에 신음성을 내뱉었다.

세르비아, 헝가리, 몰도바,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인접 국가들중 영토를 제대로 방어하고 있는 곳은 헝가리와 불가리아 뿐이었다. 두 나라를 제외한 국가들은 하나같이 스트리고이의 권능에 잠식되어 있었는데, 그 중 몰도바는 국토의 20퍼센트정도만을 간신히 방어하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보다 더욱 영역이 넓어졌군요."

김형준의 음성이 무겁기만 했다. 장연수는 아무래도 이능력자가 아닌 탓에 조금 견해가 다른 것인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실제로 피해를 입은 것은 전무합니다. 사회 전반적인 시설이나 산업시설들은 일체 손상이 없고, 단지 사람들만이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통제가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김형준이 빤히 그를 바라보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받아낸다. 자신감에 찬 태도나 단단한 분위기를 보면 분명 정보요원이나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이일 거라고 생각한 김형준은 고개를 절래 절래 내저었다.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다르니 장연수가 보는 스트리고이의 영역도와 자신이 받아들이는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리라.

스트리고이만 처리하면 시설 하나 파괴되지 않은 국가들은 금세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 장연수와 달리, 김형준은 스트리고이의 지배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있으며 퇴치 이후 어떤 식의 결과가 나올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었다.

서로 이야기 해봐야 답답할 뿐이라, 김형준은 그의 설명을 대충 듣다가 내보냈다. 장연수, 분명 유능한 사람이지만 이능력자가 아니라 이쪽 세계의 일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차피 루마니아 현지로 진입하기 직전에 헤어질 일행이니만큼 사실 이쪽에 통달한 사람을 보낼 필요는 없었으니, 대한민국 정부의 인선에 큰 문제는 없었으리라. 김형준에게 필요한 것은 통역과 수행에 능한 보조원이었으니까.

장연수가 돌아가고 난 방에 홀로 남은 김형준은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했다.

현재 루마니아를 중심으로 인접 국가에는 각 국가의 총력을 기울인 전력들이 넓게 전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각 국가에서 지원온 이능력자들과 군부대의 혼성 부대들로 스트리고이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는 것을 억지하고 있었는데, 그 인원이 이능력자들만 포함해도 거의 만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비록 실제 전투 가용등급인 6등급에 턱걸이하는 이들이 태반이라지만 엄청난 수임에는 분명했다. 거기에 군부대의 수까지 합치면 실제 십수만에 이르는 대인원이 작전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트리고이의 영향력이 어떤 식으로 퍼져나가는 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전개된 부대들이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는 모양인지 더 이상 영역이 확대되거나 하진 않았다.

김형준은 장연수가 전해주고 간 부대 전개도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서류철의 또다른 종이를 뽑아들었다.

1등급 이능력자 37명, 2등급 이능력자 420명.

루마니아 남쪽의 불가리아와의 국경지대에서 집결한 각국의 지원병력의 수다.

이 또한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던지라 김형준은 이번 스트리고이 퇴치가 쉽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지만 가슴 한켠에는 불길함이 싹트고 있었다.1등급 이능력자 37명이라면 당장에 일산으로 그 전력을 모시고 가 천개의 눈동자와 일전을 벌여도 될 것이건만 왜 이리 가슴 한켠이 차갑게 식는지.

김형준은 한참이나 서류들을 노려보았다.

저녁이 되자 각국의 이능력자들에 대한 호출이 전해졌다. 그 태도가 어찌나 정중한지 이미 일정으로 통보가 되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현지의 수행원들이 다시 한번 개개의 인원들에게 통보를 하고 갔다.

그들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의아함을 갖는 김도연을 비롯한 일행들에게 타국의 이능력자들에 대한 대접을 생각하면 보편적인 것이라 설명하니, 김도연이 분개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친개'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성정이 괄괄한 그녀였지만, 막상 유니온의 통제 하에 있을 적에는 제대로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우리나라가 미친 겁니다. 역사를 봐도 그렇고 왜 그렇게 제대로 대우를 안 해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승대가 냉소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는 이번 루마니아 행에 포함된 비맥의 인원이었는데 비맥주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얼굴을 지닌 이였다. 다만 과묵한 와중에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이 믿음직스러웠는데 의외로 조국에 좋은 감정은 없는 듯 했다.

"비맥에 들어가 수행자로 있다보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워낙에 많이 접해서요."

순간 자신이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가 겸연쩍게 변명했다.

"뭐, 그런건 따로 듣지 않아도 알지요."

궁맥에서 파견나온 김순영이 그런 그에게 동조를 했다.

김형준이 신세한탄으로 이어지려는 일행들을 다독여 집결지로 정해진 14층의 스카이 라운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통할 것도 없이 비상계단으로 향하는데 장연수의 부하직원 둘이 비상계단의 양 옆을 막고 섰다가 그들을 보고 고개를 숙여보였다. 마치 요인 경호라도 하듯 엘리베이터를 포함하여 15층 요소 요소를 막고 선 그들의 모습을 본 김도연도 투덜거리는 것을 멈췄다.

이능력자들 간에야 얼마든지 내심을 내뱉는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까지 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비상계단을 통해 14층의 로비로 가보니, 회의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파티장에 가까운 스카이 라운지가 보였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한국말이 능숙한 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배정된 테이블에 앉은 김형준 일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앞열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는 고급스러운 식기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식사를 겸해 간단한 브리핑이라도 할 모양이라

고 김형준은 생각했다.

그리고 김형준 일행의 테이블을 선두로 하여 주변에 늘어선 테이블들에는 하나 같이 기도가 날카로운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본의 이능력자들이군."

그리스 행에서 보았던 나가사키 쥬리를 비롯한 이들이 앉은 테이블, 저우제룬이 앉은 테이블 등등. 김형준은 어렵지 않게 그들의 국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나머지 여섯 개의 테이블에 앉은 이능력자들은 어느 나라 출신인지가 모호했는데, 극동아시아의 사람들과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가 아마 인도쪽이나 비슷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짐작만을 해볼 뿐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루마니아 탈환 작전에 앞서, 앞으로 등을 맞댈 전우들을 먼저 알 수 있는 자리를 마련코저 한 이유입니다."

단상에 오른 말끔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렇게 서두를 빼며 각국의 이능력자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대한민국의 1등급 이능력자이자 '미노타우르스 슬레이어', '거인 학

살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신 피바라기 김형준 검맥주님을 소개합니다!"

김형준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못마땅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대충 인사를 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일산의 괴수를 퇴치하기 이전에 다른 나라의 조력을 구할 명분을 구하기 위해 온 김형준이다. 절실한 이유로 찾아온 곳에서 마치 저명인사들의 파티라도 흉내 낸듯한 모양새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으니 영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민용모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을 소개하던 사회자가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뺐지만, 김형준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은 이런 자리가 기꺼운 지 밝은 얼굴로 자신의 소개에 호응했다.

"일본에서 오신 1등급 이능력자이자 검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야나미 로유미님이십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자리에서 일어난 청초한 인상의 미녀가 김형준에게 도발적인 시선을 던졌다. ============================ 작품 후기 아이고. 이제는 죄송하다는 말씀도 못 드리겠네요. ㅜㅜ

자꾸 휴재를 하니 독자님들 뵐 면이 없어 코멘트 확인도 못하겠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강아지 입양하고 나니 개인 여가 시간이 전부 강아지에게 쏠려서, 똥 치우랴, 뭐 하랴, 하루가 너무 짧기만 하네요. 왜 사람들이 개 키우기 전에 각오라하는지 알겠어요.

그래도 그 수고로움이 너무 즐거워서 자꾸만 강아지만 보고 있다보니 정작 연재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ㅜㅜ 어제도 연참해야지 하고 있다가 개 데리고 산책 다녀오고 개 목욕시키고 개똥치우고 하고 나니 하루가 다 갔네요. ㅜㅜ여튼 정상적으로 연재를 위해 연참 대신 비축분 만드는 중입니다. 지금 현재 다음 편까지는 써놨고 최소 열편은 비축을 해야 연재속도에 지장이 없을 듯 해서 부지런히 쓰는 중입니다.

이런 글이라도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아지 이름이 뭐냐고 물어주셨는데, 결국 옥희로 했습니다. 향단이 금례 덕자 옥자 로유미 등등 전부 어머니 지인분들 이름이더라고요. 향단이는 향숙이라는 어머니 지인분, 금례는 박금례여사라는 어머니 지인분, 덕자는 저희 사촌누님 남편분의 아명이시고 옥자도 마찬가지고요. ㅡ,.

*이제 80일 된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갔는데, 사람들이 기겁을 하더라고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제 강아지한테

'살인자! 핏불!'

이러고 노려보는 사람도 있었고. 핏불도 아니고 도고 아르헨티노라는 종이었고, 산책 나간 장소도 제 사유지인 제땅이었는데 그런 기분 나빴지만 그저 대형견 키우는 사람의 당연한 업보라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물론 애견은 주인 눈에만 이뻐보인다지만, 앞으로 개 데리고 산책 나갈 때는 각오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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