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 망자의 도시 -- >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에 맞춰 내 관자놀이가 불끈거린다. 마치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에 보조를 맞추듯 뛰어대는 내 심장 탓에 온몸이 화끈거리는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쿵쿵!
이제는 두근두근이 아니라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려대고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다.
그렇게 얼마나 홀린 듯이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온몸에 치밀어 오르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몸 안에 열기 하나 남지 않고, 귓가에 들리던 환청 같은 박동음이 사라진다.
'이국의 사내여.'
갑작스레 들려온 환청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오직 나뿐.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으로 향했다.
"지금 심장이 말한 거야?"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니 다시금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대에게 사념을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으니, 부디 귀를 기울여다오.'
아스라한 음성이 어찌나 위태롭고 절박한지. 나도 모르게 심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누구?"
스스로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오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던 나라지만 심장과의 대화라니 황당하기만 했다.
'나는 모노케라스의 사념, 다이달로스의 눈을 피해 내 영혼의 마지막 한 조각을 심장과 함께 남겨두었다.'
과연 짐작대로의 정체다. 처음부터 덩그러니 밖에 놓여 박동하는 심장이라니 기괴하기 그지없던 존재였는데 심장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정체야 빤한 거 아닌가.
'시간이 없으니 할 말만 하겠다.'
자꾸 시간이 없음을 강조하는 모노케라스의 사념에 나도 자세를 바로하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그날 나는 다이달로스에 의해 자살을 강요받았다. 내게 신의를 보여주고 제 정신을 찾게 도와준 그대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그 말을 따르긴 하였으나, 나는 훗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현에게 듣기로 모노케라스의 힘은 거의 반신지경에 가까운 것, 그런 그가 강압에 의해 자살을 해야 할 정도로 다이달로스는 무서운 존재란다. 미궁의 한 구석에서 반쯤 넋 놓은 채 있던 첫모습은 어느 정도 의도가 된 것이라고 보아야 했다. 목적도 이유도 모르지만 다이달로스의 진정한 정체는 그렇게 추례한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니.
나로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직접 그 힘을 겪어본 모노케라스의 죽음과 연관이 되고 보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이달로스는 그저 종복에 불과한 존재, 처음부터 무언가를 홀로 꾸밀 능력은 없던 이다. 내가 걱정한 것은 바로 그것, 그의 뒤에 도사리고 있을 배후가 나는 실로 두렵구나.'
심장의 박동이 불안정해진다. 시간이 없다 말하더니 뭔가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인지, 아니면 두려움에 사념이 어그러지던지. 어떤 쪽이든지 간에 모노케라스의 말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먼 훗날을 대비하고자 심장의 일부와 영혼의 한조각을 담았으니, 그대와 함께 하여 약속된 그날 돌아오리라. 그날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나도 모르나 그대의 곁에 함께 할 것을 약속하마.'
대체 심장 한 조각을 남긴 것이 어떤 대비가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날의 압도적인 힘을 떠올리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가뜩이나 궁맥과 비맥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온 후라 초조했던 기분이 진정되었다.
'손을 내밀어라.'
모노케라스의 사념이 심장을 집어들 것을 부탁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모습이라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나는 눈 딱감고 심장을 쥐었다.
두근, 두근말캉거리는 감촉과 그 희미한 박동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꾹 눌러 참았다.
'되었다. 이것으로 그대와 나는 하나. 약속된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깨어나리라.'
무엇이 됐다는 건지 모를 모노케라스의 말에 내가 의아해할 찰나,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심장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흉물스럽게 흘러내리는 고깃덩어리가 내 손아귀를 타고 흘러 내 오른팔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고양감, 온몸에 힘이 충만하다. 영국의 멀린을 흡수했을 때처럼 뜨겁고 거센 기운이 아닌 미미하지만 청량한 느낌이 몸을 휘감았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시원한 한줄기 기운이 온몸을 내돌다가 그대로 내 심장어림에 자리를 잡았다. 힘이 강해졌다는 느낌보다는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느낌에 가까운 그 상태, 나는 한참 만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내 눈 앞에는 텅 비어버린 상자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다.
"우웩!"
멍하니 상자를 바라보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시국이 격변한다. 대한민국은 하루 자고 일어나면 또 다시 들려오는 뉴스에 들썩였다. 비맥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지난 참사와 관련되지 않은 부정까지 연일 뉴스의 메인을 장식한다.
애초부터 바닥이었던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제는 터럭만큼도 남아있지 않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맥이 국민의 믿음과 지지를 받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이능력자들이 활동하기 좋은 세상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전처럼 테러리스트 보듯 괴물 보듯 하던 시선들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선망과 동경의 빛이 그 시선에 가득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장래희망 조사에 '이능력자'가 압도적으로 1위라니 현 시국을 알만 했다. 다만 이능력자라는 게 다른 의사, 변호사, 과학자 같은 장래희망과는 다르게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제야 어깨를 피고 돌아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는 바쁜 일정때문에 뭐 하나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저는 일이 마무리 되는데로 바로 쫓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가만히 뉴스를 보며 루마니아행을 준비하던 내게 지현이 말했다. 사일 우리는 얼마 전 현지의 말 때문에 연아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다행스럽게 아무런 일이 없었다. 연아가 잠에서 깨어나면 무언가 불길할 일이 벌어질 것만 같더니, 오히려 전보다 더 활기차고 명랑해진 연아의 모습에 걱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탓에 루마니아행을 서두를 수 있었다.
"오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각국에서 내노라 하는 1등급 이능력자들이 대거 참여한다잖아요 이번 작전."
내 말에도 지현은 단호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지난 영국행 이후 저는 결심했었답니다. 절대로 당신과 떨어지지 않기로. 비록 당신이 시작한 일들을 마무리 짓기 위해 잠시 떨어져야 하지만 일이 마무리 돼는 데로 그 뒤를 쫓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요지부동이다. 하긴 그녀 정도의 능력이라면 이미 말에 언령이 서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을 지키게 된다니, 이번처럼 스스로의 의지와 지난 다짐이 어우러진 경우에는 내가 말리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리라.
타국의 이능력자들은 거짓말도 곧잘 하는 것 같은데, 왜 우리 나라의 이능력자들만 이런 불편한 제약이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처음부터 힘을 지니고 태어난 타국의 이능력자들과 수도와 성찰로 인해 경지에 올라선 이들이라, 스스로의 심상에 흐려지면 경지에 비해 힘이 낮아진다니 어쩔 수 없는 문제다. 한가지 좋은 점이라고 하면 언령과 심상유지라는 방법을 통해서 타국의 이능력자들에 비해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더
크다는 점 정도일까.
결국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앞으로의 일을 차곡 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해놓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지만 이번 루마니아 행 역시 앞날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각국은 서로 간에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이루고 세계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 1등급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데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나는 가만히 이번 루마니아행에 함께 할 인원들을 체크했다. 민용모, 김도연.
낮익은 이름 둘이 가장 상단에 쓰여 있었다. 안 그래도 지난 밤에 그들에게 직접 연락을 받았던지라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의 일도 다 팽개치고 루마니아행을 결정한 용모의 태도에 의아했었다.
하지만 지난 밤의 대화에 의하면, 용모는 태생적으로 루마니아의 스트리고이와 앙숙지간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용모는 하얀 갈기 늑대의 일족. 인간과 다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라이칸슬로프 웨어 울프의 일족이다.
진즉부터 인간세계에 섞여 살던 용모의 일족은 꽤나 긴 항쟁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근 수백년에 달하는 그들의 항쟁은 다름이 아닌 흡혈귀 일족과의 처절한 전투로 점철되어 있었다.
시작하기를 흡혈귀들의 노예와 비슷하게 태어난 늑대인간 일족들이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은 오래지 않았는데, 흡혈귀들은 여전히 늑대인간들을 보면 종복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단다. 용모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기질이 강한 늑대인간들이 그런 흡혈귀와 사이가 좋을리가 없었다.
덕분에 둘은 만나기만 하면 둘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는 싸워야 했는데, 둘 중 하나가 죽거나 굴종을 하거나. 극단적인 끝만이 둘 사이에 놓인 암묵적인 합의란다.
길디 긴 그들의 처절한 역사에 놀라 눈을 휘둥그래 하게 뜨니 용모가 실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내가 전에 본적 없이 섬뜩한 뭔가를 품은 것이었는
데, 그런 표정까지 보고 나니 용모에게 일을 핑계로 한국에 남겨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용모의 합류가 결정되고, 도연 역시 어둠의 일족을 다루는 데는 자신만한 이가 없다고 하며 끼워달라는 의지를 보였다.
다만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라는 말을 떠올리건데 아마 높은 보수에 움직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외에도 이름도 모르는 궁맥과 비맥의 인원들을 포함한 이들을 포함하여, 총 다섯명의 인원이 루마니아로 출국하게 됐다. 각 국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전력이 출발한다니, 집결지로 정해진 독일에 도착하면 더 많은 능력자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집결지는 독일과 러시아.
이미 잠식되었을 거라 판단되는 루마니아와 위험국가로 선정된 인접국을 피해, 모두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러시아와 더 인접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중국, 인도등의 이능력자들은 전부 러시아에서 집결하는데 그 수가 대략 50여명에 가깝단다. 또 다른 집결지에도 대략 비슷한 수의 이능력자들이 모인다니, 이번 원정에 동원된 전력은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러시아로 가는 당일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김형준 검맥주님을 비롯한 대한민국 인원의 루마니아행을 도울 장연수라고 합니다."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 하나가 다가와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 뒤로 보이는 검은 색 세단이 한두대가 아니었다.
조금은 놀라 마주 인사를 하니 그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난 시간동안 정부와 있었던 불편한 관계는 잊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부는 이번 김형준 검맥주님의 루마니아 행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협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정부와 협의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꽤나 거창한 인원들이라
조금은 놀라웠다.
"비록 저희가 비능력자이긴 하지만, 이런 쪽의 일에 특화되어 있으니 부담을 드리거나 짐이 되진 않을 겁니다."
시종일관 공손하지만 자신감에 찬 음성으로 이야기를 하는 장연수라는 사내를 보니, 아무래도 국정원이나 그와 비슷한 곳에 소속된 이들일 거라는 짐작이 갔다.
"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루마니아로 향하는 첫발을 내딛었다.
============================ 작품 후기 조금 내용이 짧습니다. 다음편부터는 다시 3인칭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자르기가 적당하지 않아 요기서 끊습니다.
휴재 없도록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이게 본업과 병행이니 쉽지가 않아서요.
오늘 스케줄 전부 취소했으니, 아마 오늘은 내가 이능력자다를 좀 더 쓰고 출판중인 글 마무리를 해서 출판사에 보내놔야 할 듯 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유료연재를 하고 출판까지 하니 이게 다 일이 되어버렸네요. 다행스럽게도 일이지만 즐거운 일이니 저에게는 즐겁기만 하지만 말입니다.
다만 하루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능 ㅜㅜ여튼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조속한 완결을 위해 저는 열심히 머리를 짜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