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67화 (167/223)

< --  2-6. 망자의 도시  -- >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신문과 뉴스를 통해 쏟아져 나온 정치인들과 고위 군 장성들의 대국민 사과가 끊이지 않았던 탓이다.

사과문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 같았다. 지난 대괴수전과 서울사태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이에 사과를 하고 어떠한 처벌이든지 달게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얼떨떨하게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뒤늦게 분노했다. 거의 대한민국 고위관료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지난 참사에 관여가 되어 있다니, 그 사건으로 친인을 잃은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발뺌을 하다가 뒤늦은 사과를 하니, 의문이 들면서도 더욱 그들의 뻔뻔함을 느끼게 했던지라 국민들의 분노는 겉잡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라면 어느 곳이나 피켓을 든 국민들로 가득 찼고, 인터넷의 게시판 역시 정치인을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개새끼들아 다 죽어버려!"

"네놈들은 살인자야!"

과격한 국민들의 언사에 마주 선 전경들의 얼굴이 잔뜩 무거워졌다. 이렇게 대치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들 역시 이 나라의 국민이자 지난 참사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이었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다행스럽게 아직까지는 상부에서 진압지시가 내려오진 않았지만, 언제 진압명령이 떨어질지 몰라 그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내 아들 돌려줘! 살려내라는 말이야!"

어느새 진압대의 선두열까지 다가선 시민들이 방패를 쥐고 흔들어대며 통곡했다. 이렇듯 가까이에서 보고 나니, 분노라기보다는 허탈함과 비탄에 가득한 감정이라 진압대는 그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섰을 뿐이다.

"계획대로 되긴 했는데, 이거 영 찝찝하네."

진압대와 시민들이 마주선 광경이 한 눈에 보이는 건물의 옥상 위, 민용모가 씁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찝찝할 거 없어. 비록 편법을 썼지만 순리대로 흘러가는 거야. 우리가 사실을

날조한 건 아니잖아."

민용모의 풀죽은 음성에 곁에 있던 여인, 김수현이 위로같지 않은 위로를 했다.

"나는 그보다 놀란 게, 형준씨가 이런 과격한 방법을 떠올렸다는 게 더 놀라워."

김수현의 말에 민용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1등급 이능력자라는 이름값과 그 힘에도 불구하고 이리 저리 끌려다니던 모습을 보여왔던 그가, 이런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다니. 그의 친우이자 조언자였던 민용모 역시 당시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듯 해. 지난 그리스 행에서."

민용모의 말마따나 김형준의 이번 변화는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간 정론적인 방법으로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던 김형준이 대번에 상황을 정리했으니,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럽기 그지없었다.

한번 힘으로 정국을 정리한 그가 그 힘에 도취되어 독재자와 같은 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이제야 유니온의 수탈에서 벗어나고, 외국

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기 시작한 이능력자들이 이런 김형준의 행보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럽다 말하지만, 나는 전부터 알고 있었지. 안개 속에서 헤매던 시절부터 형준이는 꾸준하게 유니온의 압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었거든. 그때는 결과를 내거나 하진 못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큰 일을 칠 놈이다라고 생각했었지."

안개 속에서 막 생환했을 당시 김형준은 군부와의 연계하여 유니온을 압박하려는 시도를 했었고, 그 뒤로도 유니온의 행사에 불만이 많은 이들을 모아 몇 안 돼는 수였지만 뜻을 같이 할 이들을 모으기도 했었다.

물론 당시 하급 능력자였던 그의 입장에서는 정보가 제한되었던 관계로, 이미 유니온과 밀착되어 있던 군부의 관계를 몰라 처음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거기에 더해 괴수전에서 뒤통수를 친 군부의 독단이 유니온의 사주로 인한 것이었었고.

이래 저래 헛수고를 많이 한 김형준이었지만 이제 와서 거인으로 우뚝 서서 칼을 빼든 모습을 보니 민용모는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차례네."

생각에 잠겨 있던 민용모가 깨어났다. 김수현의 말에 시민과 대치한 진압대를 살펴보니 천천히 진압대형이 전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턱 끝에 칼이 닿아보지 않고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가."

김수현이 진압대와 시민들의 한가운데로 몸을 날리는 것을 바라보며 민용모가 중얼거렸다.

"검맥에서 나왔습니다! 저희 검맥은 그 어떤 과잉진압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들 사이에 내려선 그녀가 새하얀 빛을 내뿜으며 시민과 진압대의 거리를 벌려두는 사이에 민용모 역시 몸을 날렸다.

"역시 우려했던 사태가 일어났군요. 다만 그 사태가 우리 미국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히어로즈의 고위간부 캐더린은 보고서를 덮었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중년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대한민국 정부는 너무 무능했어. 이능력자들이 지닌 힘을 너무 간과했던 거야. 그들이 지닌 힘을 생각하면 하급 이능력자들에게도 요인암살과 주요처의 테러등이 얼마나 손쉬운 것인지 알았어야 했어."

남자의 말에 캐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요.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을 선량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휘둘리면서도 이제껏 나라가 유지되었던 것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에요."

"그래. 어쨌건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나라들도 정신이 번쩍 들겠지. 이능력자들을 자극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은 사무실의 한켠에 놓인 스크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쉽군요. 저 정도 거물이라면 이제 우리도 포용할 수가 없겠는데요. 꽤나 탐이 나던 인잰데."

"미국과 히어로즈의 품은 넓어. 저 정도의 인물을 거물이라고 한다면 우리 히

어로즈에는 그런 거물이 수두룩하지."

남자의 말에는 외골수적인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캐더린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옮겨 남자를 살펴봤다.

"하지만 1등급 몬스터를 퇴치한 경력을 지닌 사람은 한명도 없죠."

"그깟 그렌델과 미노타우르스. 우리 능력자 둘만 보내도 끝이야. 저놈은 운이 좋아 유명세를 탈 뿐이지."

다소나마 열등감이 느껴지는 남자의 말에 캐더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그 역시 그리스에서 전해온 미노타우르스의 엄청난 힘을 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저런 소리를 지껄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승부욕일지, 또는 열등감일지. 어쨌건 상대가 되는 김형준은 저 남자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니 도리어 남자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뭐 어련하시려고요. 그보다 루마니아의 일은 어떻게 되가고 있죠?"

"그것이 이상해. 우리 정보원도 연락이 되지를 않고, 침투해있던 모든 루트와의 연결점이 끊어졌어. 다만 반복적으로 '스트리고이' 퇴치에 대한 소식만 들릴 뿐."

화제를 돌린다고 꺼낸 이야기가 오히려 더욱 무거운 이야기다. 캐더린이 얼굴

을 찌푸렸다.

"생각하기는 싫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일은 단 하나군요."

캐더린의 말에 남자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세계적 거인으로 유명한 김형준을 눈 아래로 보는 언사를 일삼던 그에게도 이번 루마니아 사태는 심각했던 모양이다.

"그래. '스트리고이'가 루마니아를 먹어버렸을 가능성이 높겠지."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 언어가 되자 그 말에 담긴 섬뜩함이 둘의 목을 조였다.

"큰일이군요. 세계 최초로 1등급 몬스터에게 나라 자체가 먹힌 사례가 나와 버렸어요. 그것도 하필이면 상대가 '스트리고이'라니. 최악이군요."

'스트리고이'루마니아에 전승되는 흡혈귀 신화의 주인공이다. 인간과 닮은 외모를 지닌 타국의 흡혈귀 신화와는 달리 괴물과도 같은 모습에, 인간의 피를 탐한다는 스트리고이.

역병과 안개, 늑대와 박쥐를 부린다는 그 전설의 악마가 지금 루마니아를 집어삼킨 것이다. 전승된 정보에 따르면 '스트리고이'의 권능은 오염을 사역하는 것. 땅을 오염시켜 죽은 자를 잃으키고 인간을 전염시켜 죽지 못하는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모든 권능이 이루어졌을 때 진정으로 무서운 스트리고이만의 영역선포가 이루어진다.

스트리고이의 왕국.

사자들로 이루어진 왕국에 군림하여 그 역병과도 같은 권능을 퍼트리니, 루마니아의 상태가 지금 딱 그짝이리라.

"아마 전승된 정보처럼 지능도 상당한 듯 해요. 지금은 제 딴에는 시간을 번답시고 스스로의 죽음을 가장하고 루마니아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겠죠."

캐더린의 말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 사태를 수습해야 해요. 스트리고이의 역병은 이능력자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스트리고이 본인보다 더욱 까다로운 피조물을 만

들어낼 수도 있으니, 세계 이능력자 협력기구에 이건을 건의하겠습니다."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각은?"

"가능하면 빨리."

캐더린이 단호하게 말하자 남자 역시 동감하는지 별다른 말이 없다.

"대한민국은 이번 회의에 끼지 못하겠군."

한참만에 입을 연 남자의 말이 다시금 김형준을 의식하고 있자 캐더린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마치 비웃음과도 같아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무슨 말씀을. 이번 일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힘이 가장 필요할 때입니다."

스크린에는 대한민국 시민들과 진압대의 대치상황과 그 사이에 끼어든 이들이 검맥의 인물이라 자신을 밝히는 모습이 보였다.

"스트리고이의 역병은 흡혈로 사역되는 것, 김형준의 콜싸인은 '피바라기'. 그

누가 이길지 흥미롭지 않은가요?"

캐더린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모든 이들이 대한민국의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그 순간, 정작 그 사건을 주도한 주인공은 태백산 한 자락의 깊은 산중에서 느긋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도맥의 본산이 위치한 이곳에서 김형준은 느긋하게 도맥의 수련자들이 오고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리 특별할 것 없이 그저 오고 가는 수행자들 뿐이었지만, 그는 한참이나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수련자들이 오고 가는 사이에 끼어 졸졸 따라다니는 여인의 모습 탓이다.

"많이 좋아졌네?"

조금은 가벼운 음성에 곁에 있던 김도연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뭐, 사회에 나가도 큰 문제는 안 일으킬 거야. 처음에 왔을 때는 말도 마. 산을 통째로 태워버릴 뻔 했다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김형준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일전에 서울을 탈출하면서 그녀는 군부대 하나를 통째로 태워버린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섬뜩하기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현지는 도맥의 수련자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하릴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 여느 또래처럼 보였다. 다만 여전히 맹한 표정이라 조금은 어려 보이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그가 알고 있던 현지의 모습과 다름이 없어 오히려 정겨워 보였다.

"고생이 많았겠네."

김형준이 정색을 하고 수고에 감사하자 김도연이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쑥쓰러운 모양인지 부산스럽게 몸을 놀리며 그의 등가를 팡팡 후려치는 그녀의 모습에 김형준도 미소를 지었다.

이미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상당했었지만, 늘 피해의식에 절어있던 그의 입장

에서는 그녀를 이렇게 편하게 대한 게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녀 탓에 이런 저런 고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녀가 사고뭉치긴 하지만 그녀 딴에는 그를 돕는답시고 벌인 일도 많았다. 새삼 도맥이 위치한 태백산 자락의 청명한 기운을 마주 하고 나니 스스로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낀 김형준이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정겹게 나누십니까."

그렇게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들 사이로 청아한 음성이 끼어들었다.

"왔어요? 어, 연아 또 잠들었네?"

연아를 등에 업은 지현을 바라보며 김형준이 허겁지겁 달려가 아이를 받아들었다.

"아이들은 원래 잠이 많다지 않습니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연아를 김형준에게 건네준 그녀가 평화롭게만 보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 역시 태백산에서 수련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니, 지금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리라.

그들이 그렇게 부산을 떤 탓인지, 멀리 있던 현지가 그들을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온다. 그 모습이 꼭 어미 닭을 발견한 병아리와도 같아 모두가 웃음을 짓고 있다.

"현지 왔어?"

김형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현지의 머리를 쓰다듬자, 현지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다 연아에게 다가섰다.

"연아 자. 맨날 자."

그 짤막한 의사표현에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 해졌다.

"이번에 깨어나면 연아, 많이 클 거야."

조금은 생뚱 맞은 현지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 할 때, 다시 한 번 현지의 입이 열렸다.

"안에 있는 것, 좋지 않아. 이번에 깨어날 거야."

============================ 작품 후기 강아지 이름으로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잠시 궁리를 해보다가 결정이 되면 강아지 사진과 함께 이름을 지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껄껄.

아마 주말쯤에 올리지 싶네요.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연참하고자 마음은 먹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말에나 몰아서 글을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강아지 본답시고 왕복 160키로미터 거리를 몇번이나 왔다갔다 하다보니, 아무래도 일이 좀 밀려서요.

주말에는 최소 이틀동안 4편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연참할 수록 내가 이능력자다는 더 빨리 완결이 난다는 사실 ㅋㅋㅋ)*강아지 이름 추천 중에 로유미란 이름이 보이는 데 기분 탓이겠지요 ㅋㅋ

(참고로 제가 연참할 수록 내가 이능력자다는 더 빨리 완결이 난다는 사실 ㅋㅋㅋ)*강아지 이름 추천 중에 로유미란 이름이 보이는 데 기분 탓이겠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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