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66화 (166/223)

< --  2-6. 망자의 도시  -- >

나는 가만히 TV에 채널을 고정한 채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은 수시로 바뀌어 가며 대한민국의 시시콜콜한 뉴스들을 전하고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화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저녁 뉴스까지 끝이 났지만,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결국 좋은 말로 하는 협상은 먹히지 않는구나. 결국 남은 것은 강경한 방법뿐이라 괜스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애초에 계획하기를 말로 몇 번 더 타일러 보다 통하지 않으면 실력행사를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같은 인간에게 이를 들이밀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관자놀이를 지긋이 손으로 누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음을 토해낸다.

'주요 인사들에 대한 소재지 파악 완료.'

'작전 시작, 종료까지 약 48시간.'

각기 다른 번호로부터 날아온 메시지들에 나는 한숨을 내쉬다가 표정을 굳혔다.

이제 와서 후회니, 뭐니 하고 있을 겨를 따위는 없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는 뭐가 나올지 지켜봐야할 뿐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테러리스트로 몰았으니, 이번만큼은 그 말대로 해주마. 몇날 며칠을 머리를 쥐어짠 것이 고작 테러에 가까운 작전이었지만, 그것이 내 한계였다. 애초에 대의명분을 앞세워 스스로 반성하게 하기에는 가진 자들의 탐욕이 너무도 크고 뿌리 깊었다.

이제껏 지루하게 끌어온 정부와 우리들간의 불화는 이제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내릴 것이다. 나는 그저 이 자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지켜볼 뿐이다.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처음 정부에 대항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그날 내가 그렸던 그림과는 완전히 달라진 그림에 가슴이 답답했다.

비록 정부와 씻을 수 없는 은원이 있었지만, 합당한 처벌과 보상 이후에 공생하고자 했던 나의 계획.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D섹터에서 굴러대며 바락바락 악을 써가며 살아왔던 내가 있는 자들의 심리를 이해하기에는 그들과 내가 너무도 달랐다.

서로를 인정하고 공생하는 관계라니, 요즘 들어 정부가 하는 꼴을 보면 내가 얼마나 허황된 꿈을 꾸었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어차피 저들이 힘으로 찍어 누르려 했으니, 나 역시 힘으로 맞서는 것이 인지상정. 이제 와서 대의니 뭐니 떠들어 봤자 입만 아프다. 그저 지금은 계획한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성사되어 저들이 우리의 힘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맥의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 계획에 대한 협조를 구한 것이니까.

우리 검맥은 드러나는 검이 되어 놈들의 목을 죌 것이고, 도맥은 민심을 아우르고, 비맥은 실질적으로 그들의 턱 끝에 닿은 단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궁맥은 보이지 않는 활이 되어 모든 악의를 사전에 제외하리라.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파탄으로 치닫을수 있는 위험천만한 계획이 지금 시작되었다.

허공중에 신비로운 빛이 흩날린다. 허공중에 떠도는 작고 커다란 빛의 알갱이들은 하얗고 푸르고 붉다.

그런 알갱이들이 수천 수만 수백만이 되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천지에서 가장 귀하고 귀한 이들이여..."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는 낮고 청명한 음성이 천지사방을 아울렀다.

"천지에서 가장 귀하고 귀한 이들이여!"

뒤를 따르는 곱거나 거칠거나 조용한 음성이 수십, 각기 다른 음성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경건함과 안타까움만큼은 하나같다.

"그 소리 없는 통곡이 사방에 가득하니 얼마나 원통할꼬, 그 보이지 않는 눈물이 사방을 적시니 얼마나 슬플꼬, 그 혼백을 찢는 고통에 얼마나 괴로울꼬.

"청명하던 음성이 낮아지며 노기를 띠고, 다시 비통에 가득차고, 다시 고통에 절규를 한다. 수십의 음성이 그 뒤를 따라 복창하니 그 노기와 비통, 절규가 사방에 퍼져나간다.

"여기 그대들의 원통함, 비통함, 고통스러움을 함께 하리니 부디 더는 원망 마오!"

울부짖듯 외치던 음성이 어느 순간 힘 있게 바뀌고, 허공에 가득하던 빛의 알갱이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휘감아 돌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느릿하던 것이 나중에 가서는 폭풍처럼 질주하니, 온 세상이 바람소리로 가득 찬다.

그 바람소리가 꼭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하고, 고통에 차 울부짖는 것 같기도 하다.

"우시오! 소리치시오! 그리고 말하시오! 우리가 다 듣고 있소!"

하얀 도복을 나부끼며 선창을 하는 남자의 온몸에 어느덧 누르스름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둘러선 수십의 인물들도 누런 빛을 뿜어냈다.

가뜩이나 사납게 불어대던 회오리 바람이 더욱 거세지자 사람들이 휘청거리며 안간 힘을 다해 중심을 잡았다.

그 중심에 서 경건한 손으로 양손을 하늘 높이 뻗은 남자만이 그 바람에도 굳건하게 몸을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귀를 찢을 듯한 바람소리와 바람에 나부

끼는 도복자락의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비명과도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세찬 돌풍이 사방을 찢을 듯이 할퀴고 다녔을까. 은은하게 차오르던 누르스름한 빛이 조금씩 커지다가 저들끼리 뭉쳐 하늘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승천하는 빛을 따라 돌풍이 하늘로 높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온 세상에 가득하던 바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사납게 나부끼던 도복자락도 어느덧 얌전한 새색시마냥 곱게 자락을 늘어뜨렸다.

"승천!

(昇天)"

중심에 선 남자의 낭랑한 외침에 하늘을 꿰뚫듯 솟아오르던 누런 빛줄기도, 용이 승천하듯 빛을 따라 회오리치던 바람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온 적막감이 한참이나 존재를 뽐내다가 작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흑.. 흑..."

하얀 도포자락을 늘어뜨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던 여인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흐느낌이었던 것이 끝에 가서는 대성통곡으로 바뀌었다.

"으아아아악!"

피를 토하는 절규가 또 다른 누군가의 입에서 뛰쳐나왔다. 그렇게 수십의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절규하고 통곡했다.

오직 그 중심에 선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자만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여러분은 서울의 지척에서 이루어진 승천제를 보고 계십니다. 대한민국의 이능력자 단체 중에 가장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는 도맥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행사는, 지난 서울참사에 휩쓸려 덧없이 사라져간 700만 서울 시민들의 넋을 위로하는 자리입니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 흉물스럽기만 한 도시의 외곽을 뒤로 하고 리포터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한 리포터는 여전히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도맥의 능력자들을 가리키며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대한민국의 거인 '피바라기' 김형준 검맥주와 같은 1등급 이능력자인 허준영 도맥주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아마도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된 듯 합니다. 허공에 흩날리던 빛 알갱이 하나 하나가 마치 지난 참사에 목숨을 잃은 700만 서울 시민의 영혼 같았고, 사납던 바람소리는 그들의 한 맺힌 절규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영혼도 절규도 지금은 모두 눈부신 섬광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승천제의 지척에 있었던 탓에 현장에 가득하던 사념에 동화된 탓일까. 결국 리포터의 눈을 타고 흐르던 몇방울 눈물이 조금씩 굵어지다가 이내 줄기로 바뀌었다.

흐느낌을 가득 담은 음성으로 연신 현장을 중개하던 리포터가 결국 대성통곡을 터트리며 화면이 바뀌어 스튜디오를 비춘다.

-현장에 나가있는 신경진 리포터, 생생한 소식 감사합니다. 승천제에 앞서 도맥의 이능력자가 설명한 사실에 의하면, 지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영혼의 슬픔과 고통에 동화되어 슬픔을 억누를 수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이 점 헤아려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매끈한 멘트와 함께 리포터의 대성통곡으로 급작스럽게 마무리되었던 현장중개에 뉴스를 시청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

멍한 눈으로 뉴스를 바라보던 시민이 길거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명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온 거리가 흐느낌으로 그득 찼다.

대한민국에 서울 참사로 지인, 친인 한명 잃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해가 바뀌어도 그날이 되면 향냄새가 대한민국을 가득 채우고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거리에서 홀린 것처럼 뉴스를 바라보던 이들 모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이들일 것이다. 화면을 넘어 전해져 오는 현장의 그 여실한 슬픔과 비통에 가뜩이나 억누르고 있던 그들의 슬픔이 무너진 댐을 타고 터져 나왔다.

지금 시각은 19시. 대한민국 전체가 슬픔에 빠져있다.

"하다 하다 이제는 별 쇼를 다 하는구만."

고급스러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노년의 남자가 혀를 찼다.

"여보, 그래도 저 사람들이 김형준이하고 같은 1등급 이능력자라니, 마냥 거짓말은 아닐지도 몰라요. 원래 저치들은 영혼을 다루는 이들이라잖아요."

화면에 흘러나오는 설명을 본 노년의 여인이 남자에게 말하니, 남자가 버럭 역정을 냈다.

"아니, 이 여편네가! 그걸 믿어? 세상에 영혼이 어디 있고 귀신이 어디 있어!"

화가 난 듯 거칠게 리모컨을 내던진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건 쇼라고! 쇼! 우리도 하잖아! 멍청한 국민들이야 저런 쇼 하나에 금방 넘어가니까, 민심을 돌리려고 하는 쇼라고. 우리가 하는 거랑 하등 다를 게 없다고!"

그렇게 외친 남자는 한참이나 씩씩 거렸다. 뭐라 반박하고 싶은 모양인지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며 몇 번인가 입을 오물거렸지만, 이내 닫아버렸다. 평생을 저 남자를 수발드며 살아온 여자는 남자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 말해봐야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정도는 그녀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은 분기가 풀리는지 숨소리가 평온해진 남자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쇼가 확실하지만, 당신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큰일이지. 조치를 취해야겠어."

남자가 휴대폰의 번호를 누르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실내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어라? 이거 뭐야. 정전이야?"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휴대폰을 이용해 이리 저리 실내를 비춰보던 남자가 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이래서 우리나라가 평생 가도 선진국 못 되는 거야. 병신 같은 새끼들이 전기 하나 제대로 공급을 못 해서. 에잉."

혀를 차며 이리 저리 둘러보던 남자가 다시 쇼파에 몸을 묻었다.

"에어콘 꺼지니까, 금세 더워지네. 당신 가서 물이나 가져와."

"이 어두운데 어떻게..."

"휴대폰에 후레쉬 있잖아! 그건 뒀다가 국 끓여 먹어? 땀 나기 전에 어서 가서

가져와!"

남자의 성질에 이내 여자가 어둠을 더듬으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하나 같이 답답해서는."

나이가 든 탓인지 금세 더위를 느끼고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남자가 다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는데 물컵이 불쑥 내밀어졌다.

"뭐 이리 미지근해?"

컵을 쥔 손에 냉기 하나 느껴지지 않자, 남자는 투덜거렸지만 결국 더위를 참지 못한 탓인지 벌컥 벌컥 물을 들이켰다.

이제 막 물컵을 반이나 비웠을까. 남자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물처럼 아무 향도 없던 액체가 목에 넘어가니 달콤한 향을 풍기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탓이다.

"이거 뭐야? 괜찮은데... 다음에는 차갑게 해서 가져다 줘. 달달하니 좋구만."

처음 먹어보는 물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을 하니 어

둠 속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달아? 아,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쓰다더라고. 그럼 이건 몸에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생소한 음성에 남자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묵직한 손이 그의 어깨를 지긋이 내리눌렀다.

"어딜 가. 맛있는 거 먹었으면 그 값을 해야지."

장난스러운 음성이지만 그 안에 담긴 기세가 너무도 섬뜩해 남자는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고 몸을 떨었다.

"어라? 나이가 많으시다더니, 벌써부터 기저귀를 차셔야 하나. 더럽게스리."

목소리가 이죽였지만,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맹수 앞에 선 사냥감처럼 굳어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탓이다.

그의 하체가 따뜻한 것을 보니 무서워서 실금이라도 한 모양이다.

"김희찬총재님 체면이 말이 아닌 걸?"

겁에 질린 노년의 남자, 새국가당의 총재이자 정계의 거물로 평이 자자한 김희찬 총재는 괴한의 침입에 그저 몸을 떨 뿐이었다.

============================ 작품 후기 으아. 어제도 연재를 못했네요. 외근만 나갔다 하면, 스케줄이 말려서 ㅜㅜ오늘 벌충할테니 용서해주소서.

*강아지 이름 모집합니다. 암컷이고 새하얗습니다. 커서도 새하얄테고요. 종은 도고 아르헨티노. 외국식 겉멋 든 이름 제외하고 토속적인 이름 추천 부탁드립니다. 지금 생각해둔 이름은 덕자, 옥희 두가지입니다. ㅎㅎㅎ*리코멘트는 해당 편 코멘트란에 남기겠습니다. 몰아서 하려다보니 늘 업뎃 시간이 리코멘트하느라 이삼십분씩 늦어져서요. ㅎㅎㅎㅎ 양해 바랍니다.

니다. 지금 생각해둔 이름은 덕자, 옥희 두가지입니다. ㅎㅎㅎ*리코멘트는 해당 편 코멘트란에 남기겠습니다. 몰아서 하려다보니 늘 업뎃 시간이 리코멘트하느라 이삼십분씩 늦어져서요. ㅎㅎㅎㅎ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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