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 망자의 도시 -- >
두근두근탁상 위에 놓여진 심장이 벌컥 거리며 뛰어댄다. 몸 속에 꼭꼭 숨겨져 있어야 할 심장이, 눈 앞에서 요동을 치니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새빨간 심장, 미노타우르스-모노케라스의 심장이다. 지난 그리스 행은 여러 가지 찝찝함을 남기고 끝이 났다. 다이달로스와 미노타우르스의 이야기를 비롯해 뭔가 세계가 변해버린 실마리가 잡힐 듯 말 듯 하다가 그대로 마무리가 된 탓에,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가 복잡했다.
그리고 가장 나를 고민되게 하는 것은 지현이 전해준 그의 심장이다. 다이달로스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강요받았다는 미노타우르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심장이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컥 거리고 있다.
"이걸 대체 왜 나에게 전해주라고 했을까요."
내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도리질 쳤다.
"모르겠습니다. 허나 완전히 정신을 차린 그는 스스로 반신이라 자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하고 고고한 존재였습니다. 그가 남긴 것이니 필시 범상한 물건은 아니겠지요."
범상하지 않다라는 말에 나는 피식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인체의 바깥에서 여전히 박동하는 심장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물건이었다.
다이달로스 역시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을 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놈이 무슨 효용이 있을까 기대가 되지만, 다이달로스가 가져간 또 다른 심장과는 크기부터 비교가 되질 않으니 뭔가 대단한 효용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대체 무슨 뜻으로 내게 이 심장을 전하라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어따 써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대로라면 그냥 애물단진데요?"
몸 밖에서 홀로 박동하는 심장이라니, 어디 함부로 두기에도 뭐하다. 보기에도 기괴할 뿐 아니라 행여 누군가 손이라도 댔다가는 으스러질까봐 무서워서 함부로 둘까.
"허나 다이달로스라는 자 때문에 대화를 길게 하진 못했습니다만, 무언가 뜻이 있어 당신에게 남긴 물건인 듯 싶습니다."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해봤지만, 그런다고 모르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되진 않았다. 한참을 더 궁리를 했지만 역시 결과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결국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담아 잘 숨겨두고는 우리는 한동안 심장에 대해 잊고 살았다.
적어도 심장이 스스로 우리에게 그 존재를 알리기 전까지는.
미노타우르스를 퇴치한 뒤로 나는 따로 1등급 몬스터와의 전투를 치루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지난 미궁에서의 전투에서 깨달은 것이 많았던 탓이다.
미노타우르스와의 전투, 나는 놈에게 그 어떤 상처도 입힐 수가 없었다. 생명력으로 현현한 온갖 무기들도, 찔레가시의 가시도 놈의 몸에 상처를 내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오직 지현만이 미노타우르스의 몸에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었으며, 검은 미노타우르스와의 전투 시에도 페르세우스와 오디세우스가 함께 한 합공에 간신
히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미한 상처를 낼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있을 다른 1등급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내가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에 나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이능은 생명력을 제물로 바쳐 발현하는 것. 지난 시간동안 키워온 생명력 탓에 쉽게 생명력이 고갈되거나 하진 않겠지만, 지난 그리스 행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파탄 날 수도 있다.
늘 지현이 말하기를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전투라고 우려를 표하지만, 나는 그녀와 다르게 그저 그런 이능력자다. 이제 와서 힘이 크다고 해도 그녀처럼 지고한 검술을 부릴 수도, 허준영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술법을 쓸 수도 없었다.
단지 막대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몬스터의 몸을 두들기고, 생채기가 나면 그대로 달려들어 몬스터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마치 거머리가 커다란 무언가에 달라붙는 것처럼.
지금까지 성공해온 방법이고, 그것만으로 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되었지만 지난 미노타우르스와의 전투에서 나는 무력했다. 천만 다행으로 미노타우르스의 몸에 생채기가 나지 않았다면, 미스틸테인의 날
카로움이 그 거체의 단단함을 이겨내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겠지.
위기감이 생기지 않으면 나는 사람도 아니겠지. 게다가 내가 최종적으로 상대해야 할 상대는 일산에 웅크리고 있는 '천개의 눈동자'. 미노타우르스보다 훨씬 강대한 존재다.
그녀와 허준영조차도 패퇴했어야 할 만큼.
지현이 내게 이르기를 나는 강대한 1인과의 전투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다수의 적과 전투를 하는데 특화가 되어 있다고 한다. 평시였다면 그것만으로 문제가 없을 능력이지만 나는 1등급 몬스터와 전투를 해야 한다.
문제다, 그것도 큰 문제.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무거워질 뿐이었다.
"오잉? 연아. 언제 왔누."
나는 발치에서 나를 붙들어 안는 연아를 보고 그대로 그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안아들었다.
"우쭈쭈. 너는 어째 우량아 같다. 또래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크단 말이야."
자꾸 집을 비우다보니 연아를 볼 때마다 쑥쑥 자란 느낌이었는데, 이번만큼은 그냥 기분 탓이 아니라 연아가 많이 큰 듯 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칠 정도라 조금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원래 부모가 보지 않을 때 더 자란다고 하더이다."
마침 빨래를 걷었는지, 양손 가득 빨래더미를 끌어안은 지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요? 그래도 이 정도면 두,세살 위 또래보다 더 커보이는데요?"
아닌게 아니라 이제 연아는 왜 아직도 걷지 못하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발육을 보여주고 있었다. 덩치는 큰데, 걷고 말하는 것은 늦게 트이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이능력자인 부모들 아래서 태어난 탓일까, 그도 아니면 그날의 내가 불길한 기운을 두르고 있었던 탓일까.
"얼굴이 무섭습니다. 연아가 놀라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새 빨래더미를 한쪽에 놓아둔 지현이 내게 다가와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혹시... 그날 제가 정상이 아니었잖아요. 그 탓에..."
내가 가진 이능은 다른 능력자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전혀 다른 종류의 그것이었다. 생명력의 흡수와 생명력을 대가로 한 이능의 발현. 그 중에서 생명력의 흡수가 내 마음에 걸렸다.
지난 시간동안 내가 흡수해온 생명력들은 몬스터들의 그것이었으니, 혹시 그 몬스터의 생명력이 내 몸 안에 숨어 있다가 연아에게 뭔가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행여 문제가 있다면 그건 제게 있을 지도 모르지요."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의 일을 떠올려봐야 둘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네요. 그냥 또래보다는 늦는다고 생각하죠. 이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란 우리 연아한테 무슨 문제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연아를 번쩍 치켜드니 연아가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 근심 없고 순수한 웃음소리에 그제야 지현의 얼굴이 펴졌다.
-지난 11일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한 루마니아가 1등급 몬스터 '스트리고이'를 퇴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작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들어오고 있지 않지만, 현재 스트리고이로 인해 오염되었던 일부지역이 빠르게 복구되는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이로서 루마니아는 영국과 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 1등급 몬스터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국가로 등록됐습니다. 게다가 이번 성공은 대한민국의 이능력자 '김형준'씨가 없는 상황에서 이뤄낸 쾌거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작전에 동원된 인원이 얼마이며,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일부지역에 급속도로 확산되던 전염병등으로 인한 피해는 천문학적일 거라 예상됩니다.
현재까지 퇴치된 1등급 몬스터는 영국의 '그렌델', 그리스의 '미노타우르스', 루마니아의 '스트리고이'입니다.
루마니아를 비롯한 각국이 1등급 몬스터를 퇴치하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국가에서 1등급 몬스터를 퇴치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은 아직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 뉴스로... 연아를 치켜 올린 채로 한참을 노닥거리고 있던 와중에 들려온 소식에 나는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저런 경우에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경과가 각국의 이능력자 단체에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서로간의 연계를 무시하고 매스컴에 먼저 정보를 노출시키다니,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때, 퇴치만 했으면 되는 거 아냐?"
한참 머리를 굴리던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능력자 단체간의 파워게임 때문이든 경쟁의식 때문이든 간에, 어쨌건 1등급 몬스터만 퇴치했으면 된 거다.
비록 우리나라의 일은 아니지만 나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정부를 상대로 진행중인 이능력자들의 소송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처음으로 이능력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 지난 서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어 세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김영진 리포터가 현장에 나가 있습니다.
순수하게 루마니아가 이룬 쾌거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미노타우르스를 퇴치하고도 한참을 지루하게 이어오던 정부와 나의 힘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었는데, 나를 필두로 한 이능력자들 다수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처음에는 각종 편법을 이용해 소송 자체를 무효화시키려던 대한민국 정부였지만, 이미 국민의 시선 뿐 아니라 세계의 시선도 스스로를 주목하고 있음을 깨닫고 울며 겨자먹기로 소송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이가 갈리는 나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중이다. 물론 그 선이라는 것이 나 혼자 정한 것이라 정부로써는 꽤나 많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서울 참사의 주역이라 알려진 장성들이 대거 옷을 벗고 형벌을 받을 예정이며, 그에 관련한 모든 인사들이 강경한 처벌을 받았다.
또한 정보를 날조하고 국민을 기만한 정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권의 충실한 끄나풀들을 자진해서 국민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끊어가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잘라낼 손발이 없어진다면 그 때가 내가 다시 나서는 순간이 될 것이다.
-서울이 그 끔찍한 놈들 손에 넘어갔을 때, 나는 아들과 딸을 잃었습니다. 그저 천재지변으로 생각했던 일이 정부가 벌인 만행이라니, 몇날 며칠을 울고 화내고를 반복하다 결국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내 아들과 딸의 목숨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들의 무고한 희생과, 이능력자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만하는 정부를 지켜보지 못하겠기에 저는 두렵고 겁이 나지만 싸워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능력자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며 그렇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아닌 그저 지방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시민입니다.
다만 서울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아비로써 이 사회에 정의가 있음을 보이
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자중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겁도 없는 일반 시민이 우리의 행보에 지지를 표한 것으로도 모자라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처럼 이번 사태에서 일반 시민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은 처음이었는데, 애초에 결과가 정해진 우리의 행보와는 달리 그 모습이 위태로워보였다.
다만 우리의 행보가 자식을 잃은 저 아비의 앞길에도 조그만 등불이 되어 밝혀주기를 바란다.
"그날이 있었던 뒤로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네요."
나는 아련한 기분이 되어 말했다.
"시간 참으로 빠르지요. 이대로 있다가 할 일도 미처 끝내지 못하고 주저앉을까 두렵습니다."
그녀의 말대로다. 저런 일반 시민조차 있는 힘껏 싸우는데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그간 지지부진했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리라 마음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전화기를 들어 내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국민을 기만하고 수백만의 참사를 일으키고도 여전히 저 잘난 듯이 떠들어대는 정부.
이능력자들을 수탈하며 정부와 담합하여 참사를 일으키는데 관여한 유니온.
대한민국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첩자를 이용하고, 인체를 개조하여 이를 드러낸 황룡.
내 주변에 산재해 있었던 문제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산산이 부숴 버리리라.
"각 맥에 연락해서 통합 회의를 건의해. 발의자는 나 '김형준'으로."
멈춰있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 흐름이 나와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삼키는 격랑이 될지, 모든 것을 정화하는 시원한 물줄기가 될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 작품 후기 새로운 챕터, 망자의 도시 시작합니다!
전날 오전에 올린다고 하고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개에 미쳐서 아무 것도 하지를 못 했네요. ㅜㅜ용서해주소서. 오늘은 이거 올리고도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한편은 최소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두편 올리고요.
리코멘트 이번화 쉬고 다음 화에 리코멘트 하겠습니다.
지금 손목아지에 모터 달고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이니, 곧 다음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