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57화 (157/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그 뒤부터였을 게요. 모노케라스님의 성정이 손 댈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지기 시작한 건."

세계를 뒤흔든 이변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는 마음이었는데 뭔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이야기에 잔뜩 집중하고 있던 것이 거짓말처럼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고작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녀를 두고 온 것이 아닌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뒤늦게 그녀에 대한 걱정에 조바심이 일어나려 하는데 다시 다이달로스가 입을 열었다.

"몬스터를 살육하는 것도 모자라 그 사체를 게걸스럽게 먹는 모노케라스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내게는 고욕이었소만, 더 끔찍한 것은 다음이었다오."

잠깐 다른 곳에 팔려있던 정신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어떤...?"

다이달로스 스스로도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했는지 그 얼굴이 더할 수 없이 진

지해졌다. 그런 모습에 덩달아 나도 진지한 자세를 취하니 그의 입이 천천히 움직인다.

"미궁에 들어선 이후, 처음에는 모노케라스님과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잤소.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턴가 께름칙한 마음에 거처를 달리 하기 시작했는데, 대략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이 내 일과 중 하나였지."

미노타우르스-모노케라스가 난폭하게 변하고 난 뒤에 그도 모르게 두려웠으리라. 당장 눈앞에서 몬스터를 게걸스럽게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난 후라면 어찌 평소처럼 대할 수 있었을까.

"빛 한점 들지 않는 차가운 미궁의 생활에 노구가 쇠약해졌는지, 그날은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오. 평소처럼 모노케라스님이 거하고 계신 미궁의 공동에 가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소."

미노타우르스-모노케라스가 있는 미궁의 한 구석을 찾아가던 그는 알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괴롭고 처절하게 들리는지 혹시 모노케라스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걸음을 서두른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모노케라스가 마치 미친 것처럼 누군가에게 뭔가를 애원하고 있었는데, 평소의

긍지 높던 그라고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그런 비굴한 어조였단다. 혹시 미궁에 자신들을 제외한 누군가가 들어왔나 해서 긴장한 다이달로스는 그것이 곧 모노케라스의 혼잣말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어차피 광증을 보이기 시작한지 한참이니 새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 탓이리라. 인사를 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못함을 깨닫고 돌아서려던 그는 다시 멈이리라. 인사를 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못함을 깨닫고 돌아서려던 그는 다시 멈춰 설수 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모노케라스님은 혼자가 아니었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탓인지 등가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야말로 작게는 이 미궁의 존재에 대한 실마리가 되고, 크게는 갑작스럽게 닥친 1등급 몬스터들의 출현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끼고 지현을 비롯한 일행들에 대한 걱정이 커져갔지만, 나는 다이달로스를 재촉하지 못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가에 떠오른 두려움과 절망을 발견한 탓이다.

"그것은 마치... 그래. 그림자와도 같았소. 모노케라스님의 발치에 깔린 그림자.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도 어둠보다 더욱 선명한 어둠이 웅크리고 있었던 게요."

각성한 육체 덕에 어둠이 장애가 되거나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 어둠 자체가 미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지독스러운 어둠 속에서 그림자라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홀린 사람처럼 다이달로스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노케라스님은 마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듯 했는데, 무언가를 끊임없이 강요받고 있는 듯 했소."

무언가 부족하다. 그림자의 존재가 미노타우르스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도 못할뿐더러 그것이 지금의 미궁이 현대에 나타난 이유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큰 비약이다.

"뭘 강요받았다는 말입니까?"

나도 모르게 물었더니 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반쯤 썩어버린 듯한 안면

근육이 떨어질 듯 너덜거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모른다오. 다만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그런 장면을 목격했는데, 어느 날인가 모노케라스님이 그림자의 강요에 굴복했을 때. 미궁이 무너졌지. 아니, 차라리 세상이 무너졌다고 해야 하나."

여전히 부족한 실마리에 나는 눈 사이를 좁혔지만, 그래봐야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모호할 뿐이다.

"그날 미궁은 완전히 무너졌다오. 붕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고 해야 차라리 맞을 게요.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이곳이군."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러보려 노력해보지만,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미노타우르스-모노케라스는 알 수 없는 어둠에 의해 무언가를 강요받았으며 그에 굴복하는 순간, 미궁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치 봉인이라도 당한 듯 하다 싶었는데 다이달로스 역시 나와 마찬가지 생각인 모양이다.

"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은 내가 살던 시간으로부터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밤과 낮이 흘러간 후. 봉인과 같지 않소?"

"하지만 봉인이라면 누가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었지만 그 역시 내 질문에 대한 답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을 테지. 예상대로 그는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무언가 커다란 실마리를 찾으러 와서, 더욱 더 혼란스러워진 지경이다. 확실한 것은 한 가지도 없지만 다만 이 미궁이 뭔가에 의해 봉인되었다가 지금에 와서 그 봉인이 해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랄까.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보면 뭔가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입을 열려는데 저 멀리서 거대한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다이달로스 역시 막대한 에너지의 파동을 느꼈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이 실체화 되어 내 귀를 찢을 듯 파고들었다.

우오오오오오오!

"모노케라스님?"

그가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쩔 겁니까. 저는 지금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겁니다."

다이달로스의 눈가에 갈등하는 기색이 어렸다. 그로서는 마지막 순간 완전히 미쳐버린 미노타우르스를 다시 만나기가 껄끄러울 것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초조한 음성으로 그를 재촉하니 그가 주변을 몇 번인가 둘러보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함께 가겠소."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한가득인 그였지만,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는지 어기적거리며 파동이 시작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걸음이 마치 영화속의 좀비와도 같이 답답하기 그지없어 나는 그를 들쳐맸다.

"헛!"

마치 쌀자루라도 되는냥 내 한쪽 어깨에 매인 다이달로스의 신음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낼 수 있는 한의 최대한의 속도로 미궁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지현 그녀의 안위에 대해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 미노타우르스와의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 너무 많은 기력을 소모한 상황이라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달리는 동안에도 몇 번인가 이어진 미노타우르스의 괴성에 나는 이를 악다물고 더욱 속력을 높였다. 부디 무사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며 미궁을 헤매기를 한참.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무언가 다이달로스를 찾아 미궁을 헤매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달렸음에도 여전히 미노타우르스와의 기운이 도사린 곳에 닿지 않았다.

귓가를 스치던 바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나는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춰섰다.

"허억. 허억."

워낙에 거칠게 달려왔던 터라 다이달로스가 편치 않았는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지만, 나는 지금 그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기를 넓게 퍼트려 미궁을 탐색해보려 해도 무언가에 막힌 듯 되돌아오는 기의 실타래에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아직 더 가야 하는 거 아니요?"

간신히 숨을 돌린 다이달로스가 어깨에 매달린 채 내게 물었다.

"분명 벌써 도착했어야 하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거리가 좁혀지지를 않아요."

초조하게 중얼거리니 그가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애초에 이 미궁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 내가 그리 설계했다오."

그의 말에 나는 반색을 했다. 멍청한 놈! 그걸 잊고 있었다니! 다이달로스는 이 미로의 설계자다. 그라면 이 미궁의 구조를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그도 녹록치 않은 고위 이능력자인 듯

하니, 이렇게까지 확연하게 느껴지는 미노타우르스의 기운을 찾아가는 것은 일도 아닐 터.

"안내를!"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나는 그를 짊어진 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왼쪽으로 트시오! 그리고 그 다음 갈림길에서 우측!"

다이달로스가 어깨 위에서 힘겹게 길을 알려준다. 나는 그의 지시를 놓칠 새라 정신을 집중한채 한참이나 달렸다.

제길. 뭐가 이렇게 멀어.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속도가 점점 올라간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노타우르스와 맞닥뜨렸을 때, 지쳐서 무력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제길. 제길. 제길."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잇새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초조한 내 마음을 아는지 필사적으로 길 안내를 하는 다이달로스였지만, 이제는 그의 말보다 빠르게 이

동하는 내 속도 탓인지 대략적인 방향을 말할 뿐이다.

"이대로 쭉 가시오! 멀지 않았소!"

마치 격려라도 하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더욱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확연하게 느껴지는 미노타우르스의 난폭한 기운에 오히려 반가움이 들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코너를 돌자 마침내 미노타우르스의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공터에 도착했다.

"어라?"

나는 일순간 멍청하게 지껄이는 수밖에 없었다.

응당 미노타우르스와 지현, 그리고 메데이아가 있어야 할 장소에는 엉뚱한 것들이 있었다.

"마스터 킴?"

만신창이가 된 페르세우스와 오디세우스가 반가운 기색으로 나를 맞았다.

지금 내 눈 앞에는 알록달록하게 몬스터의 체액을 온몸에 바른 페르세우스와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유게네스의 이능력자 일행이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손 쓸 수가 없도록 변했구나..."

어깨 위에 매달려 있던 다이달로스가 바닥에 내려 서며 말했다.

멍한 와중에도 그의 시선을 따라 저 먼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미궁의 어둠속에서 더욱 어둡게 빛나는 거대한 덩치가 보였다.

굳건하고 단단한 거체는 똑같다. 그리고 광망이 흘러나오는 그 섬뜩한 눈초리도 내가 보았던 미노타우르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온몸을 두른 짧은 털의 색이 황색이 아닌 검정색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해보려 했다.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나니 나오는 결론은 하나.

나는 미노타우르스-모노케라스가 아닌 또 다른 미노타우르스가 있는 곳으로 이끌려 온 것이다.

어이없는 실수에 허탈해졌지만 상황은 내게 그렇게 넋이 빠져 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원래는 대치상태였던 유게네스 일행과 미노타우르스였지만 중간에 나타난 나로 인해서 그 팽팽한 대치가 깨어졌는지 미노타우르스가 온몸을 긴장시키는 것이 보였다.

"온다!"

이름 모를 어느 능력자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동시에 미노타우르스가 땅을 박찼다. 그리고 맞은 편에 선 유게네스의 일행들이 각자 고유의 빛을 뿜어내며 힘을 모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다이달로스를 다시 짊어들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미노타우르스가 유게네스 일행보다는 더 가까운 곳에 있던 내게 달려든 탓이

다.

쿠아아앙!

색은 달랐지만 그 강맹한 힘은 똑같은지 미노타우르스의 주먹이 미궁의 한 귀퉁이를 부수고 굉음을 토해냈다. 이리 저리 비산하는 돌조각들을 피하며 나는 유게네스 일행이 있는 곳으로 그대로 달렸다.

"마스터 킴! 어떻게 된 겁니까!"

오디세우스가 평소의 침착함도 잃은 채 내게 물어왔지만 나는 말없이 다이달로스를 바닥에 내려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현은 어떤 위험에 쳐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다니. 스스로의 한심함에 차라리 화가 날 지경이다.

"제기라아아아알!"

============================ 작품 후기 으허허허허. 다시 연재의 압박이군요. 오늘은 좀 부지런히 시간 남을때마다 써

봐야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그 와중에도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을 날려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첨언. 전편에서 날것은 함부로 먹으면 안된다는 말에 한참 웃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고기 먹고 광우병이라니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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