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52화 (152/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마스터 킴이야 이미 그렌델을 홀로 처치했던 전적이 있다고 치지만 소드엠프레스는 이제 오백년도 채 채우지 못한 이능력자 아닌가. 이름이야 거창하다 싶지만."

그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우스는 여전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오?"

뭔가 놀림 받는 기분이라도 들었는지 페르세우스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답답하니까, 빨리 설명을 해주시든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말만 그런게 아니라 얼굴이 붉어진 것이 정말 답답한 모양이다. 페르세우스의 얼굴빛이 변하자 오디세우스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도 꽤나 다혈질인 그였던지라 괜스레 또 돌발행동을 할까 걱정이 된 오디세우스였다.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이 자국의 1등급 몬스터 '싸우전드 아이즈'를 퇴치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이를 주도했던 이가 소드 엠프레스와 이름 모를 다른 이능력자 한명이었다오."

세계에 1등급 몬스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대한민국에 둥지를 틀고 있던 몬스터의 이름은 '천개의 눈동자'. 1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악의 상대라고 평가받는 강대한 존재였다.

"당시 모종의 사건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 둘만으로 세계 최초로 1등급 몬스터를 퇴치한 사례가 나올 수도 있었다는 정보가 있었소. 그대는 모르겠지만 '싸우전드 아이즈'는 1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재앙'급으로 분류된 몬스터라오."

그렇게 설명을 했지만 페르세우스는 여전히 감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오디세우스는 평소 정보에 어두운 그의 성향이 떠올라 한숨을 내쉬며 다시 설명했다.

"그대도 템플러의 아서라고 하면 아시겠지. 그 아서경조차도 한 수 접어주는 것이 소드 엠프레스요."

1등급 이능력자들 사이에서도 강자로 명성 높은 아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감이 왔는지 페르세우스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서 경이 왜 안 나섰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아서 경이 나섰다면, 영국의 그렌델 사태도 자력으로 해결이 가능했을 거라는 평이 있는 것은 알고 있을

게요."

만약 멀린과 상잔하는 바람에 힘을 상당부분 소진했던 사실까지야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나섰다면 1등급 몬스터들 중에도 최약체로 구분되는 그렌델이 벌인 참사가 조기에 멈췄을 거라는 정도는 페르세우스도 알고 있었다.

"끄응..."

그저 검을 잘 쓰는 여인이라 소드 엠프레스라는 과분한 호칭이 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페르세우스가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2등급에 불과하다지만 다른 이들도 절대 무시할만한 인물들이 아니라오. 그들은 전부 왜곡의 중심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산전수전을 겪은 이들이요. 그 정도는 이미 그대도 파악했으리라 생각하오만..."

안 그래도 몬스터의 습격에 우왕좌왕하던 유게네스의 이능력자들과는 달리 일사분란하게 또 너무도 여상스럽게 몬스터들을 처리하던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리던 페르세우스였다.

그들이 무수한 사선을 넘은 역전의 용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사실이라 그제야 페르세우스가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디세우스 일행이 검맥과 도맥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순간 정작 그들은 어두운 통로를 내달리는데 온힘을 다 하고 있었다.

"멀지 않았어!"

최대한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마음은 여전히 조급한 탓에 하나 같이 그들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중에서도 진태식이 가장 초조한 기색이었는데, 자꾸만 품 안을 쓸어가는 모양새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어서 가자. 검후께서 가셨으니 당장은 괜찮으시겠지만 파동이 심상치가 않아."

아까부터 격렬하게 터져 나오던 진동과 굉음에 진태식의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태식아. 지금 다들 최고 속도야. 네가 그렇게 보채면 보챌수록 다른 사람들이 더 지쳐."

강신술이라도 쓴 것인지 오히려 검맥의 일행보다도 생기가 넘치는 김도연이 진태식의 재촉에 넌지시 충고를 했다. 달리는 와중에 일행을 살펴보니 당장 혀라도 빼물고 쓰러질 것 같은 표정들이 가관이라 그는 침음성을 내뱉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

평소 진중한 성격답지 않게 일행을 자꾸만 재촉하는 모습이 의아해 김도연이 물었다.

"나한테 맡기신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빨리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맨손박투에 특화되어 '싸울아비'라는 콜싸인까지 있는 그의 등 뒤로 살짝 삐져나온 기다란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 김도연이다. 검이라고 하기에는 곧은 모양이 아니고 도무지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그것을 짊어진 진태식이 한숨을 내쉰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미노타우르스가 전에 없이 길게 괴성을 내지른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곤욕을 치른 것이 화가 잔뜩 난 모양인지 자세를 낮춘 몸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보였다.

"그럼 제가 시간을 벌게요. 큰 거 한방 부탁해요. 메데이아는 다시 저주의 중첩을!"

철컥거리며 다시 내 몸을 감싸는 피바라기의 든든함을 느끼며 나는 다시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만큼은 지현을 믿고 체력의 안배 그런 것 없이 온 힘을 다해 놈을 괴롭혀볼 작정이다.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몸을 날리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장엄한 기운이 스물스물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미노타우르스 역시 날카롭게 찢어진 눈으로 지현과 메데이아가 있는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 소대가리 새끼야! 어딜 남의 여자를 넘봐!"

나는 일부러 미노타우르스의 주목을 끌 작정으로 요란스럽게 생명력을 터트려가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줄기가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미노타우르스의 온몸을 옭아맨다. 보통의 몬스터라면 저것만으로 당장 처리가 될 테지만, 놈은 1등급 몬스터답게 그 줄기를 단번에 끊어버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제길. 파고들 틈이라도 있어야지 빨대를 꽂던가 하지.

"어이없을 정도로 튼튼하네."

작게 투덜거리며 지척까지 다가선 놈의 거체를 그대로 들이 받았다. 이제까지는 놈과의 직접적인 격돌을 피해 왔지만 지금은 지현이 힘을 모으는 중이라 최대한 요란하게 놈을 붙잡을 필요가 있어서 모험을 해본 것이다.

붉은 막을 내 몸 주변에 둘러싸고 놈의 복부로 파고 들었다. 막상 맨몸으로 부딪치니 막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하기 그지없는 미노타우르스의 육체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주의를 끌기 위해서 놈을 들이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바로 뒤에서 힘을 모으고 있는 지현과 필사적으로 미노타우르스의 신경을 교란시키고 있는

메데이아. 그들이 너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당연하게도 마주 내달려온 미노타우르스의 거체에 비해 내 조그만 육신은 하잘 것 없다. 둘이 기세 좋게 들이받는다고 해도 결국은 힘과 덩치에서 압도적인 미노타우르스의 경로를 방해하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놈의 거체를 밀어냈다. 생명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반쯤 찌그러졌던 막이 다시 온전한 원의 형태를 회복하고, 등 뒤로 솟아오른 날개가 더욱 거대해진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나는 필사적으로 놈의 몸을 밀어냈다. 이때만큼은 놈의 공격이고 뭐고 무시하고 있는 힘을 다해 놈을 밀어내는데 주력했다.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조그맣기 그지없는 내가 자신을 밀어내려 하자 화가 나는지 괴성을 길게 지른다.

역시 아무리 영악하다고 해도 몬스터 특유의 본능은 버리지 못했는지, 나에게

호승심을 부리는 놈의 모습에 나는 내심 안도했다. 당장 이 상황에서 손바닥만 휘둘러도 납작하게 짓뭉개질 텐데 다행스럽게 미노타우르스는 힘 대 힘 이라는 무식한 방법을 택한 것 같았다.

"까득."

지현과 메데이아를 생각하면 잘된 일이지만 내 몸에 가해지는 압력은 한층 더욱 거세졌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밀어붙여오는 미노타우르스의 전진을 막기 위해서 나는 안간힘을 다했다.

줄줄이 새어나가는 생명력의 줄기에 혹시 이대로 내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 두려울 정도였다.

".... 만검이 모여 천검이 되고, 천검이 모여 다시 백검이..."

하지만 등뒤로 느껴지는 지현의 기운이 아직은 내게 무너질 때가 아니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나는 이가 바스라져라 악물고 미노타우르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놈의 몸이 조금씩 밀려나간다.

자신에 비해 작디 작은 내게 밀려난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노타우르스가 다시 한 번 괴성을 길게 내지르며 나를 밀어붙인다.

다시 내 몸이 뒤로 밀려난다. 다시 놈이 밀려난다.

그렇게 얼마나 미노타우르스와 무식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현의 기운이 한참이나 뒤에서 느껴지는데 그 힘의 여파가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로 거세기 짝이 없었다.

이쯤이면 됐을까 싶은 마음에 살짝 미노타우르스의 기색을 살피는데 놈은 여전히 나와의 힘겨루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미노타우르스에게 속절없이 내 몸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아차 싶었지만 뒤늦게 힘을 모아 봐도 이제 와서 전세를 뒤집기에는 늦어버렸다.

"크윽."

등 뒤로 느껴지는 기운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온 생명을 불태워 놈의 몸을 밀어붙여보지만 뒤로 밀려나는 속도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놈은 한걸음씩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뒤로 밀려나기를 또 한참, 결국 놈이 지현의 존재를 눈치 챈 듯 싶다. 거칠게 나를 밀어붙이던 놈의 힘이 느슨해진다 싶었더니 그 붉은 눈동자가 지현과 메데이아가 있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놈이 눈치 챘어요!"

힘을 모으느라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어 지현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입을 열자마자 허공중에 사라지는 생명력에 머리가 아찔해진다.

순간 현기증이 일어 눈 앞이 캄캄해진다 싶더니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일검단천(一劍斷天)"

그리고 나지막한 지현의 읊조림이 흐릿해져가는 내 의식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 들었다.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씩 명확해진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물속에 잠긴 것처럼 웅웅대는 소리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서서히 온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주변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조금씩 명확해진다.

".... 그런 것이다."

난생 처음 듣는 낯 설은 음성이 귓가에 웅웅거린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더 누워있고 싶어도 도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는데 초점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 흐릿했던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자 그제야 어두운 통로가 눈을 가득 채우고 나는 뒤늦게 내가 미노타우르스와 전투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헉!"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는데 온몸이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욱신거렸다. 마지막에 뭔가에 가격 당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주

변을 둘러보는데 지현과 메데이아가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다가선다.

"괜찮으십니까!"

고운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한 지현의 얼굴, 그리고 역시나 안도했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활짝 웃어보이는 메데이아의 얼굴. 어째 이런 광경이 익숙하다 싶었더니, 영국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을 한 지현의 모습에 나는 괜찮다고 대답을 해주려다가 낯선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정신이 든 모양이군."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음성은 사실 너무도 큰 음성이라 그렇게 들렸던 모양이다. 널따란 통로를 온통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만드는 음성에 나는 고개를 조금씩 치켜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고개가 더 이상 꺽일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 목이 아파올 무렵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미노타우르스?"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박 터지도록 싸워왔던 미노타우르스였다.

============================ 작품 후기 후어어어. 마눌님 눈을 피해 몰래 글을 쓰느라 엄청 힘드네요. ㅜㅜ 심기불편하신 마눌님은 제가 글 쓰는데 너무 오래 시간을 투자한다고 마음에 안 드는 모양입니다.

덕분에 수시로 창을 숨겨가며 쓰다보니 진도가 지지부진. 도살자 업데이트도 해야 하고 비축분도 만들어야 하는데 앞이 캄캄합니다.

이럴 때는 독자님들의 선추코쿠만이 저를 구원하는 한줄기 빛이랍니다. *제가 노블에서 재미난 글을 발견했습니다! 혹시 제 글 도살자를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추천드립니다. '무차별 살인게임' 이라는 글인데 '퍼스트 카운트다운' '맨이터'의 작가님이 쓰신 글입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에 밀폐된 공간에서의 숨막히는 긴장감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강추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연참하면 코멘트가 멸망이었습니다! 독자님들 이러면 배신입니다! 저는 독자님들을 믿고 연참을 했는데 엉엉. 코멘트가 얼마나 제 삶을 활기차게 만드는데 ㅜㅜ 이러시면 곤난합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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