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51화 (151/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허공으로 몸을 날리자 미노타우르스가 내 망치만한 주먹을 그대로 마주 내질러온다. 나는 허공에 뜬 상태 그대로 몸을 횡으로 회전시키며 그대로 놈의 주먹을 때렸다.

콰앙!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오며 순간 내장이 울렁거리는 아찔한 충격이 내 몸을 때린다. 어제 저녁에 먹은 음식이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됐는데, 오른 주먹이 그대로 튕겨져 나가자 가슴이 훤하게 드러난 놈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나 역시 튀어 올랐던 것보다 배는 빠르게 바닥으로 내튕겨졌지만 아무래도 놈의 덩치가 더 크다보니 자세를 추스르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모양이다. 나는 빠르게 놈을 향해 다시 날아올랐다.

"으랏차!"

장난같은 기합성을 내질렀지만 내 손에 쥐어진 망치만큼은 전혀 장난스럽지 않은 파공성을 내며 놈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망치가 그대로 놈의 턱을 올려 쳐 버렸다.

음머어어어어!

손끝에 느껴지는 둔중한 감촉에 또다시 내장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다시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을 하며 이번에는 반대 방향, 위에서 아래로 망치를 내리 찍었다. 마침 잔뜩 치켜든 놈의 얼굴이라 그대로 망치의 널찍한 면으로 면상을 찍어버렸다. 다시 한 번 소울음소리가 온 미궁에 가득 울려 퍼졌다. 베고 찌르는 공격에는 그렇게도 강한 면모를 보이던 미노타우르스가 내가 무기를 망치로 바꿔 쥔 후부터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이 소대가리 완전 허당이잖아?"

말로야 호기롭게 내뱉었지만 저 거대하고 단단한 미노타우르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데미지를 입히는 것도 좋은데 놈의 몸에 데미지가 쌓이는 이상으로 내 몸에도 충격이 돌아오고 있었다.

마치 맨땅에 오함마를 내려찍고 난 뒤에 올라오는 그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이라고나 할까. 내장이 흔들리고 코가 찡한게 당장 오바이트와 코피라도 쏟아낼 것

같은 기분에 현기증마저 난다.

하지만 그간 피해다니느라 쌓여왔던 울분이 상당했던지라 나는 이를 악물고 가열차게 놈을 공격했다. 망치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내 몸에도 충격이 차곡 차곡 쌓여간다.

속이 울렁거리는 와중에도 나는 수차례 놈의 면상이며 어깨며 닥치는 대로 망치를 내리쳤다. 그때마다 들려오는 음머, 하는 소울음소리가 어찌나 나를 신바람 나게 하는지 미친 사람처럼 망치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처음 미노타우르스와 마주쳤던 곳에서 한참이나 물러섰다.

나는 그런 미노타우르스의 거체를 따라가며 열심히 망치질을 했다. 정말 이능력자가 되면서 한동안 흘려본 적 없던 땀까지 뻘뻘 흘리면서 망치를 휘둘렀는데, 우습게도 미노타우르스의 두 콧구멍 사이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음머어어어어어어어!

또 다시 놈의 입에서 고통에 찬 음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소몰이 창법이 싫어서 R&B도 안 듣는 사람이야!"

왠지 모르게 신바람이 나 되는대로 지껄여대며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무아지경 상태에서 미노타우르스를 두들겨 패고 있었을까. 내 폭풍과도 같은 망치질에 정신없이 이리 저리 휘청거리던 미노타우르스의 괴성이 멈췄다.

갑작스레 온몸에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에 막 내려찍어가던 망치를 멈추려 했지만 내 몸보다 거대한 망치를 멈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긴장감에 미노타우르스의 눈을 살펴보니 엉망으로 난타당할 때까지만 해도 흐릿했던 놈의 눈빛이 어느새 처음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우오오오오오!

음머 거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들려온 것은 처음의 그 사나운 괴성, 나는 아찔한 위기감에 안간힘을 쓰며 망치를 틀어갔지만,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먼저였다.

"마스터 킴!"

"안 돼!"

전지현이 김형준에게 막 도착했을 무렵, 미노타우르스는 정신없이 물러서고 있었다. 그 사나운 기세가 어디로 갔는지 애처롭게 소울음 소리를 내며 물러서는 미노타우르스의 존재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소몰이 창법이 싫어서 R&B도 안 듣는 사람이야!"

무슨 소린지 모를 소리를 지껄여대며 미노타우르스의 면상을 정신없이 후려 쳐가는 김형준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흥분한 것처럼 보인다고 그녀가 생각하던 찰나,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왔다.

고통에 가득 찬 울음소리를 내지르던 미노타우르스의 괴성이 사납게 바뀌고 그 거대한 손바닥이 김형준을 향해 짓쳐드는 것이 보였다.

"마스터 킴!"

"안 돼!"

뒤늦게 눈치를 챘는지 안간힘을 써가며 공격을 틀어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지만 비명과도 한마디가 결국 입에서 터져 나왔다.

미노타우스르가 허공에 움켜쥔 손을 꾹 다무는 것이 보였다. 메데이아가 휘청거리며 참혹한 얼굴을 해 보이는데, 전지현이 그런 그녀를 부축했다.

"소드 엠프레스시여... 마.. 마스터 킴이..."

이아손의 실종소식에 놀랐을 때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듯 애처롭게 몸을 떠는 메데이아의 어깨를 힘주어 감싸 쥔 전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이는 무사합니다."

그 말에 메데이아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살펴보는데 과연 단아한 얼굴 어디에도 절망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우와! 죽을 뻔 했어요!"

뒤늦게 들려온 호들갑에 메데이아가 고개를 돌리니 피바라기가 사라진 김형준이 바로 자신들의 뒤에 서있었다.

"어.. 어떻게?"

눈앞에서 미노타우르스의 손아귀에 잡히는 그를 본 것이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멀쩡하게 서 있는 김형준의 모습에 메데이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날개 덕에 살았죠."

그러고 보니 피바라기도 사라진 마당에 등 뒤로 솟아난 붉은 날개만큼은 여전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김형준은 미노타우르스의 공격이 닿기 전에 망치를 틀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그대로 망치를 해체해버렸다. 어찌나 상황이 급박했는지 망치의 형상을 푼다는 것이 덩달아 피바라기마저 해체해버릴 정도였는데, 미노타우르스의 손이 닿는 순간 그 손바닥을 박차고 간발의 차로 처참한 꼴을 당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보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뒤늦게 전지현을 반기는 김형준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뭐에 홀린 것처럼 정신없이 미노타우르스를 몰아붙였지만 단 한번의 공격에 목숨을 잃을 뻔하자 새삼 자신이 워험천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핼쑥한 얼굴로 자신을 반기는 그의 얼굴을 본 전지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섰다.

"아.. 이건 말이죠. 어디까지나 불가항력이라..."

마지막 통신에서 경거망동 말라고 부탁해오던 그녀가 떠올라 제 발 저린 그가 두서없이 변명을 하는데 그녀가 그대로 그를 안았다.

"당신...?"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 음성에 담긴 염려와 애틋함이 어찌나 절절한지 호들갑스럽게 입을 놀려대던 그도 이번만큼은 입을 꾹 닫고 그녀를 마주 안았을 뿐이다.

곁에 선 메데이아가 그런 그들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본다. 질투 같으면서도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수시로 눈빛이 변하던 그녀가 결국은 모르는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괜찮으니까..."

몇 번이나 전지현의 등을 쓰다듬어준 김형준이 그녀를 살짝 밀어냈다. 드물게

보는 그녀의 애정표현이라 이대로 그 감정의 여운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미노타우르스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손아귀에 아무것도 없자 그것에 광분했는지 괴성을 지르며 그들이 있는 쪽을 노려보는 모양새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 김형준이 그녀에게 경고했다.

"공격 패턴 자체는 단순한데 힘이 어마어마하고 엄청 튼튼해요."

그가 질렸다는 듯이 미노타우르스의 견고함을 설명한다.

"베고 찌르고 자르는 공격으로는 피부에 생채기 하나 내지를 못했어요."

멀리서 보기에도 몸의 이곳저곳에 멍 비슷한 것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또 상처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닌지라, 전지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근데 다른 사람들은요?"

뒤늦게 정신이 들었는지 김형준이 전지현의 주변을 둘러본다. 애초에 기감으로 그녀만이 온 것을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황을 물어본 것이다.

"걸음이 늦어 저 먼저 왔습니다. 저로는 부족하신지요."

새삼 그녀의 얼굴이 전에 없이 지쳐 보인다 생각했더니 필사적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온 모양이라고 생각한 김형준의 얼굴에 언뜻 따뜻한 기색이 스쳐갔다.

오랜 시간도 아니고 불과 몇 년 정도의 시간만 거슬러 올라가도 자신이 감히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시절이 떠올라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럴리가요. 당신이면 충분하지요."

지나친 생명력의 소모로 잠시 지쳐있던 그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감돌기 시작하고, 전지현 역시 지친 얼굴에 다부진 표정을 떠올렸다.

"관통이나 절삭이 아닌 충격 위주로 공격해봤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생각하는 방법이라도 있어요?"

이제껏 김형준이 써왔던 방법 중 제대로 통한 공격이 전무하다 시피 했던지라, 그가 전지현에게 방법을 물었다.

그의 질문에 전지현이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 이전에,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 이전에 그녀가 늘 짓고 있던 표정이 오랜만에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무심하면서도 현기에 차 있고, 그러면서도 또 위엄이 있는 그 표정.

"너무 질겨서 베어지지 않는다면..."

잠시 새로운 인물의 출현에 몸을 움찔거리던 미노타우르스가 다시 괴성을 내지르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낮춘 거대한 괴물의 모습을 힐끗 바라본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더욱 날카로운 것으로 베어버리면 그만이지요."

전지현이 막 김형준과 합류한 그 시각, 후발대에 포함된 유게네스의 이능력자들은 갑작스레 변해버린 지형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분명 탐색에 관련된 이능력이 있는 인원들이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것이 분

명한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같은 길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음... 미궁이라고 하더니 뒤늦게 애를 먹이는군."

지금 자신들이 지나는 길이 좀 전에도 몇 번이나 지나갔던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오디세우스의 눈가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어쩌지? 이대로 가다가는 시간에 맞출 수가 없소."

페르세우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이야기를 했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구할 욕심에 메데이아를 선동질 했던 자신의 행동을 몹시도 후회하는 기색이었는데, 이렇게 길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자 애가 탄 모양이다.

"다행이라면 소드엠프레스와 그 일행들이라도 미궁이 변하기 이전에 일행과 떨어졌다는 것 정도인데..."

"아킬레우스와 테세우스도 실패했소. 이제 와서 저 먼 나라의 1등급 이능력자 둘이 있다고 해서 처치될 놈이었다면 우리만으로 일의 처리가 가능했겠지."

거의 초죽음이 되어서 살아 돌아온 아킬레우스를 떠올린 페르세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음. 그대는 아직 모르고 있겠군."

오디세우스가 던진 뜬금없는 말에 페르세우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뭐를?"

"이번 미노타우르스 퇴치의 주역이 그 둘이라는 것을 말이오."

페르세우스는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다가 복잡한 일은 딱 질색하는 성격이라 이번 미노타우르스의 작전 회의 때에도 불참했었다. 그런 그가 작전의 세세한 내막을 알 리가 없었다.

"선발대에는 무려 일곱명이나 되는 1등급 이능력자들이 있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오."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 그리고 메두사. 유게네스의 1등급 이능력자들만 해도 셋이다. 그중 아킬레우스는 생존에 특화된 반편이라고 쳐도, 친우인 헤라클레스의 힘은 페르세우스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 정도로 대단했다. 게다가 자신이랑 사이가 좋지 않은 메두사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엄청난 강자였고.

그런 그들에 더해 중국의 황룡에서 나온 이능력자들과 일본의 초인단에서 나온 이능력자들까지 있다. 그렇게 막강한 전력인 선발대보다 지금 따로 떨어져나간

김형준과 전지현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는 오디세우스의 말에 페르세우스가 반박을 했다.

"마스터 킴이야 이미 그렌델을 홀로 처치했던 전적이 있다고 치지만 소드엠프레스는 이제 오백년도 채 채우지 못한 이능력자 아닌가. 이름이야 거창하다 싶지만."

그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우스는 여전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오?"

============================ 작품 후기 으아아아! 간신히 연참분 하나 더 올립니다! 오늘 마눌님 심기가 편치 않으셔서 자꾸 글을 못 쓰게 하네요 ㅜㅜ 그래도 꿋꿋하게 한편 더 써서 올립니다!

이제 도살자 한편만 오늘분 올리고 나면 업뎃 완료겠죠... 하지만 몇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또 연재분 올리려고 낑낑 거릴테고.... 엉엉! 마감에 시달리는 기분이라 눙무리 납니다.

엉엉! 마감에 시달리는 기분이라 눙무리 납니다.

이런 저를 가여이 여기신다면 포풍과 같은 선작과 추천 코멘트 쿠폰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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