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그렇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전지현과 검맥, 도맥의 인물들은 다시 앞서 달려다는 전지현을 검맥과 도맥의 인물들이 놓치면서 한번 더 갈라져 버렸다.
이를 악물고 따라가도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멀어지다가 종내에는 아예 시야에서 사라진 전지현의 모습에 잠시 멈춰선 일행들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아직도 느껴지는 여진의 기운에 서로를 바라본다.
선발대와 후발대, 처음부터 나뉘어졌던 미노타우르스 토벌대의 인원 중 후발대가 다시 김형준과 메데이아, 전지현, 검맥과 도맥의 인물들. 마지막으로 유게네스의 인원들로 네 팀으로 잘게 나눠져버렸다.
이 상태로 괜찮은가 싶은 걱정에 진태식이 인상을 쓰는데 성시현이 품에서 부적과도 같은 종이쪼가리를 꺼내 허공중에 날려 보낸다. 허공에서 펄럭거리며 떨어져 내리던 종이쪼가리가 저 혼자서 꼬깃꼬깃 접히더니 종이접기 모형의 학처럼 변해 다시 날아올랐다.
"식신이에요. 이걸 따라가면 검후께서 가시는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1등급 이능력자 하나 없이 미노타우르스의 소굴에 외따로 떨어져 나온 자신들의 처지에 뒤늦게 걱정이 됐던 그들이라 한시라도 빨리 다른 팀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성시현이 만들어낸 식신이 날아오르기 무섭게 그들이 다시 어둠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태식을 비롯한 일행들이 뒤를 따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전지현은 날 듯이 어두운 통로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날 듯이 달리는 와중에도 눈에 보이는 몬스터가 있으면 전부 처리하고 가고 있었으니 뒤에 남은 일행들을 잊지는 않은 모양이다.
바른 걸음을 넘어, 빠른 걸음의 오의를 담은 그녀의 걸음이 한발 내딛을 때마다 수십미터씩 쏘아져 나간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파동이 자꾸만 격렬해지고 그녀의 마음도 덩달아 더욱 요동을 쳤다.
스스로 돌이켜 보기에 이렇게까지 서둘러 내달렸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김형준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무려 1등급 이능력자인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히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이대로라면 김형준이 있는 곳에 도착하더라도 도움은커녕 짐이 될 지경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어두운 미궁을 헤매고 다녔을까. 멀게만 느껴지던 김형준의 기운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반가움과 동시에 걱정이 앞선 것은 김형준의 기운과 수시로 부딪치는 음습하고 사나운 기운이 워낙에 컸던 탓이리라.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직까지 강맹하게 상대의 기운에 짓쳐 들어가는 그의 기운이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것 정도였다.
이제 김형준과의 거리가 얼마 안남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고민했다. 잠시라도 멈춰서서 기운을 회복할까, 아니면 이대로 뛰어들까. 평소라면 지체 없이 전자를 택했을 그녀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니, 평소라면 이렇게 체력 안배를 뒷전으로 하고 정신없이 내달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배는 격렬하게 서로를 들이받는 기운들이 일으키는 파동이 더욱 거세어졌다. 그리고 그 파동이 격렬해지는 만큼 그녀의 걸음도 다시 빨라진다.
"꼭 무사하십시오."
이를 악물며 그의 무사를 기원한 그녀가 다시 바람처럼 통로 속으로 사라진다.
"우와! 이 자식 엄청 단단해!"
가시찔레 꽃이고 피바라기고 간에 틈이 있어야 파고들어 생명력을 뽑아낼 텐데, 가시찔레의 가시는커녕 온 힘을 다해 만들어낸 피바라기로 이루어진 창날도 미노타우르스의 겉가죽을 뚫지 못했다.
그렇게 내 공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공격은 한방 한방이 치명적인 것들이라 나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으앗!"
놈의 거대한 주먹이 내 안면으로 짓쳐들어 나는 벽을 박차고 반대 벽으로 몸을 날렸다. 통로의 양 끝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닥치는데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오히려 놈의 성질만 돋울 뿐이었다.
평소였다면 생명력을 흡수해가며 걱정 없이 싸웠을 텐데, 이번만큼은 내 본신의 생명력을 사용해 싸워나가야 했다.
"아, 쫌!"
기껏 아까운 생명력을 뽑아내 만들어낸 5미터가 넘는 장창이 미노타우르스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간다.
나름대로 신경을 쓴 공격이었는데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가자 나는 지체 없이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피부는 뚫지 못하더라도 충격은 그대로 받는 모양인지 이런 공격이 들어갈 때보다 배는 거세어지는 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좀 어때요?"
아까보다 배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몸을 물린 메데이아가 멀리서 내게 물었다.
"어떻긴요! 보는 그대롭니다! 피부가 단단해서 뚫리질 않아요!"
피가 마르는 공방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가벼운 기분이라, 내 주둥이가 신나게 떠들어댄다.
"시간이라도 있으면 제대로 한방 날려 보겠는데. 어려워요!"
무식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놈은 지독스럽게 영악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비축할라 치면 온몸을 이용해 그대로 들이받아오는 탓에 방금 전에 내질렀던 장창도 겨우 겨우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곳이 뻥 뚫린 지상이었다면 흡혈목이라도 다시 불러볼 텐데, 이곳에서 그런 놈을 불렀다가는 미궁 자체가 무너질 것이다. 미노타우르스 하나 잡자고 자살과도 다름없는 공격을 하기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던지라 나는 흡혈목은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해요."
메데이아의 사과에 나는 고개를 털었다. 그나마 이렇게 잠깐이나마 놈과 거리를 벌리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그녀의 덕이다. 잠깐씩이지만 미노타우르스의 감각을 혼란시켜 지금처럼 기세가 사나울 때는 엉뚱한 곳을 공격하게 하는 그녀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나는 주구장창 저 앞에서 싸웠어야 했겠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효과가 다 된 것 같으니 다시 가볼까요!"
나는 쾌활하게 지껄여대고 다시 미노타우르스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쉬는 동안 만들어낸 거대한 송곳과도 같은 것을 허공에 띄우고 그대로 발로 걷어차 버렸
다. 쐬에에에에엑!
귀를 찢는 소음을 내며 날아든 거대한 송곳을 뒤늦게 발견한 미노타우르스가 주먹을 휘둘러 송곳을 후려쳐 버렸다. 기껏 만들어낸 송곳이 엄한 곳에 가서 쳐박혔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주공은 송곳이 아니었거든!
음메에에!
"처음으로 소같은 소리를 내는구나!"
미노타우르스가 송곳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슬쩍 놈의 머리 위에 올라선 나는 그대로 놈의 얼굴로 뛰어 내리며 미리 준비해두었던 거대한 망치를 냅다 휘둘렀다.
꾸어어억!
피부가 단단해서 칼이 안 들어가면 골통을 흔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내려 친
공격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전투가 벌어진 이후 처음으로 비명소리 비슷한 괴성을 내지른 미노타우르스가 머리를 흔들며 휘청거렸다.
"좋구나!"
그간 무수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모양인지 나는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놈의 면상을 한 번 더 후려 쳤다.
꾸에에에에에에엑!
연달아 면상을 두들겨 맞자 어지간한 미노타우르스도 충격을 상당히 받은 모양이다. 그 충격이라고 해봤자 머리가 흔들리고 어지러운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처음으로 유효타를 날린 나는 신바람이 나 몇 번이고 놈의 거대한 안면을 두들겨댔다.
얼마나 집중해서 놈의 면상을 때려댔는지 하마터면 분노한 미노타우르스의 손아귀에 잡혀 그대로 뭉개져버릴 뻔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휘두른 손바닥이라 정확도가 형편 없는 공격이었지만 맞았다가는 그대로 골로 갈 위험한 공격이기도 했다. 뒤늦게 놈의 몸에서 떨어져 다시 생명력을 모으는데 투레질이라도 하는 말처럼 놈이 대가리를 자꾸만 흔들어
댄다.
아무래도 아예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닌지 놈이 한참이나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무식한 놈 상대할 때는 역시 무식하게 나가야 돼나 봐요."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메데이아의 시선에 겸연쩍어져서 그렇게 지껄이니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스터 킴의 전투 방식은 뭐랄까... 유쾌하군요."
딴에는 돌려 말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담긴 웃음기를 느끼고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열심히 기운을 모았다.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큰 거 한방을 날려야겠다 싶어 허공중에 거대한 무언가를 형상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저주가 중첩되어서 이번에는 조금 더 시간이 길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과연 놈이 정신을 못 차리고 이리 저리 몸을 비틀거리는 것이 이전보다 더 심각한 혼란상태를 겪는 듯 했다.
"그래도 어지간 하네요. 저주가 벌써 200번이 넘도록 중첩이 됐는데 겨우 시간을 버는 정도라니."
그녀의 말에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번에는 나도 작정하고 공격을 준비하는 중이라 따로 대답할 여력이 없기도 했고.
그간 허점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정타를 미뤄왔던 것은 결정타가 결정타로 끝나지 않았을 경우 앞으로 이어질 전투가 불리질 것이 자명한 탓이었다.
그렇게 미뤄왔던 공격이지만 지금만큼 적기도 없는지라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다. 당장 이번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내 체력이 방전되거나 할 일은 없겠지만, 이후의 전투에서 겪을 에로사항이 커질 것은 확실했다.
"그건...?"
마침내 슬슬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붉은 덩이리의 모습에 메데이아가 침음성을 내뱉었다.
날카롭게 각이 진 네모난 모양에 한쪽은 평평하고 반대편은 뾰족하게 솟아오른 송곳과도 같다. 그 거대한 덩어리에 연결된 굵직한 봉은 머리통에 비해 가늘지
만 내 생명력의 결정체라 단단하게 그지없이 그 끝을 받치고 있다.
"망치?"
메데이아의 어이없다는 듯한 말에 나는 절로 미소가 흘러 나왔다. 지금 내 눈 앞에 형상화된 붉은 기운은 거대한 망치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날카로움으로도 미노타우르스의 가죽에 생채기조차 입히지 못한 나는 방법을 바꿨다. 유일하게 놈에게 충격을 준 공격이 찌르기가 아닌 후려치기 였던지라 점이 아닌 면의 공격을 준비한 것이다.
방금 전의 공격이 어느 정도 유효했었던 것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내 딴에는 진지하게 생각한 공격이지만 어느 정도 형체를 만들어 놓고 나니 꼭 만화영화에 나오는 망치와도 같은 모습에 나조차도 웃음이 나왔다. 그나마 빛깔이 피처럼 붉은 빛이라도 다행이지 다른 천연색이었으면 영락없는 명랑만화 주인공의 무기가 될 뻔 했다.
빈곤한 상상력에 억지로 만들어내다 보니까 저런 형상이 만들어졌는지, 나는 어이없어 하는 메데이아를 뒤로 하고 길게 돋아난 손잡이를 단단히 양 손으로 감아쥐었다.
중첩된 저주고 어지러움증이고 뭐고,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미노타우르스가 쭉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정신없이 얼굴을 난타 당했다는 것에 성질이 뻗칠 만큼 뻗쳤는지 그 기세가 전에 없이 사나웠다.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콧구멍으로 거칠게 콧바람을 내뿜은 놈의 몸이 조금씩 붉게 달아오른다. 가뜩이나 징그러울 정도로 단단했던 근육질의 몸이 더욱 팽창하고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다.
아마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한입거리도 안 돼는 조그만 놈이 성가시게 굴고, 거기에 더해 정신없도록 얼굴을 두들겼으니 신경질이 나도 제대로 났을 것이다. 잡히기만 하면 바로 짓뭉갤 수 있는 놈을 번번히 코앞에서 놓치고 있으니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덕분에 이번에는 놈도 작정을 했는지, 쉽게 달려들지 않고 가만히 이쪽을 노려보는 모습에 진땀이 절로 흘렀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맞서서 놈을 노려봤다.
처음에 느꼈던 압박감과 두려움은 이미 희석되어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끝없는 투쟁심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을 채우는 이 뿌듯한 감정에 나는 절로 미소가 나왔다. 가슴 속에 치밀어오르는 호기가 마침내 목을 거쳐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음메, 하고 울어봐! 이 소대가리야!"
나는 거의 머리통의 크기만 3미터는 될법한 망치를 손에 감아쥐고 그대로 미노타우르스에게 달려들었다.
============================ 작품 후기 독자님들 저를 죽여 주소서. 업데이트 한답시고 그대로 잠이 들어서 엄청 늦게 일어나버렸습니다. ㅜㅜ이런 저에게 추천과 코멘트로 뭇매를 때려주소서. 늦었지만 이번 편 올리고 바로 써서 아침즈음에는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너무 진노하지 마소서. ㅜㅜ쿠폰 미리 주신 분들께 죄송해서라도 다른 짓 안하고 연참분과 비축분을 쌓도
쿠폰 미리 주신 분들께 죄송해서라도 다른 짓 안하고 연참분과 비축분을 쌓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저라도 독자님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정말이랑게! 믿어달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