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전장이었지만 희생자도 없는 마당이라 나는 지루한 심정을 그런 식으로 달랬다.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구경만 하던 건 아니고 몬스터의 공격에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간간히 도움을 주는 식으로 전투를 도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선발대와의 거리가 좁혀지지를 않는 것이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이쪽보다 더 많은 수의 몬스터들과 전투를 하며 전진하고 있을 텐데도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다는 것은 그나마 선발대의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유게네스의 이능력자들을 혹사시켜 가며 미궁을 헤매기를 한참, 별로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강철같은 얼굴을 잔뜩 굳히고 내게 다가온 오디세우스가 말했다.
"방금 전부터 선발대와의 연락이 되질 않고 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무슨..."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던 선발대가 연락이 되지 않아 이쪽에서 연락을 해봤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속삭이듯 말하는 모양새가 꽤나 곤혹스러운 기색이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는 내 눈빛이 절로 차가워졌다.
지금 이 상황이 곤혹스럽고 말고 그렇게 끝날 상황인가.
"지현 잠시 주변의 소리를 차단해줘요."
내 말에 대열에서 삐져나온 지현이 손을 휘두르고 이내 근방 5미터정도에 기막이 펼쳐진 것이 느껴졌다. 이질적인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오디세우스를 똑바로 노려봤다.
"정확하게 설명을 해보십시오."
당황한 와중에도 내 불편한 기색을 눈치 챈 오디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15분에 한번 씩은 연락을 주고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벌써 45분째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통신기를 통해 긴급호출을 해봐도 응답이 없고..."
"그래서 상황이 어떻고 대안은 뭐죠?"
가차 없이 그의 말을 잘라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건 선발대에 뭔가 변고가 생겼다는 건데 이후의 해결책이 더 중요한 순간이다.
내 말에 오디세우스가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벌써 은신 능력이 있는 인원을 몇 파견했습니다. 대략 15분 전에 출발했고 중간에 이변이 없다면 한 시간이면 돌아올 겁니다."
"그럼 그때까지는 일단 대기입니까?"
연락이 닿지를 않으니 전령을 파견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몬스터들의 습격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와중에 전령이 제대로 선발대와 만날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흐음..."
거기에 더해 선발대에 이변이 생겼다면 이대로 시간만 잡아먹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빠르게 이동해서 선발대를 구원하거나, 아니면 선발대를 포기하고 이탈하거나. 지금의 결정은 이도 저도 아니고 혹시 모를 위협에 우리 일행까지 노출시키는 결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디세우스의 초조한 얼굴을 잠시 살펴봤다.
유게네스의 인물인 그의 입장에서 선발대를 포기할 수 있을까? 무려 세명에 달하는 1등급 이능력자와 50여명에 달하는 2등급 이능력자가 포함된 전력이다. 듣기로는 직접 전투가 가능한 인원을 총동원한 작전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 정도나 되는 인원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이들은 절대 포기 못한다. 비록 그것이 후발대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결정일지라도 이들 입장에서는 절대 선발대를 포기하지 못한다.
"일단 전령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결과가 확실치 않으면 빠르게 돌파하도록 하지요."
역시나 내 예상대로 오디세우스가 강행돌파를 제안했다. 이제 와서 우리 일행들만으로 미궁을 빠져나가기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나는 마지못해 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단! 선발대가 혹시 전멸하거나 했다면 그때는 지체 없이 퇴각하는 걸로 합시
다."
내 말이 불길하게 들렸는지 오디세우스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눈빛이 조금 사나워지는 그였지만 나는 한가지 단서를 더 붙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대기하지 말고 전진하도록 하죠. 여기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테니, 차라리 전진하면서 전령이랑 빠르게 합류하고, 상황을 봅시다."
이번 의견은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조금은 풀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헤어지고 일행에게 돌아온 나는 천천히 일행의 걸음을 조절해 선두열과 간격을 벌렸다. 그러고도 혹시 몰라 다시 주변의 소리를 차단했다.
내 심상치 않은 행동에 일행들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갔다.
"선발대가 연락 두절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거 같으니, 힘을 아끼도록 해."
수틀리면 우리들만이라도 미궁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왜곡의 중심부까지 들어온 터라 그 길이 쉽지 않겠지만 지현과 내가 있는 한 어떻게든 가능은 할 것이다.
"도연과 시현은 유사시에 길을 찾을 수 있게 더욱 유념해주고."
내 말에 도연이 장난스럽게 손가락 끝을 펼쳐보였다가 이내 다시 접어 쥐었다. 희미한 빛이 그녀의 손끝에 어렸다가 사라지고 우리가 지나온 길에 희미한 빛이 스쳐갔다.
"이제부터가 진짜 위험한 상황이라 생각하고 다들 마음 단단히 붙들어 매."
저 앞쪽에서 대열을 정리하던 오디세우스가 이쪽을 힐끔 거렸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일행의 안전만큼이라도 챙기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 뒤로 몇 번인가 몬스터 무리를 만났지만 오디세우스와 메데이아 페르세우스까지 동원된 선두열은 빠르게 몬스터들의 대열을 분쇄하고 돌파를 시도했다. 덕분에 후열까지 꽤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흘러들었지만 우리에게 별다른 장애가 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을 했을까. 전령이 돌아오기로 한 시간이 이미 다 되어 가지만 전방에는 몬스터들의 기운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인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던 터라, 나는 오디세우스와 메데이아 페르세우스를 전부 불렀다.
"이미 시간이 다 됐고, 거기에 우리가 전진을 했는데도 전령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상황을 되짚어 말해주니 메데이아가 내 말에 대답을 했다.
"한 시간이라는 건 대략적인 예상일 뿐이에요. 지금 상황을 어떻다 판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아닐까요."
역시나 메데이아조차 선발대의 전력이 아까운지 미련을 보였다.
"전령은 통신기를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은신을 지닌 능력자라면 섣부르게 통신기를 사용했다가 몬스터들에게 발각될 수 있으니 통신기를 허투루 사용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유사시에 간단한 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었더니 페르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가긴 했지만 아마 사용은 못 할 겁니다. 몇 되지 않는 전령들이 통신기를 사용하다 몬스터들과 조우하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상황이 없을 테니까요."
역시나 예상대로의 대답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선발대
와 전령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 나는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퇴각을 건의합니다."
조금은 갑작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내 말에 그들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정도까지 왜곡이 진행된 지역에서 연락이 끊긴 선발대라면 필시 좋은 일은 아닐 거 같습니다. 저희라도 온전하게 전력을 보존해서 퇴각하는 게 후일을 대비해서 더 나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 선발대가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전멸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1등급 이능력자가 다수 포함된 막강한 전력이었지만 이곳은 왜곡의 중심.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게다가 미노타우르스의 둥지니만큼 그들이 미노타우르스와 불시에 조우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미궁에 도사리고 있는 미노타우르스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정말 최악의 최악이지만 두 마리의 미노타우르스를 만났을 경우 선발대의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아니, 필시 전멸이겠지.
"메두사와 헤라클레스가 있다면 미노타우르스를 만났어도 쉽게 당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리고 아킬레우스도 능력을 떠나서 살아남는 것만큼은 세계 최고라도 해도 좋을 인물이니 최악의 경우 그라도 돌아와야 정상이에요."
메데이아가 내 말에 반박을 했다.
"그럼 돌아오지도 않는 전령을 계속해서 기다리자는 겁니까?"
다시 그녀의 말에 대꾸하는 내 음성이 잔뜩 날이 서 있었다.
담답한 인물들이다. D섹터. 아니 이곳에서는 어비스라고 했던가. 왜곡이 일어난 지역이 얼마만큼 위험한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일그러졌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고등급의 이능력자가 8등급의 몬스터에게도 목숨을 잃는 곳이 왜곡된 지역입니다. 이런 곳에서 연락도 닿지 않는 선발대를 기다리다니, 제 정신입니까?"
뭐라 입을 열어대는 그들의 말을 죄다 잘라내며 나는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이대로 후발대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이도 저도
아닐 경우 우리 일행만을 데리고 돌아갈 예정이지만 지금 다른 인원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그리고 잊고 있는가 본데, 이곳은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입니다. 놈의 앞마당에서 죽치고 기다리고 있겠다니요."
천개의 눈동자는 안개에 들어선 우리의 존재를 단박에 알아챘었다. 마찬가지로 그렌델 역시 늪지대에 들어선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르스가 우리가 들어온 것을 몰랐을까.
이미 작전 수립 시에 내 설명을 통해 그정도 사실은 알고 있는 유게네스의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만큼 초조하기 때문이겠지.
페르세우스의 얼굴은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고, 그나마 메데이아와 오디세우스가 고민하는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있는 인원들이라도 살리려면 지금 당장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퇴각을 강요하는 내 음성이 꼭 악역같이 들려와 나도 마음
이 불편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지만 아직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선발대를 포기하고 물러나자는 내 마음도 결코 편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살리겠다고 내 일행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우리는 이곳에 경험을 쌓으러 온 것이지 개죽음 당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메데이아!"
내 말에 가장 빠르게 결정을 내린 것은 메데이아였다. 페르세우스가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메데이아는 태연했다.
"어쩔 수 없지요. 만약 선발대가 잘 못 됐다면 이곳에 남아있는 인원들이 유게네스 최후의 보루. 위험을 자초할 수는 없어요."
그녀의 말에 뒤늦게 오디세우스마저 그녀를 옹호하고 나섰다. 결정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역시 현명한 이들다운 결정이다.
"메데이아의 말처럼 여기 있는 인원들까지 잘못되면 유게네스는 존립자체가 위태롭소. 그러니 페르세우스 그대도 이해를 해주시오."
오디세우스가 페르세우스를 설득한다. 그 말에 잔뜩 화가 난 표정이 된 페르세우스가 그들을 노려보다가 이내 표정을 바로 한다.
그리고 뜻밖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호쾌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조금은 비열한 느낌의 웃음이라 나는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메데이아. 선발대를 포기하겠다고?"
왠지 비아냥거리는 어투라 메데이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녀의 말마따나 다른 방법이 있는 상황도 아닌데 고집을 부리는 페르세우스의 모습이 이제는 좋게 보이지 않았다.
"흠. 선발대에 이아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선발대를 포기할 건가?"
그 명백한 도발에 나는 불안감의 실체를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내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사이에도 그들 사이의 말이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있다.
"당신 지금 헤라클레스와의 친분 때문에 상황판단이 느려진 모양인데, 지금 우리라도 몸을 빼는 것이..."
"다시 묻지. 이아손이 선발대에 있다면?"
페르세우스가 가차없이 메데이아의 말을 잘라내며 물었다. 그제야 페르세우스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 느낀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이아손이 선발대에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집요하게 메데이아의 약점을 건드리는 페르세우스의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 짐작이 맞다면 아마 이아손은 선발대에 포함되어 있으리라.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는지 페르세우스가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못 봤겠지만 이아손이 선발대에 섞여 들어간 걸 난 봤거든."
"이아손이 왜..."
"그건 나도 모르지. 무서운 마누라 피해서 다른 여자 꽁무니라도 따라간 모양이야."
나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페르세우스의 비아냥에 대꾸도 못하고 창백하게
질린 메데이아가 입술을 잘근 잘근 씹어댔다.
천년이 넘는 시간을 이아손을 붙들고 살아온 메데이아다. 사랑과 증오를 한데 버무려 비틀리고 어그러진 집착을 키워온 그녀가 이아손을 포기할 리가 없다.
"나는 헤라클레스를 구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남편을 구해."
============================ 작품 후기 으허허허허. 하루 48시간이면 좋겠습니다. 그럼 24시간은 제 본업과 마눌님을 위해 쓰고 24시간은 글 쓰는데 쓸텐데 말이죠 ㅜㅜ엉엉.
역시 휴재가 자주 있으니까 연독률이 멸망이군요 ㅜㅜ그래서 결정내렸습니다. 본업이 있는 이상 제가 한달내내 성실 연재하는 것은 힘드니 한달 4주중 1주일 정도는 휴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휴재하는 시간에도 가능하면 비축분을 만들어 남은 3주동안 연참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당분간은 휴재 없이 가도록 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독자님들과의 끈적한 사랑으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본업이 멸망할 지경이라 양해해주소서.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