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42화 (142/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쪽의 전력은 여러분들과 유게네스의 2등급 이능력자 2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등급 이능력자 전력은 저와 메데이아, 페르세우스, 그리고 마스터 킴과 소드엠프레스를 포함하여 총 다섯명입니다."

먼저 출발한 선발대에는 중국과 황룡의 1등급 이능력자들을 포함하여 일곱명의 1등급 이능력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2등급 이능력자들의 수도 이쪽에 비해 월등한 50명이라고 하니 선발대가 먼저 전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여러분들은 대열의 최후미이니 저희를 따라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안은 지독스럽게 어두우니 주의하시기를."

이미 전날의 작전설명 때 들었던 내용이지만 오디세우스가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준다. 나는 그러마하고 일행들을 모았다.

내가 최후방이고 지현이 우리 일행의 최선두, 혹시 모를 상황을 앞뒤로 대비하기 위한 진형을 갖추고 우리는 유게네스의 인원들을 따라 시커먼 미궁의 주둥이로 들어섰다.

미궁의 입구로 들어서자 그 입구만큼이나 거대한 복도가 우리를 반겼다. 단 몇

발자국 들어섰을 뿐인데 온통 어둠뿐이라 마치 다른 세상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능을 각성하면서부터 강화된 시각능력이건만 이번만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과 수십미터 앞의 유게네스 일행이 벌써부터 끄트머리만 간신히 보일지경이다.

"다들 시야확보에 주력하고, 앞의 일행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

지독스러운 암흑에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니 모두가 작게 그러마하고 대답을 해온다. 그 조그만 음성이 어찌나 울려대는지 모두가 몸을 움찔대는 것이 느껴졌다.

눈에 힘을 주며 앞열을 따라 걷다보니 들리는 것은 일행의 발걸음소리뿐이다.

"어째 으스스한데?"

김도연이 침묵을 못 이기고 한마디 했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어두운 복도에 울려대는 일행의 발걸음소리와, 어디선가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불이라도 밝힐까요?"

김도연의 바로 곁에서 걸음을 옮기던 성시현이 내게 물어왔다. 어둠속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하얗게 질린 얼굴이 안쓰러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하면 걷기야 편하겠지만 불빛을 보고 몬스터들이 꼬일 거야."

이미 미궁의 전지역에 걸쳐 몬스터들이 있다는 사실을 들었던지라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냈다. 선발대가 길을 정리하면서 가긴 하겠지만 만반의 사태를 준비해야 하니까.

불조차 밝히지 못하고 어두운 복도를 한참이나 걸었다. 이능력을 각성한 이후로 처음 접해보는 완전한 어둠에 일행의 얼굴이 빠르게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1등급 몬스터의 존재와 여러 가지 일들이 일행의 정신을 빠르게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온 미궁을 감싸고 있는 음습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진해지고 있다. D섹터에서 지겹도록 느껴왔던 비틀림이다.

이런 곳에서는 사소한 말다툼이 큰 사고로 이어진다. 말 속에 담긴 의미 하나

하나가 비틀리고 그 비틀림이 서로의 갈등을 크게 키워 버린다. 일행은 모두 D섹터를 전전하던 이들이라 그런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닫고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런 우리 일행과는 다르게 선두열의 이능력자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끊임없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소리가 지독하게 울려대는 통에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지만, 뭔가 선발대에 관련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하다.

그렇게 신경 쓰이는 소음을 들으며 전진하기를 한참, 선두열이 멈춰서는 것이 보였다.

"갈림길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말에 전면을 자세히 보니 어둠 너머에 희미하게 갈림길이 보였다. 선발대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확인이 안 되나 싶어 그를 쳐다보니 그건 또 아닌 듯하다. 우리 일행이 시야에 들어오자 선두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어두운 시야 탓에 후열이 길을 잃을까 걱정이라도 된 모양인지, 그 뒤로도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선두열이 멈춰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그렇게 열 번인가 갈림길을 만나고 나니 이번에는 계단이 나왔다.

단순한 미로인줄 알았더니 뭔가 입체적인 공간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갈림길만 해도 아득히 먼 거리였건만 한층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야 단순히 선두열을 따라 걷기만 할 뿐이었지만 혹시라도 일이 틀어질 경우에는 빠져나올 길이 막막해질 것이다. 그런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김도연과 성시현이 나를 쳐다보고는 걱정말라는 제스츄어를 취해보였다.

"도맥의 사람들이 길을 잃는 법은 없습니다."

곁에 있던 지현이 내 걱정을 불식시켜주는 한마디를 해온다. 그녀의 말에 걸음을 옮기면서도 김도연과 성시현을 주시하니, 일정 거리마다 그녀들의 손가락이 희미하게 빛을 발한다.

뭔가 자신들만의 표식이라도 심는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고 나니 마음에 놓였다.

그렌델과의 전투 때도 그렇고 이상하게 외국의 이능력자들은 뭔가 한국의 이능력자들보다 못 미더웠던지라, 앞서 길을 가는 유게네스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일산에서 벌어졌던 대괴수 전 당시 보였던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의 일사분란함

에 비하면 뭔가 모자라 보인달까. 우리 이능력자들은 뭔가 조직생활과 상명하복에 익숙한 느낌인데, 타국의 이능력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기색이 두드러졌다. 유게네스만 해도 타국의 이능력자인 내게 자신들의 알력다툼을 숨기지 않았다.

당장 어깨를 맞대야할 전우나 마찬가지인 그들에 대한 신뢰가 이모양이니 새삼 내 주위에서 걸음을 옮기는 일행들이 든든했다.

이들이라면 등급을 떠나서 유사시에 제 몫은 해줄 거라는 믿음이 단단하게 나를 받쳐준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몇 번인가 갈림길을 더 지났다. 단순한 두 갈래 길이 아닌 세 갈래 네 갈래 심할 경우에는 열 개는 넘어 보이는 갈림길이 나오는 것을 보니 미로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발치를 조심하십시오!"

"발 아래를 주시하세요!"

"바닥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선두열에서 연달아 경고가 터져 나왔다. 함정이라도 있는가 싶어 몸을 긴장시켰더니 이윽고 유게네스의 인물들이 경고를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화려하게도 했군."

어두운 복도의 바닥에 늘어진 몬스터들의 사체가 한가득이다. 주의하지 않았다면 이능력자씩이나 돼서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 수도 있을 만큼 잘게 부서진 몬스터들의 사체에 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원체 원형을 알아볼 수 없도록 짓이겨지고 토막 난 사체가 태반이라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몬스터들의 수가 상당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마른 바닥을 지나 피가 흥건한 곳을 걷고 있자니 그 끈적끈적한 느낌이 상당히 불쾌했다. 혹시나 선발대에 희생자라도 있는가 싶어 몬스터들의 사체들을 살피면서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희생자는 나오지 않은 듯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게 우리가 미궁에 들어선지 2시간 가량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 뒤로도 갈림길과 몬스터들의 사체들을 번갈아 지나다 보니 이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나 흘렀는지 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긴장 속에서 어두운 미로를 헤맸던 탓에 체감상으로는 정말 오랜 시간을 헤맨

기분이다. 거의 하루는 꼬박 미로를 헤맨 기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겠지.

"대열 정지!"

오랜만에 선두열이 걸음을 멈췄다. 한참동안이나 갈림길도 나오지 않았던 와중이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들이 멈춰선 이유가 있었다.

수 없이 지나왔던 몬스터들의 사체더미 사이에 처음으로 인간의 시체가 보였던 것이다. 무엇에 당했는지 비교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희생자의 얼굴에만 유독 검붉은 피딱지가 말라 있었다.

"시체의 수습은 돌아오는 길에 한다!"

어둠 속에 비치는 유게네스의 인물들의 얼굴에 동요하는 기색이 어렸다. 동료의 시체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듯 하다.

"이 사람들 뭔가 엉성한데요?"

진태식의 곁에 있던 2등급 이능력자 김성민이 말했다. 그는 진태식과 마찬가지로 검맥에 들어온 이후 2등급 이능력자로 올라선 이였는데 평소 말이 없는 성격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였지만 오랜만에 입을 열지 않고는 참지 못한 듯싶었다. 하긴 그의 말대로 D섹터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료의 사체를 수습하지 못하는 것이 일상 다반사였던 대한민국의 이능력자가 보기에, 유게네스 인물들의 동요는 지나쳐 보였을 수도 있었다.

먼저 떠나간 선두열의 인물들의 얼굴에는 비통과 불안함, 그리고 막연한 공포가 진하게 서려 있었으니까.

"고인의 앞이다. 말을 삼가거라."

지현의 한마디에 이내 입을 다문 김성민이었지만, 다른 일행들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최후미를 맡길게요. 저는 잠시 선두열에 다녀올 게요."

지현에게 그렇게 말하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자리를 대신해 최후미에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음을 서둘렀다. 수십미터 앞에서 전진하고 있던 선두열의 끄트머리에 도착한 나는 메데이아나 오디

세우스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을 살폈다.

마침 오디세우스가 대열의 후미 쯤에 있어 그를 불러 세웠다.

"마스터 킴. 어쩐 일이신지."

"뭣 좀 물어볼 것들이 있어서요."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걸음을 늦추니 그가 나를 따라 선두열에서 이탈한 꼴이 됐다. 선두열과 내 일행들 사이즘 되는 거리에서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발대하고 거리는 여전히 5시간 거리입니까?"

출발하기 전에 들었던 사안이지만 다시 확인을 하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현재 연락이 된 바로는 3시간 거리 정도에 있는 것으로 확인 됐습니다. 아무래도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전진하다보니 속도가 저희에 비해서는 느리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몬스터들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웅덩이들이 조금씩 점성이 덜해진다 했더니 역시 선발대와의 간격이 좁혀진 모양이다.

"아무래도 첫 희생자가 나온 모양인데 이대로 간격 유지만 해도 되겠습니까?"

선발대의 인물들이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길을 만들어둔다. 후발대인 우리 입장에서야 전력이 온전하게 보전되니 반길 일이지만 희생자까지 나온 마당에 이대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능사일까 싶어 그에게 물었다.

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능사일까 싶어 그에게 물었다.

"음. 저쪽에도 1등급 이능력자들이 여럿 있고 나가사키 쥬리씨와 저우제룬씨가 2등급 이능력자들을 도와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있을 겁니다."

과연 하자품인 그들을 앞세워 길을 열면 다른 1등급 이능력자들의 전력도 보전이 되고, 2등급 이능력자들의 희생도 줄일 수가 있다. 한가지 문제라면 그들의 힘이 과연 그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안정이 되있냐 정도였는데 희생자가 나온 것을 보니 신통치는 않은 모양이다.

어떤 몬스터들과 마주친지는 알 수 없지만 나나 지현이 있었다면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미노타우르스와의 전투시에 가장 유용한 전력이라 파악되는 나나 그녀를 함부로 내돌릴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문제들을 염두에 두다 보니 결국 저우제룬과 나가사키 쥬리라는 대안을 사용한 것이고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겠지.

"몬스터시체가 나오는 간격이 점점 좁아지는데 그 둘만으로 과연 감당이 되겠습니까?"

몬스터들 시체더미들이 나오는 간격이 점차 짧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몬스터들의 습격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말만 1등급 이능력자인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 아닌가 싶어 오디세우스에게 물었다.

"일단 그 둘 말고도 오십여명에 달하는 2등급 이능력자들이 있고, 거기에 더해 다른 1등급 이능력자들도 있으니 유사시에는 스스로 수를 낼 겁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렇게 해서야 저쪽 선발대의 1등급 이능력자들이 미노타우르스를 한 마리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유게네스의 주도하에 짜여진 작전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참견을 하는 것도 꺼려지던 터라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물러나려는데 그가 나를 안심시켰다.

"저우제룬과 나가사키 쥬리 둘로 안 되면 메두사가 나서기로 했으니 너무 걱정 마시기를."

막 그의 말에 자리를 벗어나려던 나는 뒤늦게 떠오른 의문에 그에게 물었다.

"아 그런데 그리스에는 왜곡이 없습니까?"

어떻게 보면 보안사항을 건드리는 질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유게네스 이능력자들의 태도를 보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있지요. 저희들은 어비스(abyss)라고 부릅니다."

============================ 작품 후기 먼저 말 없이 휴재를 한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지난 주말에 하드 디스크에 배드 섹터가 생기면서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데이터 복구에 열을 올리느라 연재가 불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현직 디자이너다 보니 근 10년간 작업한 디자인 파일과 소스에, 기타 견적서 및 립이라 불리우는 수백만원데 인쇄컬러 보정 데이터등이 통채로 날아가는 바람에 패닉상태였습니다.

수시로 멈추는 컴퓨터를 부둥켜 안고 어찌 어찌 데이터를 복구하고 나니 관련 프로그램과 인쇄기에 맞는 드라이버 및 색감 조절등으로 꼬박 며칠을 밤 새다

시피 했네요.

연재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던지라 공지도 못 올려드렸던 점 사과드립니다.

게다가 6월 30일이 마눌님과의 첫번째 결혼기념일이고 7월 2일이 또 마눌님 생신이라 없는 시간 쪼개서 함께 보내다 보니, 오늘에서야 어느 정도 작업이 가능하도록 컴퓨터를 복구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휴재에 사과드립니다. 사죄의 뜻으로 두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필력이 같잖아서 하차하신다는 독자님 이 글 보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해당 댓글 삭제했고 앞으로 다시 댓글 달아주실 경우 무조건 불량이웃 등록하겠습니다. 비평이나 비판이 아닌 인신공격에 가까운 태도시라 보는 제가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군요.

이상 오랜만에 돌아온 글쟁이의 푸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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