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40화 (140/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덕분에 유게네스와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우호관계를 다질 수 있게 되었어요. 아니 그 이전에 저 메데이아가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답니다."

그녀의 말이 드물게 호의 가득한 어투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조만간 큰 선물을 하나 드리도록 하지요. 지난 선택에 후회가 없으실 겁니다."

딱히 대답하기도 뭐해 말 없이 수화기만 들고 있으니 그녀가 다시 내게 말을 했다.

"이아손 그 바보가 마스터 킴에게 거절을 당하고는 '초인단'과 '황룡'을 찾아갔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저에게?"

부부간의 치부를 자꾸만 드러내는 것이 불편해져 그녀에게 물었다.

"마스터 킴이 받으실 선물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뜬금없는 말에 갑작스레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불쑥 치켜들었다.

"무슨..."

내 의문에는 대답도 않고 그저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만 흘리는 그녀의 태도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가 받을 선물이 황룡과 초인단이랑 상관이 있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다시 한 번 물으니 그녀가 기대하라는 대답만을 남기고는 내일 찾아오겠노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별 내용 없는 사소한 통화였지만 이아손을 통해 그녀의 잔인한 성정에 듣고 난 뒤라 그랬는지 이상할 정도로 불길해졌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내게 무슨일이냐고 묻는 지현에게 대충 얼버무린 나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다음날 그녀가 찾아올 때까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메데이아와 오디세우스가 나를 찾아왔다. 전날과 다르게 밝은 얼굴을 해보인 그들이 내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는 찝찝함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메데이아가 그런 내 얼굴을 보고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그게 또 왜 그렇게 불안한지.

"방법은 찾았습니까?"

그들이 찾아온 목적을 잊지 않은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이번 계획을 들으시고도 내키지 않으신다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신다 해도 잡지 않겠습니다. 물론 유게네스에서 그에 관련한 모든 비용을 정산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호언장담을 한다. 내가 눈짓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종용하니 그가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미노타우르스 퇴치 작전에는 유게네스의 전투 가능 능력자가 모두 참여합니다. 상성이 맞지 않아 참여가 불분명했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역시 전투에 참여할 것이며, 거기에 더해 아킬레우스도 참여할 겁니다."

"그럼 유게네스의 능력자만 해도 메데이아씨와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씨, 메두사씨가 출정하는 겁니까?"

메데이아는 마법관련의 이능을 지닌 1등급 이능력자로 알고 있어 그렇게 추측하니 오디세우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저까지 포함해서 다섯명이 참여합니다."

다섯명의 1등급 이능력자라니 그 능력을 본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전력이 아닌가 싶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을 왜 이제야..."

우유부단한 그들의 결정에 질책이 절로 나왔다.

"저희도 저희만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전투 가능한 1등급 이능력자들을 전부 동원했다가 그게 잘 못 되기라도 하면 유게네스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지부진한 탓에 테세우스라는 1등급 이능력자를 잃었지. 차마 그 말까지는 하지 못하고 그의 설명을 마저 들었다.

"그래서 저희 측에서는 이번 미노타우르스 퇴치에 국운을 걸 생각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비장한 말을 메데이아가 받았다.

"일본과 중국에 항의를 넣고 추가적인 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메데이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가사키 쥬리나 저우제룬 같은 능력자야 아무리 와도 2등급 이능력자가 더해지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무슨 이점이 있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들은 것을 정리하면 유게네스에서 다섯명의 1등급 이능력자가 참여한다는 것 정도가 전의 계획과는 다르다고 할까.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게 내 마음을 돌릴 만큼 대단한 계획은 아니었다.

그런 내 속마음을 눈치 챘는지 메데이아가 다심 말을 이었다.

"혹시 몰라서 제 특제 비약도 전부 지원하기로 했답니다."

그녀가 선보인 바 있는 붉은 색 약물이 저우제룬을 치료하는 것을 본바가 있지

만 특제 비약이라고 할 정도의 것들은 아니었다.

"설마 제가 선물로 드린 빨간약 따위를 떠올리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괜스레 뜨끔해져서 딴청을 피우니 그녀가 품에서 여러 가지 약병을 꺼냈다.

그 약병들을 본 나는 절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효과 따위야 알 방법이 없지만 황홀한 빛이 감도는 오색의 액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엘릭서라고 부르지요. 재료가 귀해 저도 평생 몇병 만들지 못한 비약이랍니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약병에 손을 뻗다가 그녀가 약병을 다시 품에 갈무리하자 아쉬움에 탄성을 내뱉었다.

"효과는 심신의 완벽한 치료와 일시적인 능력의 증폭. 약효는 제가 보장합니다."

단지 물약에 불과했지만 한번 본 것만으로 그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내 본능이 오색의 액체에 담긴 힘을 느꼈달까. 오디세우스의 장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번 전투에 참가하는 모든 1등급 이능력자들은 이 비약을 복용할 겁니다."

나는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전보다 보강된 인원에 능력을 증폭시키는 비약까지, 훨씬 나아진 상황이었지만 미노타우르스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능력자가 모이면 모일수록 힘을 발휘하듯 1등급 몬스터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거기에 더해 그 어마어마한 힘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했다.

여전히 망설임을 보이는 내게 메데이아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신중하시군요."

그러면서도 아직 실망한 기색이 아닌 것이 밑천을 다 털어놓은 것은 아닌 듯 하다.

"못 미더우시겠지만 초인단과 황룡에서 지원나올 이능력자들도 전처럼 급조된 1등급 이능력자가 아닌 제대로 된 1등급 이능력자로 보내줄 것을 약조 받은 상

탭니다."

"마스터 킴은 어떤 경우에도 한 마리 이상의 미노타우르스와 맞닥뜨리지 않을 거예요."

이번에는 정말 작정하고 왔는지 둘이 입을 모아 내게 말한다. 어느 정도라면 계약 당시의 미노타우르스 수를 문제 삼아 넘어가겠지만 이제 더 이상 거부했다가는 내쪽에서 계약 위반이 될 지경이다.

"자세한 계획은 있습니까?"

인원과 전력보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들었으니 세부 계획에 대해 물으니 그들이 반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 선물이라는 게 뭡니까."

설명을 마치고 돌아가는 메데이아를 붙잡아 물었다. 그녀가 내 질문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아'하는 탄성을 지르는 것이 딱 봐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모양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조금 곤란한데."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고 오디세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난 먼저 돌아가 보도록 하지. 마스터 킴, 다시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메데이아가 주는 선물을 받고 끝이 좋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내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갑작스레 환청 같은 것이 머리를 파고들었다.

'그녀가 주는 선물은 달콤한 꿀이 발라진 독약과도 같은 것, 부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시기를...'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막 자리를 벗어나려던 오디세우스가 고개를 돌려 내 눈을 힐끔 바라보고는 가던 길을 마저 간다.

'그녀는 사악한 흑마법사니, 너무 깊게 연관되는 것은 피하십시오.'

오디세우스가 멀어짐과 동시에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도 조금씩 작아지다가 끝에 가서는 아주 작은 한마디만 남았을 뿐이다.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것인가.

"... 그래서 관심이 있으시면 마스터 킴의 방으로 가서 얘기를 할까요?"

오디세우스의 섬뜩한 경고를 곱씹느라 미처 듣지 못한 메데이아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앗차싶어 황급히 그녀의 말을 받았다.

"여기서는 불가능합니까?"

마침 지현도 진태식을 비롯한 이들의 수련을 돕기 위해 자리를 비운 터라 비어 있는 방에 메데이아와 단 둘이 있을 수 없어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내 질문에 아찔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매력적인 미소였지만 아름답다기보다는 위험스러운 매력이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 버린다.

"저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마스터 킴을 위해서."

집요한 그녀의 요청에 결국 나는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그래서 그 선물이라는 게 왜 황룡과 초인단의 이능력자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까?"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에게 물으니, 그녀가 들은 척도 안하고 방을 가로질러 소파에 앉는다.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말을 하면서 다리를 꼬는 자세가 아찔하다. 이제 와서 보니 가슴이 잔뜩 파인 옷에 치마도 옆트임이 심해 노출이 어마어마한 복장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그 새하얀 허벅지를 이리 저리 꼬아가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끈적끈적거렸다.

"메데이아씨. 저는 말장난을 싫어합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녀가 소파에 파묻었던 몸을 내쪽으로 기울이며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 바람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이제는 거의 은밀한 곳까지 보일 듯하다.

"어머. 기분이 나쁘셨나보네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내 곤혹스러운 시선을 눈치 챘으면서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하기는커녕, 오히려 한쪽 어깨를 늘어트려 어깨에 고정되었던 끈이 흘러내리도록 하는 그

녀.

"본론만 말씀하시지요. 기분이 슬슬 나빠지려 하는군요."

그 매혹적인 자태에 눈을 돌리고 싶지만 오디세우스의 경고가 머리에 남아 차마 눈을 돌리지도 못하겠다. 그녀를 앞에 두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가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 탓이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요."

암사자와도 같은 미소를 지은 그녀가 여전한 자세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아손의 요청을 초인단과 황룡이 받아들였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일전의 통화서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이아손의 어이없는 요청을 다른 곳들은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아마 이아손을 통해 유게네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요. 정보가 아니더라도 2등급 이능력자라면 꽤나 먹음직스러운 먹이이기도 하고요."

그녀의 설명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나였지만 여전히 그것과 내가 받을 선물이라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다. 그 선물이라는 것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그녀가 가만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일단은 무슨 연관이 있는지나 들어보기로 마음 먹고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가사키 쥬리였나? 그 초인단의 능력자는 한술 더 떠 이아손에게 미인계라도 펼친 모양이에요."

풀장에 있던 김도연과 성시현을 바라보던 이아손의 음흉한 눈빛이 떠올라 다시 한번 눈살을 찌푸렸다.

"결과는 뭐, 말할 것도 없죠. 이아손의 방종함이야 평생을 가도 못 고치는 것인데요."

비록 반편이라지만 1등급 이능력자씩이나 되어서 이아손 한명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싶었는데, 그녀의 다음 말에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제 비약제조술. 이아손이라면 어느 정도 그에 대해 알까 생각했겠지만... 어떨까요. 제가 얼빠진 이아손에게 그런 중요한 것을 알려줬을까요?"

자신의 남편을 스스럼없이 비하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 부부, 지독스럽게도 비틀려있구나.

"정답은?"

마치 퀴즈라도 내듯 지껄여대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글쎄요."

말은 애매하지만 태도는 명백한 부정이다. 교활한 메데이아가 어리숙한 이아손에게 그런 내용을 알려줬을 리가 없었을 테니.

내 말에 그녀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어보였다. 역시다 의도한 모양인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리고, 남은 하나의 어깨끈이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듯 위태위태해보였다.

"이아손은 그들의 마음이 바뀔까 걱정이라도 했는지 오늘 아침에 내가 일부러 방치한 비약 몇 개를 들고 그들을 찾아갔답니다. 아마 나가사키 쥬리가 있는 초인단으로 갔겠죠."

한참만에 웃음을 멈춘 그녀가 스산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다시 문제, 이아손이 가져간 비약은 대체 무슨 비약일까요?"

============================ 작품 후기 어제는 컴퓨터에 배드섹터가 나는 바람에 용량 백업을 하느라 업뎃을 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출판한 책 2권내용 교정본을 보내느라 정신도 없었고요.

사죄의 의미로 이번편은 조금 더 길게 썼습니다. 그리고 이따가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부디 용서해주소서.

주인공이 일전에 얻은 6등급 유물의 정체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유물이 주인공에게 없기 때문이랍니다. 네타랄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서두 여튼 그렇습니다.

그리고 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조아라 연재 시작 후 가장 큰 수익을 올릴 것 같습니다. 늘 용돈 벌이 정도의 돈을 가져가다가 이번 달은 그래도 돈 비스무레한 것을 가져가게 됐네요.

그 하해와 같은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리겠습니다^^독자분들 제가 독자분들 사랑하는 거 아시죠? 비록 32짤 시커먼 중년이지만 마음만은 꽃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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