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34화 (134/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인원수에 맞춰 무작위로 병을 나눠준 그녀의 행동에 다들 호기심이 동한 표정이다.

"효과는 빨간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특효약이고, 파란 것은 기력과 정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특효약입니다. 녹색은 체내에 침투한 이질적인 기운을 몰아내는 데 쓰는 것이지요."

말을 듣고 나니 검맥의 인물들이 들고 있는 것은 빨갛거나 녹색을 띤 병들이고, 도맥의 인물들에게 준 것들은 파란 것들이다.

한번 본 것만으로 이들의 특질을 파악한 것인지, 그 지닌 이능에 걸맞는 분배라 내심 감탄이 흘러나왔다. 역시 존재감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녀도 엄연한 1등급 이능력자.

"그리고 마스터 킴과 소드엠프레스를 위한 것들은 조금 특별한 것이랍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띈 그녀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녀가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두 분의 사랑을 더욱 돈독하게 해줄 물건이니 두 분이 사이좋게 나눠 드시도록 하세요."

그녀의 말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현의 얼굴이 단숨에 붉어졌다. 굳이 더 듣지 않아도 그녀가 준 오색의 플라스크가 정력제 내지는 그 비슷한 뭔가 임을 알 수 있었다.

"고맙게 받지요."

얼굴을 붉힌 지현과는 다르게 나는 뻔뻔스럽다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당장이야 쓸 일이 없겠지만 나중 일은 모르니까.

"그보다 이아손씨. 거기 그렇게 불편하게 서 계시지 마시고 자리에 앉아주시지요. 보는 제가 목이 다 아프군요."

아직까지도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이아손에게 그렇게 말하니 그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남의 부부 사에 끼어들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신경 쓰느라 정작 물을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쪽에서도 사양이다.

"일단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으니, 일 이야기가 하고 싶군요."

이들이 호텔을 통째로 비워낼 정도로 우리를 극진히 대우하는 것은 다 쓸모가 있기 때문,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미리 알아볼 겸 이아손에게 물었다.

"미노타우르스에 대한 정보와 전투에 동원될 인원에 대한 사항을 듣고 싶습니다."

내 질문에 이아손이 잠시 표정을 가다듬다가 대꾸를 했다.

"미노타우르스는 6m정도 되는 크기에 말 그대로 소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괴수입니다. 머리에 돋아난 두 개의 뿔은 3등급 이능력자의 방어막을 그대로 중화시키는 것으로 증명되었고, 가죽도 두꺼워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상처도 입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아손이 말하는 어지간한 공격이라니 대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혔다.

"어지간한 공격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김도연이 이아손에게 물었다. 그녀가 이아손에게 질문을 던지자 메데이아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1등급 이능력자가 작정하고 한 공격에 그저 겉가죽이 베이는 정도?"

이아손이 김도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곁에서 메데이아는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기분이 나쁜 표정을 숨기지를 않는다.

설마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싶지만, 지금 보이는 표독스러운 눈빛만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스에 처음 와서 만난 이능력자들이 의부증 부부라니. 여기도 상황을 알만하구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1등급 이능력자의 공격에도 겉가죽이 베이는 정도의 상처만 입었다는 미노타우르스의 맷집에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렌델도 가죽이 튼튼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1등급 이능력자라. 그럼 여기 메데이아씨를 빼고는 몇 명의 1등급 이능력자가 그리스에 존재하죠?"

김도연이 똑바로 메데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도 메데이아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언짢은 기색이다. 자리가 자리니만

큼 그저 도전적인 눈빛으로 참고 있지, 만약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개차반인 성격으로 참고 있을 리가 없다.

그 선명한 도전적 눈빛에 메데이아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아름다운 미녀가 짓는 미소라면 응당 아름다워야 하나, 그녀의 미소는 어딘지 음험해 보이는 게 아름답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원래라면 보안이 유지돼야 하는 사안이겠지만, 유게네스는 정보 통제에 까다로운 단체도 아니니 말씀드리지요. 유게네스에 존재하는 1등급 이능력자의 수는 도합 8명입니다."

8명이라니. 그 엄청난 숫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천명이 겨우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이능력자 수에 비하면 엄청난 비율이다.

"아니 그 정도 수의 1등급 이능력자가 있다면 대체 왜 지원을 신청한 거죠?"

1등급 이능력자의 수에 조금은 질린 모양인지 김도연이 드물게 주눅이 든 얼굴로 반문했다. 나 역시 같은 의문이 들어 메데이아를 주시했다.

"여덟 명의 1등급 이능력자중 전투에 능한 이능력자는 다섯명에 불과하니까요. 그 중 둘이 미노타우르스 퇴치를 위해 나섰다가 한명이 사망했습니다."

가벼운 말투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무겁기만 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두명의 1등급 이능력자들이 미노타우르스에게 패퇴 당했다는 이야기다.

"참전한 인물들은 테세우스와 아킬레우스. 이중 테세우스는 사망했고, 아킬레우스는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돌아왔답니다."

역시나 그리스 신화를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화 속에서는 미노타우르스를 퇴치했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의 손에 살해당했다니, 과연 신화와 현실은 다르구나 싶었다.

"그러면 남아있는 1등급 이능력자라고 해봐야 헤라클레스와, 메두사, 페르세우스 정돈데 그중에서도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의 궁합은 최악이라서 절대로 같이 싸우려고 들지 않을 걸요. 그럼 결국 남은 인원은 둘이죠."

그들의 입장에서는 테세우스와 아킬레우스가 한 번 패퇴당한 마당에 다시 같은 수의 전력을 보내기가 뭐했을 만도 하다. 그런 식으로 모험을 하기에는 1등급 이능력자의 가치가 너무도 크다.

"직접 전투계열이 아니라도, 다른 이능력자들도 도움이 될 텐데요?"

설령 비전투계의 1등급 이능력자라고 해도 2등급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힘의 차이가 있을 터, 그런 그들이 전부 나선다면 일을 해결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도 굳이 막대한 재정적 낭비를 해가며 타국의 이능력자를 부른 이유가 뭘까.

"도움이야 되겠죠. 미노타우르스가 한 마리라면 말이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대답에 나는 침음성을 삼켜야만 했다. 미노타우르스가 두 마리라니, 그럼 1등급 몬스터가 두 마리씩이나 된다는 말인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요."

냉정히 생각해보면 현지에 와서야 이런 정보를 받았다는 건 엄연한 기만행위다. 내가 1등급 몬스터들을 살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1등급 몬스터와의 실전경험을 쌓으면서도 생존가능성이 높은 몬스터였으니까.

조금은 만만하게 보았던 미노타우르스가 두 마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가 유게네스를 통해 받은 정보에는 미노타우르스는 한 마리였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명하실 겁니까?"

화가 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니 이아손이 다소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메데이아를 노려보다가 나를 달랜다.

"진정하시지요. 마스터 킴을 속인 게 아니라 여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그리스측의 사정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저를 속였다는 게 기분이 굉장히 나쁘군요. 해명 여하에 따라서는 이대로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그리스는 내게 약조했던 보상을 그대로 해줘야 할 것이다. 어차피 먼저 거짓으로 계약을 맺은 것은 그리스 쪽이니.

대답 여하에 따라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킬 생각인 내 내심을 알아챘는지 이아손이 다급하게 나를 설득했다.

"마스터 킴. 진정하세요. 절대로 속인 건 아닙니다."

"속여 놓고 속이지 않았다니 그럼 제가 착각하는 거라는 겁니까?"

말도 되지 않는 그의 변명에 내가 조금씩 기세를 올렸다. 나를 따라 서서히 기세를 돋우는 검맥과 도맥의 인물들, 그중에서 지현의 기세는 압도적이다. 역시 예상대로 일전의 힘을 거진 다 찾은 듯 하다.

"진정하세요! 제가 다 설명 드리겠습니다."

정면으로 우리의 기세에 노출된 이아손이 창백하게 질려서 손을 마구 휘저었다. 메데이아도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역시 1등급 이능력자답게 이 정도 기세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설명 해봐요. 제가 속지 않았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고급스러운 식당의 내부가 휘몰아치는 기세에 휘청거린다.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던 샹들리에가 불안하게 덜그럭 거리고 온 사방의 식기가 덜컥거리며 시끄럽게 진동을 한다.

메데이아라면 우리의 기세로부터 이아손을 보호해줄 법도 한데 그녀는 그저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와 이아손을 지켜볼 뿐이다.

"저희는 마스터 킴에게만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닙니다!"

그 다급한 외침에 모두가 덜그럭 거리는 사방의 소음이 일순간 멈췄다.

"일본의 '초인단'과 중국의 '황룡' 미국의 '히어로즈'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라에 요청을 했어요!"

잠시지만 그의 설명에 나는 기세를 뿜어내는 것을 멈추고는 턱을 치켜 올려 그의 설명을 재촉했다. 어쩌면 꽤나 거만해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감히 그것을 지적할만한 인물은 없다.

"가장 먼저 마스터 킴이 요청을 받아들였을 뿐 다른 분들도 곧 도착할 겁니다."

잠시지간 기세에 노출되었던 그가 뒤늦게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그래서요?"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설명을 재촉했다.

"현재 일본의 '초인단'과 중국의 '황룡'은 요청을 수락했고, 실제 일본에서 오신 1등급 이능력자는 멀지 않은 곳에 묵고 계십니다."

일본과 중국이라면 본토에 나타난 1등급 몬스터의 강대함이 대한민국의 '천개의 눈동자' 못지 않은 곳들이다. 일본의 '야마타노 오로치'와 중국의 태양을 삼켜버렸다는 정체 불명의 몬스터.

어쩌면 그들도 나와 같은 이유로 그리스의 요청을 수락했는지 모른다.

"회복중인 아킬레우스님과 헤라클레스님, 그리고 메두사님을 포함하면 총 일곱명의 1등급 이능력자가 이번 미노타우르스 퇴치에 포함 됩니다."

나와 지현, 아킬레우스, 헤라클레스, 메두사, 일본과 중국의 이능력자 두명. 총 해서 일곱명이 이번 퇴치 작전에 동원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에 3.5명이 달라붙는 꼴이니 테세우스 꼴은 나지 않을 테지만, 역시 애매한 숫자다.

"조금 부족하지 않습니까?"

두명이 달려들어서 하나가 죽었다. 한명 역시 죽지 않고 살아온 게 용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는데, 이 정도 숫자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킬레우스님의 말에 의하면 자신들이 패한 것은 일대일 단독으로 한 마리씩 상대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주둥이만 산 아킬레우스라면 죽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능력인 자, 그 말을 어떻게 믿고?"

이아손의 말에 메데이아가 딴지를 걸었다. 같은 유게네스 소속이며 그 이전에 부부이기도 한 이들이기도 하지만 지독스러울 정도로 손발이 맞지들 않는다.

"그렇다는군요."

기세는 거둬들였지만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내가 메데이아의 말에 맞장구를 치니 이아손이 울상을 해보였다.

인원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납득하긴 했지만, 이들의 행동은 엄연하게 따져보면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내 개인의 감정을 떠나서 어느 정도 강경하게 나갈 필요가 있어 나는 다시 한 번 그 점을 짚어주었다.

"인원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정보를 날조한 것은 그리스 측의 명백한 실수. 이 점에 대한 명백한 해명이 없다면 저는 이대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인원이 충분히 모였다고는 하지만 현지에 와서 급조한 정보로 1등급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컸다. 이들의 대처에 따라서 내가 이대로 돌아갈지 아니면 남아서 새로운 계약을 맺고 임무를 수행할지가 달려 있다.

"Korea's master is coward. Don't you agree Mr. Iason?"

(한국의 마스터는 겁쟁이군요. 이아손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갑작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든 낯 설은 음성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영국에서 얻어온 통역의 반지를 통해 알아들은 내용은 충분히 도전적이었다.

저 멀리서 몇 명의 인원을 이끌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인물이 보였다. 동양인 다섯에 그리스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한명. 그 중에서 그리스의 인물로 보이는 이는 안절부절 못 하는 표정으로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대화에 끼어든 건 그 중에서 그쪽 일행의 선두에서 도발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었다.

============================ 작품 후기 선작 8천화 기념 연참분 투척! 감사하게도 독자님들 중 한분이 달아주신 서평을 보고 이 글이 그래도 마냥 읽고 버리는 글은 아니구나 하고 뿌듯했습니다. 비록 그 내용이 주인공의 수동적인 태도에 대한 비평이 태반이었지만 애정과 성의가 담뿍 담긴 글이라 너무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마음 아픈 건 서평을 달아주신 독자님께서 예전에는 1편 업뎃 될때마다 챙겨보던 글인데 요즘은 5화가 올라와야 보는 글이 되어버렸다고 하셨던 점이죠.

앞으로 더욱 꿀재미로 다시 매편 업데이트마다 보고 싶어 안달나는 그런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평을 달아주신 독자님도, 코멘트를 달아주신 독자님도, 추천도, 쿠폰도, 또 말 없이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도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메데이아가 악녀라고 한 것은 입장차를 떠나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친동생도 살해할 수 있는 그 잔혹성 때문입니다. 메데이아 본인의 운명만 보자면 신의 농간에 의해 난봉꾼 이아손을 사랑하게 된 점부터가 불행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만, 천성 자체도 잔인하고 악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친동생을 토막내 바다에 사체를 뿌리고, 이후의 악행들이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아손도 나쁜 놈이고 메데이아도 나쁜 뇬입니다. 주관적인 제 의견이지만요^^;;;*도살자의 스토리 구상이 대충 끝났습니다! 이제 도살자도 업데이트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의견이지만요^^;;;*도살자의 스토리 구상이 대충 끝났습니다! 이제 도살자도 업데이트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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