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33화 (133/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네! 저는 이능력자 이전에 원래는 요리사가 꿈이었답니다!"

그 쾌활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탈하다. 지현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담담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실례가 되는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 물읍시다."

공항에 우리를 마중 나오고, 거기에 안내를 맡았던 이아손이 이제는 요리까지 직접 준비를 했다. 분명 귀빈인 우리를 마중 나온 이라면 마냥 말단은 아닐 텐데 하는 행동을 보면 꼭 친절한 종업원과도 같아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아손씨는 몇등급의 이능력자신지?"

내 질문에 대답한 건 이아손이 아닌 낯선 음성이었다.

"그는 유게네스의 2등급 이능력자입니다."

음성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도에서 봤을법한 조금은 풍만한 몸을 지닌 미인이었는데 역시 곱슬거리는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안녕하세요. 유게네스의 메데이아에요."

당당하게 그녀가 우리에게 인사를 해온다.

"그녀는 유게네스의 1등급 이능력자입니다."

1등급 이능력자라는 메데이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눈을 크게 떴다. 한나라의 국보와도 같은 존재인 1등급 이능력자가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다니 조금은 놀라운 상황이다.

"그리고 저기 있는 이아손의 아내이기도 하답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아손을 바라보니 그가 어색한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짓고 있다. 자신의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표정이라 의아해 하는데, 전날 저녁에 진태식에게 들었던 신화가 떠올랐다.

'이아손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으로 많이 묘사되지만 사실 그가 주도적으로 처리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녀의 아내였던 메데이아가 강대한 마법사였던 덕에 그녀의 힘에 많이 기댔던 편이죠.'

이제는 그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동명이인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아서와 베오울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그들이라고 존재치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마침내 테이블의 지척까지 다가온 그녀가 이아손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대한민국에서 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유게네스의 1등급 이능력자인 메데이아라고 합니다."

그 당당한 인사에 슬쩍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하며 마주 인사를 받아주었다.

"검맥에서 나온 김형준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인 전지현입니다."

아무래도 상대도 당당한 1등급 이능력자라 마냥 편하게 대할 수 없어 어느 정도는 예의를 차려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식사를 하시는데 제가 너무 갑작스레 등장했나요?"

화사하게 미소를 띤 그녀와 상대적으로 주눅이 든 이아손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진태식의 설명에 의하면 이아손은 아내와 그 끝이 좋지 않았다고 했는데 만약 이들이 신화 속의 그들이라면 지금의 표정도 이해가 갈 만했다.

이아손이 조강지처인 메데이아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려다가 험한 꼴을 봤었다지?

"아. 그럴리가요. 아직 식전이면 같이 식사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아손의 간절한 시선을 모른 척하고 메데이아에게 질문하니, 그녀가 장미처럼 화사하지만 가시가 잔뜩 돋아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머, 실례가 안 된다면 그럼 저도 합석할까요?"

그녀의 모든 행동은 자연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갑작스레 등장한 것도, 또 자리에 합석하는 것도 그녀의 당당한 태도가 마치 처음부터 그러기로 했던 것처

럼 보일 지경이다.

언뜻 보면 우리와 처음부터 약속을 한 것처럼 보인달까.

"이렇게 요리에 능한 남편을 두셔서 행복하시겠습니다."

마침 자리에 돌아온 진태식이 우리의 앞에 음식 접시를 내려준다. 자리에 편히 앉아 남이 가져다주는 음식만 먹자니 마음이 영 편치를 않았지만, 공식적인 자리니만큼 내 행동 하나하나에 검맥의 위신이 오르고 내린다.

"이아손. 나도 좀 가져다줘요."

안 그래도 빈접시를 덩그러니 앞에 두고 자리에 앉은 메데이아 앞에서 식사를 시작하기가 뭐했던 차였는데 그녀가 눈치 좋게 음식을 부탁한다. 이아손은 그녀의 말에 부리나케 접시를 들고 이곳 저곳을 누비며 음식을 쓸어 담고 있다.

그 모습이 아내를 챙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두려워하는 모습이라 보기에 불편했다. 하지만 정작 메데이아는 그런 그의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니 3자인 내가 지적하기도 뭐해 입을 다물었다.

"태식. 이분은 이아손씨의 아내이자 '유게네스'의 1등급 이능력자인 메데이아

씨다."

내가 그리 말하자 다들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보였다.

나와 지현을 대할 때와는 달리 경의보다는 형식적인 인사라 조금 의아했지만, 이내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지현과 허준영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존재감은 이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의도치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고 할까. 또한 그들의 몸에 짙게 밴 선기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 이상의 존재를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메데이아를 비롯한 타국의 이능력자들은 그저 강한 기세 내지는 특이함만이 인상적일 뿐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처럼 신비로운 맛이 없었다. 일전에 아서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하니 지현이 말하기를 그들을 태어날 때부터 사자로 태어난 존재, 그저 지닌 위엄만이 전부라고 하더라. 그와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 중 1등급에 오른 인물들은 각고의 수련 끝에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연 인물들이니, 단순한 강자라기보다는 일대종사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메데이아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이긴 하지만 이제껏 보아왔던 인물들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지라 진태식을 비롯한 검맥과 도맥의 인물들도 그저 고개만 숙여 보인 모양이다. 게다가 지현과 허준영이 지닌 현기 탓에 존경을 절로 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사이하다고 좋을 기운이었다.

이들도 본능적으로 그걸 느끼고 그녀를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메데이아는 자신이 1등급 이능력자라는 것을 듣고도 별로 개의치 않고 식사에 열중하는 인물들을 보고 흥미가 돋는 표정이다.

"과연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대한민국의 분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군요."

질책인지 칭찬일지 애매한 그녀의 말에도 사람들이 그저 식사에만 열중한다. 어차피 1등급 이능력자인 그녀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나나 지현 정도는 돼야 무리가 없으리라. 그녀가 도움을 주러 온 이들에게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능력에 걸 맞는 고고함이나 자존심이 있을 테니.

"별말씀을."

간단하게 지현이 대꾸를 하고는 해산물을 먹기 좋게 썰어 내 접시 위로 올려놓았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지라 그녀가 챙겨주는 것이 조금 민망했지만 내색치 않고 그녀가 주는 음식을 넙죽 넙죽 받아먹었다.

"피바라기와 검후의 금슬이 좋다고 하더니 정말이군요."

어디서 무슨 소식을 들었는지 그녀가 자꾸 물어오는 통에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이 있다고 이 아줌마야.

"뭐, 나름 신혼에 가깝고 하니까요."

건성건성 그녀의 말에 대꾸를 해주며 입을 오물거리는데 문득 한가지 의아함이 스쳐갔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가 너무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잊고 있었지만 메데이아 역시 한국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혹시 유게네스에는 한국어 특화 수업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아손씨도 그렇고 메데이아씨도 그렇고 한국말에 능하시군요."

내 우습지도 않은 농담에 그녀가 깔깔 거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목젖까지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 재끼는 그녀의 모습에 멀리 있던 이아손이 잠시 이쪽을 쳐다보다가 이내 음식을 담는데 열중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아손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준 사람이 저랍니다."

한참만에 웃음을 멈춘 그녀가 그렇게 대답한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언어도 아닌 마당에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부부라니, 조금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군요. 대한민국의 한사람으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니, 조금 뿌듯한데요?"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지현이 전해주는 음식을 덥썩 물었다. 어쩌면 이런 내 모습이 그녀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지만, 아내가 지아비를 챙기는 데는 자리가 따로 없다는 지현의 평소 주장을 거스를 수도 없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꽤나 완고한 그녀라 타협의 여지가 없다.

"아. 사정을 들으시면 그렇게 뿌듯하시지만은 않으실 텐데요? 들려드릴까요?"

그녀의 말이 꼭 물어봐달라는 것처럼 들려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었다.

"네. 궁금하군요. 이 먼 그리스에서 한국어를 배워야만 했던 이유가."

마침 자리로 돌아온 이아손이 음식이 정갈하게 담긴 접시를 메데이아의 앞에 내려놓고 있다. 막 자리를 벗어나려는 그의 손을 붙잡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이가 자꾸만 제 품에서 도망가려고 해서, 저는 전세계의 언어를 배워야만 했답니다."

뜬금없는 말에 접시를 오고 가던 포크와 나이프질 소리가 뚝 그쳤다. 이아손이 진땀을 흘리며 입을 열려 했지만 메데이아의 시선에 이내 입을 다문다.

"프랑스, 미국, 터키, 독일. 이 사람 찾으러 다니느라 안 가본 나라가 없답니다. 방랑벽인지 뭔지 자꾸만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이이를 찾느라 제 청춘 다 받쳤을 정도라니까요."

1등급 이능력자인 그녀가 말하는 청춘이라는 시간이 대체 얼마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오랫동안 화자되던 그리스 신화 속의 주인공이 아닌가.

"메데이아!"

이아손이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만류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입을 놀렸다.

"차라리 말을 가르쳐주면 그 나라로 가지 않을까 해서 몇 개국 나라를 배워서 가르쳐주었지요. 이이가 머리가 좋은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거든요. 그렇게 몇

개인가 말을 가르쳐주고 나니 찾기가 수월해지더라고요."

자신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그녀나, 곁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이아손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 못할 부부의 행동에 식사자리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식사하면서 듣기에는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군요."

이제껏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던 진태식이 입을 열었다. 표정에 엄한 기운이 서린 것이 식사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메데이아가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나와 지현에 비해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진태식의 항의에 메데이아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어째 외국을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능력자 중에 정상인은 없는 건가.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과는 다르게 어딘가 한군데씩 비틀리고 망가진 모습이 도드라지는 그들의 한결같은 모습에 차라리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제가 초면에 실례를 했군요.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선선히 사과를 해오는 모습조차 이제는 좋아 보이질 않았다. 그런 것은 특히 지현이 심했는데 지아비를 하늘처럼 섬기는 그녀의 입장에서 메데이아의 행동은 영 못마땅하고도 남을 행동이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창백하게 질려있는 이아손마저도 사과를 해오고, 진태식이 나를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여주니 진태식 역시 마주 사과를 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저도 사과드립니다."

2등급 이능력자인 그였지만 당당함으로는 1등급 못지않았다. 그 올곧은 성품이나 우직함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과연 지현이 눈여겨보는 인재 다운 그의 행동에 나는 속으로 감탄을 했다.

"제가 여러분들께 결례를 범했으니 사과의 뜻으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하늘하늘한 원피스의 어디에서 꺼내는지 모르게 무언가를 주섬주섬 품에서 꺼내들었다.

하나같이 기괴한 빛깔을 띤 액체들이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이아손의 얼굴에 탐욕의 빛이 어렸다. 그 빛은 이내 사라졌지만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나는 명확하게 그 탐욕을 볼 수 있었다.

인원수에 맞춰 무작위로 병을 나눠준 그녀의 행동에 다들 호기심이 동한 표정이다.

"효과는 빨간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특효약이고, 파란 것은 기력과 정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특효약입니다. 녹색은 체내에 침투한 이질적인 기운을 몰아내는 데 쓰는 것이지요."

말을 듣고 나니 검맥의 인물들이 들고 있는 것은 빨갛거나 녹색을 띤 병들이고, 도맥의 인물들에게 준 것들은 파란 것들이다.

한번 본 것만으로 이들의 특질을 파악한 것인지, 그 지닌 이능에 걸맞는 분배라 내심 감탄이 흘러나왔다. 역시 존재감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녀도 엄연한 1등급 이능력자.

"그리고 마스터 킴과 소드엠프레스를 위한 것들은 조금 특별한 것이랍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띈 그녀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녀가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 작품 후기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일화는 유명하죠.

이아손이 조강지처인 메데이아를 버리고 글라우케와 결혼하려고 하자,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장인과 신부 그리고 자신과 이아손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을 싸그리 죽였다죠.

아르고호 원정대의 날고 기는 영웅들조차도 그녀에게 맞춰주었다니 그 성격이 짐작이 갑니다.

여러 번역이 있지만 황금양털을 흠쳐 달아나는 와중에 메데이아가 자신의 친동생을 죽여 사지를 토막대서 바다에 뿌리고 추격대가 그 시체를 수습하는 동안 달아났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최대의 악녀는 헤라가 아니라 메데이아가 아닐까 합니다.

*늘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제가 공처가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서 변을 하자면, 마눌님이 얼마낮 저를 아껴주시는데요 ㅋㅋ 정말이랑게! 우린 서로 사랑한당게!

*메모라이즈 작가님 로유미설이 자꾸 퍼져가는 군요. 소문의 발원지 입장에서 *메모라이즈 작가님 로유미설이 자꾸 퍼져가는 군요. 소문의 발원지 입장에서 굉장히 뿌듯합니다.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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