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32화 (132/223)

< --  2-5. 미궁과 미노타우르스  -- >

한참을 여기 저기 설치고 다니며 실내장식을 구경하던 나는 그것도 이내 질려버리자 창 밖에 보이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나라의 바다와는 근본적으로 틀린 빛깔의 바다가 저 멀리 보이고 마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 창너머로 늘어서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이내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이 아름다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원흉 '미노타우르스'와의 전투. 그것이 내가 그리스에 온 이유다.

창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질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니 저편에서 손에 들고 있던 보퉁이를 풀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바닥에 무릎을 꿇듯이 앉아 조심스럽게 보퉁이의 천을 풀러내고, 모습을 드러낸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장군검 두자루를 정성어린 손길로 슥슥 닦아낸다. 그 동작이 어찌나 신중하던지 차라리 성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가만히 그녀가 두자루의 장군검을 손질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나는 물었다.

"어느 쪽이 엑스칼리버에요?"

일전에 서양검이었던 엑스칼리버가 그녀의 손에 쥐어지자 그녀의 애검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던 적이 있다. 이제 와서 보니 원래 그녀가 사용하던 검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인지라 어느 쪽이 엑스칼리번지 당최 구분이 가질 않았다.

내 말에 지현이 검 한 자루를 들어 보였다.

"이쪽이 엑스칼리버지요."

사소한 질문에도 흡족한 모습을 보이는 게 여전히 엑스칼리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사치 하나 부릴 줄 모르는 그녀지만 검에 대한 애착만큼은 놀라울 정도라 지금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두자루씩 가지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겠어요?"

길이가 만만치 않은 검이라 일단 휴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여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그대로 양손에 검을 잡아 올리더니 등 뒤로 엇갈리게 숨겼다.

"쌍검을 사용하는 검사들은 종종 이렇게 패용하고 다닌답니다."

그 모습이 꼭 장난감을 뽐내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본인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드물게 얼굴에 드러난 생기 탓에 수백년을 살아온 그녀를 천진난만하게 보이게 만든다.

그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아직까지 양손의 검을 내릴 생각도 못 하고 있는 그녀의 입술에 그대로 입을 맞췄다.

"읍!"

뜬금없는 키스에 그녀가 더욱 눈을 크게 뜨다가는 이내 스르르 감았다. 어쩌면 이렇게 하는 행동이 하나 하나 사랑스러운 건지.

내가 입을 떼고도 한참이나 입을 오므린 채 슬쩍 내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장난기가 돌아 그 입술을 손가락으로 꼬집듯이 당겨보았다.

"아야."

평소의 차분한 그녀답지 않게 화들짝 놀라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뜬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상황을 눈치 챈 것인지 조금은 토라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장난치시면 싫습니다."

살짝 눈을 내리깔고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너무 예뻐서 그래요."

숨김없는 내 심정을 밝혔더니 그녀의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이번에도 내가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토라진 얼굴 그대로 검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꾸 그렇게 놀리시니..."

"정말이라니까요. 너무 예뻐요."

현모양처에 아름답기까지 하다. 매일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그 매력이 나를 즐겁게 한다.

어떨 때는 엄한 스승과 같은 모습이고, 어떨 때는 또 어머니와도 같은 자애로운 모습이다. 그렇게 성숙한 모습만 있는가 하면 또 천진하고 소녀 같은 모습도 있는 그녀다.

지금의 그녀는 마치 열일곱 소녀와도 같은 수줍음으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수백년을 군림해온 검후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겠는가.

"놀리는 거 아니고, 정말로 예뻐요."

다시 한 번 속삭이듯 말하니, 그녀가 이제는 붉은 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한다. 그 모습이 꼭 어딘가 숨을 곳을 찾는 강아지와도 같은 모습이라 나는 그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놀리신 거였군요."

내가 너무 크게 웃었는지 그녀가 샐쭉하게 나를 질책했다. 그 모습에 나는 한참을 더 웃다가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아?"

깜짝 놀란 그녀가 귀여운 신음 소리를 내며 내 품에 안겨왔다. 일명 공주안기라고 불리는 자세로 그녀를 안아 창가에 놓인 소파로 향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그녀가 한참이 지나서야 얼굴을 들었다.

을 들었다.

"여긴 왜?"

그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좋아 나는 다시 그녀를 놀렸다.

"왜요? 소파라서 실망이에요? 침대로 갈까요?"

그 노골적인 말에 더 이상 붉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울상을 지은 그녀의 코를 살짝 비틀어주었다.

"저쪽 봐요."

코끝을 당겨 그녀의 얼굴을 창 쪽으로 돌리니 그녀가 작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아름답습니다."

마침 내려앉는 노을에 창 너머의 바다가 잔뜩 주황빛으로 물들어있고 세상의 모든 풍경이 따스하게 보인다.

"우리 나중에 괴수 처리 되면 이런 곳에서 살까요?"

먼 훗날 모든 일이 안정되면 이런 곳에서 그녀와 함께 사는 것은 어떨까 하고 늘 생각해왔다. 어차피 돈이야 평생 가도 다 못 쓸 정도로 썩어나는 나다. 그저 한적한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서 그녀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랑 나랑 연아랑 현지랑 이렇게 넷이서 우리만 보고 살아볼까요."

먼 훗날의 일이 되겠지만 내 말이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겠다.

"아버님 어머님도 모셔야지요."

그녀의 말에 나는 뒤늦게 부모님을 떠올리고는 뜨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래서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우리 연아도 크면 나처럼 불효막심한 놈이 될까.

"그리고 민아도."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따뜻하게 데워졌던 가슴이 차갑게 식어내렸다.

내 표정이 돌변하자 그녀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거두기로 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복잡하다. 남편에게 다른 애인을 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품이 넓다기보다는 이해 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나는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거두기는 누굴 거둬요."

조금 기분이 상해 그녀에게 투덜거리고 나니 조금은 실수 한 기분이라 다시 부연 설명을 했다.

"그냥 배신감이고 뭐고 상관 않기로 했을 뿐이에요. 민아도 어쩔 수 없던 부분이 있었고, 들어보니 빼돌린 정보도 전부 유니온의 역정보에 가까운 것들 뿐이더라고요."

멍청한 민아는 첩자질도 제대로 못하고 유니온과 황룡에 끼어서 혼자 동분서주했을 뿐이다.

"용서라기보다는 실질적인 피해를 받은 것이 없으니 그냥 이제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고 할까요. 사람들을 속인 건 괘씸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죠."

설령 내가 그녀를 용서했다고 해도 그녀를 포용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지현의 표정을 보니, 뭔가 복잡한 감정이 잔뜩 떠올라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민아를 거두지 않겠다는 말에 조금 안도하는 표를 내는 것을 보니 나도 마음이 복잡하다.

시작부터 내 잘못으로 관계가 어그러졌던 우리다. 이제 와서 그녀에게 상처 주는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저는 당신 뿐이에요."

내 말에도 그녀는 다시 한 번 민아를 언급하려는 듯 입을 오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내 뱉지 못했는데 내가 입술로 그녀의 입을 막은 탓이다.

꽤나 입속이 분주해지는 키스에 그녀가 뒤늦게 호응을 해온다. 조금씩 거칠어지는 그녀의 숨결을 느끼고는 입을 다시 떼니 몽롱한 눈으로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이 얘기는 더 하기 있기. 없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니 그녀가 그 몽롱한 표정으로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를 두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민아의 감정은 그녀 홀로 결말을 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자는 어쩔 수 없는지,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다. 이제 와서 동생들에게도 배척받는 그녀가 갈 곳이 대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민아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의 내심을 눈치 챘는지 지현이 손을 올려 내 목뒤를 안아온다. 그 눈빛이 도리어 나를 위로하는 기색이라 나는 더욱 그녀에게 미안해져버렸다.

"내가 어떻게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해요.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텐데."

그녀는 또다시 내가 과거의 일로 자책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책 하는 거 아니랍니다. 그냥 저는 당신만 있으면 된다고요."

그녀의 입이 열리기 전에 재빨리 말하니 그녀가 막 열어가던 입을 도로 닫았다.

"그냥 지금은 경치나 즐기자고요."

내 품에 안겨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목가를 감은 손으로 목 뒤를 쓰다듬어준다. 그 사소한 동작 하나에 다시금 마음이 따뜻해진 나는 노을의 주황빛이 온통 어두워질 때까지 한참이나 그녀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기지 않았으면 그 뒤로도 한참은 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어두워진 창밖에 볼 게 무어가 있겠냐마는 서로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좋아 그렇게 있었을 뿐이다.

"누구쇼!"

모처럼 좋은 분위기를 망친 누군가가 못내 못마땅해 조금은 사납게 말하니 지

현이 내 품에서 작게 키득거렸다. 내가 또 어린애 같아 보였나보다.

내 품에서 일어난 그녀가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문가로 향했다. 따뜻한 그녀의 체온이 사라지자 괜스레 허전해진 나도 덩달아 그녀를 따라 일어나 문가로 가는데, 빼꼼 열린 문 사이로 김도연의 얼굴이 보였다.

"밥 안 드세요?"

그 눈치 없는 말에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지현이 그런 나를 보고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저녁시간이 다 되었구나. 어디로 가면 되는가?"

영문도 모르고 내 사나운 눈초리를 받고 있던 김도연이 지현의 말에 반색을 띠며 말했다.

"안 그래도 검후께서 시장하실 것 같아서. 헤헤. 제가 어딘지 알아놨으니 안내할 게요."

나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의 김도연이다. 조금은 간사한 웃음을 지으

며 앞장을 서는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검맥과 도맥의 인물들의 인사를 받으며 식당의 내부로 들어섰다.

널따란 실내에 있는 것이라곤 달랑 우리 테이블 하나라 묘하게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온 사방에 가득 들어찬 음식들 탓에 그런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정갈하게 올려진 음식들은 세계각국의 요리를 총 망라해, 육해공의 진미들이 잔뜩이었다. 거기에 더해 놀랍게도 한국음식들오 제법 있었던지라 그 철저한 준비에 조금이지만 감탄해버렸다.

"오셨습니까들."

테이블에 막 자리를 잡은 우리에게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얼굴 가득 유쾌한 웃음을 지은 이아손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복장이 마치 주방

장이라도 되는 듯한 모양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생각나는 데로 전부 차려봤습니다."

그게 단지 복장만은 아니었는지 조금은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로 사방에 놓인 음식들을 가리킨다. 유게네스의 일원인 이아손의 기행에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큭.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

"일단 식기 전에 어서들 드세요! 어서!"

마음씨 좋은 식당 아줌마와도 같은 그 호들갑에 우리는 고급스러운 실내에 맞지 않는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또 싫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닌지라 다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몇등급일지 모르겠지만 이능력자치고는 참으로 담백한 인물일세.

다른 이들이 접시를 들고 일어나고 나와 지현만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어차피 음식이야 다른 이들이 가져다 줄테고 우리는 그 사이에 이아손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직접 요리도 하오?"

공식적인 내 위치는 검맥의 마스터였기 때문에 말을 함에 있어서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던지라 내 말투가 조금은 어색하다.

"네! 저는 이능력자 이전에 원래는 요리사가 꿈이었답니다!"

그 쾌활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탈하다. 지현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담담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실례가 되는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 물읍시다."

공항에 우리를 마중 나오고, 거기에 안내를 맡았던 이아손이 이제는 요리까지 직접 준비를 했다. 분명 귀빈인 우리를 마중 나온 이라면 마냥 말단은 아닐 텐데 하는 행동을 보면 꼭 친절한 종업원과도 같아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아손씨는 몇등급의 이능력자신지?"

============================ 작품 후기 일단 독자님들의 의견을 따라 전편의 내용은 그대로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 글이 보고 나서 오래 기억에 남는 그런 글은 아니니, 그렇다고 또 전편 내용을 다시 확인하기도 귀찮으실 거라 생각되어 앞으로도 쭉 붙여넣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용량은 전편 내용 상관없이 10.1키바 이상을 최저용량으로 삼겠으니 심려치 마세요^^*그리고 아직 하렘루트인지 비하렘루트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조금 더 지켜봐주세요.

*유니온과 정부와의 거래는 아직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리스편이 끝나면 그제야 나오지 싶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 덕에 부족한 글이 요즘 투베 상위권을 알짱알짱 거리는 게 여간 신바람 나는 게 아니네요.

포풍과 같은 선추코쿠로 저를 미쳐날뛰게 만들어주세요^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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