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23화 (12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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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모!"

나도 모르게 내 말투에 날이 서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용모가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내게도 느껴질 정도로 지금의 내 상태는 최악이다.

정부의 대변인이 나와서 떠들어대는 꼴을 보고 분개한 나는 당장에라도 대한민국을 들어 엎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용모의 만류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용모는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괴수와의 전투가 전부 담긴 동영상을 세상에 공개함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천하의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다.

여기까지만이라면 나도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그 동영상의 출처 탓에 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너는 알고 있었잖아. 이렇게 될 줄."

흡사 추궁이라도 하는듯한 내 어조에 용모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일이 아니었어도 그녀가 서 있을 곳은 없어. 이번 일은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겼을 뿐이야."

어두운 얼굴이지만 한점 후회도 없는 얼굴이다. 나는 그게 또 못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내가 고래고래 악을 질러대지만, 용모는 묵묵히 내 모든 분노를 받아줄 뿐이다.

"이래서야 우리가 그토록 증오했던 유니온이랑 뭐가 다르냐고!"

소수의 희생을 무시하고 대의를 위한답시고 이놈 저놈에게 총대를 매게 한다. 유니온이 즐겨쓰던 방법이 아닌가.

"냉정하게 상황을 봐. 그 영상 하나로 피를 볼 필요도 없어졌고, 세상의 모든 여론이 네 편에 섰어. 다시 시간이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그 한점 흔들림 없는 태도에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혼자 고래고래 악을 써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용모 역시 사심이 있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아

닐 터, 나는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너하고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너하고 나라고!"

용모가 피하지 않고 내 눈을 마주쳐왔다.

"냉정을 찾아. 너는 분명히 말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난 참사의 희생자들을 원 상태로 돌리겠다고. 그리고 지금 당장 그녀가 어떻게 된 건 아니잖아."

용모의 말에 나는 심호흡을 했다. 지나치게 흥분했음을 스스로도 깨달은 탓이다.

"그녀를 구할 방법은?"

내가 그렇게 묻자 용모가 한점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거래. 유니온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녀를 빼온다.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아."

용모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3년이다. 무려 3년을 참아왔다. 힘이 부족해서 참았고, 시기가 맞지 않아 참아왔다. 군부의 배신과 유니온의 횡포를 응징할 날을 기다리며 3년을 몸을 낮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용모는 나에게 유니온과 협상을 하란다. 가슴이 미칠 듯이 갑갑해졌다.

갑갑해졌다.

"한가지만 묻자."

용모가 내눈을 똑바로 마주쳐오며 말했다.

"그녀, 윤민아 팀장이 그렇게 중요해?"

용모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중요하냐고? 3년간 참아왔던 복수를 참아왔던 내가 그 복수를 포기할 정도로?

스스로도 확신을 갖지 못할 그의 질문에 나는 그만 힘이 빠져 소파에 주저앉아버렸다.

지금 민아는 감금상태였다. 이번 동영상을 외부로 유출한 유니온 내부의 조력자가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부의 배신자를 그대로 둘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니온은 당연하게도 그녀의 신변을 감금했다.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지만, 민아 하나쯤 어떻게 하는 것쯤은 아직 그들에게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나는 고민했다. 나와 정부의 파워게임에 휘말려 위험에 빠진 민아와, 이제 코앞으로 다가선 복수 사이에서 고민했다.

"3년이나 참았다. 거기에 289명의 동료들의 생명이 얹혀져 있어. 아니, 700만명이 넘는 서울 시민의 생명 또한 다르지 않아. 그녀를 위해 다 포기할 거야?"

마치 나를 몰아붙이듯 말하는 용모의 얼굴에도 괴로운 기색이 가득했다. 그래. 녀석도 머리회전이 빠를 뿐이지 권모술수에 능한 협잡꾼이 아니었지.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윤민아 팀장이 네게 중요한 존재야?"

그 몸서리쳐질 만큼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유니온이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이 났다고 해도, 쉽게 그녀를 내주진 않을 거야. 지금으로선 그녀가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용모가 다시 확인사살을 했다.

"네가 동요하는 것을 알아챈다면, 아마 더 기를 쓰고 그녀를 숨기려 들겠지. 네놈 성격 무른거야 이미 유명한 이야기니까."

명백한 질책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남는 것은 협상밖에 없어. 그리고 너는 그 협상으로 인해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되겠지."

용모의 말이 사실이다. 만약 민아를 구하기 위해 내가 움직였다가는 유니온에서 눈치를 채고, 그녀를 협상의 카드로 이용할 것이다.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 신세를 졌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던 나는 그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는 순간, 그들의 의도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다.

"모른 척 해. 너는 이번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거다."

용모의 말에 나는 반문하고 싶었다. 독이 잔뜩 오른 유니온이 그녀를 어떻게 할지 눈에 뻔한데, 모른 척하라니. 유니온이 내부 단속을 위해 본보기로 그녀를 처단하는 것을 모른 척 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시도는 하겠다. 검맥에서 정예를 꾸려서 그녀의 행방을 찾아볼게. 그리고 구출해보겠다."

용모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정의감 있고, 적당히 교활하고, 적당히 이기적인 나와는 다르게 올곧은 성격의 용모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더욱 괴로운 건 그일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게. 그녀를 구출하는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지만 숨길 수 없는 괴로움에 괴로워하는 그를 뒤늦게 발견했다.

"씨바아아아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고 악을 썼다. 고함을 치고,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갑갑한 가슴은 풀리지 않았다.3년전 참사의 희생자들의 생명, 그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발이 꽁꽁 묶인 그 끔찍스러운 무력감에 나는 한참이나 소리를 질렀다.

"제길."

윤민아. 내게는 복잡한 존재다. 처음의 만남에서는 재수가 없었고, 그 다음의 만남에서는 그 어수룩한 모습이 조금은 정겨웠다. 특이한 말투로 상대를 무안하게 하는 그녀의 본심은 다른 유니온의 간부들처럼 이기적이지 않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희생자가 생기면 남 모르게 괴로워 하고, 유니온의 지령을 전하면서도 못내 마음 졸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민아, 그 아이가 당신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지현의 말이 떠오르고 그 멍청할 정도로 자신의 내심을 표현하는데 서투른 차가운 얼굴이 떠올랐다.

"최고의 인원들로 뽑아. 여차 하면 나도 끼어든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 말에 용모가 염려 말라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들겨왔다.

"너까지 갈 일은 없을 거야. 최선을 다해볼게."

용모의 말에도 내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아니. 여차하면 유니온이고 뭐고 다 박살낸다."

내 말에 용모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 때문이 아니야. 어차피 유니온도 정리해야 할 대상. 시기를 당길 뿐이야."

나는 마음을 정했다. 그녀가 내 약점이 되기 전에 먼저 유니온을 부셔버리겠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방금 전까지 고민했던 내가 스스로도 우스울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부셔버리면 되는 거야. 복잡할 게 뭐가 있어."

다시 한 번 중얼거리는 내 말에 용모는 복잡한 시선을 보내올 뿐이었다.

힘에는 힘. 더 강한 폭력으로 네놈들을 짓밟아 주리라.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위치를 알아내면 말해. 내가 왜 1등급 이능력자인지 보여줄 테니."

나는 스산하게 미소 지었다.

"정부의 대응에 저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간의 과오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용기 있게 나설 모습을 기대했지만, 저만의 바람이었나봅니다."

또다시 시작된 기자회견장에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의 기자들이 찾아왔다. 일전의 기자들이 국내의 언론사에만 국한된 기자들이었다면, 이번에는 해외 유수의 언론사들의 기자들마저 찾아와 회견장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미 공개된 동영상을 보셨다면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인지는 명백할 터, 감히 국민들께 여쭙겠습니다."

나는 회견장을 가득 채운 기자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자 한자 내뱉었다.

"장렬하게 산화한 289명의 이능력자들과 죄 없는 700만 서울 시민들의 희생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기자들이 숨을 들이마셨다.

"저는 국민 여러분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회견장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자들이 나를 붙잡느라 아우성이었지만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회견장을 나섰다.

'이미 공개된 동영상을 보셨다면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인지는 명백할 터, 감히 국민들께 여쭙겠습니다.'

'장렬하게 산화한 289명의 이능력자들과 죄 없는 700만 서울 시민들의 희생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저는 국민 여러분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주요 방송사를 포함해 모든 방송사의 채널이 김형준의 인터뷰 내용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 정부를 향한 숨김없는 적의와 분노가 화면 너머의 사람들에게 느껴질 정도라, 시청자들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야. 저러다가 일치는 거 아냐?"

누군가가 우려를 표하니 다른 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1등급 1등급 하더니 뚜껑 날라가니까 장난 아니다."

아직도 온몸에 돋아난 소름이 가시질 않는지, 팔뚝을 벅벅 긁어대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한다.

"정부가 개새끼지. 동영상 공개 안됐으면 끝까지 억울하다고 드립 쳤을 거 아냐."

다시 사람들이 웅성대며 그 말에 맞장구를 쳐댄다.

"진짜 머리 아프겠다. 근데 국민들 뜻 따르겠다니, 우리가 청와대 뒤집으라면 뒤집을 생각인가?"

누군가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니, 한참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입을

딱 다문다.

"서.. 설마. 그래도 나라를 상대로..."

"그래도 1등급 이능력자잖아. 솔직히 그렌델이 우리 나라에 나타났어봐. 군대고 뭐고 얄짤 없는 거지."

"그리고 김형준은 그렌델을 퇴치한 이능력자고?"

사람들이 우려 반, 기대 반 섞인 얼굴로 재차 반복되는 김형준의 기자회견을 바라본다.

============================ 작품 후기 컴터를 너무 오래 가지고 놀았더니 마눌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덕분에 글은 커녕 컴터 앞에 앉는 것도 불가능했었습죠. 지금은 업무시간에 몰래 한편 써서 글 올립니다.

독자님들의 열화와도 같은 사랑에 중독된 제가 뽕 맞은 것처럼 설쳐대다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모양입니다. 마눌님의 아량에 기대 선처를 받자와 페이스를 찾도로 하겠습니다. 그럼 몰래 한편 더 쓰고, 비축 분 만들어 성실연재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습

그럼 몰래 한편 더 쓰고, 비축 분 만들어 성실연재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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