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 세계로... -- >
'피바라기 김형준 이번에는 미노타우르스의 뿔을 꺾으러 간다!'
김형준의 다음 행보는 그리스,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자극적인 헤드라인을 가진 기사들이 인터넷에 가득 올라왔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이능력자 김형준의 행보를 확인했고, 다음 행선지에 의문을 표했다.
지리상 가까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특출나게 좋은 국가도 아닌 그리스. 그가 영국행을 결정했을 때만큼이나 의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기사를 클릭한 사람들은 환호했다. 무작위로 1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줄 알았던 김형준의 행보가 사실은 대한민국의 괴수를 잡기 위한 경험 쌓기이며, 그 최종 목표는 '천개의 눈동자
'라니. 다소나마 그의 행보가 돈에 매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있던 국민들은 열광했다.'
전에 돈에 팔린 매국노라고 드립 친 놈 있으면 이 기사 보고 다시 한번 댓글 달아봐라!'
'김형준씨. 당신이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잊지 않은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김형준에 대해 호의적인 덧글들이 매 기사마다 수백 수천개씩 달리기 시작했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메인에는 김형준의 행보가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그의 영웅적인 행보를 스크랩한 블로거들의 블로그가 소개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김형준의 행보에 열광하고 있을 때, 한가지 기사가 올라왔다.
'김형준 군부의 음모를 고발하다.'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김형준의 그리스 행이 아닌 다는 사실을 다룬 기사는 몇 번이고 기사들의 홍수에 파묻혔다가 다시 메인에 떠올랐다.
'그리스행을 알린 김형준의 기자회견, 이날 김형준은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3년 전에 있었던 군의 일산 괴수와의 전투. 그것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시작부터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 찬 기사의 내용에 사람들은 경악했다.'군부는 지난 괴수와의 전투에 참전을 한 적이 없으며, 당시의 전투는 대한민
국의 유니온 소속 이능력자들과 비소속 이능력자들만으로 치러졌다.
'그간 항간에 알려졌던 일부 이능력자의 변절설에 대한 전면적인 반박기사였다.'
그들은 그 어떤 외부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수천의 몬스터와 악전고투를 벌였으며, 마침내 천개의 눈동자와 조우할 수 있었다. 당시 김형준은 2등급의 이능력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비공식적인 2명의 1등급 이능력자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 했다. 두명의 1등급 이능력자들의 힘을 빌려 괴수와 전투를 벌인 그들은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수천마리 몬스터들의 사이에 포위되어 대다수의 이능력자들이 희생되었으며, 별동대를 가장한 자살공격대와도 같은 공격조만이 괴수에게 다다를 수 있었다.... 중약.''괴수와의 전투는 김형준을 비롯한 이름모를 두명의 1등급 이능력자들이 주도했으며, 전투 초반에 그들의 파상공세에 괴수는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그 다음 줄에 실린 내용을 본 사람들은 분노했다.'
하여 김형준을 비롯한 이능력자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퇴각을 거듭했으며 이때 우리나라는 서울을 몬스터들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항전한 이능력자들의 수는 총 274명. 325명이 참가했던 이능력자들 중 살아
돌아간 이들은 서른명도 채 안 되는 숫자였다. 그나마 그런 그들마저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어야 했으니.
'기사의 하단에는 사진까지 첨부가 되어 있었다.'
김형준, 전신 화상으로 인한 회생불능.
'사진에 쓰여진 한 문장.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화상으로 뭉그러지고, 이목구비마저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의 주인공이 김형준이라니.'
당시 군부가 독단적으로 강행한 미사일 폭격에 의해 그나마 퇴각 중이던 이능력자들 중 상당수가 사망.''당시 서울의 희생자 수 약 700만명 이상.'그 모든 것이 군부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생긴 것이라니 국민들은 전에 없이 분노했다. 3년전의 서울 습격 사건 때 지인 한명 안 잃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 무렵만 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없을 지경이다. 또한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평생을 살면서 이룩한 모든 것들을 서울과 함께 묻어버려야 했던 수많은 이들은 불과 같이 분노했다.
단 하나의 기사였지만, 사람들은 미친 것처럼 기사를 퍼나르고 각종 사이트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기사를 클릭한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 사실은 일파만파 전국으로 퍼져갔다.
"군부 놈들 정신이 번쩍 들었겠는데?"
전 서울 지부장 신은혜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앞에 있던 유니온의 간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까요? 혹시 우리에게 불똥이 튀지는 않을지..."
그 얼굴에 겁먹은 기색이 역력한지라 신은혜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한테? 왜?"
그녀의 말에 유니온의 간부, 정현성이 대답했다.
"그 일전의 사건이라면 저희도..."
"그만!"
그의 말을 단박에 잘라낸 그녀가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듣기라도 할까 신경이 쓰이는지 주변을 둘러본 그녀가 으르렁거리듯이 그를 위협했다.
"우리가 뭘 어쨌다는 거지?"
그제야 자신이 말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정현성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리는 그냥 군부가 당하는 꼴을 보면 되는 거라고. 우리한테 불똥이 튈 일이 뭐가 있어. 지금은 힘도 없는 유니온인데."
자조적인 그녀의 말에 정현성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형준도 우리한테까지 신경은 안 쓸 거야. 원하는 데로 통제력도 빼앗아갔고, 이제 우리는 검맥보다 초라할 정도잖아?"
"네. 맞습니다."
무엇에 그렇게 겁을 먹었는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정현성은 자신이 무슨 말을 주워섬기는지도 모르고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신은혜는 그런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가봐. 또 특별한 일 있으면 보고하고. 그리고 윤민아 팀장 좀 오라고 해."
별다른 질책 없이 그녀가 자신을 나가보라고 하자 그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떠올랐다.
"네. 그럼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방을 나서자마자 돌변한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면 그렇게 안도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진 못했으리라. 그녀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가 나간 방향을 노려보던 그녀가 전화기를 들었다.
"나 신은혜. 어. 청소부 하나만 보내줘. 입이 가벼운 놈이 하나 있어서. 6등급 이능력자고, 이름은 정현성. 부산지부에서 내근하는 놈이니 알아서 처리 해."
그렇게 할 말만 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녀가 홀로 중얼거렸다.
"어중이나 떠중이나... 쭉정이들 밖에 안 남아서는..."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3년전의 참사가 아직도 채 회복이 안 된 마당에 그 모든 참사의 원인이 군부의 탓이라니. 물론 군부의 뒤통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괴수와의 전투는 패배했었겠지만, 용모가 솜씨 좋게 일을 꾸몄다.
모든 국민들의 분노가 대한민국 정부와 군부를 향했다.
중간에 나랏놈들이 수작이라도 부렸는지, 대형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신문에는 내 인터뷰 내용의 뒷부분들이 싹둑 잘려 있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하나 하고 화를 삭히고 있었는데 오전에 뜬 이름 모를 기자의 익명 기사에 그런 우려는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 기사를 번역해서 실어나르고 있었
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화를 내고 있을까. 아니면 넋이 나가 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통쾌해졌다. 그렇게 우리 뒤통수를 치고 서울을 날려먹은 것도 모자라서 모든 잘못을 우리들에게 덮어씌우더니.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는 못 사는 법이다.
"자업자득인 겝니다."
내 곁에 딱 붙어서 인터넷 기사들을 보던 지현이 말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완벽함을 자랑하는 그녀지만 딱 하나 젬병인 것이 있었는데, 그녀가 지독한 기계치라는 것이다. 3년이나 지났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앉아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뭐 지들이 뿌린 씨앗이니 지들이 거둬야죠."
애초에 그들이 벌인 일에 대한 대가를 이제야 받는 것이니 통쾌한 감정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긍정을 표했다.
"난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차라리 가만히 있었다면 모를까. 그렇게 뒤통수를 칠 이유는 없었거든요. 그들이 아니었다고 해도 어차피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설령 우리가 괴수를 퇴치하는 데 성공 했다고 하더라도 대체 뭘 얻으려고 그런 짓을 했는지."
3년이 넘는 시간을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의문을 꺼내들어 그녀에게 늘어놓았다.
"만약 공을 탐한 것이라면 임무가 실패로 돌아간 그 시점에서 공 자체가 사라진 것이니 그럴 필요가 없었고. 다른 뜻이 있었을 게 분명해요."
공을 탐한 것도 아니고, 그들과 이능력자들이 원한을 지었던 것도 아니었다. 군부의 미친 행각에 애꿎은 서울시민들과 이능력자들만 희생되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대한민국의 수도는 아직도 복구가 안 되고 있고, 이능력자 전력은 약화된 상태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뭔가 바라는 것이 있었으니 그런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겠지만,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뭐, 지금에 와서 그들의 목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온당한 대가를 치르느냐 마느냐는 것이었다.
"니들은 아주 엿 된 거야."
조금 더 인터넷을 살펴보던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현이 내 말에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간 쌓아왔던 내 고충과 울분을 그녀도 알기에 딱히 내 말투를 트집 잡진 않았다.
"일들이 정리가 되야 다음 일을 벌일 텐데. 용모는 잘 하고 있으려나 몰라요."
나는 이 일에 대한 모든 것을 용모에게 위임했다. 검맥의 수장인 내가 나서는 것보다는 자신이 움직여야 남들 보기에 모양새가 괜찮다는 그의 말이 있기도 해서였지만, 그 이전에 용모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이런 일에 상당히 익숙해서기도 했고. 나는 그저 용모가 판을 벌이고 판을 키우면 그 위에서 잠시 얼굴만 비추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이 모든 계획은 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만큼, 무력이 필요하다면 무력을,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아낌 없이 퍼부을 생각이다.
문제는 이 나랏놈들이란 인종들이 생각이 보통 사람 같지가 않아서, 어떻게 나올지를 도저히 알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죄를 청하고 전모를 밝힌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다. 이런 아름다운 코스는 절대 밟지 않을 그들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것은 그들이 그나마 상식 안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 만약 그들이 얼토당토 않은 짓거리를 벌이면 이번만큼은 나도 참지 않을 생각이다.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될 위치에 왔고, 바꿀 수 있다면 바꿀 수 있는 부조리이니만큼 나는 전력을 다해 그들과 부딪힐 것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천개의 눈동자'를 걸고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철저하게 밟아주리라.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세상 만사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고.
하루가 채 다 가기 전에 저녁뉴스의 메인을 장식한 정부인사의 기자회견. 그녀와의 단란한 저녁식사를 즐기던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들은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건만 결국 인면수심의 면모를 드러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3년전의 참사를 호도한 김형준씨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할 생각입니다.'
나는 그 같지도 않은 정부 대변인의 인터뷰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저것들이 미친 거 같죠?"
내 말에 그녀가 화사하게 웃음 지었다. 하지만 그 화사함 속에 숨어 있는 것은 명백한 분노, 그리고 지엄한 징벌의 의사였다.
"아무래도 벌주를 택했나봅니다."
============================ 작품 후기 제 신작 '도살자'가 연달아 업뎃 되는 가운데 기존의 '내가 이능력자다' 독자님들이 혹여 서운해하실까봐 알려드립니다.
현재 '내가 이능력자다'는 원래 전개와는 다르게 완결을 늦추면서 대대적인 내용의 수정을 하고 있으며 그 모든 편이 사전에 자료조사가 병행되야 하는 성격의 것들입니다. 덕분에 세계 신화와 위인에 대한 자료를 모으느라 잠도 제대로 못잘 지경입니다.
그러하다 보니 연참을 하겠다고 하고도 못하고 연재 시간이 늦어짐은 어쩔 수 없는 일임에 양해드립니다. 신작을 올리는 자정은 제가 있는 나라 기준으로 오전 11시 가장 바쁜 업무시간이며, 쭉쭉 써지는 신작과는 다르게 이능력자는 집중해서 써야 합니다.
그런 탓에 업뎃이 새벽이나 오후에 자주 이뤄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쓰고 있는 글이 거의 일주일에 종이책 한권분량저돕니다. ㅜㅜ 신작에 이능력자에 출판 글 교정까지 덕분에 이번주는 다 합쳐서 10시간도 채 잠을 못잤답니다.
그러니만큼 혹여 서운하신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렘에 관한 찬반 코멘트는 잘 보고 있습니다. 하렘으로 가더라도 육체적인 교감보다는 정신적인 교감 위주로 갈 예정이며, 그나마 하렘으로 안 갈 경우의 수까지 현재 구상중입니다. 또한 하렘으로 안 갈 수도 있으며 어떤 글을 쓰든 만족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렘 찬반에 관한 설문 조사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저 미안하라고 내 이능에 쿠폰을 몰아주신 독자님들, 제가 죄송스러워서 이번편 용량 꽉 채워서 업뎃 합니다. ㅜㅜつrのiしr무, 갑빠짱, 타락한비둘기님께 이번편을 바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