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 세계로... -- >
민아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니 그녀에게 좀 미안한 감도 있었다. 다른 쪽을 통해서 듣기에는 무슨 일인지 요즘 민아의 입지가 굉장히 좁아졌는데 그나마 나와의 관계 탓에 큰 탈 없이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유니온이 보기에는 그녀와 나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음. 괜찮겠어? 그래도 윤민아 팀장이라면 너 초기부터 꽤 신경 많이 써줬었는데. 그 냥반 말투가 특이해서 그렇지 여러모로 어리숙한 사람이라."
아니나 다를까. 용모가 우려를 표해왔다.
"음. 근데 왜 윤민아 팀장은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유니온에 남아있는거지? 아니, 애초에 능력자긴 해?"
생각해보니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처음에는 밉살스러운 유니온의 끄나풀로 생각했고, 나중에 가서는 그냥 일에 쫓기며 응대하다보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안 그래도 나도 그게 궁금하다. 나 같았으면, 당장 나왔을 텐데. 그리고 그녀가 이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유니온 내부에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말하고 나니까 좀 신기한 여자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머리 회전이 빠르고 정보에 빠삭한 그도 지금에 와서야 그녀에 대한 것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음. 일단 너 아직까지 유니온에 줄 있지?"
유니온을 나오고 나서도 꽤 많은 이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용모에게 물으니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에 유니온 파탄나면서 꽤 끊기긴 했는데, 아직 있어. 왜? 윤민아 팀장 뒤라도 봐주랴?"
그 표정이 음흉한게 뭔가 울컥해서 괜스레 역정을 냈다.
"뭐 이 자식아! 그래도 전에 나 모르게 이거 저거 많이 신경써준 여자고, 하는 짓을 보니 지인도 없을 거 같아서 그런다!"
"누가 뭐래? 흐흐흐."
여전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용모를 보다가 괜히 찝찝해져서 고개를 홱 돌렸다. 지현이 엄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나까지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알았어. 일단 나는 가볼 테니까. 더 정보가 들어오면 보내줄게."
그렇게 말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내가 해야 할 검맥의 일을 거의 도맡아서 하는 용모다보니 워낙 바쁜 몸이시다. 나도 미련 없이 그를 배웅하고는 괜스레 목이 타 주방으로 향했다.
마침 주방에 있던 지현이 나를 보고는 화사한 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이유 없이 찔끔한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그녀가 센스 있게 전해준 물을 단숨에 비웠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내가 조금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는지 그녀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아. 방금 민아하고 통화를 했는데 기분이 조금 그렇네요."
그리 말하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유니온의 입장을 들을 때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그녀가 민아의 이야기에서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해서 일단 유니온에 경고를 보내긴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녀 입장이 워낙 안 좋다고 들어서요."
나도 모르게 말하다보니 본심을 다 말해버렸다. 어차피 부부사이니만큼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지만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금은 냉담해진 지현의 표정을 보고 후회했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십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여상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 감춰진 한기가 이상하게 강렬하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래도 예전에 신세 아닌 신세를 좀 졌었는데 이제 와서 모른 척 하기도 그렇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그녀가 냉담한 기색을 거두고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게 더 불편해져서 그녀에게 변명하듯 이야기 했다.
"물론 당신이 말한 게 정말이라면 내가 그녀를 신경 쓰는 건 어쩌면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안 그렇잖아요. 신세를 져놓고도 모
른 척 하기가 좀 그래요."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도의라는 게 그런 게 아니지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치 내 내심을 살펴보는 눈빛을 보내오는 게 아무래도 민아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걸 그랬나보다. 자꾸만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게 뭔가 죄라도 지은 기분이라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현지는요?"
억지로 다른 화제를 꺼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그녀였지만 더는 민아에 관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어쩌면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의 입을 통해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듣기 불편했던 마음이 있어서이리라.
"아. 지금 허준영 그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많이 폐쇄되어 있어서 회복시킬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답니다. 일단은 시도 해보겠답니다."
그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허준영과의 연락이 되어 현지를 그쪽으로 보냈다. 지
현의 말을 들어보니 도맥이라는 곳이 그런 사람을 치유하는 데에도 탁월한 힘이 있다니 속는 셈 치고 한번 맡겨본 것이다.
"꼭 회복이 됐으면 좋겠네요. 말만한 처자가 애들처럼 다니는 것도 안쓰럽고, 이제 현지도 제 갈길을 가야 하니까요."
화제를 전환한답시고 꺼낸 말이었지만 마음은 진심이다. 내말에 지현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도맥이야 전부터 그런 일을 도맡아 처리했던 곳이니만큼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솔직히 강아지처럼 나를 따르는 현지를 보면 묘한 소유욕에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마당에야 그녀의 회복을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래서 어쩌실 겁니까?"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워낙에 뜬금없는 말이라 눈을 껌벅거리며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다시 말했다.
"민아 말입니다."
다시 꺼내든 민아의 이야기에 괜히 찔려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니, 그녀가 흐음하는 애매모호한 소리를 내고 눈을 마주쳐왔다.
"저는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윤민아 팀장은 당신에게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제 와서 그녀의 말을 부정하기도 뭐해 그저 듣고만 있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녀에게 빛을 갚고자 하는 당신의 마음이야 알겠지만, 지금 그게 최선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녀의 말대로다. 만약 그녀의 말처럼 민아가 나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면, 내 선의는 도리어 그녀에게 희망고문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이는 건 내 쪽에서도 사양이고.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데 그녀가 조금은 복잡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녀를 거두시든 안 거두시든 그건 전적으로 당신의 뜻이겠지요. 저는 당신의 뜻을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당신하고 나는 부부라고요! 이제 와서 다른 여자니 뭐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나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지금 내게 자신 외의 여자를 거두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남자가 호색하고 절제가 힘든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말은 도저히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지현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내 입장에서는 그녀의 저런 말에 도리어 화가 날 지경이다.
하지만 막상 버럭 역정을 내고 나니, 애초에 민아의 이야기를 꺼낸 것도 나였던지라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었다.
"그리 화를 내시니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습니다. 그저 제 뜻을 당신이 알아주셨다면 하는 뜻에서 한 이야기니 그리 마음에 담아두시지 마시지요."
도리어 화를 내야할 그녀가 저리 나를 달래니, 새삼 죄책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민아의 일은 그저 용모 선에서 끝내고 그녀가 그저 제 갈 길을 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민아와 통화를 하고 난 뒤로부터 1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간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내가 다시 1등급 몬스터와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물론 삼엄하게 집 주위를 감시하고 있던 경찰들에 의해 저지되긴 했지만,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그만 자고 있던 연아가 깨어나 울음을 터트렸다. 전부터 기자들이라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던 나였던지라 잔뜩 화가 나서 문밖으로 뛰쳐 나갔다.
"김형준씨! 다시 몬스터 사냥을 가신다는데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타국의 몬스터를 퇴치하실 거라고 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내 얼굴이 보이기가 무섭게 질문 세례를 퍼부어대는 기자들의 행태에 나는 더 할 수 없이 짜증이 났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이미 내가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긴다고 들어 알고 있는 경찰병력들이 기자들을 몰아내려고 했지만, 그들은 승냥이처럼 틈을 비집고 달려들었다.
나는 그렇게 내게 접근한 기자들에게 살짝 기세를 개방했다.
"일전에 매스컴을 통해 말씀 드렸을텐데요. 저는 공식적인 회견장소가 아닌 그 어디에서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얼음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내 말투와 기세에 기자들이 흠칫했다.
"그래도 한 말씀만! 국민들이 김형준씨의 행보에 온통 기대중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주십시오!"
어설픈 이능력자들도 물러설 내 기세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질문을 던져댔다. 정말이지 이런 작자들이니 그렇게도 많은 공인들이 기자라면 질색을 하는 것이
다. 국민까지 팔아가며 녹음기를 들이대는 그들의 행태에 나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
"국민의 알 권리요? 그럼 제 권리는요? 저는 사생활도 없는 겁니까? 대체 누구한테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디보자, 당신은 조산일보 기자군요."
전의 기자회견장에서 몇 번인가 봤던 얼굴이라 그의 소속을 기억하고 그리 말하니, 그가 움찔 해보였다. 방금 전의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던 작자가 이 작자다. 전에도 꽤나 공격적인 질문으로 내게 찍혔던 인물이라 나는 차갑게 말했다.
"앞으로 조산일보와는 인터뷰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얼굴을 기억해뒀다가 소속을 밝혀서, 제가 하는 그 어떤 공식 기자회견장에 발도 못 들이게 해드리죠."
생각 같아서야 모조리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렇게까지는 차마 하지 못하고 으름장을 놨다.
내 말을 들은 기자들이 웅성웅성 대다가 쫓기듯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는 경찰들을 바라보다가 수고했다고 한마디 했다.
"아닙니다! 이게 저희 일입니다!"
그건 아니겠지. 당신들 일은 내가 누구와 접촉하는지 알아내고 그걸 보고하는 거겠지. 턱끝까지 차오른 말이 있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어차피 이들도 말단 경찰, 그들은 위에서 까라면 까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대충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서니 지현이 다시 연아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다.
"자장 자장 우리 자장, 자장 밭에 불이 붙고, 고개 넘에는 잠이 온다, 건너집 애기는 울기만 한다. 우리집 애기는 잘두 잔다.
"언제 들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그녀의 미성에 나는 방금 전의 짜증도 있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됐으면 좋겠지만, 언제까지고 일산의 괴수를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계속 이렇게 살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서서 대신 일을 처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는 이미 몬스터가 정리된 영국으로 이민을 갈까 하는 생각.
수 많은 생각을 떠올려보지만 이내 눈 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괴수와의 전투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 작품 후기 떡밥이나 그런부분에 대해 회수를 안하나 생각하시는 독자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앞으로 다 늦든 빠르든 회수가 될테니 걱정 마세요. 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개 속의 부분은 뒤에도 지속해서 나올 겁니다. 간단한 억제 방법을 왜 몰랐나 하겠지만 생활고에 찌드는 저등급 이능력자들은 몬스터 에그가 돈이 되니 팔기 바쁘고, 고등급의 이능력자들은 몬스터 에그 자체를 구하기가 쉬우니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거기에 아직 나오지 않은 유니온의 공작부분들도 작용을 했고요. 더 자세하게 말하면 네타가 될 것 같아서...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코멘트는 늘 읽어보고 있으니 답이 없다고 서운해 하시진 않으시겠죠? 전개에
도 그렇고 전편의 내용을 늘 코멘트를 보고 조금씩 수정하고 있답니다.
저는 다음편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첨언. 지금 하렘 여부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시작합니다! 하렘이 되더라도 이 여자 저여자 다 넣을 생각은 없고, 스토리라인만 생각중입니다! 독자분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할 예정이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또 찬성하시는 분들은 추가 히로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 캐릭터들은 코멘트로 남겨주세요!
여자 저여자 다 넣을 생각은 없고, 스토리라인만 생각중입니다! 독자분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할 예정이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또 찬성하시는 분들은 추가 히로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 캐릭터들은 코멘트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