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18화 (118/223)

< --  2-4. 세계로...  -- >

먼저 우선적으로 다른 나라에 자리를 잡은 1등급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전의 그렌델과의 전투로 많은 것을 얻긴 했으나, 아직은 힘이 부족했다. 무턱대고 아무 1등급 몬스터와 전투했다가는 이 세상과 바로 작별이다.

검맥을 통해 들어오는 의뢰의 대부분은 용모를 통해서 받고 있었다. 간혹 가다가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오는 일도 있었지만 드문 경우였다. 일단은 용모를 통해 각국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 해야겠다. 그렌델을 퇴치하고도 1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다른 나라의 기관들도 그저 놀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례로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이능력자들과 주방위군이 공조하여 워싱턴에 자리잡은 드래곤에 대한 공격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간의 전투를 통해 정보가 조금은 모였을 테니, 내게 필요한 건 그런 것들이다.

"드디어 움직일 생각이 들었냐?"

내 의견을 들은 용모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일전에 흡수한 기운이 이제야 안정됐다. 지금이라면 그렌델과 다시 싸우라고 해도 아마 가뿐하지 싶다."

1등급이라고 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약체였던 그렌델을 떠올리며 그렇게 대답하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 같은 놈.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고만고만했던 주제에 이제는 정말 어마어마해졌구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럼 나는 각 단체에 정보를 흘릴게, 이쪽에서 먼저 나서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그러니까. 네가 움직인다는 소문만 들려도 다른 나라에서 앞 다퉈서 정보를 가져다 바칠 거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1등급 몬스터사냥 성공 경력의 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소문이 퍼지면 금세 연락이 빗발칠 것이다.

"그보다 형준아. 유니온하고의 일도 정리하고 가야지? 그동안 너무 끌었잖아."

용모가 이제 막 생각났다는 투로 내게 말했다.

유니온과의 일이라. 지금의 유니온은 더 이상 예전의 유니온이 아니었다. 일전의 통제력은 대부분 상실한 체 이제는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었는데 그 이유의 상당부분을 내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능의 폭주로 인한 잠식, 이능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또한 유니온이 그동안 우리들을 억제해왔던 수단이기도 하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은 더 이상 유니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폭주 억제의 비술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힘이 없어 묻어두었던 비밀을 내가 얼마 전에 공개 한 탓이다.

처음 괴수가 등장했던 무렵 나는 안개 속에서 고립되었었다. 끝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덕분에 우리는 잠잘 틈도 없이 전투를 이어가야 했으며, 화기가 무용지물이 된 군인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일반인들을 보호해야했다.

이능을 극한까지 끌어내야 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고작 두달이라고 말하지만 그 곳에 고립되어 있었던 우리들은 그 안에서 적어도 수년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너무나도 지옥 같았던 시간들이라 길게만 느껴진 것이 아니

었다. 그 안에서 보낸 우리들의 시간은 착각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비틀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수한 사선을 넘었어야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쉬지도 못하고 극한까지 뽑아다 쓴 능력이 사단을 일으킨 건 당연한 일.

가장 처음은 용모였다.3등급 몬스터인 이무기가 세 번째로 우리를 습격했던 그날, 용모는 폭주했다. 그는 애초부터 인간이 아닌 라이칸슬로프 ? 웨어울프의 혈통, 이성을 잃고 완전한 늑대가 되어버린 그는 분명한 폭주 상태였다. 안개 속에서 폭주해버린 친우를 보고 나는 절망했지만, 한창 몬스터들의 틈에서 날뛰던 용모가 변화한 것도 그때였다. 막 이무기의 목줄기를 뜯어낸 용모는 끔찍스럽게도 놈의 사체를 그대로 해체해버렸다. 그리고는 놈의 몸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주먹보다 커다란 '몬스터 에그'를 삼켜버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황당하게도 폭주 상태였던 용모는 몬스터 에그를 흡수하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 했었지만 이후로도 있었던 다른 이능력자들의 폭주와 몬스터 에그의 흡수, 거듭된 사건들로 인해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황당하게도 폭주 억제의 치료약을 유니온에 바치고, 그 대가로 다시 폭주 억제의 시술을 받은 것이다. 약을 주고 다시 약을 타 먹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실로 어이없는 행태였지만, 유니온의 철저한 정보통제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실상은 이렇게 간단한 치료법이 있거늘, 그 오랜 시간동안 누구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하긴 D섹터에서 얻은 모든 것은 불길한 것으로 치부되는 풍조가 있던지라, 몬스터의 에그를 직접 섭취할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게 있는 오히려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렇게 비밀이 아슬아슬한 위치에 숨겨져 있으면서도 밝혀지지 않은 것은 유니온이 일반 이능력자들의 심리를 철저히 이용한 탓이리라.

저등급의 이능력자들은 생활고에 찌들려 돈이 되는 몬스터 에그를 유니온에 가져다 바치고, 등급이 높은 이들은 폭주가 두려워 몬스터 에그를 바쳤다. 정작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해결책이 눈 앞에 있는데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화가 나는 유니온의 작태다. 우리 스스로의 멍청함에 치를 떨었지만 돌이켜보면, D섹터라는 공포가 존재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유니온도 폭주 억제의 비책을 우리가 공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

야. 아무리 이빨이 빠졌다고 해도 유니온은 유니온이니까.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담판을 짓도록 해. 뒤통수 간지럽게 돌아다니는 건 찝찝하잖아?"

용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온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비책이 새어나간 경로가 우리 검맥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터, 용모는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알았어. 기회를 봐서 자리를 놔줘. 내가 직접 담판을 지을게."

"당연하지! 네가 아니면 누가 일을 해결하겠어. 너는 검맥의 수장이잖아?"

이럴때만 수장이라고 추켜세우는 용모의 모습에 나는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제길. 난 감투라면 딱 질색이라고."

"네가 그러면 뭐하니. 검후께서 그리 원하시는데."

애처가가 아니라 공처가라 놀리는 용모의 말에 한참을 농담 따위를 지껄이다 보니 시간이 꽤나 흘러갔다. 용모는 남은 일들을 처리하겠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모!"

막 자리를 뜨려는 그를 붙잡았다.

"왜?"

"고맙다."

진지한 얼굴로 감사를 표하니, 그가 장난스럽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어보이고는 자리를 뜬다. 유니온의 타격대 조장으로 한창 승승장구하던 녀석이 나를 따라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다. 지닌 바 능력만 해도 이미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이며, 이종족이라는 특징 탓에 그 힘이 배가 되는 그였다. 그런 그가 군말 없이 물심양면으로 나를 보조해주니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와 용모의 예상대로 각국의 단체는 난리가 났다. 마치 프리젠테이션이라도 하듯 자국의 1등급 몬스터의 정보와 상황을 용모에게 보내왔는데, 마치 대기업과 계약하려는 하청업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의사를 비

치면 바로 달려올 기세라 용모가 고생을 꽤나 해야만 했다.

수십개의 나라에서 보내온 정보와 간절한 협조공문을 훑어보던 우리는 그 중 몇 개의 나라를 추려낼 수 있었다.

일단 미국은 제외했다. 드래곤이라는 놈의 무지막지함은 아무리 봐도 일산의 괴수와 엇비슷해보여서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중국도 제외다. 중국은 아직까지도 북경에 자리잡은 몬스터의 정체를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으니,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렇게 우리가 정보를 검토하고 있을 때, 유니온에서 연락이 왔다.

"윤민아 팀장인데? 직접 통화할래?"

전화기를 들이미는 용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민아는 내게 직접 전화를 걸지 않게 되었다. 용모나 지현을 통해 늘 소식이나 정보를 전해왔다. 일전에 지현에게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이쪽에서도 신경이 쓰여 딱히 연락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랜만이다. 민아."

전화기를 건네받으며 반갑게 인사하니, 그녀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

'... 오랜만이군.'

한번 지현에게 그녀의 감정에 대한 언질을 받고나니 미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지금도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데 공적인 관계로 척을 져야 한다는 부분이 조금은 안타깝다. 일전에야 그렇게도 꼴 보기 싫었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그런 사감 따위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 잘 지냈어?"

'늘 똑같다. 네 소식은 늘 방송을 통해 보고 있었다. 꽤나 바쁘게 움직였던 거 같더구나.'

"뭐 실제로는 그렇게 바쁘진 않지만, 한가한 것도 아니었지."

'....'

그렇게 실속 없는 안부를 주고 받다보니 민아의 말수가 점점 줄어든다.

'그보다 내가 연락을 한 건...'

"알아. 내가 다시 1등급 몬스터 퇴치 의뢰를 받는 거, 그거 때문이지?"

그녀의 말을 가로채어 그렇게 말하니, 그녀가 잠시의 시간을 두고 대답했다.

'맞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네가 유니온의 이름을 내세우고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그렌델과의 전투는 유니온과 국가를 대표해서 간 것으로 공식적인 기록이 남았다. 이미 유명무실해진 유니온의 입장에서는 지금 한가지 명분이라도 만들어야 할 입장이니, 그런 요청을 해올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안 돼는 거 알지? 전에야 우리 검맥이 워낙 소소했지만 솔직히 터놓고 말하면, 이제 검맥이 유니온보다 더 알짜배기라고. 우리도 슬슬 우리 이름 걸고 움직일 때가 됐잖아?"

이전에야 소수정예로 이루어져있던 검맥이었지만 그렌델과의 전투와, 폭제 억제 시술에 대한 비책을 공개하면서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거의 대한민국에 상주하는 이능력자들의 대부분이 검맥에 들어오기를 원했다. 그중 추리고 추려서 모은 것만 해도 거의 3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합류해버렸다. 그들이 전원 5등급 이상의 이능력자들이니 유니온의 전성기 시절의 타격대와 비교해도 절대로 부족한 전력이 아니다.

'음... 알았다. 그렇게 보고하겠다.'

그녀가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용모에게 듣기로는 밉살스러운 유니온에서 나와 그녀의 친분을 이용해서, 불리한 협상이나 요청에 대한 압박을 늘 그녀에게 넣고 있다고 하니 조금 안쓰럽긴 했다.

'그보다 할 말은 그거 뿐이야?'

하지만 나도 언제까지나 그녀의 입장을 고려해줄 수는 없는지라 조금은 날선 어조로 물었다. 그녀가 꺼낼 용건은 이것 하나뿐이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뒤에 나올 이야기가 더욱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음... 조금 불편한 이야기겠지만 유니온의 비공식적인 입장을 전하겠다.'

역시나 그녀가 조금은 풀죽은 음성으로 내게 말을 시작했다.

"지난 김보성 간부 건도 그렇고 유니온은 자꾸만 당신과 얽히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게다가 이번에 공개된 이능력의 폭제를 억제하는 비책의 출처가 당신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유감이 있다는 것이 유니온의 입장이다."

"..."

그녀의 말에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아냈다. 그녀가 전하는 것이 그녀 개인의 의견이 아닌 단지 전언일 뿐이라지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유니온의 멍청함에 치를 떨었다.

'게다가 고등급 이능력자의 폭주를 억제할 상등급의 몬스터 에그를 대부분 검맥에서 지급하고 있다니 가능하면 멈춰달라는 요청이 있다.'

분명 순화해서 그녀가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겠지. 유니온의 그 골수까지 썩어버린 작자들이 더욱 안하무인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그녀도 아니까.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설쳐대는 것일까. 나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다. 게다가 나의 아내 지현만 해도 어마어마한 강자고. 검맥은 미뤄 두고서라도 유니온은 우리에게 설설 기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렇게 고자세라니.

"나 지금 네 입장 생각해서, 꾹 참고 있다. 민아."

내가 그렇게 사납게 말하니 그녀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난 공식적으로 검맥의 수장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능력자니 그에 대한 답신은 하겠어. 꼭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해주기를 바란다."

'...'

그녀는 대답이 없었지만 나는 한자 한자 씹어 뱉는 기분으로 말했다.

"그간 윤민아 팀장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유니온의 상식이하인 행태에도 많은 부분을 양보했으나,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유니온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유니온은 차후 용건이 있다면 윤민아 팀장이 아닌 다른 공식적인 루트로 절차를 받아 연락을 하기를 바라겠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공식적인 내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말은 비공식적인 내 입장이야."

그렇게 민아에게 당부하고는 차갑게 말했다.

"뭘 믿고 그렇게 설쳐대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다가는 그나마 쥐고 있는 밥그릇도 뺏길 줄 알라고. 검맥의 수장 이전에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로서 당신들한테 폭주 억제시술로 이용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 나야. 그 지저분한 밥그릇 지키려면 앞으로 알아서 기라고 해."

============================ 작품 후기

감기 때문에 밤세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기침과 재채기에 제가 놀라서 잠들만 하면 깨고, 벌써 이틀째 거의 뜬눈으로 지새는 중입니다. ㅜㅜ중간 중간 짬나는데로 삼사십분씩 나눠서 자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쉽게 낫지를 않네요. 오늘까지 있어보고 정 안되겠으면 병원 가서 하루 이틀 입원해서 쉬다 와야겠습니다.

일단 글은 계속 쓰겠습니다. 누워 있어봐야 제대로 쉬는 것 같지도 않고. 출근도 안하는 마당에 글이라도 써야겠습니다.

염려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쉬는 동안 1화부터 다시 읽어보며 그간의 전개에 대해 반성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나은 전개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휴재에도 불구하고 추천과 쿠폰을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빨리 나아서 연참하라는 뜻으로 알고 회복에 전념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제 신작 '도살자 - 이토록 멋진 세상'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비축분을 만들고 시작한 글이니만큼 이능력자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성실하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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