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14화 (114/223)

< --  2-3. 늪지대의 거인과 사악한 마법사.  -- >

간달프를 비롯한 원탁의 위원회는 경악했다. 그저 평범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으며 자신들을 짓누르니 혼이 쏙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민용모가 진땀을 흘리며 그녀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지 않은 한가지 사실을 더 추가했다.

"소드 엠프레스라고 들어보셨나 모르겠네. 저분이 바로 그 검의 여왕이시요."

그제야 위원회의 머릿속에 한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미국쪽에서 이상할 정도로 김형준의 섭외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 단지 1등급 이능력자의 영입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더니, 그 수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니.

그들이 때늦은 후회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수습은커녕 그저 쩍 벌어진 입에서 침이나 안 흐르면 다행이리라.

"인두껍을 썼으나, 그 됨됨이가 금수와 다르지 않으니 내 그대들의 그 어떤 변도 듣지 않으리라!"

그녀의 말에 민용모가 빠르게 통역을 했다.

"개가 짖는 소리는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소."

물론 자의적인 해석이 듬뿍 들어간 것은 스스로의 어휘력이 그녀의 말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는데, 어차피 그녀의 의사만 전하면 되니 크게 틀린 통역도 아니었다.

"자.. 잠깐... 뭔가 오해가..."

그래도 원탁의 기사들의 수장 격이라 그런지 프로도가 억눌린 음성이나마 입을 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그녀의 기세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지금부터 입을 먼저 여는 자는 가장 먼저 징치하겠다."

"입을 놀리는 자가 첫빠따요."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민용모의 통역이었지만 위원들은 그저 진땀을 흘리며 그녀의 기세에 저항할 뿐이었다.

베오울프는 그 모든 광경을 넋이 나간듯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저 호탕한 성격의 여인이라고 생각했더니 검의 여제라니. 뭔가 1등급 이능력자는 그 친인도 남다르구나 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  그녀의 뒤편에 서있는 탓에 그 기세에서 자유로웠지만 이따금씩 느껴지는 살기만 해도 식은땀이 절로 흐를 지경이다. 그러니 저 앞에 무방비로 기세에 노출된 위원들은 어쩌겠는가.

개중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간달프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만 같은 기색이었다.

"소드 엠프레스여! 자비를 내려주소서!"

이를 악문 간달프가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비명과도 같은 애원을 토해냈다. 머릿속으로는 어디서부터가 잘못 된 것인지 맹렬하게 생각해내려고 애써보지만 스스로의 이기심이 상황을 어렵게 했나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 듯 하다.

검후 전지현의 걸음이 성큼 성큼 간달프에게 다가섰다. 방금 전의 민용모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입을 놀리는 자가 첫빠따요.'

더 이상 창백해질 것도 구석도 없는 그의 얼굴이 이제는 퍼렇게 질려간다. 검후가 전혀 망설임 없이 그의 지척까지 다가서더니 한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 가볍기만 한 솟짓의 여파는 절대 사소하지 않았다.

"끄악!"

간달프가 듣기 싫은 비명을 토해내며, 그대로 벽에 쳐박혔다가 그대로 고개를 떨군다. 아무리 마법에 특화된 이능을 가진 이라지만 엄연한 2등급 이능력자인 그를 가벼운 손짓만으로 기절시키다니, 다른 위원들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려간다.

"같지도 않은 힘을 과신하여 패악질을 일삼으니 상대하는 내 스스로가 수치스럽구나."

"힘도 없는 것들 따위 상대할 가치가 없다 하셨소!"

맨정신에 들었다면 혀를 깨물고 죽거나, 사생결단을 내도 모자랄 모욕이었지만 위원들은 그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말로는 그리 하면서도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는지, 기절한 간달프에게 다가가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간달프의 다리를 짓밟았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간달프의 다리가 기괴한 각도로 꺾여버렸다. 그리고 연이은 그녀의 행동에 반대쪽 발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그 거침없는 행동에 어지간한 베오울프도 질려서 입을 쩍벌렸는데 민용모의 얼굴 빛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 오래전 그녀에게 받았던 대련을 빙자한 구타라도 떠올린 모양이다.

간달프를 벌한 그녀가 몸을 돌려 다른 위원회의 인물들에게 향했다. 겁에 질린 위원들이 안간힘을 쓰며 몸을 비틀고 사지를 버둥거렸지만, 그들이 그토록 자부하던 힘은 이 순간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요란한 비명소리와 우지끈거리는 끔찍한 소리가 회의실에 가득해지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질린 눈으로 검후를 바라보고 있던 베오울프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들이 추태를 보일때까지만 해도 자신이라도 그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막상 강자라 자부하던 이들이 시장통의 불량배만도 못한 꼴로 바닥에 널부러지자 그 마음이 복잡했다.

"베오울프라 하셨소? 저들이 깨어나면 잘 치료해주시오. 한 두달은 거동이 불편하겠지만, 후유증은 없을 거라 말하셨소."

아무리 후안무치한 인물들이라도 그들이 없다면 혹시 모를 몬스터의 준동에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녀가 사정을 봐준 것이다.

"이봐요. 그렇게 넋 놓고 있지 말고 마스터 킴에게 안내해요."

멍한 표정으로 있는 케이트를 재촉하는 민용모를 바라보다가 베오울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저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배우는 것이 있기를 바라지만 복수하겠다고 난리라도 안 치면 다행이겠다 싶기도 한 베오울프였다.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장내에 들어섰다. 막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던 검후의 일행이 걸음을 멈췄다.

케이트의 얼굴이 경악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달려나간 베오울프 역시 그녀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던 이는 베오울프도 익히 아는 이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기도 했고.

아서 경?"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이는 아서 팬드래건이었다. 비록 초췌한 얼굴이기는 했으나 예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한 그가 검후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미 그의 접근을 알고 있었는지 검후는 느긋한 표정이었지만 베오울프만이 홀로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었다. 회의실의 여기 저기에 널부러진 위원들과 아서를 번갈아보던 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저 처참하게 널부러진 위원들은 모두 브리튼족의 위원들이다. 지금에 와서야 앵글로 색슨족이 대표하는 영국의 템플러 노릇을 하고 있지만 오래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대립하던 이들이 바로 저들이었다. 그리고 아서 팬드래건은 그런 브리튼족의 수장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간 자신의 발언권이 강했던 것은 아서 팬드래건을 비롯한 브리튼의 강자들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그 아서가 돌아온 것이다.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이들의 처참한 꼴을 본 그가 어찌 반응할지 걱정이 된 베오울프의 얼굴이 더욱 무거워졌다.

"아서 경이 여기는 왠일이신지."

케이트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검후일행의 앞을 막고 연유를 물어보지만 아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무시할 뿐이었다.

마침내 아서 팬드래건이 열보정도의 거리를 두고 검후 전지현과 마주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베오울프는 이 난감한 상황에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심정이었다.

한참이나 서로를 말 없이 바라보던 검후와 아서. 그들 중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아서였다. 그리고 꺼낸 말이라는 것이 베오울프가 생각했던 것과는 한참이나 다른 것이었는데,

"아서 팬드래건입니다. 그분께 구명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아서는 마치 윗사람을 대하듯 극존칭과 공경의 태도로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검후와 민용모는 그의 말이 한국말임을 깨닫고 이채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손에 끼어진 반지를 발견한 케이트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설명했다.

"아서 경의 손에 끼워진 반지는 통역의 기능이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용모가 검후에게 바로 설명을 하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전지현이요. 그분을 찾으러 영국에 왔소."

일견 느끼기에도 만만치 않은 강자인지라 검후 역시 쉬이 대하지 못한다. 그녀로써는 아직 예전의 힘을 10할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 조금 부담스러운 상대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감당치 못할 상대도 아닌 것이 상대 역시 몸이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익히 들었습니다. 그저 만나 뵈니 반갑고 또 반가울 뿐입니다."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있던 베오울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서가 마스터 킴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으니 그가 걱정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등 뒤를 너머 회의실의 상황을 살펴본 아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베오울프가 한 걸음 나서며 상황을 설명했다.

"아서 경, 오해 마시오. 이번 일은 저들이 마스터 킴의 은혜를 잊고 벌인 배은망덕에 대한 대가였소. 아무리 앵글로 섹슨과 브리튼이 앙숙이었다고 하나 한

식구가 저리 된 것에 마음이 아픈 것은 매한가지요. 그래도 저들이 지은 죄는 저런 꼴을 당해도 마땅했소."

그의 말에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라, 저들을 망친 건 어쩌면 나와 그녀였겠지. 멀린만이 저들의 행보를 우려했었으니."

그렇게 대답한 그가 검후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분께도 은혜를 입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신세를 졌습니다. 내가 징치해야 할 제 식구를 대신 징치해주셨으니 감사드릴 뿐입니다만,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군요."

그렇게 말한 아서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표정이 복잡하다. 고마운 기색 한켠에 못 볼  꼴을 보였다 생각하는지 수치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음..."

검후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김형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 놓은 그녀의 표정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로서는 마스터 킴이 왜 혼수상태에 빠졌는지, 왜 깨어나지 않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서 팬드래건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말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심장어림에 손을 가져다댄다. 그녀의 손에 영롱한 빛이 어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던 일행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한참만에 김형준의 가슴팍에서 손을 땐 그녀가 눈을 떴다.

"그이는 지금 잠을 자고 있구나..."

그녀의 말에 아서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행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녀의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이 쉽지는 않을 터, 탈태와 환골이 이뤄지고 있으나 그 여력이 만만치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으니, 깨어나셨을 때 어떤 모습일지 실로 기대가 되는구나!"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녀가 눈부신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에 넋을 잃었다. 그 탓에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럼 마스터 킴이 혼수상태가 아니란 말입니까?"

제 일도 아니건만 아서 팬드래건이 잔뜩 흥분하여 물었다.

"그렇소. 무슨 기연을 얻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분은 지금 스스로의 힘을 몸에 받아들이기 위해 휴면에 빠진 것이오."

아서의 말에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이 방금 전과는 달리 그늘진 구석 하나 없었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한숨을 내쉬고, 안도의 말을 내뱉었다.

병상에 누운 김형준은 주변의 상황도 모르고 규칙적인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

이다.

============================ 작품 후기 김형준은 부상을 당한 것이 아니라, 모종의 사건을 통해 얻은 힘을 흡수하기 위한 휴면기에 빠져들은 것입죠. ㅎㅎㅎㅎ사실 일전까지의 김형준은 흔한 양판소로 말하면 억지로 마나를 뻥튀기 시켜 소드마스터의 힘을 발휘하는 검사와도 비슷한 상태였다고 봐야 하거든요. 이제 진정한 1등급 이능력자에 걸맞는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실 내이능은 책 5권으로 구상한 글입니다만, 쓰다보니 많이 완결이 늦어졌습니다. 완결까지 그리 많은 내용이 남지 않았지만 열심히 달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려해주신 대로 신작 연재를 하되, 마음은 내 이능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완결까지 휴재없이 쭈욱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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