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13화 (113/223)

< --  2-3. 늪지대의 거인과 사악한 마법사.  -- >

한창 이능력자들에 대한 자료로 떠들썩하던 대한민국에 한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의 그렌델을 퇴치한 국민적 영웅 김형준이 현재 의식불명의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접한 국민들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한 국가를 위기에 빠트릴 정도로 강대한 1등급 몬스터를 처치한 이능력자가 갑자기 의식불명이라니. 매스컴과 네티즌들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입수한 한가지 소식, 그렌델에 비견할만한 몬스터와의 악전 고투 끝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김형준이 끝내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영국에서 발견된 1등급 몬스터는 그렌델 하나였건만 이제 와서 또 다른 강적이라니, 네티즌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렌델 전투와는 다르게 그 흔한 자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네티즌들의 의혹이 제시되었다.'1등급 몬스터 그렌델을 단독으로 퇴치하는 이능력자다. 그가 위기에 빠진 것은 영국의 음모가 분명하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지만 국민적 영웅이 되어버린 김형준에 대한 관심은 그 의혹에 힘을 실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의 정부가 영국 정부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이능력자 김형준은 대한민국 뿐이 아닌 세계적인 인재다. 그런 그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영국 정부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영국 정부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미국이 영국을 비난했고, 1등급 몬스터에 신음하고 있던 나라들이 이를 따라 영국을 거세게 비난했다. 영국은 어떤 이유인지 끝까지 침묵을 유지한 채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김형준이 정체 모를 존재와의 전투 끝에 커다란 부상을 입었고, 현재 회복 시키기 위해 영국의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올라온 인터넷의 게시글 하나.'

저는 대한민국의 이능력자입니다. 높은 등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 김형준씨와 함께 전투를 할 수 있었습니다.'그렇게 서두를 뺀 글은 두서 없이 김형준에 대한 정보를 풀어놓았다.

김형준의 이능력은 자신의 피를 제물로 현신하는 위험한 능력이며, 스스로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끔찍한 피드백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김형준의 이능이 피와 생명력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위험천만한 것이기는 했지만, 유물 가시찔레 꽃을 얻으면서 어느 정도 그 피드백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올린 이능력자는 거기까지 알지는 못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인터넷에 떡하니 올려버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뜩이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던 김형준이 사실상 자기 생명을 불태우며 싸우고 있었다니, 사람들은 그 고귀한 정신에 감명 받고 눈물을 흘렸다. 영국 정부가 김형준을 지나치게 혹사시킨 탓에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영국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음. 답이 안 나오는군요."

간달프의 말에 베오울프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원탁에 둘러앉은 여섯명의 인물들의 얼굴이 모두 그와 같았다.

"그러니까 공개하자니까!"

베오울프의 주먹이 원탁을 후려쳤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들썩였지만 자리에 앉은 이들 중 그 누구 하나 그를 나무라는 이가 없었다.

"그걸 공개하자는 건 템플러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자는 것과 같소. 게다가 1등급 이능력자가 없는 템플러라니. 다른 단체의 인물들이 저희를 얕잡아 볼 것이 분명하외다."

베오울프의 말에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원탁의 인물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간달프의 말에 동조했다.

"아니, 지금 우리 치부가 문제야? 영국이 고립되게 생겼는데?"

베오울프만이 홀로 외롭게 고함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묵묵부답이다.

"유럽 연합에서의 축출 당한 것은 뼈아픈 일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는 없소이다."

그간 베오울프의 말에 반박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간달프가 쌍심지를 돋운다. 그럴만 한 것이 그렌델과의 전투에서 원탁의 위원회 중 4명이나 희생되었다. 그럴만 한 것이 그렌델과의 전투에서 원탁의 위원회 중 4명이나 희생되었다. 하필이면 그들이 모두 베오울프를 지지하던 인물들이었던 탓에 그의 발언권이 지나치게 약화된 탓이다.

"음. 아서 경은 뭐라고 하던가요?"

지난 전투에서 죽을 뻔 했던 것을 구해놨더니 마치 베오울프가 이 자리에 없는 인물인양 간달프에게 물은 프로도의 얼굴이 조금은 어둡다.

"음. 그분 역시 지금으로썬 회복이 더딘 상태라, 이런 저런 의견을 묻지 못했소이다."

간달프가 조금은 껄끄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영국의 구국영웅인 그를 이 상태로 방치한다는 것이 조금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원탁의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샘이 말을 하자 여기 저기서 불편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내가 이런 밥통들이랑 같은 템플러라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구만."

베오울프가 부들부들 떨리는 입가를 움직여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말에 하나 둘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것이 그들 역시 찔리는 구석이 있는 듯 하다.

화를 참지 못한 베오울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간달프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어딜 가시오?"

간달프의 질문에 그를 씹어 먹을 듯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노려보던 베오울프가 툭 내뱉었다.

"여기 있다가는 내가 내 화에 못 이겨 일이라도 벌이고 싶을 지경이라서 말이오."

그렇게 말한 그가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누군가가 회의실을 두들겼다. 마침 나가려던 베오울프가 문을 벌컥 여니 놀란 얼굴의 케이트가 서 있다.

"왜!"

심드렁하게 한마디 내뱉으니, 그녀가 이유를 설명했다.

"마스터 킴의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말에 회의장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일시에 조용해진다.

"허허. 마스터 킴이 이리 되시고 나니 걱정이라도 되어 오신 듯 하구먼. 그래 안으로 모시지 않고?"

그나마 평정을 빨리 되찾은 간달프가 나서서 그렇게 물으니 케이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게 위원님들을 먼저 뵙고 싶다고 하셔서."

지아비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응당 그에게 가는 것이 우선이련만 그녀는 위원회를 먼저 만나고 싶다고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달프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를 불러오라 했다.

"은인의 부인이 오셨으면 당장 달려가도 모자를 판에 뭐? 이쪽으로 모셔와? 에라이 염치도 없는 것들아!"

마침내 성질이 폭발한 모양인지 베오울프가 고래 고래 악을 썼다. 하지만 위원들은 그런 그를 그저 못 본 척 할 뿐 누구 하나 나서서 그를 진정시키는 이가 없다. 베오울프가 한참 침을 튀겨가며 위원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있을 때, 김형준의 그녀가 회의장에 들어섰다.

역시 1등급 이능력자씩이나 되니 그 배필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동양적인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의 등장에 회의장이 술렁인다.

"이거 먼 길을 오시게 했소. 저희가 씻을 수 없는 은혜를 입고도 심려를 드린 것 같아 죄송할 뿐이외다."

그녀의 곁을 따라온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간달프의 말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 화가 잔뜩 났지만 간신히 그 감정을 억누르는 모양새라 위원들이 눈썹을 찌푸렸다. 어디 일개 통역이 여기가 어디라고 인상을 찡그린단 말인가.

거구의 남자를 통해서 간달프의 말을 들은 전지현의 얼굴이 차가워진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니 남자가 다시 통역을 하여 그 내용을 전해준다.

"말은 미안하고 고맙다 하지만 진실된 감정이 하나도 없으니, 딱 보기에도 간사한 이들이라고 하셨소."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말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원탁의 위원들이 김형준을 은인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의자에 앉아 고개만 꺼떡이며 그녀를 맞이하진 않았으리라.

"허허. 역시 마스터 킴의 아내답게 성격이 불같으시구먼. 허허허."

말로는 그리 하면서도 그 얼굴에는 노한 기색이 가득한지라 누가 봐도 억지스러운 웃음이라는 것이 표가 났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남편이 사투를 벌였다니 참을 수가 없다고 하셨소."

거구의 남자가 전해온 말에 원탁의 위원들이 한같이 분기탱천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말이야 은인이라고 하면서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김형준의 상태를 생각하면, 그리 두려울 것이 없는 이들이었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만 이제 와서 폐물이 다 된 이능력자 하나의 비우를 맞추기 위해 이런 모욕을 감당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이들이다.

김형준이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그렇게도 끔찍하게 위하던 이들이 모종의 의뢰를 수행하던 김형준이 회복치 못할 부상을 당하자 안면을 바꾼 것이다. 전투시에 보였던 경의도 그 어떤 감사함도 지금의 이들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다.

"감히!"

성질 급한 위원 중 하나가 몸을 일으키고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설치는 게요! 마스터 킴의 일이야 미안하고 또 감사하오만, 당사자도 아닌 아내에게 모욕을 받을 정도로 우리들이 하찮게 보이는 게요!"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곧 이어 들려온 차가운 냉소에

얼굴이 굳었다.

"지랄하고들 자빠졌네."

음성의 주인을 찾아보니 베오울프가 성난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 위원회가 썩었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악취가 여기까지 진동을 하는구만."

경멸하는 표정을 지은 채 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베오울프의 말에 위원들이 얼굴을 붉혔다.

"베오울프 경. 너무 하는 거 아니요? 아무리 원탁의 일좌라고 해도 지금의 발언은 지나치오!"

세가 부족할 때는 그렇게 납작 엎드려 있더니 이제는 그에게 삿대질까지 한다. 막 간달프를 향해 쌍욕이라도 퍼부을 셈으로 입을 열려던 베오울프는 자신을 잡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스터 킴의 아내를 따라온 거구의 통역사가 있었다.

"저분께서 당신은 용서하신다고 합니다. 이 뒤쪽으로 물러나십시오."

회의실 안에서 유독 김형준의 편을 드는 그가 마음에 들었던 탓인지 거구의 사내가 진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문을 몰랐지만 베오울프는 사내의 손에 이끌려 전지현의 뒤켠에 섰다.

"외부인의 말 한마디에 저리 휘둘려서야."

의원들이 대놓고 그를 비아냥 거렸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모욕에 베오울프가 뛰쳐나가려는데 거구의 사내가 그를 붙잡았다. 화가 나서 드잡이라도 할 생각으로 달려들던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지한 사내를 보고 놀란 그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토.. 통역사 아니었소?"

그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가만히 계십시오. 저분께서 알아서 할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스터 킴의 아내라는 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얼음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차가운 얼굴을 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용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최대한 잘 전달하거라."

그녀의 말에 거구의 남자 민용모가 고개를 숙였다. 화아아악!

대기를 찢어발기는 강렬한 기세가 단숨에 터져 나왔다. 원탁 위에 올려져 있던 컵이니 뭐니가 단숨에 그 기세의 회오리에 휘말려 가루가 된다.

"백성을 가여이 여기는 그분이 궁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은혜를 베푸니, 사람의 탈을 쓴 금수들이 그 뜻을 욕되게 하는구나! 그 배은망덕함을 내 대신 징치하리니, 오늘 이후 제 발로 걷는 이가 없을 것이다!"

마치 그렌델과의 전투 직전에 보여준 마스터 킴의 강대함과 비슷한 기세의 폭풍이 더욱 거세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들이 평범한 이라고 생각했던 마스터 킴의 아내, 검후 전지현이 서 있었다.

============================ 작품 후기

약속대로 연참 투척합니다!

신작을 연재하지만 절대로 내가 이능력자다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도록 할 터이니, 걱정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휴재를 한두번 했어야지 말이긴 하지만 모쪼록 굽어 살펴주소서.

만 모쪼록 굽어 살펴주소서.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선작 추천 쿠폰 코멘트를 남겨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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