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 늪지대의 거인과 사악한 마법사. -- >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아니 대한민국뿐만이 아닌 전세계가 열광의 도가니였다.
'영국은 현재 축제분위기입니다. 지난 재앙이 할퀴고 간 런던은 복구가 지난한 상황이지만 세계 최초로 1등급 몬스터를 퇴치하는데 성공한 국가는 영국이 세계 최초입니다.'
전세계에 등장한 1등급 몬스터 탓에 침울한 소식 일색이었던 뉴스에 처음으로 희망적인 보도가 전해지고 있었다.
'세계최초로 1등급 몬스터를 소탕하고 재앙을 마무리 지은 영국의 행보에 세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실상 그렌델을 퇴치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이능력자 김형준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폭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국의 몬스터를 퇴치한 이가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대한민국은 지금 흥분상태에 빠져들었다.
스크린에는 단정한 외모의 앵커가 사라지고 마치 영화와도 같은 영상이 흘러나
오고 있다. 거인과 거대한 나무, 그리고 붉은 날개를 활짝 펼친 중갑의 인물이 화면 속을 빠르게 오간다. 굵직한 줄기가 거인을 후려치고 거인의 주먹이 대기를 찢어발긴다. 그 사이를 비집고 붉은 갑옷의 인물이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는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우와! 대박. 저거 완전 영화잖아!"
"야! 영화로 하려고 해도 CG가 딸려서 안 되겠다. 무슨 게임 트레일러 영상 같구만."
뉴스를 보고 있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 치열하고도 환상적인 전투에 감탄하고 화면에 비친 인물이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다치진 않으셨는지..."
뉴스를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얼굴이 수심에 차 있다. 다른 이들이 전투의 화려함에 압도되고 자부심을 느낄 때 여인은 화면속의 인물에 대한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연아야. 아빠가 언제 오실 것 같니?"
품 안의 아기는 제 어미의 속도 모르고 꺄르르 거리며 해맑게 웃는다. 김형준의 아내인 전지현은 그런 연아의 뺨을 한번 어루만져주고는 TV의 채널을 돌렸다.
채널을 돌리고 또 돌려도 나오는 것은 그렌델과 김형준의 전투장면이다. 워낙에 충격적인 소식이라 그런지 모든 채널이 앞 다투어 김형준의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한참을 채널을 돌리며 다른 소식이 있나 살펴보던 그녀는 이내 티비의 전원을 껐다.
벌써 김형준이 영국으로 간 것이 한달 전이다. 금방이라도 올 것처럼 떠난 그가 지금은 연락조차 드문드문하다.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곧 한국으로 올 것 같더니만.
"뭔가 다른 일이라도 있으신 겝니까..."
마지막 통화에 멀린이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을 하더니 그쪽도 뭔가 해결을 보
고 올 것인지, 그의 소식이 궁금하기만 한 그녀다.
그녀가 그렇게 멍하니 김형준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벨 소리가 신이 나는지 몸을 들썩 거리는 연아가 몸을 들썩였다. 혹시 김형준의 연락일까 싶어 그녀가 바쁘게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곧 실망으로 바뀐다.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어느 기업의 홍보 담당자라고 소개하더니, 이런 저런 제안을 늘어놓는다. 김형준을 자신들의 모델로 내세우겠다느니, 거기에 더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전투 영상을 홍보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느니. 잠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그녀는 김형준의 부재를 핑계로 다음에 연락할 것을 부탁했다. 그리 말하니 전화를 건 이가 집요하게 그가 언제 돌아올지를 물었다. 모른다 하고 전화를 끊은 그녀가 다시 한숨을 내쉰다.
"정작 알고 싶은 건 난데..."
김형준에 대해 야속한 마음이 드는 그녀였다.
"이야. 김형준 많이 컸네."
차가운 외모에 조금은 사나운 인상을 한 여인이 한쪽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뽑으며 말했다.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누군가의 고뽑으며 말했다.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이 미친년아! 전투 중에 뭐 하는 거야! 빨리 거들어!"
저 멀리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그녀는 어디서 개가 짖나 라는 표정으로 한쪽 귀를 후볐다.
"저년, 저, 저 저!"
그녀가 심드렁하게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자 고함쳤던 인물이 혀를 찬다. 그 사이를 비집고 몬스터의 괴성이 터져 나온다.
"야! 김도연! 도와 달라니까!"
나중에 가서는 애원으로 변한 고함소리에 김도연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 되게 궁시렁거리네. 혼자서 4등급 몬스터도 처리 못해?"
그녀의 말에 다시 고함소리가 들린다.
"이 미친년아! 4등급 몬스터도 한 두 마리여야지, 나 혼자 어떻게 10마리 넘게 상대하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손에서 영롱한 빛이 떠올랐다.
"보채기는. 킥. 안 그래도 준비 끝났어."
사방이 찬란한 빛으로 뒤덮이고, 부적이 흩날린다.
'매국노 이능력자 김형준!'
제목부터가 자극적인 게시글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이능력자 김형준은 자숙해야 한다. 자국의 국민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것을 모른 척하고 돈에 팔려, 타국의 재난을 우선시한 그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이능력자인 김형준이 타국의 괴수를 먼저 처리한 것에 대한 항의 글이자 비난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자국의 상황을 모른 척 하고 거액의 의뢰금에 팔려 영국의 몬스터를 퇴치했다는 반박이었는데, 우습게도 동조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미친 거 아냐?"
게시글을 클릭해보던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 형준이 오빠가 얼마나 고생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나대기는."
그녀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아래 김형준 까는 사람들은 봐라.'
그렇게 글을 시작한 그녀는 한참이나 김형준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댓글로 치열하게 싸웠다. 사실 그녀 역시 김형준과 같은 오피스텔에 살면서 안면이 조금 있는 정도였지만, 그의 1등 팬을 자처하는 그녀로서는 이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만, 그의 1등 팬을 자처하는 그녀로서는 이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유명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친근한 김형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괜스레 거들먹거리는 면도 없었고 싸인해달라는 한 마디에 헤벌쭉 웃음을 짓던 그다. 처음에는 가벼운 호기심이었지만 그 뒤로 찾아본 영상을 통해 그가 이능력자이며, 평소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화려하게 매스컴에 공개된 모습과 달리, 그의 전투영상은 항상 처절했다. 특히 용아병이라는 몬스터와의 전투는 각별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한 그 전투를 본 그녀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수없이 나가떨어지면서도 다시금 몬스터에게 달려드는 이능력자들의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다. 김형준 역시 지금은 그의 상징이 된 붉은 갑옷이 잔뜩 우그러지고 뜯겨 나간 채 피투성이가 되어 처절하게 싸웠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고보니 위험지역에서 민간인을 피신시키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무리한 전투를 벌였다는데, 덕분에 개념 없는 리포터와 카메라맨은 그대로 사회에서 매장당해 버렸다.
분기탱천하여 키보드를 두들기던 그녀의 얼굴이 금세 울상으로 바뀐다.
"이씨. 니들이 뭘 알아! 오빠가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그녀의 게시글에 악성 덧글이 폭주한다. 옹호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런 이들은 성향상 열성적으로 덧글을 달지 않았다.
결국 홀로 악플러들과 키보드 배틀을 펼치던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을 어떻게 매도한다는 말인가.
댓글은 이제 정도를 넘어 대한민국의 모든 이능력자들을 싸잡아 욕하고 있다. 무능력자에 선민의식에 절은 이기주의자들. 그것이 악플러들이 주장하는 이능력자의 정체였다.'성남전투의 생존자임. 니들이 그 사람들 싸우는 거 단 한번이라도 봤으면 그런 말 못할텐데. 혹시 그 사람들이 이 글 볼까봐 너무 걱정된다.'
결국 정도를 넘어선 악플러들에게 하나 둘 반박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도 일산 경계선 소탕 작전 목격잔데요. 사람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 당신들은 그 사람들이 무슨 신인줄 아나봄. 그 사람들 몬스터하고 싸우는 거 봤는데 정말 눈물 나더만.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서 피를 흘리면서도 민간인 대피시킨다고 몬스터 속으로 돌격하는 사람들임. 근데 뭐? 매국노에 무능력자? 아무리 개념 없다고 해도 정도를 넘어섰네.'
악플에 반박글. 인터넷 게시글이 온통 이능력자를 옹호하는 이들과 비난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선아야. 뭐해? 나 좀 도와줘. 아냐. 안 울어."
결국 보다 못한 박지영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역시 김형준의 열렬한 지지자인 김선아에게 전화를 했다. 한때 오피스텔에서 같이 살았던 것을 계기로 김형준을 알게 된 이후 두 여자는 그 이후로 쭉 한결같은 김형준의 팬이었다.
"응. 그 동영상 있잖아. 응. 형준오빠. 그거 나는 서울 집에서 나올 때 다 날려먹어서. 응 너 있지? 그것 좀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고 링크 좀 줘. 이유가 뭐냐고? 아 글쎄. 어떤 개념 밥 말아 먹은 것들이 우리 형준 오빠 욕하잖아."
자초지종을 설명하다보니 그녀의 친구역시 광분하며 그녀의 키보드 배틀에 합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창 치열하게 서로를 비난하고 반박하고 있던 네티즌들은 새롭게 올라온 게시 글을 보고는 또 다른 전투장으로 삼기 위해 마우스를 움직였다.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의 전투장면 - 주의 무삭제본, 혐짤주의.'
게시글을 클릭한 네티즌들은 첨부된 여러개의 동영상들을 보고 하나씩 재생을 눌렀다.
링크된 동영상에는 김형준 뿐만이 아닌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의 전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혐오스러운 장면 주의라는 제목처럼 그 어느것도 편집되지 않은 전투장면이 고스란히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어딘가의 병원으로 보인다. CCTV 화면인지, 흐릿한 화면속에서 붉은 갑옷의 인물이 흉측한 괴물 두 마리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다. 결국 두 마리의 도깨비와도 비슷한 괴물들을 처리한 붉은 갑옷의 인물은 전투중 큰 상처를 입었는지 그대로 벽을 기댄 채로 의식을 잃었다. -김형준, 어느 병원에서 4등급
몬스터와 전투.
또 다른 영상에서는 아마 서울 탈출 작전으로 보인다. 길게 늘어선 피난민 행렬과도 같은 탈출자들의 저 뒤편에서 빛무리가 솟구치고 비명과 괴성이 터져 나온다. 핸드폰으로 찍은 화면인지 흔들림이 심했지만 영상을 알아볼 수 없을 나온다. 핸드폰으로 찍은 화면인지 흔들림이 심했지만 영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점점 비명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촬영자의 바로 부근에 무언가가 쿵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화면이 움직이고 날아온 물체를 비춰보니 피투성이의 여자다. 한쪽눈이 뭉개지고 왼팔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상태의 여자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촬영자가 놀라서 그녀에게 접근하니 그녀는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대열의 후위로 달려갔다.
'시간을 많이 벌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서둘러달라고 말해주세요.'
-대한민국 유니온 인천지부 대피작전 중. 이능력자 전원 사망.
그렇게 올라온 동영상에는 하나같이 이능력자들의 처절한 전투장면들이 찍혀 있었다. 누구 하나 몸 성하게 싸우는 이가 없었으며, 전투 직후에는 극심한 피드백에 의식을 잃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박지영은 일전에도 수없이 봐왔던 영상이었건만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씨. 니들은 사람도 아니야. 어떻게 욕할 사람이 있고 욕 안할 사람이 있지."
역시 악플러에게는 답도 없는 것인지, 그 영상을 보고도 몇몇 인물들은 악플을 계속해서 써나갔다.
'현재 법무법인-송해에서 근무하는 변호사입니다. 해당 댓글들은 반사회적 게시물이자 이능력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간주되어 사이버 수사대에 사건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이능력자들 중 누군가의 개인변호사라고 자신을 밝힌 변호사의 게시글에 악플러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뒤로 달리기 시작한 댓글들은 온통 이능력자들에 대한 옹호글들이다.
'영웅 영화의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도 무적은 아니구나. 어떻게 보면 이능력자로 태어난 게 불쌍해 보일 정도다.'
박지영은 눈물을 훔치며 김선아에게 받은 자료들과 동영상을 각종 싸이트에 퍼 나르기 시작했다.
김형준과 같은 오피스텔에서 살았던 인연으로 시작된 박지영의 행보는,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달궜다. 그간 간간히 제시되었던 이능력자의 테러리스
트취급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들은 새롭게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대우받았다. 거기에 더해 테러리스트 기사를 써냈던 이들을 싸잡아 음모론을 제시하는 의견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화제가 된 동영상이나 자료들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간 중간에 누군가의 세련된 편집까지 거치면서 하나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방대해진 자료들은 서버가 폭주할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Bravely, Honorable, Devotional.'
(용감하고, 고귀하고, 헌신적인)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동영상은 각국의 이능력자들에 대한 인식을 호의적으로 바꾸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으아아아! 제가 독자님들께 신뢰를 잃었군요. 연참 약속하고 휴재한 적이 많으
니 죄송할 뿐입니다.
앞으로는 불구덩이 빠져들더라도 필사의 각오로 업뎃 하도록 하겠습니다. 껄껄.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은 늘 저에게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