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11화 (111/223)

< --  2-3. 늪지대의 거인과 사악한 마법사.  -- >

점점 거대해져가는 그렌델을 흡혈목의 뿌리와 줄기가 휘감았지만 부질없었다. 가닥 가닥 끊어지고 흩어지는 뿌리는 도리어 그렌델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김형준도 템플러들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캬아아악!"

마침내 성장을 멈춘 그렌델은 원래의 크기보다 두배는 거대해져 있었다. 크기만 커진 것은 아닌지, 한층 흉포해진 외모와 기세다.

"제길, 어쩐지 쉽다 했어."

1등급 몬스터 치고는 쉽게 끝나간다 했더니 역시나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김형준은 이를 악물었다가는 소리 쳤다.

"도망쳐요!"

더 이상 템플러들이 남아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변이하기 전의 그렌델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렌델을 상대하기에는 원탁의 기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위험 너무 컸다.

그의 고함소리에 템플러들이 하나 둘 자리를 이탈한다. 본인들이 느끼기에도 자신들이 남아 있어봐야 짐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토를 다는 이 하나 없다.

템플러들의 기척이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김형준은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흡혈목의 통제를 거둬버렸다.

그오오오오.

입도 없는 흡혈목이 기괴한 울림소리를 토해냈다. 한동안 김형준 탓에 억제되었던 뿌리의 확장이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된다.

줄기와 몸통이 더욱 무성해지고, 그 빛이 더욱 섬뜩해진다. 흡혈목 역시 그렌델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저 굵고 거대하기만 했을 뿐인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다.

흡혈목에 대한 통제를 버린 김형준은 미스틸테인을 찾았다. 정신을 집중해보니 그렌델의 몸에서 빠져나온 미스틸테인은 늪의 어딘가에 버려져 있는 듯했다. 마음속으로 미스틸테인을 떠올렸다. 그것만으로도 늪에 쳐박혀있던 미스틸테인이 김형준의 손으로 돌아온다.

미스틸테인.

그저 전설의 무구인줄 알았더니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 많은 모양이다. 그저 생명력의 상징으로 불리우던 무구라길래 자신과 궁합이 맞을 것 같아 이를 선택한 김형준이었다. 아니, 보고에 들어간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으니 어쩌면 겨우살이의 가지가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운명이었으리라.

손에 쥐어진 미스틸테인의 모습을 살펴본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무성했던 줄기의 새싹들이 온데간데없다. 앙상한 마른 가지의 모습에 김형준은 시험 삼아 생명력의 일부를 불어넣어 보았다.

바싹 말라있던 줄기에 윤기가 감돌고 푸른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역시나 생각대로의 반응인지라 김형준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그렌델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렌델은 변화한 몸에 적응을 하려는 것인지, 이리 저리 몸을 비틀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장난스러운 손짓과 발짓을 하던 그렌델이 흡혈목을 노려본다.

흡혈목이 방금 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을 기억하는지 성난 눈빛으로 씩씩

거리던 그렌델이 뛰어올랐다. 그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도약력으로 날아오른 거인을 흡혈목의 줄기가 감아간다. 하지만 미처 그 줄기들이 거인의 몸에 닿기도 전에 거인의 주먹이 휘둘러진다.

단지 주먹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대기가 사납게 찢어발겨지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거인을 향해 내쏘아지던 줄기들이 단숨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단순한 성장이 아니었는지 더욱 흉포해진 거인이 그렇게 몇 번인가 흡혈목을 향해 도약했다. 하지만 흡혈목도 그런 거인을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세 번째 도약을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렌델은 별안간 쿵소리를 내며 흉하게 나자빠졌다.

이제까지 보였던 줄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줄기 한가닥이 그렌델의 발목을 후려친 탓이다. 마치 촉수처럼 꾸불거리던 줄기가 쓰러진 그렌델을 후려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김형준은 할 말을 잊었다. 마치 신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지 않은가. 거인가 거목의 싸움. 그 지독스러운 비현실감에 김형준은 차라리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사실 그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흡혈목이 저 정도로 성장할 줄은 몰랐다. 그가

만들어낸 무언가라기보다는 생명체 자체로 보일 지경인 흡혈목이다. 가시찔레 꽃과 융합한 그의 이능이 끔찍한 존재를 만들어냈다. 저래서야 누가 괴물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별이 안 가는 상황이다.

새삼 저 거대한 존재들의 전투에 자신이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날아올랐다. 그래봐야 흡혈목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존만 그는 이를 악물고 날아올랐다. 그래봐야 흡혈목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 무리한다면 다시 통제에 두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마치 힘 대결이라도 하듯 거인이 흡혈목의 줄기를 부여잡고 있던 그렌델이 근육을 한껏 부풀렸다. 거구에 비해 앙상했던 팔뚝이 금세 부풀어 올라 줄기들을 뜯어냈다.

그오오오오!

고통이라도 느끼는 지 흡혈목이 기이하게 울어댔다. 그렌델은 양손으로 가슴을 두들기며 포효했다. 하지만 그렌델은 한순간의 승리감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방금 전보다 더욱 많은 줄기들이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때 김형준이 그렌델을 향해 날아들었다.

베오울프는 입을 쩍 벌렸다. 1등급 몬스터라고 했을 때, 단순히 힘이 좀 강한 몬스터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렌델은 그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격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강력했던 놈이 거대화를 이루며 더욱 흉폭하게 날뛰고 있다.

거기에 맞서는 1등급 이능력자는 어떤가. 그의 눈에는 동양에서 날아온 마스터 킴이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하늘까지 닿은 거목을 소환하고 붉은 날개를 펼친 채 거인을 몰아 붙인다.

마치 신화 속의 라그나로크, 신들의 전쟁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눈에 마스터 킴이 튕겨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렌델의 어깨를 공격해가다가 도리어 반격을 당해 멀찌감치 늪지대에 쳐박힌다. 하지만 늪에 쳐박히는 것보다 배는 빠르게 다시 그렌델을 향해 달려든다.

"사람이 아니야..."

보기만 해도 질리는 전투에 베오울프는 그저 몸을 움찔거릴 뿐이다.

이미 몸을 빼낸 다른 템플러들과는 다르게, 기회를 보다가 한 손 거들 작정이었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끼어들만한 전투가 아니다. 섣부르게 저 곳에 접근했다가는 시체조차 온전치 못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베오울프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한번은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눈을 빛낼 뿐이다.

그 무렵 김형준은 전투가 막바지에 이름을 느끼고 있었다. 흡혈목의 줄기에 돋아난 가시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잔뜩 입은 거인의 몸놀림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반대로 거인의 피를 게걸스럽게 흡수한 흡혈목은 한결 더 맹렬하게 거인을 공격했다. 이제 끝낼 때가 왔다.1등급 몬스터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물론 대한민국에 웅크리고 있는 괴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약체였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그조차 버거웠다. 그 예로 지금 그는 생명력의 연결이 조금씩 끊기고 있었다.5미터는 넘게 자라났던 미스틸테인도 어느 사이엔가 그 반절도 안 되는 크기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선명하게 빛나던 붉은 날개도 이제는 그 빛깔

이 탁하기만 했다.

더 이상의 전투를 유지했다가는 도주할 힘도 남아있지 않을 판국이다. 그는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임을 느끼고,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을 가득 모아 미스틸테인에 불어넣었다. 겨우살이의 가지가 크기가 줄어들기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진다. 푸르게 돋아난 새싹들 끝에 꽃이 피어오르고 미스틸테인이 빛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현상에 김형준은 눈을 크게 떴다. 손에 쥐고 있는 무기의 존재감이 갑작스럽게 거대해졌다. 양손이 무겁다.

방금 전과 다른 점은 그 크기가 조금 늘었을 뿐인데, 김형준은 왠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무기가 두렵게 느껴졌다.

"키아아아악!"

때 마침 그렌델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는 언제까지고 미스틸테인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그렌델은 흡혈목의 줄기에 온몸을 속박당한채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흡혈목 역시 성한 줄기가 없고, 그 본체에도 드문 드문 구멍이 나 있는 것이 이제 힘이 다한 듯 하다.

"으아아아아!"

김형준은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그렌델에게 달려들었다. 그렌델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난장이를 보고는 온몸을 비틀었다.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자신을 옭아맨 성가신 줄기들은 이번만큼은 풀리지 않았다. 스스로가 지친 것인지, 아니면 거목 역시 마지막이라고 느낀 것인지. 붉은 줄기는 단단하게 거인을 동여맸다.

"키헤에에에에에!"

그렌델이 울부짖었다. 이제까지의 흉폭함은 온데간데없고 겁에 질린 듯한 애처로움 비명소리다. 거인의 눈에 미스틸테인의 모습이 가득 들어온다.

베오울프는 손에 힘을 불끈 줬다. 이 먼 곳에까지 느껴지는 비장함에 저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거목이 거인을 휘감고, 마스터 킴이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끔찍한 비명. 한참이나 이어지던 비명이 끝나고, 길었던 전투도 끝이 났다.

"마스터 킴!"

거인의 머리통에 꽃힌 미스틸테인을 의지한채 간신히 제 자리에 서 있던 마스터 킴이 힐끗 그를 바라본다. 언제 풀렸는지 피바라기라고 불리던 갑옷은 온데간데없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숨을 몰아쉬는 그가 있다.

왠지 모르게 장엄하게 보이는 그 광경에 베오울프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거인의 머리통을 꿰뚫은 창 한자루와 피투성이의 남자. 그 뒤로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거목 한그루.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마스터 킴이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뻥긋 거린다. 힘이 다한 모양인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려가니 그의 몸이 천천히 기울

어진다.

"마스터 킴!"

그렌델과의 전투는 끝났다. 런던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거인은 그날 김형준의 손에 의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손에 의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 작품 후기 하루 휴재 했네요;;죄송할 뿐입니다. 연참으로 벌충하겠습니다.

그렌델 드디어 죽었습니다. 고민 많이 했는데 결국 이렇게 죽네요. ㅎㅎㅎ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휴재를 부득이하게 한 이유는 제가 신작을 새로 파서요. 전에 연재하던 브레이크다운을 각색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으로 리메이크했습니다. 그간 답답한 주인공에 지치신 분들을 위해 쓰기 시작한, 포풍이기적인 생존-게임-퓨젼물입니다. 비축분을 일정량 만들어두고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니 마음

임-퓨젼물입니다. 비축분을 일정량 만들어두고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니 마음 놓고 선작하셔도 됩니다. 으하하하하!

제목은 '도살자'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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