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2. 비상. -- >
바로 곁에 있던 해군이 나자빠질 정도로 강렬한 기세를 흘리며 날아오른 김형준은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괴조를 향해 날아들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욕을 내뱉는 게 하늘에서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던지 그의 기세가 사납기 그지없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괴조는 제 발로 찾아오는 먹잇감을 보고 딴에는 기분 좋은 괴성을 질렀다.
"이 새끼야! 좋냐?"
자신을 향해 쩍 벌어진 괴조의 주둥이를 본 그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도약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빠르게 쏘아 올라가던 그의 몸이 주춤거린다. 허공중에서 정지한 그를 본 괴조가 애가 타는지 더욱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마침내 괴조의 부리가 그의 몸에 닿을 듯 접근했을 때, 김형준의 등 뒤에서 붉은 날개가 펼쳐졌다. 하늘에서야 워낙 바람도 강하고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아 제 구실을 하지 못한 날개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거리낄게 없는지 힘차게 홰를 쳤다.
허공중에서 멈춰섰던 그의 몸이 빠르게 선회하며 괴조의 주둥이를 피한다. 거
대한 부리가 기이한 소음을 내며 닫히고 김형준의 손이 그런 괴조의 부리를 타고 올라간다. 마치 디딤돌이라도 밟고 올라서듯 괴조의 부리를 타고 올라선 그가 양손을 들고 번쩍 오른손을 힘차게 뒤로 뺀다.
"싸다구나 쳐 맞아라!"
스트레스가 상당했는지 주절주절대는 그의 오른손이 붉게 빛나다가 빠르게 쏘아진다. 꽤에에엑!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괴조는 김형준의 공격에 저 멀리 날라 간다. 거대한 날개를 펼칠 틈도 없이 힘없이 날라가던 괴조가 저 멀리 있던 또 다른 구조함선을 향해 추락한다.
"어이차!"
막 구조작전을 위해 나와있던 함선을 덮쳐가던 괴조의 거구 곁에 김형준이 나타났다. 붉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든 그가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괴조를 들이받았다.
다시 한 번 괴조가 끔찍한 괴성을 내지르며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김형준이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낼 생각은 없는지, 마치 드리블이라도 하는 축구선수처럼 괴조를 몰고 다니는 그의 공격마다 굉음 내지는 괴성이 터져 나온다.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괴조를 향해 달려들던 영국공군도 구조작업에 한창이던 영국해군도 모두 입을 떡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탄 모함만큼이나 거대한 괴조를 보고 놀란 가슴이 그런 괴조를 가지고 노는 김형준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 심장이 벌컥거릴 지경이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던 것도 잊고 망연자실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어쨌건 괜한 일에 휘말려서 고생 많았어요."
엉망으로 젖은 승무원 복 대신 헐렁한 군복의 상하의를 걸친 쥬디가 어이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덜그럭거리는 붉은 갑옷은 사라지고 처음 만났을 때의 수트차림으로 돌아온 그가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비장한 각오를 다지던 그가 지금은 왠지 모르게 후련한 얼굴이다.
지금은 왠지 모르게 후련한 얼굴이다.
아마 괴조를 퇴치하면서 그간 하늘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을 해소한 듯 보였다.
"네? 네. 미스터 킴이야말로 고생하셨습니다."
뒤늦은 인사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하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주변을 둘러본다. 전세기를 습격한 괴조 탓에 놀란 모양인지 그들이 탄 함선을 호위하듯 늘어선 영국해군 함정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수백 수천이 있다고 해서 2등급 몬스터 하나 막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그들의 호위가 그저 요란스럽게만 느껴진 김형준이다.
"영국 한 번 가기 정말 힘드네요."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의 반이면 충분할 거리가 왠지 모르게 엄청나게 길어진 느낌이다. 난생 처음으로 몬스터라는 것을 만나고 거기에 더해 이능력자의 전투를 목격했다.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듯한 기분이라 쥬디 창은 왠지 모르게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네. 원래라면 지금 벌써 공항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그녀의 말에 김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생존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바다에 입수할 때 제법 과격하게 내려 꽂혔으니 부상자가 있을 법도 했지만,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큰 부상은 아닐텐데 누구 하나 나와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조금 기분이 상한 김형준이었지만 그런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어차피 그의 이능력자 인생에 있어 이런 일은 숱하게 겪어왔던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쥬디 창의 기분은 그게 아닌지 저 혼자 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만 김형준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까지 보듬어줄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모른 척하고 함선 너머 자신들이 추락
했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저..."
쥬디 창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마 동료들을 대신해서 사과라도 할 모양인지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을 이어간다.
"다른 사람들은..."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지만 김형준이 단호하게 말을 잘라낸다.
"신경 안 써요. 이런 일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우리들은 당신들 입장에서 보면 그저 사회에 끼어든 이레귤러. '괴물'이잖아요."
무심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저도 모르게 조금이지만 본심이 흘러나와버렸다. 김형준은 스스로도 그것을 느꼈지만 딱히 말을 바로 잡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억울한 기분이야 익숙하고 지금의 이 느낌이 거창하게 상심이나 상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탓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대답에 쥬디 창이 울상을 해보인다.
전세기를 보내 초청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인생도 화려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그의 한마디에 왠지 자신이 죄를 지은 기분이다.
"신경 안 쓴다니까요. 죽다 살아났는데 기분 좋게 갑시다. 우리."
짐짓 익살스럽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니 그냥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그게 더 죄스러워서 그녀는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태운 해군의 함선이 어느덧 육지에 다다르고 있다. 끝없이 보이던 수평선이 사라지고 저 멀리 솟아오른 대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 오랜 시간을 함선 위에 머문 것도 아니었지만 쥬디 창은 왠지 모를 반가움에 함성을 질렀다.
"우와! 드디어 도착했어요!"
방금 전까지의 어색한 분위기를 그새 잊고 천진난만하게 소리치는 그녀를 따라 김형준의 입꼬리에도 미소가 어렸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 킴."
항구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가 유창한 한국어로 그를 환영한다. 쥬디 창과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배에서 내리고 있던 김형준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맞아준 사람들을 찾았다.
백발이 성성한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늘씬한 미녀가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저희는 템플러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오시는 길에 사고가 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배에서 내릴 때 그에게 아는 체를 한게 중년의 남성인지 그가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다. 사실 연고 하나 없는 영국에서 그를 반길 이라고 해봐야 영국정부 아니면, 영국의 이능력자 단체일 뿐이라 내심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던 그가 마주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그가 짧은 한마디로 인사를 대신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그의 아내로부터 검맥의 우두머리 다운 처신을 하라는 당부를 들은 탓에 뭔가 어색한 인사다.
"저희가 철저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만나기도 전에 큰 실례를 했습니다."
제법 정중한 사과에 김형준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흔들었다.
"사고일뿐인데요."
평소라면 주절주절 떠들었겠지만, 위치에 맞는 말투라는 것이 몸에 베지 않은 그가 차라리 말을 아끼기로 했는지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런 그를 바라보던 템플러의 인물들이 내심 유쾌한 성격이라고 들은 김형준의 정보를 떠올리고 있을 때 쥬디 창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보도록 해요."
김형준은 모르고 있었지만 템플러에서 마중나온 이들의 몸에서는 꽤나 위엄있
는 존재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형준 자신이야 본인 역시 1등급 이능력자인데가 허준영이니 전지현이니. 그들의 존재감을 겪어왔던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뿐이지만, 쥬디의 입장에선 함께 있는 것만으로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풍기는 이질적인 분위기와 존재감에 압도된 그녀는 예상보다 일찍 작별을 고했다.
"네. 쥬디 그럼 연락할 테니까 그때 꼭 다시 봐요."
자세한 그녀의 속마음까지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불편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었던 그가 아쉬운 얼굴로 작별인사를 한다.
"네. 그럼 다시 한 번 감사해요."
육지로 오는 내내 했던 감사인사를 다시 한 그녀가 뒤도 보지 않고 사라졌다. 인사를 마친 상태긴 하지만 돌아볼 생각도 없이 바로 제 갈 길을 가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서운한 기색을 띤다. 하지만 서구적인 정서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뿐 그녀가 그를 싫어해서 그리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그저 쓴웃음만을 지을 뿐이었다.
김형준의 입장에서야 그저 짧은 만남과 헤어짐이 아쉬워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었지만, 그를 보고 있는 템플러들은 단단히 오해를 하고 말았다.
김형준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 오해를 한 것이다. 게다가 이미 결혼도 했다고 알고 있는 그였건만 저렇게 다른 여자와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정보에 호색함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이미 미국에서 그를 스카웃하기 위해 접근했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들은 돈에도 움직이지 않던 그를 움직일 방법을 찾았다고 단단히 착각을 하게 되었다.
"오는 길에 일이 많아 피곤하실텐데 이쪽으로 오시지요.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심으로야 열심히 계산기를 튕겨대는 그들이었지만 속마음을 감춘 얼굴은 어디까지나 원로에 피곤할 김형준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그런 그들을 따라 이동하던 김형준은 문득 자신들을 빠르게 지나쳐가는 인파의 무리에서 자신이 직접 구조해낸 생존자들을 발견했다.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눈을 피하고 빠르게 그를 지나쳐가는 그들의 모습에 김형준이 고소를 지었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같은지, 한국에서도 있었던 노골적인 무시가 이곳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죽을 뻔 한 것을 살려준 것도 그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위기에 빠질 일도 없었을테니 그들의 원망이 영 방향을 잘못 잡은 것만은 아니리라.
아니리라.
게다가 김형준의 모습은 같은 인간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이질적인 부분이 있었으니 그들의 그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반인 그들이 어디에서 집채보다 커다란 괴조를 만나고, 붉은 갑옷에 날개를 펼친 이능력자를 보겠는가. 그저 지금은 쇼크가 지나쳐서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겠지 하고 생각한 그가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를 안내하고 있던 템플러 소속의 이능력자들이 그의 속을 짐작하고 덩달아 쓴 웃음을 지었다. 지나간 인파 중에 섞여 있는 사람들 몇이 딱 보아도 이번 사건의 생존자들로 보인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머리며 복잡한 표정이며. 한국이나 영국이나, 그들은 사회에 끼어든 이레귤러일 뿐이다.
============================ 작품 후기
이번 에피소드 끝!
다음편부터는 그렌델과의 박터지는 전투!
거인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함께행복하기님 부디 한시라도 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일이 일이니만큼 어설픈 위로도 못드립니다만 그저 삼시세끼 잘 챙겨드시고 몸 상하시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