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01화 (101/223)

< --  2-2. 비상.  -- >

물었다. 잠시 사람들을 살펴본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탈출합시다."

자못 비장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쥬디 창이 덩달아 입술을 악다물었다.

"저야 상관없지만 이대로 더 올라가다간 다 죽게 생겼어요."

무의식중에 본심이 나온 것일까. 나름 태연하다 생각했던 김형준의 초조한 내심을 들여다본 쥬디의 얼굴이 금세 울상을 지었다.

"아. 방금 건 통역하지 마요. 어떻게 되든간에 저와 쥬디는 살아남을 겁니다."

조금 냉정한 말이었지만 모두가 탈출할 수 없다면 그중 확실하게 살아남을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잔인한 상화이었지만 그에게는 익숙한 일. D섹터를 넘나들며 무수히 많은 희생자를 보았을 때마다 생존자들의 역할은 그들의 유언을 들어주는 일, 이제 와서 얼굴 한번 봤을 뿐인 사람들 중에 누군가를 고르라면 당연히 쥬디를 고르겠다 생각한 그였다.

혹시 모를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의식적으로 피했던 그였던지라 이제 와서 새삼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속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는 단호하게 나가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마지막까지 기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장을 억지로 끌어내 비상문에 다가가니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돌풍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세찬 바람소리에 비명이 금세 먹혀버렸지만 사람들의 심정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에 비명이 금세 먹혀버렸지만 사람들의 심정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김형준 역시 세차게 몸을 흔드는 바람에 이를 악물었다.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고 바람은 거세다. 기내에 있음에도 숨쉬기가 힘들 정도인데 과연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

각성하면서 거의 무한에 이르는 힘을 얻은 그였지만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힘이 먹혀들지 의구심이 들었다. 몬스터 대군과 전투를 하라면 차라리 자신의 이능과 유물의 힘을 이용해 중간중간 기력을 보충할 수라도 있지. 지금 상황에선 순전히 본인의 생명력만을 이

용해야 할 판국이라 그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아닌 게 아니라 방금 전의 비행만 해도 꽤나 기력이 소모됐던지라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안전하게 지상에 닿을 수 있는지 걱정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었다.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기체가 굉음을 토해낸다. 당장이라도 동강이 날 것 같은 기체의 요동에 그는 이를 악물고 주변사람들을 둘러봤다.

겁에 질린 사람도 있고, 체념한 표정의 사람도 있다. 쥬디를 포함한 몇몇 인물들만이 불안한 눈빛 뒤에 각오를 다지고 있다.

"시간이 없네요. 최악의 상황이지만 한번 살아남아봅시다."

그의 중얼거림은 이내 바람소리에 먹혀버리고 사람들은 그저 그의 입모양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갑니다."

짧은 한마디와 동시에 그가 손에 감아쥐고 있던 밧줄을 와락 당겼다. 그리고는 몸을 날렸다.

"꺄아악!"

"으아아악!"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김형준을 따라 줄줄이 기체 밖으로 끌려나왔다.

거센 바람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하다. 만피트가 넘는 상공의 희미한 산소와 차가운 공기가 금세 그를 덮쳤다. 잠시간의 부유감을 느끼던 그는 빠르게 추락하는 아찔한 감각에 정신을 다잡았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끔찍한 공포심에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져도 날개를 펼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당장이라도 날개를 피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아직은 아니야.'

지금 당장 날개를 폈다가 정작 지상에 도달할 무렵에 자신의 기력이 남아있을지 의문이었다. 까마득한 아래를 바라보던 그가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줄에 엮인 굴비처럼 줄줄이 딸려내려오는 사람들 중 태반이 기절이라도 한 듯 힘없이 추락하고 있다. 밧줄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김형준이 손쓸 틈도 없이 허공에서 미아가 되버렸으리라.

몇몇이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거센 바람에 얼굴 근육이 마구 흔들리는 사람들,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는지 괴로움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들이다.

커다랗게 보였던 전세기가 금세 멀어지다가 작은 점으로 변해버린다. 그가 가장 우려했던 상황, 괴조가 그들의 탈출을 눈치 채고 난동을 부리는 것만큼은 피한 듯 보였다.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조금은 안도했다. 혼자라면 모를까. 이렇게 주렁주렁 짐들을 매단 상황에서 괴조의 습격이라도 받았다가는 전멸이다. 물론 자신만은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게 혼자 살아남아서야 꿈자리가 사나우리라.

한참을 추락하고 있는데 용케 정신을 붙잡고 있는 금방의 여승무원이 입을 달싹거린다. 바람에 우스꽝스럽게 펄럭이는 입가 탓에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투 콜드? 춥다고?'

그제야 사람들을 살펴보니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전세기에서 탈출하면서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던 이들마저 의식을 잃은 듯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저 공포심 때문에 기절했는가하고 생각한 그였지만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다.

'제길. 생소한 상황이라 당황했어.'

만피트가 넘는 상공에서 시도한 탈출이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시도한 탈출에 일반인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거센 바람 탓에 눈뜨기는커녕 숨쉬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쥬디를 포함한 승무원들이 견딜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 둘 의식을 잃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자신의 기운을 이용한다면 그들이 아무런 방비 없이 혹독한 창공에 노출되진 않겠지만, 그렇게 기운을 소비했다가 정작 필요할 때 기력이 달리는 상황만은 사절이다.

허공중에 몸을 뒤집어 지상을 바라봤지만, 지상과의 거리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르게 기력을 낭비하는 것이 현명한 짓인지 갈등되었다. 그에 대한 믿음 탓인지 마지막까지 정신을 붙들고 있던 쥬디가 의식을 잃은 것을 발견한 그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돼는 일이 하나도 없냐아아아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한마디를 길게 남긴 그가 온몸을 활짝 펼쳤다.

그의 몸에서 붉은 줄기들이 솟아오른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선들이 각자의 몸을 단단히 묶은 밧줄을 타고 기어 올라간다. 쥬디, 기장, 금발여승무원... 사람들의 몸을 꿰뚫은 가는 선들이 다시 그 머리를 틀어 김형준의 오른손을 꿰뚫었다. '제길! 제길! 제길!

"그의 생명력이 줄기를 타고 흘러나가 승무원들을 거쳐 자신에게 돌아온다. 빨아들일 수 있다면 나눠줄 수도 있다. 그간의 수련을 통해 깨달은 그의 이능의

또 다른 효과. 최대한 억누르고 억눌러 미세한 기운을 흘려보낸다고 했지만 생명력의 흡수와 방출만큼은 늘 그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이제는 자신의 아내가 된 검후의 경후 역시 그랬고 이번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터라 그의 정신이 급격하게 피로해진다.

김형준은 혹시라도 붉은 줄기의 고리를 통해 순환하는 자신의 생명력에 또 다른 이들의 생명력이 섞여들까 노심초사한다. 한번 나간 생명력은 처음 나갈 때와는 다르게 미세한 양이 돌아올 뿐이었지만 지금 자신의 기력을 아꼈다가는 승무원들이 몰살할 판이다.

미세하기만 했던 생명력의 흐름이 점점 거세진다. 이미 김형준의 통제를 벗어난 생명력의 순환 탓에 가늘기만 했던 줄기들이 금세 꿀렁이며 굵어진다. 자신이 예상했던 가장 최악의 경우인지라 눈앞이 깜깜해진 그였지만 파랗게 질렸던 사람들의 안색이 제 빛깔로 돌아오는 것을 위안 삼았다.

원래 좋은 일은 드물게 오고, 나쁜 일은 한번에 온다고 했던가.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보고 있던 그의 눈에 저 멀리 빠르게 다가서는 점 하나가 보인다. 깨알만큼 작았던 그림자가 금세 커다래지며 그 정체를 드러냈다.

"아! 또 왜!"

처음부터 전세기보다 그 안의 승무원들이 목적이었는지, 뒤 늦게 사람들이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괴조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다.

그는 당장 생명력의 고리를 끊으려고 노력했다. 통제를 벗어나 이제는 제 멋대로 고리를 순환하던 생명력의 띠가 주춤주춤 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돌린 그였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콰앙!

빠르게 접근하던 괴조를 바라보던 그의 눈이 다시 크게 뜨였다. 빠르게 접근하던 괴조의 후미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더니 거대한 괴조의 몸이 이리 저리 흔들린다.

그렇게 몇 번인가 폭발음이 터져나오고 괴조가 휘청거리는 사이 김형준은 저 멀리 접근하는 전투기 세기를 보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채 철수하지 않았던 영국 공군이 미사일이라도 퍼부은 듯 했다. 몬스터로 보이는 괴조가 일반적인 미사일 공격 따위에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잠시만이라도 시간을 번다면 그걸로 족했다.

잠깐 사이에 그렇게 천당과 지옥을 몇 번이나 왕복한 그는 다시 몸을 뒤집었다. 뒤 늦게 끊어진 생명력의 고리를 느끼며 날개를 핀다.

피라도 잔뜩 머금은 듯 선명한 선홍색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그리고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꾸물거릴 틈이 없다. 허공에서 괴조그리고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꾸물거릴 틈이 없다. 허공에서 괴조에게 공격당하느니 차라리 지상에 추락하는 게 나을 판이다.

"어? 꺄아아악!"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껌벅이던 쥬디 창이 그 어마어마한 추락속도에 비명을 지르곤 다시 의식을 잃었다.

까마득하던 지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육지라고 생각했던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전세기는 바다 위를 날고 있었는지 저 아래가 온통 파랗기만 하다.

"어디의 군대와는 다르게 행동이 빠른데?"

파란 바다에 드문드문 보이는 점들을 본 그가 중얼거렸다. 아직까지는 거리가 꽤 있던지라 정확하게 식별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다의 이곳 저곳에 넓게 포진한 함선들이 보였다. 아마 전세기에서 연락을 받았던지, 공군의 연락을 받았

던지. 구조작업을 도울 생각으로 나온 영국 해군으로 보였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상황이었지만 최악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더욱 속도를 냈다.

폭발음 대신 들리기 시작한 콩 볶는 듯한 소리. 아마 탄두가 떨어진 전투기들이 기총사격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김형준은 날개를 잔뜩 뒤로 재끼곤 빠르게 추락한다.

"야! 온다!"

거대한 회색빛 함선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영국해군이 소리치자 갑판이 분주해진다.

"우아아! 그냥 내리 꽃히는데?"

위급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생전 보지 못한 장관이라 감탄마저 섞인 해

군의 말에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하늘을 바라본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채 주렁주렁 사람들을 매달고 추락중인 사람들의 모습에 침음성이 절로 나왔다.

갑판의 여기 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멀게만 보였던 사람들이 금세 가까워진다.

"저.. 저!"

저대로 떨어졌다가 그대로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누군가가 비명을 지를 무렵, 한껏 제껴졌던 붉은 날개가 좌우로 활짝 펴진다. 급속도로 추락속도가 느려졌지만 여전히 빠른 속도다. 붉은 갑주에, 붉은 날개. 천사가 아닌가 싶은 존재가 양손을 앞으로 뻗고 그 손에서 붉은 덩어리들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반동이라도 이용해서 속도를 줄일 생각이었는지 추락하던 사람들의 속도가 다시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 어! 떨어진다!"

그래도 결국은 속도를 완전히 줄이는데 실패했는지 붉은 날개의 천사와 사람들

이 바다에 쳐박힌다.

쿠앙!

마치 어뢰라도 터진 듯 높게 솟아오르는 물기둥.

"뭐해 이 병신들아! 구조해!"

누군가의 사나운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사람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저 속도로 떨어져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그것부터가 의문이다.

구조 헬기가 떠오르고 보트가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갑판에 모인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사람들이 추락한 지점을 살펴보는데 갑작스럽게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사람들이 놀랄 틈도 없이 물기둥과 함께 솟구친 뭔가가 바로 근처에 있던 해군의 함선에 올라탔다.

"개새끼! 이제 죽어보자!"

날개는 사라졌지만 온통 붉은 갑주가 인상적인 존재가 이를 갈았다. 바로 곁에

있던 해군 한명이 놀라 입을 어버버 거린다.

그리고 저 멀리 사람들의 추락지점에 다가선 함정들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허겁지겁 물에 뛰어든 구조대들이 각기 사람들을 안고 함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W.. What?"

알아듣지 몰할 말을 중얼거리는 괴인의 곁에 있던 해군은 갑작스레 드리워진 그림자에 깜짝 놀라 허공을 바라봤다. 거대한 매 한 마리가 그가 탄 함선 위로 내리 꽂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비명을 질렀다.

"이 비둘기만도 못한 새끼야!"

그리고 그의 바로 곁에 있던 붉은 갑옷의 괴인이 굉음과 함께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 작품 후기 전개가 늘어진다는 말씀이 있으셔서 조만간 전체적으로 수정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쿠폰 선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울부짖는 새벽'은 노블 글이 아니라 일반 글입니다. 노블란에서 검색하면 아마 안 나오지 싶습니다. 출판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처음부터 일반연재로 연재하는 글입니다요. ㅎㅎㅎ미스테리 오컬트 판타지이니 취향 맞는 분들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함께행복하기님 요즘 공허하시다니 일신상에 우환이라도 있으신지요? 좋은 일만 가득하셔야 할 텐데, 혹여 무슨 일이 있으시다면 힘내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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