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2. 비상. -- >
전세기를 마주 보며 빠르게 달려들던 괴비행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상대적으로 다른 전투기에 비해 짜리몽땅한 모습을 한 전투기, 수직이착륙기 해리어다. 영국 공군의 제식기로 알려진 해리어기 네기가 빠르게 전세기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영국 공군인가?"
그 역시 인터넷이나 영화를 통해 영국 공군의 제식 전투기라고 들은 바 있었던 전투기의 모습이라 반색을 했다. 만피트 상공에서의 몬스터와의 조우가 난감하던 차라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였던지라 해리어기 편대와의 조우가 반갑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기체가 우그러지도록 움켜쥐고 있는 괴조의 모습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 김형준은 다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 오히려 짐이 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전투기의 등장에 괴조가 자극을 받
았는지, 예의 그 기괴한 괴성을 내지르며 날개를 퍼덕였다. 거대한 날개가 일단 퍼덕이기 시작하자 그 여파가 얼마나 강한지 나란히 비행중이던 김형준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우아! 강한데?"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내뱉고 나니 정말 그 바람이 강한지라 그는 전세기의 동체 옆에 바짝 몸을 붙였다. 그렇게 괴조와의 사이에 전세기를 두자 한결 비행이 쉬워진 모양인지 그가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보인다.
쐐액하는 굉음과 함께 전투기들이 전세기를 지나쳐간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전세기를 지나친 전투기들이 급격하게 방향을 트는 모습이 보였다. 일사분란하게 방향을 꺾은 전투기들이 전세기의 후미에 자리를 잡는 것을 바라보던 김형준은 문득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그리하고 있었는지 쥬디 창이 그를 향해 손짓하며 뭐라 뭐라 입을 놀려대는 것이 보였다. 마치 그를 부르는 듯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 그가 전세기의 동체를 더듬거리다가 비상문을 통해 기내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예요?"
기내에 들어선 그가 덜그럭거리며 갑주에 맺힌 물방울들을 털어낸다. 그 와중에도 기체는 괴조의 날개짓에 맞춰 상하로 요동치고 있었다.
"아. 영국 공군이 미스터 킴과 대화를 요청했어요."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영국 소속의 전투기들이었던 모양이다. 쥬디 창은 마치 놀이기구에라도 탄 듯 좌석을 꼭 붙잡고 말했다.
"미스터 킴의 계획이 있다면 거기에 맞춰 움직이겠다고 해요."
게다가 그의 우려처럼 영국 공군 역시 막상 전세기에 접근 했으나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할 순 없었는지 그와의 통신을 요청했다는 말이다.
잠깐 생각에 잠긴 그는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는 일개 이능력자에 불과하다.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런 공중전에 대해서 계획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계획이라. 원래는 벌레들을 떼어내려고 했는데 이제 벌레가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지금 이대로라면 괴물이 기체를 놓아도 문제, 안 놓아도 문제예요."
고개를 가로젓는 그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
던 김형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상이라면 몰라도 이런 공중전이라니,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영국 공군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을 판입니다. 먼저 물어봐주시겠어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투기들의 움직임에 맞춰 볼 생각을 한 그가 그렇게 말하니 쥬디가 인터폰을 쥐고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잠시 김형준이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오고 가다가 그녀가 김형준에게 말했다.
"공군이 할 수 있는 정도라면 괴물에 대한 요격정도라는데요."
역시나 그의 우려가 틀리지 않았다. 기껏 지원병력이라고 왔지만 그들 역시 할 수 있는 거라곤 괴조에 대한 공격정도다. 한숨을 내쉰 김형준이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다가 한가지 방법이 떠오른 모양인지 빠르게 말을 내뱉는다.
"지금 전세기는 괴물에게 꽉 잡혀 있는 상태예요. 당장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이대로 가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괴조를 떨궈내면 전세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
그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한다. 전투기들이 괴조와 전세기의 하강을 유도하여
고도를 낮추게 만들고 자신이 승무원들을 데리고 탈출한다. 말하다보니 스스로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계획이랄 것도 없는 급조된 생각이었지만 그는 다른 대안이 없음을 떠올리곤 설명을 계속 했다. 그의 계획을 들은 쥬디 창은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별 다른 대꾸 없이 인터폰을 통해 기장에게 설명했다.
역시나 말이 되지 않는 계획인지 설득에 애를 먹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김형준역시나 말이 되지 않는 계획인지 설득에 애를 먹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김형준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떠오르는 것은 없다. 애초에 공중전이라니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지상이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들이받고 시작했을 그였지만 지금은 만피트 상공에 떠 있는 전세기의 승무원들 탓에 발이 묶인 상태다.
"어차피 저희도 기체의 통제를 잃은 상태라 다른 방법이 없으니 시도는 해보겠지만 미친 짓이라는데요."
쥬디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순화를 한 통역인 듯 했지만 김형준은 내색치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말꼬투리 잡을 생각도 없었고.
"지금 이 안의 사람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괴물이 전세기의 허리를 꽉 잡고 있는 상태예요. 너무 심하게 자극했다가는 기체가 반동강 나는 수가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조심해서 유도를 하라고 해주세요."
스스로 말하면서도 자신이 없는 계획이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승무원들을 전부 모아주세요. 아니다. 조종석 쪽으로 모아주세요. 만약의 상황이 되면 제가 전부 탈출 시키겠습니다."
아무리 기체의 통제권을 상실한 상태라고 하지만 파일럿들이 조종실을 비울 수는 없는 터라 그가 그렇게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 쥬디가 다시 빠르게 통역을 한다.
"네. 이제 다 됐습니다. 공군은 3분 뒤부터 작전을 시작한답니다."
손목시계를 잠시 바라보던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그럼 가볼까요?"
"꺄악!"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김형준이 그녀를 안아들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요동치는 기체의 진동 탓에 그녀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할 거라 생각한 탓이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들어 올리는 그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그녀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잠잠해진다.
"차가워요."
만피트 상공의 혹독한 기후에 노출되었던 그의 갑주가 내뿜는 한기에 그에게 안긴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춥더라고요. 바깥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가는 길에 여기 저기 좌석을 붙들고 있는 승무원들을 마치 짐짝 나르듯 어깨에 올린 김형준을 바라보는 쥬디가 다시 고개를 가로 젓는다.
요동치는 진동에도 아무렇지 않게 균형을 잡는 거야 그렇다고 치지만, 다섯이 넘는 성인을 가볍게 옮기는 그의 힘에 약간은 질린 모습이다.
처음에 김형준의 품에 안긴 쥬디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단단하기 그지없는 갑주에 이곳저곳이 결려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피웠지만 그는 그저 조종석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전투기 편대를 이끄는 콜트 중령은 처음 전세를 발견했을 때,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신화 속에서라도 튀어나온 듯 항공기만큼이나 거대한 괴조가 전세기를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지독스럽게도 비현실적인 탓이었다. 게다가 마치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붉은 갑주를 물 샐 틈 없이 둘러싼 기사형상을 한 비행체라니. 그 붉은 날개를 보면 천사라도 강림한게 아닐까 싶은 심정이었다. 비록 그 천사가 붉디 붉은 조금은 불길한 모습이었지만.
그가 전세기에 탑승하고 있던 대한민국 출신의 이능력자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차라리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으니, 그의 편대원들이 공용통신을 통해 연신 신을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자신들을 발견한 괴조가 자극을 받았는지 괴성을 내지르며 날개를 퍼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동강낼 듯 전세기의 허리를 부여잡은 모습이 위태로운지라 그는 편대원들에게 빠르게 명령했다.
"전세기의 후방에 다시 자리 잡는다. 포메이션은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며 별도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발포를 불허한다."
괴조의 괴성에 놀란 편대원들이 발포 허가를 요청한 전례가 있었던지라 그 어조가 단호하기만 하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전세기의 꼬리를 따르기를 한참, 그의 미간에 골이 잔뜩 패였다. 막사 출격명령을 받고 전세기를 따라잡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괴조를 자극했다가는 전세기가 동강날 판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차라 본부에 의견을 타진하니 전세기에 탑승한 이능력자라의 계획에 보조를 맞추란다.
"여기는 영국 공군 소속 브라보 편대 GR-9-A011 콜트 버틀러 중령입니다. 탑승중인 이능력자와 통신을 원합니다."
전세기에 통신을 연결하니 한참만에 응답이 온다.
"공군의 작전이 따로 있습니까? 있다면 보조를 맞추겠다는 전언입니다."
전세기의 기장이 전해오는 통신에 그는 난감한 얼굴을 해보였다.
"귀측에 탑승중인 이능력자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겠습니다.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괴물체에 대한 공격뿐입니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힘들 듯 보입니
다."
그의 대답에 기장이 한숨을 내쉬는 것이 들린다. 이내 다시 이능력자와 대화를 나누는지 한참만에 통신이 들어왔다.
"현재 저희는 기체의 통제를 상실한 상태입니다. 후익이 파손되었으며 괴물체의 속박에 의해 항로의 운영이 먹통입니다."
암담하기만 한 기장의 통신에 콜트 중령은 내심 신을 찾았다. 매 작전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이번 경우는 괴물체와 조우한데다가 민간인까지 걸려있다. 이능력자인지 뭔지 방송을 통해 런던의 그렌델이란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이런 하늘에서의 전투라니. 암담하기만 한 상황에 전세기의 파손도 심각한 모양이다.
"귀하의 편대가 괴조의 하강을 유도해 주신다면 저공에서 탈출을 시도하겠습니다."
계획 같지도 않은 급조된 작전이다. 전투기가 위협 내지 유도로 괴물체를 하강시키고 저고도에서 승무원들과 함께 탈출하겠다는 계획이라니. 아무리 상황이 위급하다지만 미친 짓이다.
"시도는 해보겠지만 미친 짓이군요. 괴물이 저희의 의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바로 기체가 동강날 겁니다."
사냥감을 잡아챈 매와 같은 모습으로 기체를 움켜쥔 모습의 괴조다. 만약 자신의 편대를 또 다른 사냥감으로 인식한다면 전세기를 뿌리치고 달려들 것이다. 그리 된다면 자력 비행이 힘들어 보이는 전세기는 추락하거나, 최악의 경우 동그리 된다면 자력 비행이 힘들어 보이는 전세기는 추락하거나, 최악의 경우 동체가 두동강이 날 가능성 또한 있었다.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미친짓이라는 건 알겠지만 귀 편대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기장 역시 계획의 허술함에 불안한 듯 말투가 간절하기만 하다. 콜트 중령은 이를 악물고는 본부에 보고를 하곤 편대 통신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
"... 라져."
편대원들의 대답이 들려오고 그는 다시 전세기의 파일럿에게 말했다.
"3분 뒤에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행운이 있기를."
"귀 편대에게도 무운을."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통신을 끝낸 콜트가 고도를 상승시켰다. 편대원들 역시 그를 따라 고도를 상승시킨다.
"이건 미친 짓이야..."
콜트 중령은 상승중인 기체의 중력을 몸으로 받아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모니터를 저희 매형이 빌려가시는 바람에 tv에 연결해서 글을 씁니다. ㅜㅜ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다른 것 없이 글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분량 쌓이는 데로 연참을 하거나 비축분으로 모아둘 테니 앞으로 휴재는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세기 편은 2편으로 마무리 짓고 영국 본토에서 주인공이 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쿠폰과 코멘트 선작해주신 독자님들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