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98화 (98/223)

< --  2-2. 비상.  -- >

구름을 뚫고 튀어나온 거대한 그림자가 길게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악비늘 같기도 하고 깃털 같기도 한 무언가로 온몸을 둘러싼 모습이 사나운 매와도 같다. 날카로운 부리에 억세 보이는 발톱이 당장이라도 전세기를 향해 달려들 듯한 모습을 한 거대한 매다.

얼핏 봐서는 보통의 사나운 조류로 보일 뿐이었지만, 거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가 상당한 것이 절대 일반적인 생물은 아니었다. 시속 900km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중인 전세기를 따라잡는 것 자체가 이미 일반적인 생물의 범주는 벗어난 상황이었지만.

기체의 측 후방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조의 모습을 바라보던 김형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가는 곳마다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싶었던 게 스스로의 운명이 기구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멀리서 날아오는 괴 생명체는 딱 보기에도 상급의 몬스터로 보이니 벌레들과 툭탁거리고 있던 지금의 상황이 더욱 힘들어질 건 분명했으니까.

"꺄아아악!"

시끄러운 바람소리와 엔진소리에도 불구하고 귀를 뚫고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 김형준이 붉은 투구 속에서도 얼굴을 와락 구겼다. 붉은 줄기를 통해 단단하게 고정한 상태라 기류에 휩쓸릴 염려는 없었지만, 높이가 높이인지라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있던 그가 몸을 튕겼다.

콰아아아아귓가를 때리는 세찬 바람소리를 무시하고 비상문으로 뛰어든 그의 눈에 덜덜 떨며 창 너머를 바라보는 쥬디 창의 모습이 보였다.

기내에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해서 뛰어들어 왔더니 괴조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맥 빠진 한숨을 내뱉은 그가 그녀에게 다가서는데 다시 기체가 요동쳤다.

"꺄아아악!"

그녀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이번에는 기체의 어딘가가 잘못되기라도 했는지 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진동에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정상으로 돌아왔던 실내등이 다시 점멸하며 기체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흔들린다기보다는 덜컥거리며 추락하는 듯한 진동에 김형준 역시 아연실색했다.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진 김형준이더라도 만피트에 가까운 높이에서도 떨어지고 무사할지 스스로도 자신할 수 없다. 투구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생각을 정리하던 그의 몸이 바닥에 내동댕이라도 쳐진 듯 휘청거렸다.

이전까지의 진동과는 또 다른 진동이라 그가 휘청거리면서도 비상문 밖을 내다보니, 언제 접근했는지 모를 괴조의 거대한 발톱이 기체를 움켜쥐고 있다. 전세기의 동체를 움켜쥐고 있는 발톱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줬다간 전세기가 반동강 날 것 같은 모양세다.

"으아아아! 씨바아알!"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라고 되뇌지만 쩌저적거리는 불안한 굉음을 토해내는 기체 탓에 제대로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다. 이를 악다문 그는 역시 공포에 질려있는 그녀를 다그쳤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몇 번이고 외쳤지만 듣지 못했는지 눈을 꼭 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휘청거리며 그녀의 좌석에 다가섰다.

"쥬디! 정신 차려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려는지 저도 모르게 사납게 외친 그의 고함소리에 뒤늦게 그녀의 눈이 뜨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쥬디만은 살아남게 해 줄 테니까 날 좀 도와줘요!"

최악의 상황에선 추락하는 기체에서 그녀를 안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한 그가 그리 외치자 그녀가 부들부들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쯤이에요!"

숫제 윽박지르는 듯한 그의 질문에 그녀가 잠시 눈을 굴리다가 대꾸한다. 딴에는 침착하려 노력하는 듯 했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음성과 억눌린 발음 탓에 알아듣기 힘들 지경이었다.

"Please god. 제.. 제대로 왔다면... 꺄악! 흑... 이제 한시간 15분 정도면 공항에 도착해요.. 흑.."

말하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비명을 지르다가 마침내 눈물을 터뜨린 그녀가 간신히 대답했다.1시간이라는 거리를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김형준이 다시 물었다.

"그럼 비행기가 추락할 경우 대비책..."

말하고 나니 아차 싶었는지 김형준이 서둘러 입을 닫았지만, 쥬디의 얼굴은 더 할 수 없이 창백해진다. 가뜩이나 공포에 질려있는데 추락에 대한 언급이라니, 스스로 경솔했음을 깨닫고 자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모른 척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인원은 총 몇 명입니까?"

창백해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더듬거리며 겨우 대답했다.

"미스터 킴 포함해서 총 여덟명이요..."

그녀의 말에 그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스스로 비행이 가능한 능력이 있는 그였지만 이런 고속비행중인 하늘에서 그게 통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여덟명이라니 자신의 비행능력이 그들을 전부 구할 수 있을지 계산해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승무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기체 밖으로 몸을 날려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새삼 어깨가 무거워진다.

"일단 쥬디씨는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하게 보호해 드릴게요."

단호하게 말한 그가 이를 악물었다. 일단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이들은 제외하더라도 그녀만은 데리고 탈출하리라 마음먹은 그였지만, 다른 이들의 안전이 염려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일단 이대로 비행을 계속 해주세요. 저는 다른 것보다 저 놈은 먼저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벌레고 뭐고, 일단 기체를 움켜쥐고 있는 괴조를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 그는 창백하게 질린 쥬디의 뺨을 톡톡 두들기곤 과장되게 말했다.

"걱정마요. 저 세계에 100명도 안 되는 1등급 이능력잡니다. 저만 믿고 있어

요."

붉은 갑주를 텅텅 두들기며 말하는 모양새가 누가 보아도 과장된 모습이었지만, 쥬디는 왠지 안심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다녀올 테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알려둬요. 최악의 경우 저를 따라 다들 탈출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김형준이 거침없이 기체 밖으로 몸을 날렸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아직도 뺨에 남은 김형준의 손길에서 묻어난 차가움에 저도 모르게 뺨을 문질렀다.

그가 기체 밖으로 뛰쳐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기체가 요동치더니 기체의 방향이 뒤틀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 인터폰을 손에 쥐었다.

"기장님!"

기체 밖으로 몸을 날린 김형준은 이를 악물고 날개를 뽑아냈다. 이 정도 속도로 비행중인 허공에서 자신의 비행능력이 따라 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이미 기체를 움켜쥔 괴조 탓에 방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몸을 기체 위에 고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던지라 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붉은 날개가 활짝 펴지고 갑작스러운 공기 저항에 그의 몸이 덜컥거리며 전세기와 멀어진다.

"후아아아아아아!"

물 샐 틈 없이 얼굴을 감싼 투구에도 불구하고 숨쉬기 힘들 정도의 바람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행방향을 등지고 있던 방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공기 저항에 그의 입에서 덜덜거리는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잠깐 사이에 까마득하게 멀어진 전세기의 모습에 아연실색한 그가 고개를 바짝 숙이고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 사이에 더욱 두터워진 투구의 안면부 덕에 숨쉬기가 한결 나아진 그는 한껏 힘을 모아 등 뒤에서 터트렸다.

순식간에 공기가 뒤로 밀려나가고 멀어졌던 전세기와 괴조의 모습이 금세 가까워진다.

"으차차차차차!"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탓에 하마터면 전세기의 후미에 들이받을 뻔 했던 그가 혼비백산해서 겨우 그 곁을 피해간다. 투구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전세기의 곁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김형준이 한참이나 속도를 맞추느라 고생한다.

자신이 전세기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일을 벌이고 보니 속도를 따라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같은 속도로 비행하는 것이 더 큰 곤욕이었다.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져도 전세기를 앞지르기 일쑤니 당장 괴조와의 전투가 문제가 아니라 전세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시급할 지경이다.

한참이나 그렇게 진땀을 빼던 그가 간신히 속도를 맞추고 보니, 전세기 만큼이나 거대한 괴조가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비웃는 듯한 모습에 인상을 와락 구긴 그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괴조를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라 그저 애만 태울 뿐이었다.

새까맣게 변한 기체의 후미가 이제는 덜컥거리는 게 벌레들이 기체를 파먹기라도 하는 모양새다. 일단 몸을 날리긴 했으나 이 까마득한 높이에서 딱히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던 김형준은 전세기와 속도를 최대한 맞추는것에 주력

했다.

한참이나 그렇게 전세기를 따르다보니 어느새 전세기의 꼬리날개가 바스락거리며 부스러진다. 시꺼먼 벌레때를 매단 꼬리날개의 상단부가 허공중에 날라가고 기체의 꼬리부분이 더욱 심하게 덜컥거린다.

비행기의 구조에 대한 지식 따위는 하나도 없는 그였지만 지금의 상태만 해도 정상적인 비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다시 투구 속에서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데 괴조가 훼를 치기 시작하더니 전세기를 찍어 누른다.

전세기의 동체가 날카로운 발톱에 우그러지며 조금씩 주저앉다가 점점 고도를 낮춰간다. 김형준은 그런 모습을 보며 당장이라도 괴조를 공격하려다가 이내 다시 손을 거뒀다.

당장은 저 괴조가 떨어져나갔다가는 전세기가 자력으로 비행하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차라리 저 괴물이 이대로 기체를 움켜쥐고 공항까지 날아가는 게 나을 판이라 오히려 괴조의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괴조의 동태를 살피며 전세기를 따르던 김형준은 문득 저 멀리에서 접근하는 또다른 그림자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괴조 하나만 해도 처치곤란인 마당에 또 다른 존재들이라니. 차라리 이대로 기체로 들어가 가능한 인원들을 이끌고 탈출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 작품 후기 12시 연재를 노렸으나 여의치 않아 지금이라도 업데이트 합니다. 달아주신 댓글처럼 병원이라는 곳이 멀쩡한 사람도 아프게 만드는 곳인지, 불편하게 새우잠을 잤더니 목 근육이 뭉쳐서 고개 돌릴때마다 로봇처럼 돌아가네요. ㅎㅎㅎ 방만한 자세에서 글을 써야 잘 써지는 저로서는 죽을 맛입니다.

어쨋건 늦었지만 업데이트 합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다시한번 감사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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