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95화 (95/223)

< --  2-2. 비상.  -- >

"네.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김형준의 주문에 그녀가 친절한 미소로 대답하고는 탕비실로 향했다.

쥬디 창이 탕비실에 들어가니 방금 전까지 한참 김형준의 험담을 하고 있던 동료들이 여전히 잡담에 여념이 없다.

"Do you know how much this guy allowance?"

(저 사람 정부에서 받기로 한 돈이 얼만지 알아?)(모르지. 얼마나 받는데?)with this business"

(놀라지 마. 2억파운드 - 한화 3천억원 이상 받는다더라.)금발머리 승무원의 대답에 갈색머리 승무원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런던을 초토화시킨 괴물을 처리하는 게 저 동양인의 임무라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천문학적인 금액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서로 김형준을 꼬셔볼까 말까 하는데 까지 수위가 올라간 입 가벼운 동료들의 수다에 쥬디 창이 다시 그녀들을 말린다.

(이 겁대가리 없는 아가씨들아. 입조심 안하면 저 사람이 다 들을 거라니까.)영국 정부의 전용기 승무원이라면 꽤나 엄격한 교육을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입을 나불거리는 방정맞은 동료들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오는 그녀였다.

쥬디 창이 탕비실에서 음료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김형준은 홀로 남아 또 다시 주변을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비행기라기보다는 고급호텔의 객실에 차라리 가까운 인테리어가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울 뿐이다.

가죽소파에 알 수 없는 재질의 테이블과 각종 편의시설들, 비행기를 타도 허구헌날 에코노믹좌석만 타던 그의 입장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시설수준이다.

한참 주변을 살펴보던 그는 쥬디 창의 기척이 느껴지자 시치미를 떼고 손닿는 곳에 있는 잡지를 펼치고 딴 청을 피웠다.

"콜라 여기 있습니다."

탄산음료 주제에 황공하게도 고급스러운 유리잔에 담긴 모양새가 뭔가 부자연스러웠지만, 김형준은 불쑥 손을 내밀어서 콜라를 단숨에 들이켰다.

"한잔 더 드릴까요?"

괜스레 목이 타 몇잔을 그렇게 더 얻어마시고 나니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승무원이 부담스러워진 김형준이다.

"불편한 건 없으십니까?"

그의 내심도 모르고 쥬디 창이 다시 질문을 했다.

"없어요. 고마워요."

대충 대답하고 잡지로 시선을 돌렸지만 온통 영어로 되어있는 잡지의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쥬디 창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딴에는 잡지를 보는 척 해봐도, 이미 그가 영어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그녀는 그간 받았던 서비스 교육이 무색하게도 한참이나 김형준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갖고 있는 막연한 동경 탓이었다. 게다가 2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김형준이 영국 정부가 전세기를 보내 접대할 정도의 사람이라니 개인적인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영국을 습격한 괴생명체를 퇴치할 사람들 중 하나라고 들었지만, 겉 보기에는 그저 잘생긴 청년에 불과한 그의 모습이 그녀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그녀의 시선을 모른척하던 그는 결국 잡지를 보는 척 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가 잡지를 덮는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던 쥬디 창이었지만 이미 눈이 마주친 이후라 갑자기 자리를 뜨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내친 김에 대화를 시도했다.

"따로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본인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니 김형준이 피식 웃었다.

"필요한 건 제가 아니라 그쪽한테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다른 승무원들과는 다르게 동양인이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조금은 편하

게 했는지, 그의 얼굴이 조금 전에 비하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

영국 정부의 귀빈인 김형준이 자신의 실수를 꼭 집어 이야기 하자 깜짝 놀란 쥬디 창이 당황하여 사과를 했다.

"아. 사과할 것 까진 없는데..."

다른 VIP들처럼 되 먹잖은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수작을 거는 것도 아니다. 승무원의 입장에서 이런 사람일수록 조심해서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건만, 오늘따라 스스로가 통제 되지 않는 그녀였다.

"이륙까진 이제 30분 정도 남은 건가요?"

김형준도 내심 이 불편한 전세기의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차라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 30분 정도 후에 이륙합니다."

서로 대화를 시도해보았지만 뭔가 겉도는 기분이 드는 그들이었다.

"아. 제가 전세기라는 걸 처음 타서 좀 어색하네요."

제 딴에는 고백이랍시고 하는 말이지만, 이미 그를 본 순간 모든 승무원들은 그가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의 말을 반긴 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빌미를 찾았기 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의 말을 반긴 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빌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편안한 미소를 짓자 그 역시 어색한 표정을 지우고 미소를 떠올린다.

"촌놈이라서 뭐 하나 하나 황송하지 않은 것이 없네요."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모습이 방금 전과는 달리 당당해 보였다.

"풉. 전세기 타시는 분들 중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 처음 봤어요."

그녀의 말에 김형준이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인데요. 뭐. 그보다 인사가 늦었죠? 김 형준입니다."

뒤늦게 손을 내민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그 손을 맞잡았다.

"쥬디 창입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킴."

그렇게 뒤 늦은 인사를 주고받은 그들은 한참이나 대화를 주고받는다. 어색함을 줄이고자 시작한 대화는 이륙 직전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한창 김형준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동료 승무원들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곱지 않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김형준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던 쥬디 창은 이륙시간이 되어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가고, 김형준은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렇게 김형준을 태운 전세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띵!

맑은 알람 소리가 들리고, 기내의 상부에 위치한 안전벨트 표시가 해제 되었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김형준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어느새 온통 새하얀 구름 투성이다. 그 화창한 모습에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김형준은 쥬디 창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미스터 킴. 특별한 방송이 없는 한 자유롭게 움직이셔도 좋습니다."

일반 비행기와는 다르게 호텔의 응접실처럼 꾸며진 전세기의 풍경을 둘러보던 그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편안하게 고안된 좌석이라지만 한시간이나 앉아있었더니 엉덩이가 배긴 김형준은 이리 저리 몸을 뒤틀며 스트레칭을 했다.

"으다다다다. 아 그 잠깐을 앉아있었다고 몸이 찌뿌둥하네요."

사실 심리적인 요인이 더 컸지만, 쥬디 창은 초능력자니 몸을 움직이던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만다.

"근데 얼마나 걸리는 거예요? 영국까지?"

한참 몸을 이리 저리 뒤틀던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11시간 40분정도 남았네요. 도착지는 멘체스터입니다."

멘체스터라면 김형준 역시도 몇 번인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축구 선수 박지성이 뛰었던클럽이 있는 그 곳이 아닌가.

"아아. 지겹게도 많이 남았네요."

과장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가 다시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지루하시면 영화를 보셔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아요. 아니면 와인이라도 한 잔 드릴까요?"

"아니요. 대낮부터 술이라니 좀 내키지 않네요. 영화도 책도 취미에 없어서."

솔직한 그의 대답에 쥬디 창은 이번 VIP는 여러모로 다른 VIP들과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보통 기업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전세기의 특성상, 승객들은 비행기 이륙 직후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노트북이니 뭐니 분주했다. 하지만 이번 VIP는 이륙 직후부터 지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니 뭔가 달라도 다른 승객이라고 쥬디 창은 생각했다.

"으아아아아! 거의 12시간을 뭘 하면서 버티죠?"

울상을 지으며 자신에게 묻는 모습이 우스워 그녀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식사를 준비해드릴게요. 듣기로 육류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육류로 준비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영국정부에서 제공한 정보인지, 유니온에서 제공한 정부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세세하게 김형준의 취향까지 파악한 모양이다.

"아침부터 고기라니!"

김형준의 말에 쥬디 창이 눈을 크게 떴다.

"아. 고기가 별로라면 다른 걸로 준비해릴까요?"

장난스럽게 꺼낸 말에 그녀가 정색을 하고 묻자 김형준이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냥 한 말이에요. 소화 잘되고 좋죠 뭐."

딴에는 농담이랍시고 한 말이지만, 쥬디 창은 그의 말이 비꼬는 것인지 아닌지 몰라 한참이나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김형준이 불편함 없이 멘체스터 공항까지 가는 것이었으니만큼 그의 기색을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장난 친 거예요. 저 고기 좋아요. 삼시 세끼 고기만 먹고 사는 게 소원인 사람이라고요."

물론 집에서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지현이 그렇게 두지 않겠지만. 기내식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식사를 마친 김형준은 하릴없이 기내를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TV를 켰다가 끄고, 이리 저리 기내시설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변명할 여지없이 한량의 모습이다.

한참 객실을 들쑤시고 다니던 그의 눈에 늘씬한 서양미녀들-승무원들이 눈에 띄었다. 저들 딴에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눈인사를 하는 모양이었지만, 토종 한국인인 김형준의 눈에는 마치 치약광고라도 하듯 이를 드러낸 그녀들의 웃음이 거북스러울 뿐이었다. 그녀들을 무시하고 그가 고개를 돌리자 괜스레 시무룩한 얼굴을 한 여승무원들이다.

이리 저리 쏘다니며 시간을 때우던 그가 시계를 확인했지만 이륙 후 세시간도 채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도 8시간 넘도록 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끔찍한 심정에 그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지루하신가 봐요?"

마침 그에게 다가선 쥬디 창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그는 심심해서 비명이라도 질렀을 것이다.

"아직 3분의 1도 못 왔다니 끔찍한데요."

그래도 오고가며 대화를 많이 나눈 탓인지 김형준이 한결 편한 태도로 쥬디 창의 말을 받았다. 수다라도 떨면서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을 먹은 김형준이 그녀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은 건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은 건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한참 김형준이 쥬디 창과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 그들을 태운 전세기의 꼬리에 시꺼먼 얼룩이 퍼져 나가고 있다.

마치 곰팡이라도 피어오르듯 전세기의 후미를 덮고 있던 검은 얼룩이 조금씩 그 몸집을 불려간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얼룩이 어느새 후미 전체를 감싸고 있었건만 아무도 눈치 챈 이가 없다.

그렇게 그들을 태운 전세기는 불길한 얼룩을 꼬리에 달고 푸른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 작품 후기 네. 염려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뺑소니 차량의 운전자에 대해 말씀들이 많으신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비록 실수를 했고, 그 죄질이 흉악하긴 하지만 계도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처리를 했는데 여러 독자님들이 염려를 하시네요.

지금도 유치장에서 갖은 협박을 당하며(민주화가 덜 된 나라라 범죄자에 대한 폭력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나라입니다.)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한 1주일정도 보내는 걸로 처벌을 대신 하려고 했는데 그게 약하다면 다시 궁리해보겠습니다.

합의금 같은 경우야 사보험이 워낙 잘 되 있어서 일신상의 검진비와 치료비는 전액 무료에 독실 입원인지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합의금을 한푼도 받지 않는 다는 게 아니라, 업무에 지장을 받은 만큼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예정입니다만걱정해주시고 염려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영어고자라서 영어 틀린 부분이 있으면 글쟁이 부끄럽지 않게 쪽지로 ㅎㅎㅎ 저는 스페인어권 교포입니다! 그러니 굽어살펴주소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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