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2. 비상. -- >
"엄청 썰렁하네요."
평소라면 하루 10만명에 가까운 여행객들이 오고가는 인천 국제공항이 바로 근처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괴수 탓에 한산하기만 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은 시기가 어수선하지 않습니까."
연아를 안고 있던 지현이 내 말에 여상스럽게 대답한다. 그녀의 말처럼 시기가 좋지 않음을 증명하듯 여행객들보다는 군인과 이능력자로 보이는 이들이 더욱 눈에 뜨인다.
"뭐, 그렇긴 하죠."
어깨를 으쓱하곤 유니온에서 마중 나왔을 사람을 찾고 있는데 저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말쑥한 정장차림을 한 여인, 민아가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로 온다. 그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이내 멈추더니 연아를 안고 있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이로구나."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민아의 인사를 받은 그녀를 일별한 민아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안내하겠다."
그렇게 말하곤 고개도 훽하니 몸을 돌린다.
"기다려. 인사 좀 하고."
매정한 년 같으니라고. 가족과 인사는 해야 할 거 아니야.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포옹을 했다.
"다녀올게요. 용모에게 이런 저런 일들 부탁해놨으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용모한테 전화해요. 저도 수시로 연락할게요."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은 채 꼬물거리는 연아의 볼에도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니 그녀가 내게 당부한다.
"몸 건사하시고, 큰 탈 없이 돌아오시도록 천지신명께 빌겠나이다. 부디 보중
하시길."
꼭 사극에나 나올법한 고풍스러운 인사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 안에 가득한 것이 워낙에 절절한 진심이라 허투루 받지 못했다.
"걱정 마요. 수틀리면 바로 도망칠 테니까. 우리나라 일도 아닌데 목숨까지 걸진 않을 거예요."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이며 금방이라도 도망치는 시늉을 해보이니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야 담담하게 다녀오라고 하던 그녀였지만 역시나 염려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지, 다시 한 번 내게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제가 등 떠밀어서 괜한 위험을 자초하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연아와 저를 생각해서 몸 보중하소서."
그녀의 말에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고는 몸을 돌렸다. 몇 걸음인가 걸음을 옮기다가 이내 연아와 그녀가 눈에 밟혀 다시 고개를 돌리니 변함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다녀 올 게요."
괜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한 번 인사하니 그녀가 연아를 안은 채 몸을 숙여 보인다.
"다녀오소서."
이대로 있다간 한참이나 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억지로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기니 저편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민아가 보였다.
"유부남은 다 이런 거야."
무안한 마음에 장난처럼 이야기하니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앞장을 서 보인다.
또각거리는 그녀의 발소리를 따라 걷다보니 출입국 심사대니 뭐니를 전부 그냥 지나쳐 버린다. 몇 안 돼는 여행객들이 그런 우리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항을 이용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검문대니 심사대니 지나가다보면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되니 탑승게이트까지 금방이다.
"어서 오십시오."
고운 미소로 나를 반기는 스튜어디스의 복장이 낯설다. 처음 보는 복장인데다가 이 게이트에 서 있는 것이 달랑 나 하나라 얼떨떨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둘러 볼 것 없다. 영국 정부에서 보내온 전세기이니."
민아의 부연설명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나 전세기 타보는 거야?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지만 속으로는 입이 떡 벌어졌다. 1등급 이능력자니 뭐니 해도 결국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시민에 가깝던 나인데, 전용기라니. 어쩐지 일반 항공사의 승무원들보다 한층 기품 있어 보이는 승무원들의 모습에 나는 감탄해버렸다.
"음."
괜히 헛기침을 하며 승무원들을 곁눈질로 바라보는데, 늘씬한 승무원들이 내 짐을 넘겨받는다.
"이륙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지만 바로 타시겠습니까?"
처음에 나를 반겨준 여승무원이 나긋나긋한 어조로 물어오길래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민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한가지만 이야기 하겠다."
꽤나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연 그녀가 내게 당부한다.
"너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인재다. 영국의 지원요청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니다 싶으면 바로 몸을 빼도록 해라. 무리한 작전이다 싶으면 거부하고, 최상의 조건에서 작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미 이야기가 조율이 됐으니 부디 몸 건강히 돌아오길 바라겠다."
그녀의 말마따나 영국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다시피 한 그녀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니 조금 우스웠지만,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답지 않게 염려를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자니, 장난으로라도 핀잔은 못 주겠다.
"거창하기는, 그냥 몸 성히 다녀오라고 하면 될 것을."
피식 웃으며 대답하니 그녀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뭐
라 말하려는 그녀보다 먼저 말했다.
"아까 봤지? 연아하고 내 마누라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몸 사릴 거라고.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돌아올 테니 괜한 걱정 말더라고."
그래도 그녀와의 인연이 적지 않았으므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다녀올 테니 들어 가봐."
그렇게 말하고는 승무원에게 눈짓을 하니 그녀가 게이트를 열고 앞장을 서 보인다.
"그럼 나 간다."
민아의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며 나는 손을 대충 흔들어보였다.
김형준이 건성건성 손을 흔들며 게이트 저편으로 사라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윤민아는 한참이나 그가 사라진 게이트 너머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승무원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 김형준은 마치 공항을 전세라도 낸 듯한 생소한 경험에 주변을 둘러보기에 바쁘다. 텅빈 게이트를 지나고 나니 말쑥한 차림의 승무원들이 허리를 숙여 보이며 그를 반긴다.
"Welcome. Mr. Kim."
방금 전까지 그를 안내한 승무원과는 다르게 영국 본토에서 나온 승무원인지 딱딱한 영국식 영어가 그를 반겼다.
"H... Hi.. Thank You."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이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은 그가 괜스레 다른 곳을 바라보며 빠르게 그들을 지나쳐간다. 혹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말이라도 걸어올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게이트부터 자신을 안내해온 승무원이 그를 이끌었다. 색색깔의 눈동자를 피해 앞만 곧장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우스운지 입가에 걸린 미소가 조금 더 진해진 승무원이다. 승무원이 자신을 보고 웃는지도 모르는 김형준은 그저 으리으리한 전용기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어색한 몸짓을 계속한다.1등급 이능력자, 영국정부의 간곡한 요청 끝에 지원을 나가는 절대 강자. 그것이 승무원들에게 알려진 김형준의 정보였다. 절대 중요인사이니 실수가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수백 번은 들었건만, 정작 영국정부의 귀빈은 촌놈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런 내심을 겉으로 드러내는 승무원들은 없었지만, 속으로 웃음이 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김형준은 영화 속에서 보았던 대통령기와도 같은 모습의 전용기 내부를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금발의 스튜어디스가 낮게 곁에 있는 갈색 머리의 동료에게 작게 소근거렸다.
(저 사람이 정말 정부가 원하는 그 사람이야? 정말?)
(응. 맞아. 근데 그냥 촌놈 같아. 큭)
"Watch your tongue. He's a man with incredible strength like our templers. Maybe this guy might be able to hear our conversation"
(말 조심해. 저 사람은 템플러들처럼 초능력자라고. 어쩌면 우리 얘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Don't Worry. sweetie. He can't understand english."
(걱정 마. 얘. 저 사람 영어 못 알아들어.)김형준이 영어를 못한다는 걸 알고는 마음 놓고 떠들어대는 그녀들이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야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였지만.
주변 시설에 압도되어 입을 쩍 벌리고 두리번거리던 그였지만 그녀들의 대화를 아예 못 들은 건 아니다. 짧은 영어실력의 그의 귀에 Countryman이란 단어가 유난히 박혀들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래봐야 벌개진 얼굴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 우스꽝스럽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그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관리하자 수군거리던 승무원들의 얼굴이 굳는다.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말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자신들의 말을 알아들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정부로부터 이번
승객의 중요성을 누누이 들어왔던지라 혹시나 그의 기분이 상한 건 아닌지 그녀들이 김형준의 안색을 살폈다.
"Ladies please. watch your Tongue. He is VVIP of our goverment."
(입 조심해 다들. 저 사람은 우리나라의 초특급 귀빈이라고.)방금 전까지 김형준을 안내하던 승무원, 유일한 동양인 승무원들이 동료들에게 주의를 줬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김형준을 위해 특별히 전용기의 승무원진에 편성된 그녀의 이름은 쥬디 창. 한국계 영국인이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있어 한국이란 나라는 조국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나라였다. 평소에도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던 차에, 한국인 이능력자 김형준이 영국정부의 귀빈으로 초대받자 은근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동료들이 그의 험담을 하자 기분이 나빠졌다. 물론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김형준의 행동은 세련되지 못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동료들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은 그녀다. 그러다보니 김형준을 대할 때와는 달리 말투에 잔뜩 날을 세웠다. 그런 그녀의 공격적인 모습에 동료들이 주눅이 들어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어색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주변을 힐끔거리는 김형준, 훤칠한 모습과는 달리 뭔가 어벙해 보이는 모습이다.
"김형준씨. 편하게 쉬세요. 목적지까지 저희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쥬디 창이 김형준의 안전벨트를 메어주며 사근사근하게 말을 건넨다. 이번 탑승객은 어찌 된 게 승무원들 눈치를 보고 있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신선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다시 동료들의 험담이 시작될 터, 그녀는 이 어색한 승객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걸었다.
"아. 네? 지금 이륙하는 건가요?"
왠지 모르게 긴장한 자신이 한심스러웠지만, 생전 처음 타보는 전용기의 위용에 압도된 김형준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륙까지는 약 40분 정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 동안 음료수라도 한잔 하시겠습니까?"
보는 자신까지 어색해져버리는 김형준의 모습에 그녀는 내심 한숨을 쉬고는 차분하게 그를 달랜다.
"아. 뭐 있는데요?"
김형준은 영어에 대한 거부감 탓에 외국인 승무원들의 눈길이 부담스럽던 차라, 이 동양인 승무원의 호의가 반가웠는지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쥬스, 탄산음료, 차종류, 커피, 주류. 원하시는 걸 말씀해주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끈기 있는 태도로 김형준의 긴장을 풀어주던 그녀는 조금이나마 자연스러워진 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네. 콜라 주세요."
왠지 모르게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에게는 늘 콜라를 시키는 한국인들, 아마 워터는 발음하기 애매하고, 다른 음료 역시 조금 발음이 어려운지라 늘 Coke를 시키는 한국 사람의 피가 그에게도 흐르고 있는 듯 하다.
============================ 작품 후기 영어 다 까묵어서 맞는지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교포지만 스페인어권이라 영어는 안쓴지 벌써 7년이 넘어서요. ㅡ,.
ㅜ 혹시 틀렸으면 은밀하게 쪽지로 지적
부탁드려요. 쪽팔리니까요. ㅋㅋㅋ염려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경찰서 다녀왔는데 밝혀진 바로는 이렇습니다. 차량 정비하면서 에어백을 따로 떼갔고 그게 꽤 값나가는 물건이라네요. 정비소 과실로 밝혀졌습니다. 사람 목숨가지고 장난치는 정비소, 죄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그리고 뺑소니 차량 운전자도 잡혔는데 부모 차로 운전한 미성년자고, 음주상태였다고 합니다.
프레임이 완전히 나가버린 제 차를 보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한데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들 정말 어이 없네요. 제가 악운에 강한 편이라 다행스럽게 어금니 나가고 말았는데 정말 개죽음 당할 뻔 했습니다.
차량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라 보험사에서 새차로 지급해준다는데, 전혀 신나지 않고 무섭네요. ㅎㄷㄷ. 차량이 70퍼센트 이상 파손 판정을 받아서 새차 지급인건데 안 죽은게 용합니다.
차종은 Suzuki- Grand Vitara입니다. 한국 차보다는 그래도 일본 차가 튼튼하죠 아직은.4년동안 큰 사고만 벌써 7번째인데 굿이라도 지내야 할지;;; ㅎㄷㄷ
어쨌건 살아서 글 올리는 저를 축복해주소서. 천만다행인게 측면 추돌시에는 안전벨트도 무소용이라는데 마눌님 옆에 안타고 계셨던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제 어금니 부서지고 만게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일단 걱정해주신데로 교통사고라는게 언제 후유증이 나올지 모르기때문에 정밀 검진은 다 받은 상태고 추이를 지켜보다가 이상증세 나타나면 바로 입원하기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뺑소니 가해자는 일단 17살 미성년인데다가 앞길이 창창하고 초범이기에 합의금 없이 벌금형만 받고 끝내기로 했습니다. 부모 얼굴을 보니 차마 처벌을 고집할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다시 같은 일이 없도록 충분할 정도로 마음 고생은 시킬 생각이라 그쪽 부모에게만 그런 사실을 통보하고 당사자는 현재 유치장에 있는 상태입니다만. 이게 잘 한 짓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앞길 창창한 청춘 인생 망가트리기 뭐해서 그냥 이렇게 넘어갈 예정입니다.
합의금은 뭐, 보험사에서 차량 신차로 바꿔주고 의료비야 사보험에서 전액 보장해주니 제가 손해 볼 것은 없지만서도 뭔가 찝찝하기도 하네요.
여튼간에 염려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그리고 쿠폰 날려주신 독자님들, 코멘트 선작 모두 감사드립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