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86화 (86/223)

< --  2-1. 그리고 얼마 후.  -- >

"다.. 당신들이..."

더듬거리며 꺼낸 짧은 한마디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당혹감 가득한 그 음성에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김보성 위원님. 당신은 잠식되었습니다. 시간이 길지 않으니 마지막 말을 남기세요."

순간 모두가 소스라치고 장내에 가라 앉은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버린다. 눈을 크게 뜨고 청소부를 보니 태연한 어투로 너무도 여상스럽게 지껄여대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아침인사라도 건네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청소부의 태도에 모두가 질려버린다.

우리가 놀라거나 말거나 청소부의 말은 계속된다.

"당신이라면 집행부의 일이 어떤지 잘 아실 테니,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유언'은 뭔가요?"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청소부가 이제는 사람 같지 않아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의 심정보다 더욱 놀란 것은 김보성 저 남자이리라. 비대하게 부푼 몸에 매달린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표정이 변해간다. 어리둥절하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경악으로 바뀌어 버린다.

"뭐.. 뭐야! 내.. 내.. 내가 왜!"

몬스터와 같이 변해버린 자신의 육신과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던 남자가 절규한다. 청소부가 그런 그를 다시 재촉한다.

"시간이 없다고 말 했을 텐데요."

경악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있던 김보성의 표정이 점차 절망으로 바뀌어간다.

"그.. 그런가. 역시 잠식 되었는가."

체념한 듯 말하는 그의 음성이 절망에 가득 차 있다. 이번만은 청소부 역시 재

촉하지 않으려는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나.. 나는..."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그 어조에 담긴 비통과 한스러움이 절절하게 느껴져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알고 있었어. 그래. 알고 있었지."

처음에는 더듬거리며 시작했던 그의 말이 독백처럼 이어진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방법이 없었어. 나는 더 이상 억제 시술을 받지 못하는 몸이었다."

청소부가 그의 말을 받는다.

"한계에 달한 상태였군요. 더 이상 억제시술로도 손을 대지 못할 만큼."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다. 억제시술에도 제한이 있었던가?

"그래. 나는 백 오십년이 넘도록 살아왔다. 하지만 백년째가 되던 해부터 계속

해서 잠식이 진행되기 시작했어. 근 오십년을 매해마다 억제시술을 받아가며 겨우 겨우 버텨왔지."

그가 150년을 살아온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당장 내 아내만 해도 수백년을 살아온 인물이고, 이능력자들의 수명이야 워낙 들쭉 날쭉하니.

쭉하니.

"올해 받을 억제시술이 마지막이었다."

"그 시술을 받으면 이능 자체를 잃었겠지요?"

"맞다. 이번 시술은 억제 시술이 아닌 이능을 제거하는 시술. 내게는 사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거부했고, 결국 잠식 되었군요."

청소부와 김보성이 빠르게 말을 주고받는다. 뭔가 갑작스럽게 바뀐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하는데 그들의 문답과도 같은 대화가 계속 된다.

"그래. 두달 전인가부터 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응급 억제제를 사용해 잠식의 시기를 미뤄왔으나 그것조차 한계였던 거지."

"결국은 응급 억제제의 효과가 약해질 때마다 당신은 의식을 잃고 잠식이 된 상태로 도시를 헤맨 것이군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 곧 손 쓸 수 없게 된다는 것을."

"...."

"하지만 나는 150년을 군림해온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평범한 노인이 되라고? 너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청소부 역시 이제는 입을 닫고 가만히 김보성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절망했다. 절망하고 절망했지. 이대로 가다간 변이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찾아왔다."

유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이야기가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힘을 주기로 했다. 그깟 이능이 아닌 더욱 강대한 힘을. 이제 한 달만 기다리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감정이 격해졌는지 그의 어조가 격앙된다. 가만히 움츠리고 있던 변이된 신체가 다시 팽창과 수축을 거듭한다.

"이제는 다 끝났어! 끝났다고!"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그를 보고 모두가 자세를 낮추고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한다. 나 역시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려는데 청소부가 나를 저지한다. 가만히 보니 그의 양손 끝에 희끄무레한 빛덩이가 뭉쳐있다. 청소부의 손길을 따라 허공에 빛의 궤적을 만들어대던 빛덩이가 어느순간 김보성을 향해 날아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참 소리를 질러대며 금방이라도 난동을 부릴 듯 소란을 피우던 김보성이 순간 멈춰선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날뛰던 그가 갑자기 축 쳐져서 다시 처량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청소부를 바라보니 청소부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분명 청소부가 뭔가 술수를 부린 듯 하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광분한 어조로 소리를 질러대던 남자가 저리 진정이 될 수가 있는가.

"그들이 힘을 준다는 것까지요."

청소부가 천연덕스럽게 그의 말에 대꾸한다.

"그래. 그들은 이깟 허약한 인간의 육신이 아니라, 새로운 육신을 준다고 했어. 협조만 잘 한다면 말이지. 그렇게 되면 이 폭주의 굴레 따위 단숨에 벗어나는 거야!"

무엇인가에 도취된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올라가고 있다.

"그들이 누굽니까?"

청소부가 물으니,

"그들? 그들이 그들이지 누구야."

그의 눈동자가 탁해지기 시작한다. 직감적으로 남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감을 느낀다.

"그들의 정체가 뭡니까?"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도로 부추키기만 하던 청소부가 집요하게 질문한다.

"그들의 정체?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이건 알지.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거."

청소부가 한걸음 물러서며 내게 속삭였다.

"'유언'의 힘이 다 끝난 것 같군요. 이제부터는 맡기겠습니다. 적당히 발만 묶어두면 자멸 할 겁니다."

청소부의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다시금 부풀어 오르는 남자의 뺨과 검은자위와 흰자위의 구분이 희미해져가는 그의 모습에 시간이 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한발자국 내가 앞으로 나서자 그의 눈이 크게 뜨인다.

"너... 김.. 형준?"

놀랍게도 그가 나를 알아보고 아는체를 한다.

"이.... 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갑작스럽게 흥분한 그의 몸이 터질 듯 부풀어오른다.

"너.. 너만 아니었으면! 너 때문에 모든.. 꺼억. 다 망가.. 끄윽."

말을 하는 도중에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던 그의 얼굴이 다시 흉측하게 변한다. 다시금 몬스터와 같은 모습으로 변한 그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온다.

끄르륵가래 끓는 듯한 그 소리에 다시 막을 치고 변이체를 가두려는데 청소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가둬선 안 돼요! 최대한 움직이게 해야 스스로 자멸합니다!"

막 손을 뻗어가던 나는 그 말에 흠칫 놀라 청소부를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시켜야 합니다."

청소부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직접 '처리'하셔도 됩니다만."

얄미운 그 말에 나는 뻗어가던 손을 내리고 자세를 낮췄다. 변이체가 두꺼비처럼 폴짝 뛰어서 내게 달려든다.

지현에게 배웠던 '바른 걸음'을 이용해 몇 걸음인가 자리를 옮기니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녹색의 점액이 가득 뿌려진다.

치이익.

마치 염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녹색의 액체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스며든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일별하곤 나는 다시금 내게 몸을 날려오는 변이체를 노려봤다.

꾸어어억!

변이체의 쭉 찢어진 입이 벌어지며 뭔가가 빠르게 튀어나온다. 다시 물러나며 변이체를 살피니 튀어나온 물체의 정체가 드러난다. 역겨운 빛의 혓바닥이 말려있다가 순식간에 펴지며 내가 있던 곳을 훑어간다.

주변을 보니 수현씨와 용모를 비롯한 사람들이 언제라도 달려들 수 있는 자세로 이쪽을 살펴보고 있다. 용모는 어느새 늑대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수현씨는 양손에 반월형 빛무리를 그러쥐고 있다.

"안 도와줘도 돼!"

다시금 내게 날아드는 산성의 타액을 피하며 그렇게 외쳤다. 아무래도 이 김보성이라는 작자는 일전의 일로 내게 품었던 원한을 잊지 않은 듯 하다. 그러니 이렇게 변이가 된 후에도 나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거겠지.

멀찌감치 물러난 청소부가 강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듯 팔짱까지 끼고 이쪽을 보고 있다.

"얼마나 있어야 됩니까!"

혀를 내쏘고, 산성액을 뿜어댄다. 그리고 날아올라 덮친다. 간단한 패턴의 공격이 반복될 뿐이라 변이체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그리 물었다.

"글쎄요. 변이체의 등급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약 한시간 정도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등급이 등급이니만큼."

태연한 청소부의 말에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온 사방을 덮을 기세로 뿌려진 산성액을 방패를 형성해 막아낸다. 이번은 좀 온 사방을 덮을 기세로 뿌려진 산성액을 방패를 형성해 막아낸다. 이번은 좀 위험했다.

"뭐 보니까 어려워 보이진 않는데요."

하는 말마다 어쩌면 저리 얄미울 수가 있나. 저 사람은 청소부라는 직업이 아니었어도 주변에서 미움 받았을 거다.

그렇게 얼마나 지루한 공격을 피하고 있었을까. 언제라도 달려들 것처럼 준비하고 있던 용모와 수현씨도 이제는 팔짱을 끼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제길. 왠지 억울한 기분이다. 마치 구경거리라도 된 것 같아 이리 저리 변이체의 공격을 피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다시 또 지루한 공격과 회피가 이어지고, 변이체의 공격이 조금씩 잦아든다. 이제는 제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간간히 산성의 타액을 뱉어낼 뿐이다.

"이제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외치는 청소부의 태도가 마치 응원이라도 하는 듯 하다. 괜스레 화가 나 바닥을 세게 박찬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변이체로부터 순식간에 멀어진다.

이제는 근처에 닿지도 않는 변이체의 산성액이 애꿎은 바닥만 녹여댄다. 멀리서 그 꼴을 보고 있으니 변이체의 몸에 기포가 올라온다.

"스스로의 힘에 육신부터 무너지는 겁니다. 이제 정말 막바지로군요."

어느새 내게 다가온 청소부의 말이다. 나는 괜히 억울한 마음에 그를 노려본다.

"하하. 그렇게 쳐다보셔도 제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저 남자와 악연이 있으신 듯 한데. 그러게 평소에 행동을 조심하셨으면, 아차. 또 실수."

전혀 실수 같지 않은 말을 내뱉고는 과장되게 사과를 해온다. 이 사람, 미움 받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

끄에에엑!

변이체의 육신이 기포와 함께 쭈그러든다. 고통이 상당한지 비명소리가 끔찍할 정도로 처절하다.

한참이나 길게 이어지던 변이체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조금씩 작아든다. 변이체의 몸은 어느사이엔가 다시 김보성으로 돌아가 있다.

반쯤 녹아내리고 익어버린 끔찍한 몰골의 김보성이 신음성을 내고 있다.

"끄으윽."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신음소리에 청소부를 바라보니 그가 태연스러운 걸음걸이로 변이체에게 다가간다.

"이제 정말 끝난 것 같군요."

그를 따라 일행들이 김보성의 주변으로 몰려든다. 바닥에 눌러 붙어 흐느적거리던 그가 우리를 한명 한명 바라본다.

"사.. 살고 싶어..."

그 절절한 한마디에 모두가 그의 시선을 피한다. 청소부만이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김보성씨. '유언'은?"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그 한마디에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이 청소부라는 작자, 제 정상이 아니다.

"그.. 그들을 조심해..."

그의 반쯤 녹아내린 눈꺼풀 사이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화.. 황룡을 몸에 새긴 자들... 다시 돌아간다면 그들과 인연을 맺지 않았을.... 끄으윽!"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그의 말이 이어진다.

"나... 그 사람들에게 유니온의 정보를 넘겼.. 크윽.. 대한민국 이능력자의 데이터를 통째로.."

그를 동정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일행들의 눈이 크게 뜨인다.

"위.. 위험한 사람들.. 큭.. 후회해.. 용서 받을 수 없겠... 크윽.."

제정신이 아닌 듯 횡설수설하는 그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 너무 아퍼... 이제.. 끝내.. 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달라 말하는 그의 어조가 처절했다.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다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 들려오는 청소부의 한마디.

"'유언' 접수 되었습니다."

푸욱. 하는 소름끼치는 파육음이 들리고, 그의 말소리가 뚝 끊긴다. 놀라서 시선을 돌리니 언제 빼들었는지 모를 커다란 도끼를 그의 얼굴 한 가운데에 쑤셔 박은 청소부가 보인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들 경악한 표정만 짓고 있는데 청소부의 말이 들려온다.

"이제야 끝났네요. 도와주신 덕분에 힘들지 않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저녁식사 준비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듯한 그 여상스러운 말투에 다들 할 말을 잊었다.

"김형준씨. 어떻습니까? 일일 청소부 해보신 감상이. 생각보다는 어렵죠? 하하하"

쾌활하게 물어오는 그의 발치에 놓인 시체의 얼굴에 박혀든 도끼가 눈에 박힐 듯 들어왔다.

============================ 작품 후기 출판 글 교정땀시 업뎃이 쉽지가 않습니다. ㅜㅜ포풍과 같은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으로 제게 힘을 주소서.

챕터가 끝났습니다. 다음 챕터는 경쾌하게 가겠습니다!

*설문조사와 서평이벤트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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