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그리고 얼마 후. -- >
붉은 막 안에 갇혀서 눈만 굴리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변이체, 전에는 김보성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을 남자였지만 지금은 D섹터에 출몰하는 몬스터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평생을 D섹터에서 싸워온 이능력자의 말로 치고는 아이러니하다.
"그보다 청소부라는 사람 올 때 되지 않았어?"
시간을 보니 얼추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변이체를 가두는 거야 아직은 어렵지 않지만 부담스럽게 부풀어 오른 변이체의 모습이 조금 찝찝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변이체의 거죽이 팽창을 거듭해 이제는 속이 비칠 지경이다.
용모가 휴대폰을 꺼내 몇장인가 사진을 찍다가 대꾸한다.
"어. 올 거야. 신용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니."
거듭 강조하는 용모의 신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믿음을 주는 사
람이 아닌 이상에야 이 상황에서 부를 리가 없지. 몬스터 한 마리 처리하고자 호들갑을 떠는 것도 아니고, 변이체, 그것도 유니온의 간부였던 이의 변이체를 처리 하는 일이다.
신중을 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검맥에서 유니온을 공격했다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가 있다. 이미 용모가 증거를 만들어 두긴 했지만, 언제 어느 때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민아가 그간 보여준 신뢰를 생각하면 지나친 염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녀 본인은 유니온에서 하위 간부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그녀가 믿음직스러운 연결고리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유니온이 수작을 부리면 그녀 자체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부아아앙. 시끄러운 엔진음이 들려오고 멀리에서부터 불빛 하나가 다가온다.
"왔네."
용모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반긴다. 머리에서 발 끝까지 온통 검정색 일색인 인물이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짙게 코팅된 헬멧 때문에 맨살
하나 드러나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모습이다.
청소부는 인사도 생략하고 바로 변이체에 다가간 인물이 우리를 돌아본다.
"김보성 위원?"
지금은 완연한 몬스터의 모습이건만 어찌 알아봤는지, 그가 놀라서 내뱉는다.
"끄응. 귀찮은 일에 얽혀버렸네."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여 확인을 해주니 그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헬멧조차 벗지 않고 하는 말이라 잔뜩 웅얼거리는 음성이다. 인사를 생략한 것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짙게 코팅된 헬멧의 유리 너머의 얼굴조차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 조금 미덥지 못하다. 그런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그가 다시 말을 건네온다.
"아. 양해해 주세요. 저희가 하는 일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보니, 얼굴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에, 용모가 설명을 부연한다.
"집행부의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신분이 비밀에 부쳐진 사람들이야. 이유는 너도 알 리라 믿어."
용모의 말에 그제야 생각나는 것이 있다. 청소부들은 우리와 같은 이능력자, 아무리 폭주했다 하지만 동료였던 이를 소거하는 존재들을 반길 사람들은 없다. 그러니만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청소부는 없을 테지.
"일단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청소부의 말에 용모가 나를 쳐다본다. 사건의 가장 초기부터 있었던 사람이 나였으니 설명도 내가 해야겠지.
경찰서장의 협조를 받은 일부터, 오늘 그를 발견하기까지의 일을 대충 요약해서 설명해주니 청소부가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
조금 께름칙한 기분으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용모가 입을 열었다.
"상황은 들은 데로고. 조금 골치 아픈 사안이다. 유니온의 간부가 폭주하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야. 너는 뭐 들은 거 없어?"
변이체의 처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청소부라면 어쩌면 뭔가 정보가 있을 지도 모른다. 혹시 몰라 기대하는 심정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니 그가 고개를 흔든다.
"아니. 정보는 없고 네 말 데로야. 간부의 폭주라니. 생각도 못했다. 이거 공개되면 난리 날 거 같은데."
청소부 역시 당혹스러운 건 우리와 마찬가지 인듯하다.
"음. 원래라면 폐기해야 하는데, 조금 골치 아프네."
혼잣말 같은 그의 말에 수현씨의 눈썹이 역팔자로 올라간다.
"폐기?"
폭주의 굴레를 벗지 못한 이능력자의 고충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그녀일지라 말투가 매섭기만 하다.
"아. 폐기라는 말이 거슬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래서 저희가 미움을 받나봅니다."
멋쩍게 사과를 건네오는 그의 말에도 수현씨의 표정은 여전히 노여움이 가득하다.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게 고개를 돌린 그녀의 표정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다.
"저 사람은 자기 할 일을 하는 거에요."
청소부의 일이란 게 원래 저런 일일 테니, 그의 어투가 정나미 떨어지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청소부가 폭주의 원인이 아닌 바에야 굳이 적의를 가질 필요가 없지.
내 말에 수현씨가 입술을 잘근 잘근 씹더니 걸음을 옮긴다. 한참이나 우리에게서 떨어져 건물의 그늘에 기대 선 그녀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아. 제대로 미움을 샀군요. 뭐 익숙하긴 합니다."
조금은 처량하게 말하는 어투라 조금은 안쓰럽다. 저들 또한 잠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능력자들일 텐데, 어쩌면 능력자의 폭주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감하고 있는 이들이 저들일지도 모른다.
"근데 이 붉은 막은 누가 친 겁니까? 신기한데요?"
변이체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붉은 막 너머를 살펴보던 청소부가 묻는다. 꽤나 태평스러운 말투라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왔다.
"제가 한 겁니다. 일단 저희끼리 처리하기에는 좀 막막해서."
내가 대답하니 그가 신기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막을 찔러댄다. 바로 건너에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변이체가 있건만 천연덕스럽게 막의 이곳 저곳을 만지는 그의 행동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저런다고 막이 사라진다거나 하진 않겠지만, 저 청소부라는 사람 꽤나 대담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2등급 이상의 이능력자의 변이체라면 사실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일인데, 엄청 튼튼한 막이네요. 일종의 결계 같은건가?"
변이체의 처리보다는 내가 둘러둔 장막에 관심이 더 많은 모습이라 나는 한마디 했다.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스스로 내 뱉은 처리라는 말에 소스라친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니 용모와 청소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고, 저 멀리 있던 수현씨는 한숨을 내뱉는다.
경솔하게 말을 내 뱉은 나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데 청소부가 대꾸했다.
"안 그래도 생각 중이었습니다. 일단 이 막을 풀어야 제가 일을 볼 수 있는데, 막이 사라지면 제가 감당하기 힘들 거 같네요.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청소부의 부탁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변이체를 잡은 건 나지만 직접적인 관계는 피하고 싶었는데 이래서야 내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갈 듯 하다.
"혹시 이 붉은 결계 말고, 다른 방법으로 변이체를 구속할 수 있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았지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방법이 없다 말하자, 그가 한숨을 내쉰다.
"역시. 이번엔 좀 편하게 가나 했습니다. 제가 신호하면 막을 거둬주시고, 변이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경 써주십시오."
그의 말에 멀리 떨어진 수현씨를 다시 불렀다. 변이체의 도주를 막기 위해 사
방을 둘러싸니 슬쩍 내 앞으로 오는 청소부.
"저는 등급상 3등급에 해당하는 능력잡니다. 변이체가 달려들면 방법이 없어서요."
조금은 겸연쩍은 어투다. 혼자서는 상대가 불가능하니 내 뒤로 숨겠다는 말이렸다.
뻔뻔한 청소부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니 그가 눈을 감는다. 허공중에 손을 몇 번인가 휘젓다가 양 손을 쭉 뻗어내니 그 손 끝에 어려있던 빛무리가 바닥에 스며든다. 바닥에 원이 몇 겹인가 겹쳐서 그려지고 그 안을 복잡한 도형이 얽혀든다.
"저 도형이 빛을 내면 막을 풀어주세요."
청소부의 말에 한참이나 얽히고설키는 도형을 바라본다.
"원래라면 저것만 해도 꽤나 강력한 속박술인데 2등급 이상의 변이체한테는 아마 안 먹히지 싶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궁금하던 차인데 그가 설명을 한다.
"이제 도형의 빛이 사라지면 저 변이체는 아주 잠시지만 김보성이라는 남자로 되돌아갑니다."
그의 말에 놀라서 눈을 크게 뜨니 그가 설명을 이어간다.
"변이된 이능력자들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한 이능입니다. 저희 집행부 고유의 이능이죠. 저희끼리는 '유언'이라고 부릅니다."
'유언'이라. 갑작스레 변이해버린 이능력자들을 배려한 진인가 했더니 또 그건 아닌 듯 하다.
"처음에는 고위 이능력자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집행부에서 고안해낸 이능인데 일시에 생명력을 격발시키는 효능이 있다. 거기에 더해 변이된 이능력자의 정신을 잠시지만 깨워내는 효과는 우연히 발견한 부록 같은 거다. 게다가 집행부의 능력자들이 자신의 고유능력을 쓸 경우 정체가 탄로 나는 일이 벌어져. 그렇게 되면 변이된 이능력자의 친인에게 얽혀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용모의 부연설명에 잇새로 침음성이 새어 나온다.
"하하. 뭐 그렇다고 해도 변이된 이능력자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어서 좋고, 저희 입장에서야 일을 수월하게 볼 수 있는데다가 본신의 이능을 사용하지 않아 정체가 밝혀지지 않으니 일석삼조 아닙니까?"
천연덕스럽게 물어오는 청소부의 말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진다. 청소부의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거부감이 생기는 게, 비단 청소부라는 이 남자의 직책 때문이 아니라 저 방정맞은 입 때문인 것 같다.
상황만 이렇지 않다면 청소부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기분이다. 역시나 수현씨 역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앗차. 또 실수. 제가 좀 입이 방정맞아서."
수현씨의 시선에 찔끔한 청소부가 어설프게 사과를 한다.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어투라 듣는 나까지 화가 날 지경이다. 하는 일만 해도 미움 사기 좋은 일인데, 하는 말마다 이리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니 미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인물이다.
"음... 대충 시간이 다 됐... 지금입니다!"
청소부의 등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의 고함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힘을 거둬들였다. 붉은 막이 사라지자 몸을 잔뜩 낮추고 기회만 살피고 있던 변이체가 몸
을 날린다. 아니, 날리려고만 했다. 50센티도 채 못 날아오른 변이체가 무언가에 속박된 것처럼 바닥에 끌어내려지더니 괴로운 신음성을 내뱉는다.
끄르륵. 끄르륵.
끄르륵. 끄르륵.
가래 섞인 신음 소리를 내며 목가라고 짐작되는 부분을 부풀어 올리던 변이체의 몸이 딱 멈춰 버린다. 부풀어 오르던 목이 그대로 멈추고, 교활하게 굴러가던 눈동자가 멈춰 선다.
변이체의 얼굴이 뒤틀린다. 흉악하게 부풀어 올랐던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고 볼썽사납게 찢어졌던 입이 오므라든다. 흰자위 검은자위 구분 없이 온통 붉던 눈빛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온다. 보라빛으로 물들었던 피부가 점차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한참이나 지속된 변화가 끝났을 무렵에는 변이체는 다시 김보성이라는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얼굴만큼은 변이 전의 모습과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두꺼비처럼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몸에 사람의 얼굴 보기만 해도 기괴한 모습이
다. 그런 자신을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남자가 눈을 몇 번이고 껌뻑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던 남자가 우리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 작품 후기 오늘은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 출판 글 교정 보느라 정신 차려보니 업뎃 시간이 이미 한참은 지난지라 지금에야 올립니다.
선추코쿠는 글쟁이의 좋은 단백질원입니다. 포풍과 같은 선추코쿠로 저에게 힘을 주소서!
*현재 진행중인 설문조사와 서평이벤트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이미 서평을 써주신 네분은 제게 쪽지 부탁드립니다. 혹여 이용권이 잘못 갈 경우를 대비해 확실하게 하고자 함이니 시간 나실 때 쪽지 발송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