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83화 (83/223)

< --  2-1. 그리고 얼마 후.  -- >

유니온에서 보내준 자료를 토대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라고 하니 거창하긴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잡지 않으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겨버린다. 일주일을 주기로 범행이 반복된다. 정확한 범행시간이 매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CCTV를 토대로 대략적으로 저녁 시간에 주로 범행이 일어난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일주일의 주기라면 마지막 범행이 꼭 일주일 전이니 바로 오늘이 범인이 활동할 시기다. 범인이 범행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오늘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기정사실, 하지만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쓸 수 밖에 없다.

내가 직업 수사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범인의 행적을 단번에 유추할 수 있는 그런 전문가도 아니다. 그저 막연하게 범인의 범행이 오늘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발로 뛰어서라도 사건을 막아보고자 할 뿐.

이미 경찰 측과는 이야기가 끝나 오늘 수원시는 군대와 경찰들이 각개 각소로 퍼져 고르게 배치되어 있다. 괴수의 등장 이전이라면 거리 곳곳에 보이는 군인들을 본 민간인들이 불안해 했겠지만 지금의 사람들에게 군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저 몬스터의 침입을 대비해 어디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혹시라도 내가 범인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들이라도 뭔가를 발견하기를 바라며 시내 중심가의 건물을 오른다.

지금의 상황이 만약 영화였다면 거창하게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올라가거나 날아오르겠지만, 여기는 어디까지나 현실이기 때문에 얌전하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최고층을 눌렀다. 무작정 시내의 중심이다 싶은 건물을 골라 들어왔는데 제법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던지 수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다.

깊게 모자를 눌러쓰고 엘리베이터의 구석에서 벽만 보고 있는 나를 수상히 여긴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저 모자를 더욱 눌러쓸 뿐이다. 내 얼굴이 검맥의 초인이라는 낮 부끄러운 이름으로 인터넷상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상태라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가끔 보이는 이능력덕후라는 존재들이 알아보고 소란을 떠는 경우도 있으니 다시 한 번 모자를 고쳐 썼다.

최고층에 이르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지금 시각은 다섯시 반, 조금은 이른 시간이지만 딱 알맞은 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실 목적지라고 해봐야 시내의 중심에 위치한 고층 건물 아무 곳이나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최고층답게 최상층은 보기 좋은 테라스로 되어 있다. 잠시

경치를 구경하다가 옥상에 위치한 물탱크에 올라섰다. 좋아. 여기라면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사실 내가 범인을 찾는 방법은 대단한 게 아니다. 아니, 다소 무식한 방법이다.

그저 시내의 중심에 위치한 건물에 올라 무작정 이능의 발현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한 방법이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와의 수련 탓에 온갖 신변잡기가 능숙해진 상태다. 달리 다른 방법도 없으니 지금은 이 무식한 덫에 놈이 걸리 들기만 바랄 뿐.

가만히 물탱크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태운다.

가만히 범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CCTV를 통해 대략적으로 살펴본 놈은 185정도 되는 키에 100키로는 되 보이는 거구다. 짧은 머리에 다소 나이가 있을 법한 차림새였고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내가 마지막으로 유니온에서 본 중년 간부와 흡사하다. 이미 비슷한 사례를 한번 눈으로 보았던 탓인지 범인의 모습 대신 떠오르는 것은 그 중년의 간부의 모습뿐이다.

하지만 유니온의 간부씩이나 되는 작자가 그런 미친 짓거리를 할 리는 없겠지. 권력과 돈, 명예까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을 유니온의 간부가 뭐가 아쉬워 이런 엽기 살인을 벌인단 말인가. 게다가 유니온의 간부라면 이능의 폭주 억제 시술을 받는 것이 수월할 테니, 이능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었을 리도 없다. 민아를 통해 받은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알아낸 사실은 하나, 대한민국에 독을 사용하는 이능력자들의 수가 의외로 많고 하나같이 고등급이라는 것이다. 기껏 자료를 살펴봤지만 알아낸 것이 그거 하나니 암담하기 그지없다. 예전이라면 유니온이 모든 이능력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을테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정도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테지.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의 목적이나 정체에 대한 것은 전혀 가닥조차 잡히지 않았다.

담배를 네 대정도 피고 나니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마지막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뿜고는 눈을 감았다.

지금 내가 벌이는 것은 검맥의 수련자들이 기초적으로 배우는 '사방 느끼기'라는 기술이다. 기감을 퍼트려 천지를 가득채운 기로 눈을 대신 하는 것. 거창하게 설명해봐야 사실은 그저 주변의 기척을 느끼는 기술일 뿐이다. 원래대로라

면 이 기술로 범인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내 경우에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며 기감을 퍼트렸다. '사방 느끼기' 특유의 보이지 않는 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야 정상이지만, 내 경우에는 아주 가느다란 줄기가 나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가늘고 탁한 빛깔의 그것은 자세히 눈으로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그런 종류의 것, 머리카락보다 미세한 붉은 줄기가 점차 영역을 넓혀간다.

처음에는 내가 위치한 건물만을 간신히 에워싸던 줄기들이 어느 순간 시내 중심으로부터 무섭게 퍼져나간다. 한 가닥이 두 가닥이 되고, 그 두 가닥이 다시 수십 가닥, 수백 가닥으로 늘어난다.

그녀와 처음 이 '사방 느끼기'를 수련했을 때 그녀는 기겁을 했지만, 이 또한 내가 가진 특유의 기운 탓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이내 납득했다. 은밀함을 잃은 대신 범위만큼은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나만의 '사방 느끼기'가 온 시내를 촘촘하게 얽어맨다.

어느 정도 범위가 넓어지자 나는 기감을 확장하는 것을 그만두고 범위 안의 느낌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천만 개가 넘던 기운들이 수백만으로

걸러지고, 다시 수만으로 걸러진다. 그리고 그 중에서 다시 걸러낸 기운의 수는 200개가 채 안된다.

생각보다 꽤 많은 수의 이능력자들이 배치되어 있음에 놀라면서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정확하게 195개체의 기운들이 수원시의 중심가 근방에 있었는데, 그중 150개체정도는 한 곳에 뭉쳐 있는 게 군부에 배속된 인물들로 보였다.

특별한 이동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위치한 한 덩어리의 기운들을 무시하고 다시 남은 45개의 기운들을 추적했다. 나머지 45개는 불규칙하게 수원시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었는데 둘 내지 셋으로 이동하는 기운들은 다시 걸러냈다.

그렇게 걸러내고 나니 남은 것은 고작 일곱 개의 기운. 이 일곱 개의 기운 중에 범인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기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만약 내가 걸러낸 기운 중에 범인이 있다면 낭패지만, 아무리 내가 거대한 기운을 얻게 되었다고 해도 장시간 기감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다. 이미 지금 퍼트려놓은 기감만으로도 꽤나 기운이 빠져나가는지 벌써부터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일곱 개의 기운 주변에 위치한 기감을 제외하고 다른 곳의 기감들은 전부 회수

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일곱 개의 기운 중에 이동 중인 기운이 세 개, 제 자리에 있는 기운이 넷이다. 이동 중인 기운은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인지 꽤나 빠르게 시내의 이곳저곳을 훑고 다닌다. 멈춰 있는 기운 넷은 가까운 곳에 둘, 먼 곳에 하나, 거의 시내의 외곽에 있는 것 하나.

한참을 그렇게 일곱 개의 기운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모를 세 개의 기운들이 점점 군부의 이능력자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향한다. 이들도 제외. 그러면 남은 기운은 네 개.

만약 내가 범인을 처음부터 잘못 걸러낸 것이 아니라면 이 네 명 중에 범인이 있을 것이다. 지겹도록 이동도 하지 않고 한 자리에 있는 네 개의 기운들을 지켜보느라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범인이라면 내가 실수하지 않는 한 이 엽기적인 연쇄 살인 행각의 고리를 끊을 수가 있다.

지루함을 꾹 참고 그들을 관찰하기를 한참, 네 개의 기운 중 두 개가 이동을 시작했다.

감았던 눈을 뜨고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소셜 네트워크에 위치한 맵을 연동해 마지막 남은 네 개의 기운중 이동하지 않는 두개의 위치를 마킹해준다. 감만으로 잡은 거리라 정확한 위치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방향 정도는 맞으리라.

연동된 맵에 마킹된 곳을 향해 수원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을 수현씨와 용모가 신나게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범인이 2등급 이상의 이능력자라고 가정해도 충분히 단신으로 상대 가능한 인원들이라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이동하지 않는 두 개의 기운은 그들에게 맡기고 남은 두 개의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범행을 벌인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능의 발현이 있을 터, 기운이 요동치면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동중이던 기운 중 하나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정되어있던 기운이 사납게 꿀렁이며 음습하게 바뀐다.

빙고. 찾았다.

이동중이던 방향도 하필 나와 가까운 곳이라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동중인 나머지 하나의 기운 역시 군부의 무리와 합류한 듯 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음습하게 변질된 기운을 향했다.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테라스를 건너 띄고 건물의 외벽을 타고 뛰어내린다. 건물 외벽을 타고 반쯤이나 내려왔을까 나는 발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건너편에 있던 건물에 올라 다시금 발을 박찬다.

주변의 사물들이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가고, 어느샌가 고층 빌딩이 보이지 않는다. 드문드문 있는 단층 건물들을 보니 벌써 도시의 외곽까지 나온 듯 하다. 더 이상 타고 뛸 건물도 없어 바닥에 내려서서 바닥을 박찼다. 간간히 보이는 행인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무시하고 달렸다.

음습하게 꿀렁이던 기운이 어느 순간 팽창하기 시작한다. 기감을 이용해 놈을 찾긴 했으나 자세한 정황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나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공기가 찢어 발겨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어느 순간 놈의 앞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어?"

막상 놈의 앞에 도착하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수 없이도 떠올렸지만 그렇게도 범인이 아닐 거라 부정하던 인물이 눈 앞에 있다.

탄탄한 거구에 호방한 인상의 중년 남자, 일전에 나와 부딪혔던 유니온의 간부가 내 눈 앞에서 침을 흘리고 있다. 이성을 잃고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는 온통 붉고, 흉하게 늘어진 아래턱에선 끊임없이 침이 흘러내리고 있다. 축 늘어진 손에 가득한 녹색 기운이 당장이라도 흩어질 것처럼 일렁이고 있다.

"사.. 살려 주세요!"

그런 그의 앞에 아마 이번 범행의 희생자로 선택되었을 여인이 보였다. 그저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의 20대 아가씨였는데,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 앉아 그저 살려달라는 말만 수 없이 반복하고 있다.

흉물스럽게 여인에게 다가가는 중년남자의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재빠르게 여자의 앞을 가로 막으니 중년남자가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이봐. 아저씨."

막상 남자를 지칭하려고 보니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며 손을 앞으로 뻗자 남자가 주춤주춤하며 물러섰다.

의도적으로 온몸의 기운을 개방한 채라, 본능만 남은 상태라도 내 기세를 느끼고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전에도 무력하게 내게 제압되었던 남잔데 지금이라고 딱히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이쪽은 훨씬 더 강해졌거든.

일단 남자가 멈춰서자 나는 등 뒤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요. 아가씨 이제 살았으니까. 그만 빌어도 되요."

지현에게 배운 선도의 호흡법을 통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청량한 기운을 담았다.

"누.. 누구세요?"

이럴 때 하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어쨌거나 아가씨가 정신을 차린 듯 해 나는 안심했다.

"검맥에서 나왔어요. 이제 아가씨는 안전합니다."

내가 아가씨를 진정시키는 사이 놈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어라? 저거 정말 폭주잖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유니온의 간부씩이나 되는 냥반이 설마 억제시술을 받지 못 했을리는 없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후기 없습니다 앞으로.

후기로 개소리란 소리까지 들으면서 시간 들여서 후기 쓰고 싶은 마음 없네요.

한번도 독자분들이 글에 대해 얘기하실 때, 감정적으로 나선 적 없는데 이번 만큼은 못참겠네요. 앞으로 후기 안 쓰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리리플도 없고 특별한 경우에만 공지

로 대신하겠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입 다물고 그냥 글이나 쓰라는 말씀으로 듣고 글이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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