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그리고 얼마 후. -- >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럼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새빨간 거짓말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상을 짓고 있는 경찰만 불쌍하다.
"아줌마. 이제 좀 적당히 하지 이웃사촌끼리 거 되게 빡빡하게 구네."
내가 건들거리며 말하자 아줌마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다.
"지금 뭐라는 거야! 어디 누구한테 이웃사촌이라 그래!"
좋게 말하려고 해도, 도저히 말이 통하지를 않는 아줌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 아줌마 말대로 경찰서로 갈까요?"
울상을 짓고 있던 경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좀 불쌍하긴 하지만 처음의 태도로 봐서 저 경찰도 여기 서 있는 게 내가 아니었다면, 필시 애꿎은 사람을 잡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저 경찰도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다.
"제.. 제가 어떻게..."
중간에 끼어서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하는 경찰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쉰다. 딱 봐도 사소한 일인데 저 아줌마가 유난을 떠는 것을 모를리 없는 경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줌마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는 걸 보면 큰소리칠 만큼 아줌마의 위세가 있다는 것이겠지.
"저 지금 작전 갔다가 오는 길이라, 몹시 피곤한데 계속 여기 서 있어야 합니까?"
나는 작전이란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가뜩이나 곤란한 얼굴이던 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그리고 지금 서장이 누구였더라. 김민식 서장이었던가?"
내가 동네 똥개이름이라도 부르듯 경찰서장의 이름을 부르자 시끄럽게 떠들던 아줌마의 입이 순간 다물어진다. 그 뒤룩뒤룩 살찐 얼굴에 찌부러진 작은 눈을 껌벅 거린다.
"네. 맞습니다."
경찰의 모습을 보니 이제는 체념한 듯 하다.
"당신이 그이를 알아?"
아줌마가 떨떠름하게 내게 묻는다. 오호라. 아줌마가 경찰서장의 마누라였구나. 난 또 어디 졸부 집 사모님인줄 알았더니.
"아줌마가 김민식 서장 마누라였구나."
김민식 경찰서장이라면 평소에 존칭정도는 붙이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일부러 존칭을 생략했다. 내가 자신의 남편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칭하자, 그제야 아줌마의 얼굴에 의문과 불안감이 떠오른다.
"누.. 누구.. 세. 요?"
이제야 제대로 된 반응이 온다. 이렇게까지 유치한 짓을 하고 싶진 않았는데 아줌마가 하는 꼴을 보니 남편의 위세를 등에 업고 평소에도 꽤나 패악질을 하고 다닌 듯 하다.
"글세. 아줌마 남편한테 물어봐. 김형준이 누구냐고."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아줌마의 곁에 다가선 경찰이 귓속말을 한다.
"저.. 저기 저 분이 바로 그 이 동네 사는 이능력잡니다."
딴에는 목소리를 낮췄다고 하지만 내 귀에는 다 들린다. 경찰의 말에 아줌마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잔뜩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수차례.
"아줌마. 또 보자고.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것 같은데."
유치하지만 아줌마가 놀라는 얼굴을 보고 싶은 유치한 기분 하나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던 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 볼일이 없다. 여기서 더 유치하게 이름값으로 아줌마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들지 않는다.
대화를 오래 하기에는 저 아줌마의 목소리가 치명적으로 거슬린다.
"네! 살펴 들어가십시오!"
아줌마가 잠잠해지자 경찰이 허리를 힘차게 접으며 인사를 해온다.
막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바로 곁에서 폭음이 터져 나온다. 고개를 돌리니 아줌마가 애지중지하던 검은색 외제차가 불길에 휩싸여있다.
"돼지 싫어."
현지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나는 절로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아줌마를 놀려주려던 치기가 일을 키워버렸다. 잠시지만 내 곁에 있는 현지가 어떤 존재인지 잊고 있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 그게 바로 이 맹한 표정의 아가씨였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보니 뜨악한 표정으로 나와 불타오르는 차를 지켜보는 모양새가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다. 일반인들에게 현지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으니 오해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 시인하기도 그렇고, 부정하기도 뭐한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 와락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사실은 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현지.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어서 차마 나무라지도 못하겠다.
"어떻게 합니까?"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경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차 값은 배상하는 걸로 하고, 기물 파손으로 경찰서에 동행해야 합니까?"
이능에 의해 차량 한 대가 불타버렸다. 현지의 장난으로 시비가 붙었던 방금 전과는 무게가 전혀 다른 사안이다. 내가 아무리 국가에서 중요한 인물 취급을 받고 있더라도,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다. 이런 정도의 짓을 해놓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힘들겠지.
결국 나는 현지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경찰차에 올라탔다.
내가 경찰서로 향한다는 연락을 미리 받았는지 서장이 입구에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허리를 숙이는 김민식 서장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서장실로 향했다. 앞서서 호들갑을 떨며 서장실로 안내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사실 그가 나를 저리 대하는 것은 내가 군대에서 받은 직급 탓도 있으니 내가 부담스러울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비상시에만 적용되는 권한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나에게 대령이라는 직함을 줘버렸다. 그러니 내가 서열로 따져도 경찰서장보다는 윗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맛이 쓴 건 서장의 저런 태도가 대령이라는 내 직급보다는 내가 이 도시에 존재함으로 얻어지는 떡고물이 많기에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는지 서장실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허리가 다시 숙여진다.
"죄송합니다. 제 내자 때문에 번거로운 일을 겪으시게 해서."
현지가 벌인 일 탓에 머리가 복잡해서 그냥 괜찮다고 대답을 하니, 서장이 다시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서장이면 꽤나 높은 냥반인데 저리 목이 헐거워서야.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번 일로 내가 덜컥 이사라도 가겠다고 하면 곤란한 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시의 방위전략을 짤 때 이미 나를 전력으로 상정하고 짰다고 들었는데 내가 사라지면 군부부터 시작해서 시의 행정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은 안봐도 뻔하다. 군부는 나를 대신할 병력을 보충해야 할 테고, 시에서는 여러가지 정책적인 수정을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유니온의 총본부가 있는 부산과 내가 있는 수원이 가장 사회적 침체가 덜한 도시이니.
나는 고작 이능력자 한명일 뿐이지만, 그런 나라도 다른 곳으로 갔다가는 곤란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게 김민식 경찰서장의 가족때문이라는 소문이 돌면, 이 사람의 미래도 그리 밝지는 않겠지.
"아닙니다. 제가 순간 이능을 잘못 조절해서 애꿎은 차 한 대만 날렸네요."
내 말을 들은 그가 진땀을 흘린다. 이능 두 번만 잘 못쓰면 집도 날려 먹겠네라는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얼굴이라 심기가 불편하다. 애초에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어 속만 답답할 뿐이다.
"조서인지 뭔지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일단 경찰서까지 왔으니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싶어 물으니 서장이 고개를 흔든다.
"아. 아랫사람에게 말을 해뒀으니. 오신 김에 차나 한잔 하고 가십시오."
그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경찰서에 올 이유가 없지 않았나 싶다. 법치국가라는 대한민국이 이래도 되나.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서장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연다.
"저... 안 그래도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었는데..."
서장의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사람이 나에게 부탁할 만한 것이 있나?
"서장님이 저한테 부탁하실 만한 게 있을까요?"
내가 그리 말하자 서장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네. 저희 힘만으로는 힘든 일이 있어서."
나는 소파에 몸을 묻으며 설명을 요구했다.
"그게 요즘 수원시에 강력범죄가 급상승해서 말입니다."
도시에 범죄가 늘어나는 것이랑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거야 서장님을 비롯한 경찰분들이 조금 바쁘게 움직이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저의를 모르겠군요."
갑자기 업무에 대한 넋두리를 내게 할리도 없건만 뜬금없는 화제를 꺼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범인이 능력자 같습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능력자가 범인이라고요?"
서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요즘 시에 급상승한 범죄들 중 상당수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처음에는 뭔가 특수한 방법을 썼겠거니 하고 수사를 했는데, 이게 파고들
면 파고들수록 이해가 안가는 일들 투성이라서 말입니다."
서장의 말에 절로 신음성이 새어나온다. 전에도 이능력자가 저지른 범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민간인이 알기 전에 유니온에서 해결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능력자가 아닌 보통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확실합니까?"
내가 힘주어 묻자 그가 긴장된 표정으로 얼굴을 굳힌다.
"네. 이미 CCTV를 확인했고, 여러 현장에서 인간 이상의 힘이 발휘됐다는 증거가 드러났습니다."
서장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니온에는 연락해봤습니까?"
이런 일이라면 당연히 유니온의 소관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유니온이 있기에 이능력자들의 폭주나 범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유니온 쪽에도 협조 공문을 보내봤습니다만, 그 쪽에는 현재 인력부족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답니다. 게다가 범죄를 저지른 능력자가 생각보다 고등급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섣부르게 사람을 파견하기 힘들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역시나 괴수와의 전투 이후 전력이 상당히 저하된 유니온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가뜩이나 저하된 전력으로 D섹터를 관리하고 전국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습격을 대처하자니 인력부족은 당연한 일이다.
"고등급이라면 어느 정도나?"
얼마나 고등급이길래 유니온이 난색을 표했나 해서 물었다. 최소한 5등급은 넘을테지.
"최소 3등급, 2등급 이상일 가능성도 크답니다."
서장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3등급 이상의 능력자라면 유니온에서도 핵심 전력이다. 그런 정도의 힘을 지닌 이가 뭐가 아쉬워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황당할 지경이다.
"독을 사용하는 이능력자일 가능성이 크다는데, 저희들만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사안이라 이렇게 어렵사리 얘기를 꺼냅니다."
머릿속이 복잡해 서장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그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게다가 범행이라는 것이 하나 같이 잔인해서. 희생자들의 시체를 찾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맙소사. 그냥 범죄도 아니고 살인이란다.
나는 머리를 짚으며 소파에 도로 앉았다. 몬스터가 날뛰더니 이번엔 고등급 이능력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단다. 대한민국이 어찌 되려고 이런 황당한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나.
============================ 작품 후기 으아아아! 키보다 타닥타닥! 불타오릅니다!!!!
연료는 독자님들의 선추코쿠!!! 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연료를 주소서!!!
쩝. 저번편이 소소하고 왜 나왔나 싶겠지만 주인공이 경찰서를 가게 되는 계기입니다. 엣헴. 돼줌마에 대한 어그로가 상당하군요. 앞으론 미녀들만 등장시키겠습니다.
푸들푸들 떨리는 아줌마의 턱살 대신, 무언가를 출렁출렁으로.... ㅎㅎ갑질은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2부 초반 전개는 변화한 대한민국의 상황 묘사와 격상한 형준의 위치를 보이는 편입니다. 본 전개는 다음편부터지요.
*그리고 서평이벤트 추천 조회수 제외하고 그냥 솔직한 감평이기만 하면 이벤트 접수 받겠습니다! 그러니 부담없이 솔직한 감상을! 악평도 좋고! 비평도 좋고! 호평은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