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그리고 얼마 후. -- >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있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들렸다 갈 거에요?"
안전벨트를 풀며 수현씨에게 물으니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다른 쪽에 볼 일이 남아있어서요. 일 다 끝나면 들리던지 말든지 연락드릴 게요."
뭐 딱히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볼일이 있다기에 붙잡지 않았다. 그녀의 차량이 대로에 가득한 차량의 행렬 속에 섞여드는 것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널찍한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고급주택들. 수원시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다. 괴수가 나타난 이후 땅값이 떨어질 거라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대도시의 땅값은 떨어지기는커녕 도리어 오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몬스터들 탓에 불안한 사회분위기를 생각하면 부동산의 가격이 떨어져야 마땅하다. 실제로도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의 땅값은 곤두박질치
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땅값이 기형적으로 오르는 이유는 도시에 배치된 군부대와 이능력자들의 부대 탓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골목 역시 그런 식으로 값이 오른 주택가다.
한창 걸음을 옮기던 갑자기 들리는 소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워낙에 조용한 동네라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성이 더욱 거슬린다.
어떤 무식한 것들이 이렇게 소리를 질러?
"야! 너 말해봐! 누구 집 자식이야!"
소란의 중심에 다다르니 왠 아줌마가 소리를 버럭 버럭 지르고 있다. 엉망진창인 몸매를 값비싼 폐물로 감싸고 온몸을 푸들거리는 아줌마. 전형적인 있는 집 아줌마의 비쥬얼이다.
"응? 내가 이 동네 사람들 다 아는데 너 대체 어느 집 살아!"
듣기만 해도 짜증나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 있는 아가씨를 윽박지르고 있는 아줌마. 괜히 덩달아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너 왜 대답을 안해! 벙어리야?"
그런데 그녀가 윽박지르고 있는 아가씨의 얼굴이 낯익다. 지독스러우리만치 무표정한 얼굴에 초점이 풀린 눈으로 아줌마의 잔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는 그녀, 나의 피보호자 이현지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너. 안되겠다. 나랑 경찰서로 가자."
한참을 뭐라 해도 대답도 않고 멍하니 자신만 바라보는 현지의 가녀린 손의 아줌마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잡아간다.
"아줌마. 뭐 하는 거에요!"
막 아줌마의 손길이 현지에게 닿으려는 찰나 나는 그 난폭한 손길을 쳐냈다. 내 등장이 갑작스러웠는지 아줌마가 눈을 크게 떴다가는 내 위 아래를 훑어본다.
"뭐하시는 거냐고 물었잖아요!"
가뜩이나 애꿎은 현지를 핍박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런 노골적인 시선을 받고 나니 인상이 절로 써진다.
"당신은 뭔데?"
잠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던 아줌마가 대뜸 내잠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던 아줌마가 대뜸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게다가 누구냐도 아니고 뭐냔다. 생긴데로 짜증나는 아줌마다.
"그러는 아줌마는 뭔데요?"
현지의 손길을 잡아 품으로 이끄니 현지가 금세 품안으로 들어온다. 멍한 표정이었던 그녀의 얼굴에 미미하게 반가움 비슷한 것이 떠오른다.
"형준."
1년 전만 해도 그저 간단하게 배고파, 졸려 같은 간단한 말만을 하던 그녀가 이제는 내 이름을 부른다. 내 이름을 부르고 뭐가 좋은지 베실베실 웃음을 짓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줌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머머. 아줌마? 나보러 아줌마라고?"
아무리 봐도 졸부집 아줌마의 전형인 아줌마가 아줌마라는 소리에 그 두터운 턱살을 푸들거린다.
"어디서 못 배워먹은 것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고전적인 대사를 하며 아줌마가 손가락을 마구 휘두른다. 돼지 멱따는 소리로 뭐라뭐라 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는 자신이 전화 한통만 하면 알만한 사람들이 달려온다는 것인데, 그게 지금의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가.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대충 아줌마가 하는 말을 잘라내니 다시 그 턱살을 부들부들 떨어댄다.
"교양머리 없이 어른이 말하는 걸 잘라?"
나는 상황이 어찌 된 건지를 물었는데 저 아줌마는 계속 저 할 말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나는 아줌만데 그 멱따는 소리까지 들어주자니 고역이다. 현지가 정신이 멀쩡했다면 그녀에게 물었으면 됐겠지만 그녀는 반백치와도 같다.
"교양이고 뭐고 뭣 때문에 그러냐니까요."
혀를 쯧쯧거리며 나를 다시 훑어본다.
"저 여자가 내 차에 낙서를 했다고. 어떻게 할 거야?"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검은색 고급 수입차가 떡하니 길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낙서라고 하길래 현지가 또 실수를 했나 싶어 자세히 보니 차에 묻은 물기가 이상한 형상을 띄고 있다.
"저거요?"
어이가 없어서 아줌마를 바라본다. 현지가 한 낙서는 다름이 아니라 차에 고인 물기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그린 사소한 것. 당장 손바닥으로 한 번 문지르면 스윽 닦여나갈 그런 것이다.
"그래. 저거!"
하는 말마다 반토막이라 슬슬 열이 치밀어 오른다. 인상을 와락 쓰고 차에 다가가서 손바닥으로 스윽 문질렀다. 현지의 조악한 그림이 단숨에 사라지고 물기만 남는다.
"됐죠?"
손바닥의 물기를 바지춤에 문지르며 말하니 아줌마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어머머. 미친 거 아니야? 저 차가 얼마짜린지 알고 손을 대기를 대. 이래서 없이 사는 것들은."
말끝마다 없이 살고, 못 배워 먹었다고 말하는 아줌마의 모습에 나는 삐딱하게 섰다.
"아줌마. 어디서 봤다고 반말이야? 어? 우리 현지가 물기 가지고 장난 좀 쳤기로서니 지금 너무 지나친 거 아냐? 티도 안 나는 구만."
일단 남의 차에 손을 댄 건 현지의 잘못이니 사과를 하려다가 아줌마의 막무가내 태도에 약이 올라 다다다 쏘아준다.
"이것들이 진짜. 내가 사람이 좋아서 참아주니까. 어디서 반말이야?"
"반말은 아줌마가 먼저 했잖아. 아줌마는 나 알아?"
한발자국 앞에 나서며 말을 하니 아줌마가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제풀에 자빠진다.
"어? 나 밀었어? 지금 민 거야?"
하는 꼴을 보자니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해서 그냥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현지야. 가자."
내 말에 내 옷자락을 잡은 현지가 고개를 끄덕이곤 내 뒤를 따른다.
"야! 너 어디 가! 사람을 밀어놓고 사과도 안 해?"
뭔가 논리도 안 맞고, 요지도 없는 아줌마의 말에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화가 통해야 대화를 하지.
아줌마를 무시하고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검은 정장을 입은 누군가가 뛰어온다. 나를 지나쳐 바닥에 넘어져서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아줌마를 일으키는 걸 보니 뭐, 대충 앞으로의 상황이 예상이 간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아침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상황이다. 이제 저 아줌마가 저 남자에게 고자질을 하겠지.
"김기사! 어디 갔다 왔어! 내가 금방 나올 거라고 하니까, 나 기다리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일단 나 좀 일으켜줘."
소리를 버럭 지르다가 김기사라는 남자의 부축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킨다.
"저 사람 좀 잡고 있어봐. 안되겠어. 저런 양아치들이 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건 못 참겠어."
단지 차에 장난을 좀 쳤기로서니 우리를 양아치란다. 진즉에 본인이 좋게 말했으면 이쪽에서도 사과하고 넘어갔었을 것을.
한숨을 쉬고 있는데 김기사라는 남자가 내 앞을 막아선다.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꼴을 보니 어디서 좀 주먹질이라도 한 얼굴이다.
"거기 삼촌. 우리 사모님 말 안들려? 잠깐 멈춰봐."
어떻게 하는 짓이 3류 드라마 패턴이랑 이리 똑같냐. 하고 생각하던 나는 그를 무시하고 지나친다.
"어이. 내 말 안 들려?"
내 어깨를 잡아오는 손길에 걸음을 멈췄다.
하아. 내가 이 동네에 아무나 이사시키지 말라고 분명히 알렸었는데. 사실 이 부근에 위치한 주택가들은 그리 고급의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고위층의 인사들이 너도 나도 이사를 온 것이다. 처음에는 몇 가정이 와서 자리를 잡더니 금세 집을 개조하고 증축해서 지금은 고급 주택가가 되어버렸다.
"손 떼시지? 지금이라면 그냥 넘어가 줄 테니."
내 말에 김기사라는 작자가 코웃음 친다. 그 사이에 돼지 아줌마는 어디에 전화를 했는지 기세가 등등해서 내게 삿대질을 한다.
"어린 것들이 어디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어.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꼭 콩밥 먹여줄테니까."
콩밥 먹을 일도 많다. 남의 차에 물로 낙서 했다고 콩밥 먹으면 이 나라의 어린이들은 전부 유치원 대신 소년원이라도 가야겠네. 하도 어이가 없으니 이제 웃음만 나온다.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팔짱을 낀다. 그냥 가려다가 그들이 하는 짓이 하도 유치해서 어떻게 하는지 볼까 기다린다.
"그래. 이제 좀 겁이 나나 보지? 좀만 기다려봐."
아줌마가 득의양양하게 지껄인다.
내가 김기사라는 작자의 위협에 겁이라도 먹고 걸음을 멈췄다 생각하나 보다. 그저 하는 짓이 귀여워서 잠시 장단을 맞춰주고 있을 뿐인데.
"근데 자꾸 아줌마 아냐고 하는데, 아줌마가 누군데?"
가만히 기다리자니 조금 심심해서 툭 내뱉으니 아줌마의 기세가 더 등등해진다.
"왜? 겁나? 이제 늦었어."
잠시만 더 그 기고만장을 봐줄까. 가만히 서 있는 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오는 지 기대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경찰차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호들갑을 떨며 내린 경찰차의 경찰 한명이 냅다 달려간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투실투실한 몸 골백번 넘어져봐야 태도 안나겠구만, 경찰의 호들갑에 어이가 없다.
"저보다 저 불한당 같은 놈을 잡아주세요. 아주 악질이에요."
아줌마가 답지도 않게 연약한 척을 하며 경찰에게 말했다.
"어떤 놈인지 제가 혼찌검을..."
두툼한 손가락을 따라 나에게 시선을 옮긴 경찰의 표정이 뜨악해진다.
"김 형준씨?"
경찰이 나를 알아보자 아줌마가 놀라는 눈치다.
"아는 사람이에요? 보니까 예비군 훈련이라도 다녀온 건달 같은데, 일단 경찰서로 데려가요!"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경찰을 아줌마가 재촉한다.
"저를 아십니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경찰에게 말을 건넸다. 말이야 저렇게 했지만 경찰이라면 내 얼굴을 알고 있을테지.
"저.. 저기 어떻게 된 겁니까?"
경찰이 당황한 표정으로 돼지 멱따는 소리로 난리를 치는 아줌마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어떻게 되긴요. 저기 저 미친 여자애가 제 차를 망가트리길래 좋게 타일르고
있는데, 갑자기 저 불한당 같은 놈이 나타나서 저를 위협하지 뭐에요. 이거 봐요. 저 놈이 밀쳐서 넘어졌을 때 다친 상처라고요!"
두툼한 팔에 어디 하나 상처도 없구만 팔꿈치를 내미는 꼴이 가관이다. 또 하는 말은 어떤가. 소설을 쓰는지 방금 전에 있던 일을 어떻게 저리 각색하나 싶다. 저 말만 들으면 나는 천하의 불한당이다.
"사실입니까?"
경찰이 머뭇거리며 내게 물어온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아닌데요."
내 말에 경찰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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