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그리고 얼마 후. -- >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던 김형준은 다른 초소를 가보겠노라고 말하곤 사라졌다. 나타난 것보다 배는 빠르게 사라져버린 그를 보던 김진우 상병과 신동욱 이병이 한참이나 그가 사라져간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야! 가자!"
김형준의 존재감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았던지 멍한 표정을 한 이병에게 김진우 상병이 소리친다.
"괜히 여기 있다가 엄한 놈 만나서 험한 꼴 볼라. 가자."
넌더리를 치며 말하는 모양새가 꽤나 질린 듯 하다.
"저 사람 진짜 멋있지 않습니까?"
신동욱이 아직까지 들뜬 목소리로 물어왔다. 죽다 살아난 놈이 변덕도 심하구나 하고 생각한 김진우 상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멋있긴 하지..."
그는 김형준이 사라진 방향을 힐끔 보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말이 갑자기 많아진 신동욱 이병이 다시 입을 연다.
"저런 사람이 몇 명만 더 있으면 경계 근무 서다가 다치는 사람도 없지 말입니다."
들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자신들이 괴물과 마주 치기 전에 들려온 총성. 분명 다른 초소의 근무자들 중 누군가 몬스터와 조우한 것이리라. 그들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그저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한숨을 내쉰다.
"진우형. 근데 저 이번에 돌아가면 PX 이용할 수 있습니까?"
털레 털레 걸음을 옮기던 김진우 상병의 눈썹이 바짝 치켜 올라갔다.
"형?"
뒤편에서 그를 따르던 신동욱이었던지라 그런 그의 표정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재잘재잘 입을 놀려댄다.
"아까 형 동생 먹으라고 하셨지 말입니다. 정말 PX 가도 되겠습니까?"
그의 머릿속에 괴물 앞에 섰을 때, 저승 가는 길 길동무니 형 동생 하자던 이병의 말이 떠올랐다. 걸음을 옮기던 그가 몸을 돌리며 이병의 철모를 후려친다.
"새끼야! 아까는 아까고! 군인이라는 자각이 없어요. 새끼가."
꽤나 거친 손길이었던 탓에 이병의 얼굴에 억울한 기색이 금세 차오른다. 분명 아까는 형 동생 하라고 해놓고 라며 조그맣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못 들은 척 했다.
새끼. 그래도 엄청 기특한 놈이야. 어리버리하긴 해도.
위기상황에서 더욱 돈독해진 전우애를 느끼며 김진우 상병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후임을 바라본다.
"근데 동욱아."
"네. 김진우 상병님."
은근한 목소리였던지라 금세 풀어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신동욱 이병. 그의 어깨에 군인이라면 당연히 메고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고참의 다정한 눈초리가 쭉 찢어진다.
"너 총 어딨냐?"
"제길. 늦었나..."
쏴아아 거리는 빗소리에 먹혀버린 내 한마디가 쓰기만 하다. 다른 경계 초소의 군인들이 걱정되어 뛰어왔건만 초소는 이미 박살이 났다. 바닥에 늘어진 철모니 소총 따위를 보는 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헤어진 군인들에게 듣기론 자신들이 괴물을 만나기 전부터 총성이 들렸다니, 철모와 소총의 주인들은 진즉에 몬스터의 뱃속에 들어갔으리라.
"크르르릉."
빗소리에서도 선명한 그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이 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눈치 채고 있던 기척이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기척이 나를 포위하고 다가서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목을 울리는 사나운 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고 철모와 소총이 흩어져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소총을 집어 들었다.
철컥.
탄창을 빼보니 탄알을 채 다 쓰기도 전에 당한 것인지 탄이 아직도 남아있다.
"크릉."
내가 철모와 소총을 주우며 희생자들의 흔적을 더듬고 있는 사이, 놈들의 수가 하나 둘 늘어난다.
희생자는 둘인가? 재수가 좋았는지 바닥에 널린 전투복과 육편들 사이에서 군인들이 흔히 개목걸
이라 부르는 인식표를 찾을 수 있었다. 호주머니에 인식표들을 집어넣고 주변을 둘러본다.
누런 이들을 드러내고 걸쭉한 침을 흘리고 있는 '독구'들이 보인다. 네, 다섯마리씩 무리생활을 하는 놈들인데 좀 전에 처리한 놈이랑 같은 무리로 보인다. 하나 같이 거대한 면상을 들이밀고 누런 송곳니를 드러내 보인 놈들을 향한 내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괴수의 출현 이후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그저 D섹터만 관리하면 별다른 일이 없던 시절은 가고, 전국 각지에서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 와 버렸다. 서울은 괴수와의 전투 이후 대대적인 구조 작전을 마지막으로 버려졌고, 몇 개인가의 도시가 더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 유령도시가 되어버렸다. 군은 서울을 둘러싼 경계선을 형성했고 각 도시에는 이능력자들이 포함된 병력이 주둔하고 불시에 들이닥칠 몬스터들의 습격을 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예전의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인천 국제공항을 오고가던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기고 그 자리를 대신해 각국의 이능력자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고 있다. 지난 참사 이후 고위 이능력자들의 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수가 많은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의 전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세력들이 원조를 핑계로 대한민국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영국의 '카멜롯', 중국의 '무림'이 가장 먼저 들어왔고, 미국의 '히어로즈'와 일본의 '초인단'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유니온에서는 완곡하게 그들의 원조를 거절했지만 대의를 내세워 대한민국을 돕겠다는 그들을 노골적으로 내쫓을 수도 없는 상태라 머리를 앓고 있다지.
아직은 별다른 활동 없이 몬스터퇴치에만 힘을 얹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이 그리 순수하지 않음은 굳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크아아앙!"
몬스터의 울부짖음에 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나를 둘러싼 몬스터들이 한껏 자세를 낮추고 눈을 번뜩이고 있다. 그 누런 눈동자에 가득한 것은 잔혹한 본능, 기회를 찾아 뚫어져라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는 그런 몬스터들을 차갑게 바라본다.
본능적으로 내 기운을 느낀 것인지 섣불리 달려들진 못하고 있지만 내가 틈만 보이면 언제라도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를 녹색 늑대 네 마리.
나는 손에 쥐고 있는 소총을 바라봤다.
"이걸로 괜찮을 지는 모르겠지만 복수해주지."
혼잣말처럼 소총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혼잣말처럼 소총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필시 20대도 다 못 살았을 소총의 주인을 생각하며 나는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다다른 거대한 늑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러운 내 접근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허술하게 앞발을 치켜 올리는 독구의 주둥이에 소총을 밖아 넣는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귀를 찢는 총성과 함께 몬스터가 비명을 지른다. 원래대로라면 총탄 따위에 비명을 지를 놈이 아니지만 총탄에 가득 담은 내 기운이 놈을 내부부터 찢어발긴다. 거대한 덩치에 비해 허무하리만치 한 놈이 쓰러지고 사나운 소리와 함께 나머지 세 놈이 달려든다.
이변이 일어나기 전이었다면 나는 이쯤에서 놈들의 이빨에 갈기 갈기 찢겨져 버렸을 테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안개 속의 전투, 괴수와의 전투, 그녀와의 수련. 그리고 또 치러왔던 수 많은 전투와 수련의 반복 속에서 나는 강
해졌다.
소총의 주변에 붉은 빛이 어린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가장 먼저 달려든 몬스터의 머리를 후려치고, 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놈을 살필 겨를도 없이 다시 소총을 휘두른다. 베고 찌르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던 몬스터들은 머리통이 부서지고 허리가 끊어지고 총탄에 찢겨져 나갔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전투라고 하기에도 뭐한 전투. 나는 소총을 잠시 바라보다가 바닥에 내려놓고는 자리를 떴다.
"의뢰는 처리했고, 추가적으로 경계선을 침범했던 독구 다섯 마리를 처리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인식표를 건네주며 의뢰의 완료를 말하자, 내 앞에 서 있던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검맥이군요. 의뢰의 완수도 모자라 경계선의 정리까지 도와주시다니."
의뢰 완수의 증명이나 그런 것은 요구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 쌓아온 나에 대한 신뢰 덕인지 그도 아니면 내게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없는 건지.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내가 맡은 의뢰의 완수를 보고하는지 짧은 통화가 오고 가고 그는 만족한 얼굴로 다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의뢰비는 바로 송금 될 겁니다. 또한 독구 다섯 마리를 처리한 추가 수당도 같이 들어갈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형준씨."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린다. 막 방을 나서려는 나를 남자의 목소리가 붙잡는다.
"근데 목표물을 처리하실 때 발견하신 건 없으신가요?"
남자의 말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춰섰다.
"네. 용아병은 사냥감의 흔적이라면 그 무엇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내 말에 남자의 침음성이 들려온다.
남자가 맡긴 의뢰는 서울의 외곽에 자리 잡은 용아병을 잡아달라는 것,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대충 낌새를 보니 남자의 상관과 관계된 누군가가 희생된 것 같았다. 군 통제 구역까지 수월하게 들여보내준 것을 보면 군부의 꽤나 높으신 양반 같은데 재수도 없지.
"그럼 전 이만."
의뢰인과의 만남을 끝내고 군부대를 나서니, 저 멀리 황토빛 랜드로버 차량이 클락션을 울린다. 익숙한 차량이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차에 다가선다.
"타요. 마침 저도 이 근처에서 의뢰 수행중이었어요."
짙게 선팅된 차창이 열리며 고운 얼굴이 보인다. 선한 미소가 참한 얼굴, 수현씨다.
사양치 않고 조수석에 올라타니 그녀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킨다.
"의뢰는 다 처리 했어요?"
여상스러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리라고 할 게 뭐가 있어요. 기껏해야 용아병 나부랭이 잡는 건데."
말해놓고 나니 무려 3등급의 몬스터를 나부랭이 취급하는 내 스스로에게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와. 방금 그 말 엄청 재수 없었던 거 알아요? 다른 능력자들이 들으면 욕해요."
웃음기 띤 음성으로 장난스럽게 핀잔 주는 수현씨의 말에 나는 마주 웃음을 짓는다. 그 다른 능력자에 당신도 포함이 안 되잖아요.
"뭐, 사실이니까요. 사실 지금이라면 괴수하고도 해 볼만 할 거 같아요."
이변 이후 겪어온 전투와 수련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2등급 이능력자니 3등급 이능력자니 그런 등급을 정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지경이다. 그들의 이능이라고 해봐야 태생부터 주어진 힘, 갈고 닦지 않아 예리함이 전혀 없는 힘이다.
나는 그녀와의 수련을 통해 주어진 힘을 갈고닦고 악연으로 얻은 그녀의 기운까지 흡수하여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강자가 되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수현씨는 그런 나를 만류한다.
"알아요. 그들도 성공하지 못했었는데 나라고 되겠어요."
허준영과, 전지현. 지금의 내 힘이 그 둘을 합친 것보다 강하지는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뭐 조금 있으면 때가 온다니 좀 더 기다려 봐야죠."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고 나니 수현씨가 다시 웃음을 짓는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치 택시 기사라도 된냥 과장된 억양이다.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외쳤다.
"집으로 갑시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연참 모드 유지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선추코쿠가 저를 불타오르게 합니다!
전편 마지막이 다음편에 붙는다는 지적 수정했습니다. 카피 드래그를 대중 없이 하다보니 자꾸 실수하게 되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서평이벤트 두분만 참가하셨습니다 ㅜㅜ 더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