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그리고 얼마 후. -- >
난데없는 고함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자신이 그렇게도 무사히 도망가기를 바라던 신동욱 이병이 어정쩡한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 이새끼야?"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지만 내심 두려움에 질려있던 그의 입가로 미소 한 가닥이 걸린다.
"살아 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거 말하라고 하셨지 말입니다! 저도 PX 가보고 싶습니다!"
미친 새끼. 역시 넌 고문관 새끼야. 상병은 다시 소총을 치켜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예비탄창을 건네주는 신동욱 이병의 모습을 보며 김진우 상병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떨 거면 뭐 하러 돌아왔냐?"
아닌 게 아니라 우스꽝스럽게 후들거리는 이병의 사지가 반쯤은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저도 군인이지 말입니다."
사지를 벌벌 떨면서도 하는 말은 제법 남자답다.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왜 돌아 왔냐?"
탄창을 끼워넣으며 노리쇠를 조정하던 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고마움이 피어오른다.
"저... 저도 식별 카드에서 봤지 말입니다. 저 괴물, 시속 70키로가 넘게 뛴다고 들었지 말입니다."
신동욱 이병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어차피 도망가도 곧 잡힐 거 같았다는 말이다. 제법 현실적인 이유였지만 그는 그런 후임이 미워 보이지 않았다. 사실 호기롭게 나서긴 했지만 그렇게 죽는다니 무섭던 그였던지라, 비록 온몸을 후들거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더라도 혼자일 때보다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크흐으으"
화가 났다기보다는 사냥감이 제 발로 걸어들어와 흥미롭다는 듯한 몸짓을 해
보이는 독구의 모습에 그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간다. 소꿉장난은 끝났고 이제는 현실이다. 수류탄 두발, 250발이 넘는 총격을 가해봤지만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들이 K2소총 두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진우 형."
속으로 저놈보다는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는 신동욱 이병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상병님도 아니고 형이란다.
"어...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혀... 형, 동생 하지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저승길 길동무 아... 아닙니까."
잔뜩 긴장한 얼굴로 괴물을 노려보던 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막상 괴물과 마주하고 나니 더욱 두려운 모양인지 신동욱 이병의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 범벅이다.
"새끼. 막판이라고 아주 맞먹네. 맘대로 해. 새끼야."
마지막 탄창은 제대로 겨냥해서 쏠 생각인지 조정간을 단발로 조정하던 그의 얼굴에 한 줄기 웃음이 피어나다가 이내 사라져 버린다.
"지.. 진우형. 마.. 많이 아플까요?"
그는 걸쭉한 침을 흘리며 한걸음씩 다가서는 괴물의 모습을 노려본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저렇게 무서워 할 거면서 왜 돌아왔을까. 고마우면서도 안쓰럽다.
"새끼야. 사내새끼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너도..."
죽을 자리에 스스로 찾아온 어린 후임이 안쓰러워 차마 말끝을 맺지 못했다.
"크아아앙!"
가만히 그들이 하는 냥을 지켜보던 괴물이 이제는 흥미를 잃었는지 커다랗게 포효했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김진우의 소총이 불을 토해낸다.
"제길. 눈깔까지 단단한 건 반칙이야."
작정하고 눈을 겨냥한 그였지만 괴물은 그저 눈 한번 끔뻑 할 뿐이다. 여태 느릿느릿 여유를 부리던 괴물이 처음으로 성난 기색을 보인다. 몸을 한껏 낮추며 눈을 번뜩이는 괴물의 모습이 당장이라도 뛰어 오를 듯 하다.
잠시 목을 그르릉대며 몸을 숙인 괴물이 날아올랐다. 다시금 조정간을 연발로 조정하고 총탄을 쏟아 부은 그가 잠시 뒤를 바라본다.
앞이나 제대로 보일까 싶을 정도로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괴물을 바라보는 신동욱의 모습에 그가 짧게 이야기 했다.
"나 먼저 간다."
그런 그의 얼굴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간다.
"으아아아아아!"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가볍게 날아오른 괴물을 향해 신동욱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컹!"
기적이 일어났다. 신동욱의 총탄에 맞은 괴물의 거체가 날아오른 것보다 배는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간다. 적어도 그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던 김진우는 갑작스러운 괴물의 괴성이
들려오자 슬쩍 눈을 떴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멀찌감치서 바닥을 나뒹구는 괴물의 모습을 바라본다.
"제.. 제가 죽였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던 신동욱이 갑자기 소리 쳤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김진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미친 사람처럼 양손을 치켜들고 눈물을 흘리는 후임의 모습이 보였다.
"사.. 살았다!"
저 흉악스러운 괴물이 고작 소총 따위에 저리 나뒹굴 리가 없지만 신동욱은 굳게 자신이 한 것이라 믿는 듯 했다. 그런 그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고 있다.
"어?"
얼마나 속도가 빠른지 처음 발견했을 때는 그저 조그만 점이었던 물체가 금세 미친 사람처럼 환호하는 신동욱을 스쳐간다. 그리고는 김진우가 서 있는 곳 마저 지나쳐 괴물에게 달려든다.
"참(斬)"
나직한 음성과 함께 귀를 찢는 파공음이 사방을 찢어발긴다. 잔뜩 흥분한 신동욱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 죽지 않았던지 버르적거리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던 괴물의 허리춤을 붉은 줄기가 관통한다.
"크아아아앙!"
몬스터의 끔찍스러운 비명이 온 사방을 뒤흔드는데 김진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더운 김을 뿜어내며 천천히 양단되는 괴물의 시체 앞에 오연히 서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자신들과 같은 전투복을 입고있지만 무언가 더 주렁주렁 한 모습이다. 한 손에 그러쥐고 있는 검이 섬뜩한 붉은 빛이다.
"5대기?"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신들과 같은 전투복을 입고 있지만 소총 대신 검을 쥐고 있는 모습에 이능력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 김진우였다. 일반 기간병들만으로 이뤄진 경계근무조는 경계 근무 중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
바로 퇴각하게 되어 있는 감시의 역할만을 맡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군에서 준비한 것이 바로 5분 대기조. 오직 이능력자들로만 이루어진 부대다.
김진우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남자가 몸을 돌렸다.
시원한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얼굴 선, 방금 전에 괴물 한 마리를 순식간에 처리한 사람답지 않은 담담한 얼굴을 한 남자다.
저벅저벅.
아직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 장대비 소리가 시끄러운 가운데에도 유독 크게 들려오는 남자의 발소리. 김진우의 몸이 움찔거린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남자가 그런 김진우에게 말을 건네온다.
"다친 데는 없어요?"
아직까지 자신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는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다치신 분은 없죠?"
기이한 울림을 담은 목소리가 김진우와 신동욱의 정신을 일깨웠다.
"충성!"
뒤늦게 정신을 차린 김진우가 한껏 군기가 든 모습으로 경례를 해 보인다. 신동욱 역시 고참이 하는 냥을 보다가 허겁지겁 거수경례를 취한다.
"아.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남자의 복장을 보고 대대소속 5분 대기조로 생각했던 김진우는 남자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제 막 살아났던지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5대기 아니십니까?"
대대의 5분 대기조가 아니라면 경계선 근처에 있을만한 이가 없는데 남자가 자신은 군인이 아니라고 하니 혼란스러움이 커지는 김진우다.
"5대기? 아 5분 대기조. 아닙니다. 저는 민간인입니다."
육군의 전투복을 입고 군 통제구역인 서울 경계선에 나타난 이가 자신을 민간인이라 소개한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지 말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소총에 괴물이 쓰러진 줄 알고 환호하던 신동욱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제야 자신이 생명의 은인을 두고도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린 김진우의 고개가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감사인사를 받던 남자가 다친 곳은 없는지 다시 물었다. 가만히 자신들의 몸을 둘러보던 그들이 고개를 가로 젓자 남자가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이놈 독구라는 놈인데, 조금이라도 접촉하면 극독에 중독됩니다. 다행스럽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으신 듯 하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사실 운이라기보다는 남자의 덕이 컸던지라 김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인사를 한다.
"아닙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신동욱을 대할 때와는 딴판으로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남자는 스스로를 민간인이라고 말했지만, 5분 대기조가 투입되어도 처치가 불가능한 괴물을 단숨에 잡는 남자의 모습에 김진우는 바짝 군기를 차린 모습이다.
"근데 민간인이시라면 어디서 온 누구십니까?"
눈치 없기로 유명한 신동욱이 어쩐 일로 고참 가려운 곳을 긁어주나 하며 김진우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신동욱을 쳐다본다.
"검맥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남자의 말에 신동욱과 김진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검맥이라면 세상이 이리 변한 후에 새롭게 등장한 단체다. 이능력자들의 조합과도 같은 유니온과는 또 다른 모임이었는데 꽤 많은 활약상이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었던지라 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조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저렇게 놀란 얼굴을 해보인건 검맥에서 나왔다는 남자의 말에 뒤늦게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린 탓이다.
"저.. 저기... 혹시 검맥이라면 그... 성남 전투에 참가했던..."
떠듬거리며 말을 꺼내는 모습이 흡사 아이돌 가수라도 만난 여고생 팬과도 같은 모습이다. 남자는 그런 태도가 익숙한지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남자의 시인에 신동욱이 호들갑을 떤다.
"저 검맥 팬이지 말입니다. 저희 사촌형이 성남 전투에 있었는데 덕분에 살았다지 말입니다."
민간인인 남자가 보기에는 조금 우스운 신동욱의 말투 탓에 그의 입가가 씰룩였다.
"사촌형이 어찌나 자랑하던지, 귀에 인이 박혔지 말입니다."
신동욱의 호들갑이 유난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김진우는 말리지 않았다. 남자가 검맥에서 나온 이라면 저런 호들갑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반년 전 겨울의 끝 무렵에 일어났던 성남전투. 기천에 달하는 군인들이 희생되었으며 그 몇 배는 넘는 민간인이 희생되었던 끔찍한 참사다. 갑작스레 나타난 수 많은 몬스터들의 습격에 서울과 분당을 가르는 군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도시가 아비규환이 되었다.
꼼짝없이 성남시마저 몬스터들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세명의 남녀, 그들에 의해 지옥이 될 뻔한 성남시는 구원되었다. 한 자루 검만을 의지해 사단병력도 지키지 못했던 도시를 지킨 초인들. 그들은 스스로를 검맥의 사람들이라 했다.
세명의 남녀 중 한명은 커다란 덩치의 거한이라 했고, 한명은 여자라 했다. 남자는 거한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었다. 남은 것은 단 한명. 성남 전투에서도 가장 활약이 컸다고 알려진 1등급 이능력자.
"혹시, 피바라기 아니십니까?"
신동욱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네. 제가 피바라기 김형준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스스로를 김형준이라 밝혔다.
============================ 작품 후기 주인공 등장!
오늘도 3연참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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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으로 연참 모드를 유지하겠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선작과 추천 코멘트를 주신 모든분들과 쿠폰을 투척해주신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