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그리고 얼마 후. -- >
육군의 K2소총의 총성이었다. 일정 거리마다 위치한 경계초소의 근무자 중 누군가가 발포한 듯, 그 뒤를 이어 연이은 총성이 터져 나온다.
"제길.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목깃을 잡고 있던 후임을 놓으며 사방을 경계하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다. 다른 초소의 근무자들 역시 비가 올 경우의 행동지침정도는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포를 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그였다.
그는 숙련된 동작으로 소총을 장전하고 사방을 살펴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던 불길이 조금은 수그러들어 있다. 그가 보기에는 여전히 든든한 불의 장벽이었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전사자가 생기는 경계선의 상황을 떠올렸다.
"괴물 같은 놈들. 저걸 어떻게 뚫고 들어와."
그가 중얼거리는 사이에도 총성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때 들려오는 겁에 질린 음성,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병을 본 그가 인상을 쓴다.
"이 고문관 새끼야. 너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사납게 으르렁대며 사위를 경계하지만 처음의 긴장감이 우습게 별 다른 기척이 보이지 않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소총 잡어."
겁에 질린 이병이 그의 말을 따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총을 잡는다. 그게 또 그대로 쥐고만 있는 모습인지라 김진우 상병은 전투화째로 후임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소총 파지법 안 배웠어? 제대로 잡고 조정간 단발. 노리쇠 후퇴. 어리버리한 새끼야! 그걸 왜 고정해 다시 풀어! 그래. 그대로 있어."
아예 마음을 비운 듯 차근차근 이병을 이끈다. 어설픈 손동작이지만 소총이 장전되고 이병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총을 들어올린다.
"이런 미친 새끼! 총구 돌려!"
가뜩이나 하는 짓이 못 미더운 이병이 총구를 이리 저리 움직이자 그가 질색을 하며 소리쳤다. 그제야 제대로 된 발포준비를 한 이병이 불안한 눈으로 상병만 바라보고 있다.
"나 본다고 뭐가 나오냐? 햐. 진짜 애먹이네. 전방주시 해. 새끼야."
상황이 급박한지라 꾹 눌러 참고 있었지만 김진우 상병은 속에서 천불이 치밀어 올랐다. 이런 놈을 데리고 일선 근무를 서라니, 재수도 오지게 없지. 하고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야 여전했지만 총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빗발이 더욱 거세져 시야도 안 좋은 마당에 그나마 멀리서라도 들려오던 총성이 사라지자 을씨년스러운 도시에 둘만이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잠시 몸서리를 친 김진우 상병은 간신히 정신을 차린 후임을 이끌고 초소 뒤편에 위치한 폐건물로 들어섰다. 진즉에 은폐할 곳을 찾았어야 했지만 정신을 못 차리는 이병 탓에 늦어버렸다.
그저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깥을 노려본다.
'숨어서 있다 보면 5분 대기조가 투입 될 테니, 최대한 살아남는 데 주력해라.'
당시에는 무책임하다 생각했던 소대장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간다. 이럴 거였으면 경계선 근무를 왜 세웠나 싶었지만, 날 밝은 날에도 종종 기어 나오는 몬스터들을 경계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두근, 두근.
사이렌 소리가 그렇게도 요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려왔다.
빨리 와라. 빨리 와라.5분대기조가 서둘러 투입되길 바라며 그는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기.. 김진우 상병님..."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뛰어대는 김진우 상병이었지만, 겁에 질린 이병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어리버리한 새끼라도 살려서 가야지. 하고 생각한 그의 눈매가 한층 매서워졌다.
"야. 떨지 마. 조금 있으면 5대기 새끼들 튀어 올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그렇게 얼마나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을까.
굵은 빗줄기 너머 흐릿한 시야에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순간 온 몸을 바짝 굳힌 그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그림자를 노려봤다.
"숙여."
불안한지 자신을 따라 자꾸만 창으로 고개를 내미는 이병의 머리통을 안쪽으로 밀어 넣은 그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거대한 그림자가 어슬렁대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던 초소로 다가선다. 발끝에서 어깨까지의 높이만 해도 족히 2층 건물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 마치 돌연변이 늑대와도 같은 모습이다. 생리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녹색의 털빛을 지닌 거대 늑대.
"씨발. 야. 고개 더 밀어 넣어. 텄다. 텄어. 저건 5대기 새끼들 와도 못 잡아."
낮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그 자신도 조심스럽게 창 뒤로 몸을 숨긴다.
세상이 이리 변한 후 군인들이 외워야 할 적 식별 카드는 더욱 늘었다. 주적 북한의 무기들 뿐 아니라 몬스터들의 식별카드까지 추가 되었으니, 군인들은 질색을 했다. 가뜩이나 머리도 굳는 군생활 하는 중에 공부할 것이 생기다니. 그들 입장에서는 넌더리를 칠만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몬스터 식별카드를 외우는데 소홀히 하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언제 쳐들어올지 실감나지 않는 북한군과 달리 몬스터들에 의한 사상자는 매달 꾸준히 생기고 있었으니 기를 쓰고 외울 수 밖에.4등급 몬스터 '독구'. 이름만 들어서는 만만한 동네 똥개가 떠오르지만 실체는 전혀 다른 존재. '야차'니 '아귀'같은 카드들과 따로 구분 된 몇 장의 식별카드 속에 섞여 있던 카드다. 소대장은 그 카드를 들이밀며 소대원들에게 말했었다.'이건 봐두기만 해. 어차피 볼 일 없겠지만, 일단 떴다 하면 대대 병력으로도 못 잡는 애다. 대 몬스터 타격대 5개 중대는 쏟아 부어야 상대 가능한 놈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외워는 둬라. 특징은 개새끼처럼 생긴 그 대로 후각이 상당히 예민하다. 빗속에서도 사냥을 하는 놈이라니 비가 온다고 코가 마비되는
그런 놈이 아니라는 거지.'긴장으로 잔뜩 굳은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야. 너 여자친구 있냐?"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놀라우리만치 태연했다. 겁에 질린 와중에도 침착한 상병의 모습에 다소 감탄하던 신동욱 이병이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기 전에 헤어졌지 말입니다."
이병의 대답에 그의 얼굴에 음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작게 말 안 해도 돼. 저 사이렌 소리 들리지? 저거 경보 목적도 있지만 사실 우리 같은 낙오자들 숨어 있을 때 걸리지 말라고 틀어놓는 거야. 몬스터들 중에 귀가 밝은 놈들이 엄청 많거든. 그런 놈들이 저 소리를 들으면 청각이 둔해진다더라고. 비오는 날 저런 놈들 만나면 잘 숨어있으라고 틀어두는 거니까. 걱정 마라."
조금 억지스러운 말이었지만 아예 근거 없는 말도 아닌 게, 일전에 그들처럼 낙오 되었던 근무자들이 저 사이렌 소리 탓에 몬스터의 청각을 피했다는 경험
이 군부대에 파다했었다. 사실 김진우 상병의 입장에서는 다가선 몬스터가 5분대기조가 와도 처리하지 못하는 흉악한 놈이라는 것을 알자 반쯤 체념한 기분으로 말을 꺼낸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쥐 죽은 듯이 숨어 있어도 모자란 상황임에도 그는 주절주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쨌건 헤어졌다고? 불쌍한 새끼."
아무것도 모르는 이병의 눈에는 그저 태연한 태도로 중얼거리는 고참이 백전의 용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에 용기를 얻은 이병이 입을 뗐다.
"김진우 상병님은 여자 친구 있으십니까?"
조금은 진정이 된 듯한 후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복잡하다. 동병상련 같기도 하고, 첫 경계근무에서 호되게 걸린 그의 운을 동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 있지. 제대하면 같이 살기로 했는데. 씨발."
말끄트머리에 붙는 욕지거리가 애절하기만 하다.
"어리버리. 아니. 신동욱. 너 돌아가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
처음에는 그저 침착해만 보였던 고참의 모습이 뒤늦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신동욱 이병의 표정이 도로 굳어간다.
"난 말이지. 돌아가면 제일 먼저 우리 여보야한테 편지부터 쓸 거다."
입으로는 생환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마치 유서라도 쓰는 사람의 그것이다. 잔뜩 굳어서 고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이병도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의 고참은 태연한 것이 아니라 자포자기한 것이다.
"넌 뭐하고 싶냐?"
다시 한 번 물어오는 고참의 한마디가 마치 유언을 묻는 것처럼 느껴진 신동욱 이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크르르릉."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빗소리에도 불구하고 확연하게 들려오는 몬스터의 그
르렁거림. 가뜩이나 하얗게 질렸던 이병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는 사람처럼 변한다.
"그냥 집에 가고 싶지?"
생전 처음 보는 고참의 다정한 눈빛이었지만 그는 그런 것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고참의 손이 수류탄을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으으."
아까보다도 확연이 가까워진 몬스터의 숨소리가 곧장 그들에게 가까워진다. 가만히 수류탄의 안전핀을 만지작거리던 김진우 상병의 손길이 신동욱 이병의 철모를 툭툭 친다. 전과는 다르게 거칠기는커녕 어루만지듯 자상한 느낌에 이병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불쌍한 새끼. 소리가 나면 반대편으로 달려. 무조건."
마침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히고 상병의 몸이 일으켜진다.
"가. 꼭 살아남아. 그리고 혹시라도 살아남으면..."
이미 그의 시선은 이병을 향해 있지 않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녹색 늑대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주연이한테 행복하라고 전해줘."
그말과 동시에 상병의 어깨가 젖혀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손끝을 떠난 수류탄이 괴물의 발치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간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괴물의 시선이 발치로 향하고 귀청을 찢는 폭음이 터져 나온다.
"으아아아아! 이 개새끼야!"
상병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괴물을 향해 걸어간다. 단발로 맞춰져 있던 조정간을 연사로 바꾼 그의 손길을 따라 소총의 총구가 괴물을 향한다. 방금 전의 폭음에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날카로움만은 더한 총성이 연달아 퍼져나간다.
"개 씨발 엿 같은 똥개새끼야아아아아!"
탄창이 순식간에 비워지고 다시 새 탄창으로 교체된다. 그리고 다시 연이어지는 총성.
철컥. 철컥.
"씨발. 벌써 떨어졌네."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소총을 바라보는 상병의 눈빛이 묽게 일렁거린다. 수류탄과 수백발의 총탄을 맞고도 멀쩡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는 괴물의 입가에 류탄과 수백발의 총탄을 맞고도 멀쩡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는 괴물의 입가에 걸쭉한 침이 흘러내린다. 한발 한발 다가서는 괴물을 눈 가득 담으며 그가 작게 중얼 거렸다.
"가서 꼭 전해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괴물의 주의를 끄는 동안 신동욱 이병이 가능한 멀리 도망갔기를 바라며 그의 눈이 감긴다. 호기롭게 나섰지지만 역시 무섭네, 하고 생각한 그의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곧 있으면 저 누런 이빨에 자신은 갈기갈기 찢기리라.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그의 귓가를 익숙한 폭음이 꿰뚫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감았던 눈을 뜨니 또다시 수류탄을 맞고 주춤 물러서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PX가보고 싶습니다!"
난데없는 고함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자신이 그렇게도 무사히 도망가기를 바라던 신동욱 이병이 어정쩡한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 이새끼야?"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지만 내심 두려움에 질려있던 그의 입가로 미소 한 가닥이 걸린다.
"살아 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거 말하라고 하셨지 말입니다! 저도 PX 가보고 싶습니다!"
미친 새끼. 역시 넌 고문관 새끼야. 상병은 다시 소총을 치켜들었다.
============================ 작품 후기 김진우 상병과 신동욱 이병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곧 개봉 박두!!!
일리가 없죠. 다음 편부터 주인공 등장입니다. 1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테니 다들 기대 해주세요.
당분간은 연참모드 유지합니다.
리리플 하고 싶지만 리리플 할 시간에 차라리 글 한편 더 써서 연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스토리가 본 궤도에 오르면 다시 리리플 시작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선작과 추천 쿠폰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코멘트로 조언과 비평, 격려를 아끼지 않아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평 이벤트, 부담 갖지 마시고 그저 간단한 감상이라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