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그리고 얼마 후. -- >
하늘 높이 치솟은 화광이 날름거리며 그 흉물스러운 혀로 하늘을 핥아댄다. 수십미터는 솟아 오른 그 불길이 저 너머의 회색 무덤을 가로 막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과 시뻘건 불의 장벽, 그 너머의 회색의 돌무더기가 음울하다.
"징하게도 탄다."
올해 스물넷이 된 김진우 상병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혼잣말에 눈치 없는 신동욱 이병이 대답했다.
"그래도 저 불이 있어서 저희가 지금 이러고 있지 말입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말했나, 하도 잘 타길래 그냥 해본 말이지 하며 김진우 상병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어리버리. 누가 지금 몰라서 그래. 날도 더운데 저거 때문에 더 찜통이니 해본 말이지."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김진우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신동욱 이병이 자세를 바로 잡고 눈을 떼구르 굴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김진우 상병의 미간에 파
인 골이 더욱 깊어진다.
"어유. 이 어리버리한 새끼도 근무를 세우고. 사람이 없긴 어지간히 없구나."
평소 내무실에서도 고문관으로 유명하던 자신의 후임을 마뜩찮게 바라보던 그는 전투복 하의의 건빵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잔뜩 찌그러진 담배를 본 는 전투복 하의의 건빵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잔뜩 찌그러진 담배를 본 그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니미. 돋대네. 다음 교대까지 시간 좀 남았는데."
구겨진 담배 갑을 한동안 노려보던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담배를 입에 문다.
"어리버리! 불!"
군기 바짝 든 이등병이라면 자고로 이럴 때 고참의 담배에 불이라도 붙여줘야 정상이건만 저 어리버리한 신동욱 이병은 그의 외침에도 멀뚱멀뚱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다.
"저 담배 안 피지 말입니다."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신동욱 이병의 대꾸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들었다.
"앓느니 죽지. 근무나 똑바로 서. 새끼야."
결국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싸구려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뿜는다. 한줌 숨에 뿌연 연기가 허공을 수놓는다.
저 멀리 보이는 화광 넘어 보이는 콘크리트 더미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한참을 불길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심심한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야. 너 서울 살았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고참의 부름에 화들짝 놀란 신동욱 이병이 화들짝 놀란다.
"잘 못 들었습니다?"
화를 내려던 그는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를 다스렸다. 참자. 참어.
"너 서울 살았다고 하지 않았냐고."
그제야 고참의 말을 알아들은 신동욱 이병이 대답했다.
"네. 서울이 저렇게 변하기 전에 이사를 했지만 말입니다."
신동욱 이병의 대답에 그의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어리버리한 새끼가 재수는 좋네. 넌 아무 생각 안 드냐? 나는 초소 근무 때마다 서울 보면 끔찍하던데."
한때는 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던 도시였건만 지금은 흉물스럽게 변해버려 콘크리트의 무덤이 된 서울을 바라보는 김진우 상병의 어조가 절로 스산하게 변한다.
"끔찍한 거보다 좀 슬프지 말입니다. 그래도 정들었던 친구들도 있고 했는데 저 꼴이 되고나니 그렇지 말입니다."
풀죽은 음성으로 말하는 모습이 꽤나 처량했던지 김진우 상병이 힐끔 그 모습을 보고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새끼... 궁상떨기는."
괜스레 핀잔을 준 그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너 몬스터 본 적 있어?"
겁이라도 주려는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낮은 목소리가 신동욱 이병이 듣기에는 그럴싸 했나보다. 금세 겁먹은 표정으로 아니라 대답한다.
"나는 봤다."
거들먹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겁을 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신동욱 이병이 침을 꼴깍 삼키자 그의 얼굴에 음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전에 여기서 근무하던 놈들이 있었는데, 그 아저씨들 어떻게 됐는지 알어?"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어리버리라 불리운 이유가 괜한 것이 아니었는지 신동욱 이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야차라고 있어. 고릴라하고 인간을 합쳐놓은 모습인데, 사람을 찢어 먹기를 좋아하는 놈이지. 그놈들에게 먹혀버렸어."
사실 그들이 근무를 서고 있는 초소는 새로 생긴지 얼마 안 된 초소였지만 이
등병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김진우 상병도 그 점을 알고 작정하고 후임을 놀리고 있는 듯 보였다.
"근데, 그게 꼭 1년이 되는 날이래. 오늘이."
음침한 얼굴로 분위기를 만들자 신동욱 이병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해보인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믿지 말입니다."
그리 말하면서도 연신 주변을 살펴보는 게 제법 겁을 먹은 모습이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은 김진우 상병은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무표정을 가장했다.
"믿던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새끼야. 내가 이 짬밥에 쫄따구 데리고 농담 따먹기 하리?"
시큰둥한 태도로 말하는 고참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걸렸는지 신동욱 이병이 조금씩 그에게 붙어섰다.
"떨어져 새끼야. 더워 죽겠구만. 왜 붙고 지랄이야."
내심 자신의 술수가 먹힌 탓에 웃음이 나오는 그였지만 나오는 말은 천연덕스럽다. 한참을 그리 후임을 놀리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낀 그는 다시 저 화광 너머로 보이는 서울을 바라본다.
"근데 어떤 놈이 해놨는지 봐도 봐도 신기하다. 도통 꺼지지를 않는다는 말이야."
야."
자신들이 있는 초소와 몇백터는 떨어진 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그가 훈련병일 무렵 갑작스럽게 등장한 괴수, 그 이후 세상은 변해버렸다. 하루에도 수천만이 오고가던 대한민국의 수도는 괴물들 천지가 되었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능력자다란 것들이 날뛰는 세상. 그 같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시간은 유수와도 같이 흘러 전투복에 수놓인 막대 한가닥이 세가닥으로 변하고 평범한 그조차도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테러리스트니 구세주니 이견이 분분하던 이능력자들도 이제는 그들의 사이에 일상처럼 자리를 잡았고 지금 그가 서 있는 초소 너머의 불길도 그들의 작품이다. 하급의 몬스터들이 경계선 밖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펼쳐진 화염의 술법
이다.
"그래도 비 오면 불길이 좀 약해지긴 한다던데 말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대꾸한 신동욱 이병이 사납게 변한 고참의 시선에 찔끔한다.
"아. 나. 이 어리버리한 새끼. 재수 없게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학교에서 안 배웠어?"
안 그래도 비가 오는 날이면 불길이 약해져 종종 몬스터의 침입이 일어나던 무렵이라 예민한 김진우 상병이 신동욱 이병을 갈구기 시작했다.
"아까 몬스터 얘기할 땐 무서워하더니, 왜, 교대 시간 다 되가니까 몬스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아까와는 달리 정말 화가 난 듯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에 신동욱 이병이 자세를 바로 한다.
"죄송합니다!"
바짝 얼어서 자신의 눈을 피하는 후임의 철모를 잡아 앞뒤로 밀고 당기던 그가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이 새끼야. 비 오는 날마다 생기는 전사자가 얼만데 주둥이를 함부로 나대, 나대기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 생활 끝나냐? 엉? 대답해보라고 새끼야."
이번만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모양인지 눈매가 매섭기 그지없었다.
이능의 힘을 빌어 펼친 화염의 술법이 효력이 있는 것은 맑은 날 뿐,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몬스터들이 약해진 화염의 장벽을 뚫고 튀어나오기도 했다. 덕분에 초소 근무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근무 중 비가 오지 않는 것이었던지라 날씨에 대한 언급은 징크스처럼 군인들이 기피하는 이야기였다.
"여태 엿 먹은 근무자들이 너 모르는 아저씨들이라 이거야?"
원래 군대라는 곳이 다 그렇듯이 어떤 대답을 해도 별의 별 트집을 잡아 다시 면박을 주는 곳이다. 신동욱 이병은 자신의 가벼운 입을 원망하며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죄송합니... 어?"
신동욱 이병의 말이 중간에 멈춘다. 한창 열이 오를 만큼 올랐던 김진우 상병은 금세 하늘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는 고문관의 모습에 얼굴을 더 붉게 만들었다.
"이 새끼, 너 오늘 뒤졌어."
평소라면 즉각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왔어야 할 신동욱 이병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김진우상병님... 비 오지 말입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지껄여대는 후임의 모습에 그가 철모의 턱끈을 풀렀다.
"정신 못 차리고 계속 지껄이지? 너 죽이고 내가 영창 간다. 이 고문관새끼야."
이를 갈며 사납게 말하는 그였지만 어리버리한 이병이 넋 나간 사람처럼 다시
중얼거린다.
"그게 아니라, 정말 비 오지 말입니다?"
잔뜩 열이 올라 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말을 무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한참 고문관 교육에 정신이 팔렸던 그가 바라본 하늘은 언제 그리 변했는지 모르게 잔뜩 흐려진 모습이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그가 이병의 철모를 후려쳤다.
"이런 씨발! 뭐해 이 새끼야! 중대에 통신 때려!"
그의 말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철모만 부여잡고 있는 이병의 모습에 그는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었다.
에에에에에엥!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조용했던 세상이 금세 소란스러워진다.
신동욱 이병은 아직까지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됐는지 멍한 표정이다. 그는
몇 번이고 이병의 철모를 두들기며 빠르게 얘기했다.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죽고 싶어?"
몇방울씩 떨어져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지다가 금세 쏴아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렸다.
"신동욱! 정신 차리라고!"
우천시 집결할 곳으로 정해놓은 곳으로 가려면 지금부터 달려도 빠듯하다. 그는 멍청한 이병 때문에 죽고 싶지 않았지만 그 고문관놈이 개죽음 당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이병의 목깃을 잡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초소를 벗어났다. 초소를 벗어나자마자 온몸을 때려대는 빗줄기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루하기 짝이 없던 그의 근무시간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한다.
"크아아아악!"
갑작스레 들려온 괴성에 그의 몸이 굳어버렸다. 꽤 먼거리에서 들려온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등가로 차가운 무언가가 스쳐가는 느낌에 그는 이를 악물었
다. 불현 듯 교육시간에 수 없이도 들었던 작전정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만약 비가 온다면 초소고 뭐고 버리고 바로 집결지로 모인다.'
그리고 또 뭐라고 했더라?
'만약 집결지에 도착하기 전에 몬스터의 기척을 먼저 느꼈다면, 일단 몸을 숨겨라. 불의 장벽을 건널 수 있는 놈들 중에 너희들보다 느린 놈은 없다. 괜히 도망치다가 개죽음 당하지 말고 숨을 곳을 찾아라. 후각이 발달된 놈들이 많지만 운이 좋으면... 아마 살 수 있을 거다.'
무책임하게 지껄여댔던 소대장의 얼굴이 떠올라 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소대장의 뭉개진 코가 아마 몬스터가 때문이었지. 아마? 몬스터의 괴성과 사이렌 소리가 일으키는 소란의 틈바구니에 고막을 찢을 듯 총성이 섞여들었다.
============================ 작품 후기 안녕하세요 2부 새롭게 시작합니다!
검후 강간건으로 다들 의견이 분분하십니다. 여러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지만 네타가 될 것 같아서 간질거리는 입을 꾹 참고 있어요 ㅜㅜ타가 될 것 같아서 간질거리는 입을 꾹 참고 있어요 ㅜㅜ일단 간단한 의문부터 해소드리자면 검후는 지난 번 언급했던 것처럼 왜란 당시의 여성입니다. 유교적 여성상이 가장 압박을 주던 17세기의 인물이란 말입죠. ㅎㅎㅎㅎ그렇다고 강간이 합리화 되진 않습니다만, 합리화 할 생각도 없습니다. 주인공이 한 짓은 어디까지나 강간이 맞지요. 그 이후 아이가 섰던 그걸로 책임을 지던 말던, 시대 착오적 발상이란 것도 맞고요.
하지만 소설이지 않습니까? 나름 검후가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봅니다. 검후는 이 시대의 여성도 아니거니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애틋하게 주인공에게 갑자기 헬렐레 하지도 않고요. 그저 서툴게 마음 고쳐먹고 주인공과 함께 가려는 중입니다. 전개상 매끄럽지 않게 느껴졌다면 사과드립니다만, 극중 전개라는 게 뜬금 없이 일어나면 안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가끔은 불가해한 일도 생기고 하는 거죠.
이해가 안 가시더라도 조금만 참고 봐주시면 2부에서 많은 의문 풀어드리겠습니다.2부는 본격 깽판물로 컨셉을 잡고 있습니다! 더욱 강력해진 주인공이 힘에 걸맞는 정신으로 무장해서 돌아올겁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선작과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리고, 쿠폰 역시 감사드립니다.
또 코멘트로 많은 조언과 비평, 비판, 지적을 해주신 분들 역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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