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71화 (71/223)

< --  1-6. 강해지다.  -- >

"아니. 힘이야 다시 찾으면 될 일. 비록 태반의 기운을 잃기는 했지만 내 스스로의 깨달음은 그대로 있으니 언제고 다시 예전의 경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 수가 없으면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처럼 들렸다. 처음에는 무거웠던 어조가 끝에 가서는 그나마 평온해진다.

"경지에 든 이후로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을 찾았다. 나 자신은 모르고 있었으나, 겨울바람이 참을 잊고 있었고 한 낯의 햇살이 따사로움을 잊고 살았다. 어쩌면 이것이 순리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는 진정 강한 사람이었다. 여인으로써도 무인으로써도. 그리고 인간으로써도.

그녀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다가서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한손에 들어오는 그 가녀린 손은 이리 가녀리기만 하건만 그녀는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강자다. 그 힘을 일었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검후다.

부끄러운 기색으로 몸을 움찔거리는 그녀가 내 눈을 피한다. 나 역시 기분에 취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지만 어색함이 아직은 크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은 그녀가 내 아이를 가진 여인이라는 것이 이제 조금은 실감이 나는 탓이겠지.

어색하지만 따뜻한 체온을 서로 주고받는 사이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현지가 있다. 나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검후가 황급히 손을 빼고는 헛기침을 한다.

손끝에 남은 그녀의 체온에 나도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가만히 그 손을 쥐어가는데 현지가 다가온다.

"좋아?"

그간 별다른 의사표현을 하지 않던 그녀가 던진 말에 나도 검후도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렇게 오두막의 하루가 또다시 지나간다.

"여어! 형 보고 싶었지?"

용모가 반가운 얼굴로 너스레를 떤다.

"형은 개뿔이. 어서 와라. 고생이 많았지?"

몇 달 만에 보는 얼굴이라 나 역시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애초부터 몸을 쓰는데 일가견이 있던 용모는 일찌감치 검후와의 수련을 마치고 바깥세상으로 나섰었다. 심상치 않은 군부의 움직임과 유니온의 분위기 탓에 조금은 이르게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그가 지금 돌아온 것이다.

"고생은 무슨. 여기서 지옥 같은 수련을 하느니 차라리 바깥이 편하지. 그보다 검후는 어디 계시냐?"

용모가 그녀를 찾자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다. 그런 내 기색을 알아차린 용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임마. 왜 그래. 검후께 무슨 일 생겼어?"

내 표정이 얼마나 굳었는지 용모가 덩달아 얼굴을 굳히고는 물어온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표정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라... 일단 들어가자. 얘기가 길다."

내 말에 더욱 얼굴을 굳히는 그였지만 딱히 더 질문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뒤를 따를 뿐.

오두막에 들어서자 그녀와 현지가 나를 반긴다. 말없이 미소로 나를 반긴 그녀에게 용모가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정중한 그의 인사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못 지낼 이유가 무어 있겠나. 안으로 들어오시게."

그날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던지라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초췌한 기색의 그녀다. 용모 역시 그런 기색을 발견했는지 어두운 얼굴을 해 보인다.

"그래. 바깥 상황은 어떤가?"

자리에 앉은 용모에게 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전이랑 똑같습니다. 군부는 여전히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난리고, 유니온은 파벌싸움으로 정신없죠."

그런가. 뭐 하나 변한 게 없구나. 조금은 나아졌기를 바랐는데 그 희망이 무참히 부서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녀 역시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시기가 이리 좋지 않거늘, 여전히 제 밥그릇에만 매달린단 말인가. 시간이 흘러도 이 나라는 변한 게 없구나."

그녀의 말에 용모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 사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똑같겠지요."

저 윗사람들 밥그릇싸움과 편 가르기는 예전부터 워낙 유명했으니까.

"좋은 소식이라면 서울에 생존자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겁니다. 일산지역이야 애초부터 괴수의 영역이었고 군부의 폭격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지만, 서울 쪽은 수백만에 이르는 생존자들이 남아있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현지를 바라봤다. 일단 우리를 따라 자리에 앉긴 했으나 지루한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베 꼬아대고 있다.

"어떻게 그 정도의 생존자들이 남아있을 수 있었지? 내가 서울에서 헤매고 다닐 때만 해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일전에 들렸던 서울은 이미 몬스터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내가 모든 지역을 돌아본 건 아니지만 그리 많은 생존자가 남아있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게 유니온의 소집에 불응했던 5급 미만 이능력자들이 꽤 서울에 몰려 있었나봐.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방어선이 만들어진 것 같더라고."

용모의 말에도 나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내 얼굴을 본 용모가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비공식 정보긴 하지만 군부에서 흡수한 이능력자들을 중심으로 지원병력이 꽤나 많이 서울에 들어섰다더라. 화력도 빵빵하게 준비해서 이능력자들을 섞어서 지원병력을 보냈다고 하니 꽤나 좋은 소식이지."

전혀 의외의 말인지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는 이내 납득했다. 그간 여론을 조작해 이능력자들을 몰아세우고 강제로 신병을 인수하더니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나보다. 하급의 이능력자들이야 사실 총탄을 이겨낼 재간이 없으니 더욱 쉽게 그들에게 돌아섰으리라.

군부의 발빠른 움직임이 조금 의외긴 해도 나쁜 소식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연군부의 발빠른 움직임이 조금 의외긴 해도 나쁜 소식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군부니 유니온이니 주도권 다툼을 해도 그들이 하는 일만 제대로 한다면야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렇게 한참이나 바깥소식을 늘어놓던 용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근데 형준이한테 듣기를 무슨 일이 있으셨다고 하던데..."

그의 말에 나와 그녀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잠시 나를 책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뗐다.

"힘을 잃었다. 나는 더 이상 검후가 아닌 게지."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늘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나였던지라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에 도저히 참지 못한 것이다.

"말도 안 돼는 소리! 당신이 왜 검후가 아니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마디에 용모의 얼굴이 뜨악해진다. 그는 지금 검후가 힘을 잃었다는 것과 그녀에게 반말을 지껄이는 나 사이에서 무엇에 먼저 놀라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얼굴이다.

"검후라고 해봐야 허울뿐인 것, 당신이 그리 열낼 일이 아닙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그녀는 나에 대한 말투를 고쳤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말을 편히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단호한 눈빛에 나는 하던 말을 도로 삼키고 자리에 앉았다. 물론 여전히 불편한 심정인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지난 일로 힘을 잃기는 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힘은 아직도 적지 않았다. 완전히 고갈된줄 알았던 그녀의 기운은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복가 되었는데 그 양이 전과 비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2등급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용모가 돌아온 것을 나보다 빨리 알아차린 그녀다.

"여하간 그렇게 되었다. 지금 내가 지닌 힘은 그대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터. 그저 허준영 그자가 일을 잘 처리하기를 바랄 뿐이구나."

그녀의 말에 나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일의 원흉이 나였으니 저런 말을 듣고 있는 것이 너무도 불편하기만 했다.

"저.. 저기 제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던 용모가 떨떠름하게 끼어들었다. 혼란이 가득한 얼굴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는 얼굴이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거침없이 그의 질문에 대답하던 그녀도 이번만은 차마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에 용모의 입이 떡 벌어졌다.

몇 번인가 입을 열려 했지만 지은 죄가 있었던지라 그녀와 나의 관계를 섣불리 내뱉지 못하는 나를 그녀가 원망어린 눈동자로 바라본다.

지난 내 과오에 대한 원망이 아닌 아직도 스스로 떳떳치 못한 나에 대한 책망이자 질책이다.

"인연이 닿아 저이와 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 역시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는지 가뜩이나 붉던 얼굴이 이제는 목까지 뻘겋게 변해버렸다.

용모의 입이 더할 수 없이 벌어진다. 침이라도 흘릴 듯 나와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더듬거리며 횡설 수설한다.

"그게.. 검후께서 저놈과... 아니 형준이와... 그 지금... 그게..."

얼마나 당황했는지 하는 말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용케도 그가 지껄이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녀가 시인하자 용모의 표정이 마치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변한다. 입만 어버버 거리며 나를 손가락질 하는 모양새가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덩치도 산만한 놈이 그러고 있으니 보기 좋진 않았다.

"이.. 이... 김.. 형준..."

간신히 내뱉은 말이 내 이름 세 글자다. 뭐라고 쏘아대고 싶은데 그녀의 눈치

를 살피느라 차마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한다.

나는 조금은 우쭐대는 마음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한참을 어버버 거리던 용모가 그녀에게 부탁을 한다.

"잠시 형준이를 빌려가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택했는지 턱을 덜컥거리며 용케도 그녀의 양해를 구한다.

"내가 대화에 방해가 된다면 나가 있겠다. 마침 산책이라도 다녀오려던 참이니 둘이 얘기 나누도록."

그리 말한 그녀가 현지의 손을 잡아끌고 오두막을 나선다. 그녀가 오두막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문가를 바라보며 눈치를 보던 용모가 득달같이 내게 달려든다.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목을 휘감고 거의 절규하듯 말하는 용모의 태도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들었잖아.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

감히 범접치도 못할 위치의 여인을 차지한 남자답게 조금은 거들먹거리니 용모가 내 목을 감은 손에 힘을 준다. 일반인이었다면 당장 목이 부러져 즉사할 만한 압박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 미친놈. 그게 그 한마디로 될 일이야!"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겠지만 유난스러운 그의 반응이 이상스러울 지경이다. 그런 내 심정을 이해했는지 그의 절규가 이어진다.

"검후 그분의 팬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강하고 아름다운 여인! 이 미친놈아 너는 지금 수많은 남자들의 가슴에 못을 밖은 거라고."

조금은 엇나간 듯한 반응이었지만 그녀정도라면 그럴 만도 하지 하고 나는 도리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 미소에 더욱 미쳐 날뛰는 용모였지만.

그 뒤로도 한참이나 시간이 더 지나서야 진정한 용모는 이어진 내 설명에 무거운 얼굴을 해보였다. 대련과 심마, 그리고 임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나니 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내가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마 앞으로 평생 살아가며 갚

아야 할 빚이겠지.

내 말을 끝까지 들은 용모가 한참이나 말없이 한숨을 내쉬다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쓰게 웃으며 그의 시선을 마주하니 그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 그래도 부럽다."

============================ 작품 후기 일단 4참 한번에 올립니다. 그리고 오늘 시간 나는데로 두편정도 더 써서 올리고당분간은 휴재기간동안 기다려주신 분들께 사죄드리는 마음으로 연참 들어갑니다.

검후와의 사건 탓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이 있으신 걸로 압니다만, 따로 외전격의 글이 준비되어 뒤에 나오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를.

그리고 조그만 이벤트를 하나 할까 합니다. 참여해주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서평 이벤트 합니다. 악평이던 호평이던 간에 피드백이면 무조건 오케입니다.

서평글 중에 조회수와 추천수가 일정 이상 되신 분들 골라서 노블레스 이용권 보내드립니다.

이러고 아무도 참가 안하시면 저는 글 습작하고 앓아 누워버리겠죠. ㅋㅋ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튼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앞으로 당분간은 연참모드 유지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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