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67화 (67/223)

< --  1-6. 강해지다.  -- >

"수련이라는 거 생각보다 즐겁더군요."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음 지었다. 검후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연다.

"즐겁다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것을 발견한다면 꽤나 즐거울 테지."

자신이 처음 수련하던 무렵이라도 떠올랐는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빛이 아련하기만 하다.

"검후께서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요?"

내 입장에서야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내 말에 검후가 힐끗 나를 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나라고 너와 같은 시절이 없었겠느냐. 나 또한 천둥 벌거숭이였고, 저 잘난 줄

만 아는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지."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뭔가 호들갑스럽고 풋풋한 느낌의 검후라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내가 수련을 시작할 무렵에는 맥(脈)이라는 것이 있어서 꽤나 수련자가 많았던 시절이었지."

오늘은 검후가 정말 기분이 좋은지 묻지도 않은 말에도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때는 이능력자 같은 사람들은 없었고요?"

가끔 그녀가 이능력자들을 요즘에 와서나 본 듯한 태도를 취했기에 한 질문이다.

"이능력자라. 내가 수련할 당시에는 술법사나 각성자라고 불리웠었지. 하지만 수도 많지 않았고 다루는 힘이 정명함보다는 사이함이 컸던지라 그다지 좋은 기억은 남아있지 않구나."

역시 그녀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이능력자들이 많지 않았던 듯 하다. 지금과 다

른 이름으로 불리웠다니 정확하게 알 수야 없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그럼 당시에 있던 D섹터니 뭐니는 누가 관리했나요?"

전부터 있었던 궁금증인데 지금에 와서야 물을 기회가 생겼다. D섹터라는 것이 어제 오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 텐데 지금의 유니온의 역할을 대신하던 단체가 있었나.

"D섹터라. 내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아마 맥에서 관리를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녀의 말에 바로 되물었다. 오늘은 검후의 기분이 좋은 듯 하니 물어볼 것이 있으면 오늘이 기회다.

"검후도 맥의 수련자였다면서요. 근데 그 맥이라는 곳의 행사를 모르셨나요?"

내 질문에 그녀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아이를 가르치는 어른과도 같은 미소라 왠지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미소다.

"맥도 여러 갈레가 있어서 내가 수련했던 곳은 검맥(檢脈)이라는 곳이었단다.

아마 그 D섹터라는 곳은 비맥(庇脈)에서 관리했을 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점점 흥미가 동한다.

"그 맥이라는 것이 무협지를 보면 나오는 문파 같은 것인가요?"

조금은 유치한 질문이지만 맥이라는 곳이 정확하게 감이 오지를 않았던 탓에, 물으니 검후의 얼굴에 어렸던 미소가 일순간 싹 사라졌다.

"문파라. 지금에 와서 맥은 이어지지 않고 문파의 이름은 이어졌던가."

왠지 모를 비통이 가득한 음성이라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더니 그녀가 아련한 표정으로 설명한다.

"맥은 그저 수련자들의 가닥일 뿐이다. 검을 수련하는 이들이 모이면 검맥(檢脈), 도를 수련하는 이들이 모이면 도맥(刀脈)이었지. 비맥(庇脈)처럼 행사가 은밀한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맥은 수련자들의 교류와도 진배없었다. 지닌바 절기를 아무런 사심 없이 서로에게 전해주는 그런 모임이었다."

듣고 보니 무협지에서나 보아오던 문파라는 개념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문파가 기업이라면 맥은 동호회 같지 않은가.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변질되기 시작했지. 수련자들이 자신의 비기를 드러내기를 꺼리기 시작하고 구도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문파라는 곳이 생겨났다."

그녀는 문파에 대해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물론 좋은 뜻으로 시작한 곳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문파들은 세속의 영리와 영달을 쫓는 곳들이었으니 이 나라의 비기들이 절전 된 것이 어찌 이상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비통함 가득한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애초에 맥이니 문파니 나에게는 실감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녀의 비통과 분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가 길었구나. 네가 이곳에 머물 시간도 그다지 많다고는 할 수 없으니, 허투루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되리라."

눈빛으로 자신을 따를 것을 종용하는 그녀의 걸음을 뒤따라 다시금 공터에 섰

다.

"그간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오늘은 나도 검을 사용하겠다. 전력을 다 하도록 하지 않으면 오늘은 꽤나 험한 꼴을 당할게야."

어느새 그녀의 손에 고풍스러운 검 한 자루가 쥐여져 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의 검은 우리 민족이 특유의 쌍수도로 흔히 장군검이라 불리우는 것들과 같은 모양이라고 한다.

난데없는 대련이었지만 그녀와의 대련은 내가 청하고 싶은 것. 처음에야 그저 괴롭기만 한 수련의 일환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대련으로 얻는 것이 적지 않았다.

"검까지. 좀 살살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웃는 낯으로 엄살을 피우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온몸에 붉은 기운이 어린다. 전이라면 피바라기가 온 몸을 둘렀겠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형태다. 붉고 투명한 기운이 몸을 감싸고 곧 피부에 스며든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구나."

붉게 변한 피부로 자신과 마주한 나를 보며 검후가 미소를 지었다.

붉게 변한 피부는 이전의 피바라기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단단함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몸은 한층 날렵해졌으니 이것만 해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다.

그녀의 칭찬을 들으며 나는 양손을 모아 기운을 형상화 했다. 길게 뻗어가는 붉은 줄기가 이내 단단하게 뭉치고 검을 형상을 이룬다. 검후가 손에 쥔 장군검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의 검이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날카롭게 빛이 난다.

"아직은 부족하지요."

겸양을 떨지만 내 음성에 가득한 것은 자신감, 그간의 수련으로 인해 전과는 비교 할 수도 없이 강해진 나는 더 이상 전과 같이 처참하게 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검후의 손이 자연스럽게 늘어지고, 그 끝에 쥐여진 그녀의 검이 바닥에 닿아 기운다. 일견 성의 없는 자세지만 마주 선 내 입장에서야 철옹성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자세다.

하지만 그저 노려보는 것만으로 승리는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가볍게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한발 내딛을때마다 조금씩 빨라지는 걸음이 순식간에 그녀의 코앞에 나를 인도한다. 여유 가득한 그녀를 향해 먼저 일검.

달려가던 기세를 이어 그대로 베어지는 검이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그녀에게 짓쳐 들어간다. 검이 바로 자신의 몸에 닿을 듯 도달해서야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이 좋구나."

말이야 내 공격을 칭찬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검을 피하는 그녀다. 베어가던 검을 따라 걸음을 내딛고 다시 몸을 돌리며 그녀를 공격했다.

요 근래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은 바른 걸음과 바른 칼질이다. 나아가는 기운에 거스르지 않고, 찔러가는 검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내 움직임은 전에 비할 수 없이 민활하고 부드러워진다.

그녀의 등뒤를 베어가는 검을 그녀는 그저 한 걸음 움직이는 것만으로 회피하고 드디어 그녀의 손에 쥐여진 검이 치켜 올라간다. 고작 두 번으로 끝내기에는 처음의 기세가 아깝다. 나는 그녀의 몸을 베어가던 검의 방향을 틀어 사선으로 베어갔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떠오른다고 생각한 순간, 귀청을 찢는 금속음과 함께 손목이 저릿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

엇갈려 교차된 검의 뒤에서 검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10센티가 채 안 되는 검폭이지만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꽤나 당황했었지만 이제는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녀가 검과 일체화가 된 탓으로 검의 존재감만이 남고 그녀 자신은 남지 않는 검신일체의 현상이라고 하니, 그 경지가 놀랍긴 하나 새롭지는 않았다.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지만 내 상대는 검후가 아닌 검후의 검.

그간 많이 강해졌다고 하나 시간으로 따지면 한달이 채 안 되는 시간. 그동안 검후와 대등해질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저 지니고 있는 힘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타핫!"

기합을 내 지르며 몇 차례 검을 찌르고 베고 휘두른다. 기합 역시 바른 호흡의

연속으로 숨 한줌에 칼질 세 번. 그것이 지금의 내 한계다.

금속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나는 그간 배웠던 모든 것들을 총 동원해 그녀를 공격해간다. 오늘만큼은 그녀의 검이 아닌 그녀에게 닿겠다는 각오라 내 스스로 느끼기에도 공격에 실린 힘이 전 같지 않았다.

"오늘은 각오가 남다르구나."

어디선가 들려온 검후의 낮은 목소리. 나는 있는 힘껏 검을 내려쳤다.

"검 끝에 망설임이 없으니, 검이 우는 듯 하구나."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저것은 그녀 나름의 칭찬. 그녀가 느끼기에도 오늘의 내 공격은 제법 쓸만한 듯 그 음성에 흐뭇함이 가득했다.

쳇. 그러니까 난 그 흐뭇함이 싫다고.

치기 어린 마음이지만 그녀의 평정을 한 번쯤은 깨부수고 싶다는 마음에 필사적으로 검을 찌르고 베어간다. 화려함 하나 없는 동작들이지만 어디까지나 검의 흐름을 쫓는 공격, 그 기세만은 당장이라도 검후를 양단할 듯 하다.

필사적인 내 공격이 흐름을 타기 시작했는지, 처음에는 열 번 휘두르면 한두 번 그녀의 검과 닿을까 말까였던 공격이 점차 그녀의 검과 부딪히는 소리가 늘어간다. 나는 또 그게 너무 신난 나머지 미친 듯이 공격을 이어가고.

그렇게 얼마나 맹렬하게 공격을 쏟아 부었을까.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짧은 시간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루다니, 칭찬할 만하다."

그녀의 음성에 실린 한가닥 감탄, 나는 더욱 안달이 났다.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었으나 흐뭇함에서 감탄, 그 뒤에 남은 그녀의 경악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다.

아직까지 검의 흐름은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의 내 마음 상태로 보아서는 곧 깨어질 것이다. 알고 있지만 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쉽게 수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검 끝이 빨라지고 있다.

"검끝은 흔들리지 않으나, 검을 쥔 손이 떨리는구나. 지금의 흐름을 잃기 전에 평정심을 찾아라."

그녀의 질책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물 흐르듯 유연했던 공격들이 어느새 날카롭지만 딱딱한 공격으로 변해가고 있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도 점차 줄어가더니 이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지만 도리어 조급함이 커진다. 그녀를 놀래키고 싶다는 치기 어린 내 욕망이 마침내 내 검끝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이익!"

바른 호흡법따위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공격을 이어갈수록 애가 타는 기분에 점차 내 몸이 무뎌지고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구나."

처음의 감탄과 흐뭇함은 어디 갔는지 침중한 어조의 속삭임이 내 자존심을 사정없이 깔아뭉갠다.

이미 끝내자는 말을 들었음에도 너무도 분한 나머지 다시 한 번 검을 찔러간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평정을 그리 잃다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구나."

추상같은 한마디와 함께 검후의 검이 처음으로 공세로 전환되어 짓쳐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검 끝에 변화가 생긴다.

============================ 작품 후기 으어어어어. 어제도 연참했으나 그게 이능력자가 아니었지요. ㅎㅎㅎ출판 글 교정봐야하는데 지지부진, 지금 뭐하는 걸까요 전. ㅎㅎ굇수 작가님들이 많이도 돌아오셔서 점점 순위에서도 멀어져만 가고, 엉엉.

선추코쿠로 제게 힘을 주소서 ㅜㅜ한밤중의파뤼투나잇 / 하렘은 있습지요. 하지만 가볍게 연애감정선 무시하고 막 주인공한테 꽃아주진 않을 거라서요.

애독자C / 제목 구린가요? ㅎㅎㅎㅎ바람난형님 / 기.. 기모찌!!!

테크노 / 연상 빠인 저는 검후가 너무 좋아요. 으허으허!!

에르시리나 / 제 일 거수 일 투족을 다 알고 있는 천개의 눈동자 마눌님 ㅋㅋ마당쇠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육성으로 터졌습니닼ㅋㅋㅋㅋㅋㅋ 정확하심 ㅋㅋㅋㅋㅋㅋㅋ헬룬 / 검후 플래그 다음편에 등장!

함께행복하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눌님은 하늘이시죠. 전 늘 받들어 모십니다. ㅎㅎㅎ뱃살앙마 / 지금 읽으시는 이능력자와는 완전히 다른 글일거에요. 이것보다 더 가볍게 쓰려고요. 제 고질병인 우울한 글 만들기가 도지지 않는 한은요.

금원 /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바로 반영하여 다음편에 사도스러운 전투 나올 겁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magara / 연참으로 곧 30화 만들어 둘게요.

천겁혈신천무존 / 검후와의 라인은 다음편부터 등장! 기대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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