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66화 (66/223)

< --  1-6. 강해지다.  -- >

"그렇게 풀이 죽어있는 얼굴들을 보니 심히 못마땅하구나. 왜 그런 표정들을 하고 있는가?"

매서운 검후의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뜬다.

"일전에 얘기했듯이 그대들은 힘은 노력 없이 얻은 불로소득과 같은 것, 물론 그 후에 주어진 힘에 걸 맞는 의무를 지고 살아왔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그대들의 힘이 강해진 것은 아니다. 수련도 자기관조도 모르고 그저 실전만을 겪어온 그대들의 힘은 보검을 들고 시정잡배가 전쟁터에 나간 것과 마찬가지. 지금의 패배가 그리 충격이던가?"

그녀의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말대로 이능은 갑작스럽게 얻게 된 것. 수련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저 실전을 겪으며 조금씩 강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을 뿐. 그녀의 말대로 우리의 태도가 안일했던 걸까.

"그대들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보다 그 머릿속에 가득 찬 교만이 나는 심히 못마땅하구나. 그대들의 눈 어디에도 패배로 인해 분하다고 생각하는 기색은 없고, 그저 자신의 패배에 부끄러워하는 모습들이구나."

무엇에 그리 심기가 불편한가 했더니 그녀의 눈에는 우리가 교만해 보였던가.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니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단 한 번의 대련. 우리는 무엇을 기대했길래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는 걸까. 검후의 강대한 힘을 상대로 비등한 대결이라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패배거늘 그 끝이 조금 더 초라하고 비참하다 해서 이리 기운을 잃고 있다니. 물론 머릿속으로 납득했다 하여 당장 기분이 바뀌거나 하진 않는다. 몇 마디인가 더 질책을 한 검후지만 우리들은 자괴감에 빠져 있느라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불편한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가고 하루가 끝나간다.

그렇게 전날 호되게 검후에게 꾸지람을 듣고 아직까지 제 기운을 못 차린 우리들은 그녀에게 이끌려 공터에 섰다.

"그대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까지 어제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로구나."

그녀의 혀를 차며 말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굴이 붉어진다.

"전날은 심하게 말했지만 그대들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닌바 능력을 손발처럼 쓴다면 능히 어제의 패배를 돌이킬 수 있을 테지."

그녀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도 없다. 황당하게도 그 말인즉슨 자신을 이겨보라는 말이 아닌가. 괴수와의 전투에서 보았던 그 인간 같지도 않은 힘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감이 오질 않는다.

"오늘부터 그대들의 수련을 돕겠다. 아마 처음 해 보는 수련이란 것이 낯설 테지만 내 말을 믿고 정진하다 보면 어제와 다른 자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련이라고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감이 오질 않는 상황에서 믿을 건 검후 뿐.

"그대들은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일가를 이룬 이들. 능력의 수발이 턱 없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어린아이 가르치듯 할 수는 없을 터, 그저 기초적인 방향을

잡아주고 대련을 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잡을까 한다."

마치 조교와도 같은 모습으로 위풍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기대하는 마음이 자라난다. 모두의 얼굴을 돌아보니 다들 나와 마찬가지 심정인 듯 무거운 눈빛 아래 숨겨진 기이한 열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검후와의 수련은 시작되었다.

수련 첫날.

온몸이 쑤시고 결리지 않는 구석이 하나 없다. 뭐가 기초적인 방향 잡기냐. 첫날부터 시작된 검후의 지도는 사람 잡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려줬다. 가장 기초적인 품세라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따라하는 데 보기에는 그리도 쉬워보이던 동작들이 막상 내가 하니 온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그런 품세가 하나도 아니고 열여덟 종류다. 그나마 용모나 나는 괜찮지만 수현씨는 정말 괴로운지 그 고운 얼굴을 참혹하게 일그러트린 채 한나절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의 대련.

삐걱대는 몸을 부여잡고 검후의 앞에 서기가 무섭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작정한 듯 전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몰아치는 검후의 공격에 온몸이 멀쩡한 곳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렇게 잔뜩 지친 몸으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그렇게 기다렸던 휴식. 하루를 돌아보고 수련을 복기하고 그딴 건 상상도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수련 둘째날.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품세 수련이 시작됐다. 검후의 말에 의하면 품세 수련을 하다보면 몸이 유연해지고 균형 감각이 좋아진다고 강조하기를 몇 차례,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더욱 고된 자세가 기다리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 품세수련에 집중했다.

그리고는 어제와 같은 수련이 반복됐다. 마지막의 대련은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해가 질 무렵까지 바닥에 누운 채로 숨을 몰아쉬는 꼴이 되었다.

수련 일주일째.

품세라는 것에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오전 수련 시간에 들려오던 신음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며칠 내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던 수현씨의 얼굴도 이제는 원래의 고운 모습을 찾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지막 대련만 빼고는 꽤나 견딜만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검후의 한마디에 의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품세 수련은 기초 수련이니 이만 하고, 개별적인 지도에 들어가겠다.'

그간 품세의 자세나 걸음걸이 같은 것만 지적을 하던 검후의 호통이 수시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별 보람이 느껴지지 않던 품세수련과는 다르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각자의 특성에 맞는 조언과 지적이 이어지고 자신의 단점을 깨달았다. 필사적인 모습으로 검후의 지도를 받는 일행들의 모습이 수련 첫날째의 마지못해 따르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마지막 대련은 여전히 악몽이었다.

수련 열흘째.

별거 아닌 수련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나를 발전시키고 있다. 하찮다 생각했던 품세의 동작이 검후와의 대련시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그녀와의 대련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알려준 호흡법.

무협지에서 보았던 내공심법이라도 되는 줄 알고 기대했었으나 그녀는 그런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바르게 숨을 쉼으로써 힘의 수발이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몸이 더욱 강건해진다고 하니, 내공심법은 아니더라도 그저 따를 뿐이다.

"타핫!"

허리를 뒤틀며 오른 손의 주먹을 내 질렀다. 쐐에엑 하는 파공성과 함께 공기가 찢어 발겨지고 폭음이 연달아 들려온다. 전에 없이 호쾌한 정권이라 스스로 뿌듯할 지경이지만 나는 바로 자세를 가다듬고 횡으로 손을 저었다. 시원하게 뻗어가는 손끝에 맺힌 붉은 기운이 금세 거대한 칼날의 모습을 띄고 나는 몸을 회전시키며 손끝에 한층 힘을 더 집중했다.

수련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간단한 동작들이지만 위력은 천지차이였다. 주먹을 내지르고 손을 뻗을 때마다 파공성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단지 검후의 지적에 따라 자세를 바꿨을 뿐인데 이리 바뀌다니.

게다가 검후의 귀 뜸에 의하면 나는 용모나 수현씨에 비해 발전 속도가 한층 빠르다고 한다. 일전의 화상으로 회생 불능이던 무렵 전해준 검후의 기운과 바로 직후의 탈태환골 덕에 조금 더 그녀의 술과 법에 맞는 체질로 바뀌었다던가.

그저 간단한 호흡법이라고 알고 있던 호흡법을 따라 청명한 기운이 온 몸을 오고 간다. 무협지에서 보았든 혈도를 타고 흐른다 그런 느낌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힘의 수발에 따라 오고 가는 느낌이랄까.

단순한 변화였지만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내지르는 주먹은 더욱 강맹해졌고, 물러나는 걸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예전과 비교해서 체력 또한 말도 되지 않게 좋아졌다. 이전의 체력이 생명력과 이능의 힘을 빌었던 것이었다면 지금은 순수하게 육신의 체력이 좋아진 탓이다.

신나게 이리 저리 주먹을 내지르며 기운을 뽑아내다 보니 검후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리 저리 날뛰는 꼴이 꼭 싸움개 같구나."

스스로의 발전에 뿌듯해하고 있던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런 내 표정을 본 검후의 입가가 미미하게 치켜 올라간다. 처음 며칠간은 호통치기 바쁘던 그녀였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평소의 담담한 모습을 찾았고 지금에 와서는 전보다 더욱 부드러워졌을 지경이다.

"싸움개라니요. 한 마리 늑대 같지 않습니까?"

이제는 가벼운 농담도 주고 받을 사이가 되었던 차라 그리 말하니 그녀가 작게 소리 내서 웃는다. 실상은 수백년을 살아온 괴물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겉모습만 보아서는 그저 아름다운 여인일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가 부드러워졌다고는 하나 저렇게 소리 내어 웃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는 것이 떠올라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뻔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헛기침을 한다.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뭔가 아쉬운 기분이다.

"내가 그리 웃으니 이상하더냐."

여인 치고는 꽤나 괴상한 말투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게다가 내 주변에 말투가 이상한 사람이 그녀 하나도 아니고. 괴상한 걸로 따지면 윤민아 그년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아니요. 그냥 오늘은 뭐 좋은 일이 있으신가 해서요."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의 이유라도 들을까 해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봤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이기도 했던지라 나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벌써 한 달이나 됐네요."

문득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그리 말하니 그 고운 얼굴이 담담히 끄덕여진다.

"처음에 왔을 때는 힘만 센 천둥벌거숭이 같던 놈들이 이제는 제법 사람 구실을 하게 됐지."

그녀의 말에 내 입가에도 진한 미소가 떠오른다.

수련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굳이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할 정도다. 그저 넘치는 힘을 쭉쭉 뽑아 내지르던 게 다였던 당시의 내가 얼마나 무식한 방법으로 싸워왔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배운 바른 주먹질, 바른 걸음걸이, 바른 호흡법.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단지 그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한달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다.

"뭐, 천둥벌거숭이까지야 됐겠습니까. 그저 길을 못 찾아 헤매던 어린 양들이었지."

킬킬대며 그리 말하니 검후의 얼굴이 부드러워진다. 그녀는 흙으로 된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더니 내게 손짓한다.

"앉거라. 올려다보니 고개가 아프구나."

그녀의 손짓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별 말 없이 저 너머의 풍경을 보고 있는데 문득 검후의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보니 강대한 힘을 가진 여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린 얼굴 선을 지닌 그녀다. 소녀같은 이마는 보기 좋은 곡선이고, 오똑한 코 아래 위치한 입술은 앙증맞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눈매만 빼면 여느 평범한 여인이라고 해도 믿을 그런 얼굴이다.

담담한 신색으로 나를 바라보던 검후가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은 먼저 내보냈는데 혼자 남아있자니 좀이 쑤시진 않던가?"

보름의 수련을 마치고 저 밖으로 나간 용모와 수현씨를 입에 담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요. 처음에는 좀 갑갑했는데 지금은 별로..."

지금 같아서는 저 밖의 상황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서 머물며 나 자신을 더 가다듬고 싶다. 게다가 사건 사고에 휘말리기 바뻤던 지난 시간에 비교한다면 지금은 평화로운 시간이다. 수련이 고되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 자체는 즐겁기 그지없었다.

============================ 작품 후기

으어어어. 사실 어제 60키바를 썼습니다만 이능력자 말고 다른 걸 썼어요 ㅎㅎㅎ용서해 주소서.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아서 죽겠어요.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제 59구역이라고 함 읽어봐주세용. 차원의 교차로 인해 신이 소멸하고 그 탓에 차원의 분리를 위해 분리된 신성과 의지가 세계로 해 신이 소멸하고 그 탓에 차원의 분리를 위해 분리된 신성과 의지가 세계로 퍼져나가고 그 선택자중 한명이 주인공입죠. ㅎㅎㅎ 별 다를 거 없는 스토리지만 나름 세계관부터 시작해서 식상하지 않게 구상했으니 함 읽어보시는 건?

내가 이능력자다 에서 못한 갑질이나 하렘질 그런 것들 죄다 우겨넣을 예정입니당.

sfchc / ㅎㅎㅎ 이기려고 해도 못 이기는데 그저 죽어 살아얍죠 ㅋㅋ뱃살앙마 / 마눌님과 일기토 하면 저는 다음날 현관 옆에 효수됩니다 ㅋㅋ알프 / ㅇㅇ 검후는 현대의 능력자들의 삶을 잘 모르죠. 모종의 이유로 은거하며 살았으니. 아마 조만간 검후가 이들의 사정을 이해할 날이 올거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세요^^

치우형 / 저 행복해요 ㅋㅋㅋㅋ흑야랑 / 헉!! 제 마눌님은 세계 최고 아름답습니다!!! 출진시의 위용이 꽃과 같습죠.

함께행복하기 / ㅋㅋㅋㅋㅋㅋㅋ 마눌님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죠. 대신 자다가 떡 먹으면 목 메인다는 거 ㅋㅋ데쟈뷰 / !!! 좋은데요? 진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슴돠!

Zernik / ㅎㅎㅎ 전 비자금 필요 없는 남잡니다. 돈 자체를 안 써용.

헬룬 / 이제 강해졌습니다. 언제나처럼 가장 중요한 설명은 빼고 전개 스킵! 몇편 내로 설명 나올겁니당.

바람난형님 / 마눌님은 검후의 모티브가 아닌, 멸망을 지켜보는 괴수의 모티브입니다 ㅋㅋ나규동 / ㅋㅋㅋㅋ 결혼 해보세요 일단 ㅋㅋㅋ 그 뒤에 댓글 다시 달아주셈 ㅋㅋ

울퉁불퉁 / 다음 전개까지 좀 쉬어가는 타임이고 설정 전개중인데 좀 루즈했나요? ㅎㅎㅎ 곧 땡기겠습니다.

천겁혈신천무존 / 마눌님은 여자가 아니라 가족입니다 ㅋㅋㅋ 민아에 이어 검후도 추가?

저녘하늘 / 일단 결혼해보시고 다시 댓글 달아주세요 ㅋㅋㅋ레리꿀 / 아.. 앙대... 쑤지11 / 검후는 이미 히로인입니다. 저는 누님연방 대령이거든요. ㅋㅋmagara / ㅇㅇ 잘 설득해서 며칠은 시간 주었습니당. 제가 출판 글 교정도 봐야하는 지라 글 쓸 시간이 부족해서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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