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63화 (63/223)

< --  1-6. 강해지다.  -- >

검후에게는 여러모로 신세를 졌던 입장이라 고개를 숙여 진심어린 인사를 했다.

"회보된 모습을 보니 일이 잘 풀린 게로구나."

담담한 신색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검후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회복에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준 것도 그녀고, 회복의 씨앗이 된 기운을 준 것도 그녀다. 내 입장에선 그녀만한 은인도 없는지라 마냥 가볍게 대할 수도 없어 공경의 예를 표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겠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디 하고 그대로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용모가 다급하게 그 뒤를 따르는 것을 보고 나 역시 그 뒤를 쫓았다.

오두막에 들어서니 생각지도 못한 이들이 더 있다.

아름다운 외모에 참한 분위기를 가진 그녀, 지난 괴수와의 전투에서 예비대로 같이 있었던 달무리 '김수현'이 나를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회복 축하드려요."

그녀가 곱게 인사한다. 어쩌면 검후보다 더 의외의 인물인지라 얼떨떨하게 인사를 받으니 그녀가 웃음을 흘린다.

"거기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

어느새 자리를 잡은 용모가 내게 손짓했다. 자리에 앉으니 검후가 입을 열었다.

"모습을 보니 꼬였던 기운도 원상태로 돌아왔고, 또 신수가 멀끔해진 게 진전이 있었던 게로구나. 그래. 탈태환골이라도 한 것이냐?"

정확하게 내 상태를 꿰뚫어 본 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 연이 아니고서야 회복될만한 상처가 아니었긴 하다만, 짧은 시간 동안 이룬 성과로는 대단하구나."

의외로 칭찬 비슷한 것을 하는 검후의 말에 몸둘 바를 몰라 몸을 비비 꼬았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살풋 웃음을 짓고는 다시 입을 뗐다.

"연이 있었다면 다듬어야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터, 이제부터 내가 몇가지 지도를 하게 될 것이다. 여기 있는 인물들이야 모두 잠재력이 있으니 내 지도를 받아나가다 보면 성과가 적지 않을 테지."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니 말인즉슨 이곳으로 나를 데려온 이유가 수련을 위해서란다. 지난 괴수와의 결전때 보았던 이능력자들 중 상당 수가 가진 힘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봐줄만 했지만, 그 수련의 깊이가 전혀 없어 안타깝게 희생자가 늘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비통하다. 아마 괴수에게 패퇴한 것이 자신들의 탓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이들이라면 잡스러운 기술보다는 본신의 수련을 조금만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만 고르고 골라서 데려온 것이니 나를 믿고 따라 주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볼 것이야."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 게, 이능력자들은 각성한 이후 별다른 수련을 하지 않는다. 그저 D섹터를 오고 가며 실전으로 자신의 이능에 익숙해질 뿐이지 훈련이니 뭐니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런 이능력자들을 수련을 시켜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용모가 검후의 말을 이어받아 설명을 했다.

"알지? 우리들 딱히 훈련이라는 거 해본 적 없잖아. 유니온의 타격대에 있었던 나야 기초적인 훈련이야 받았지만 그건 상황대응력 등에 대한 훈련이었지. 내 본신의 훈련은 생각해 본적도 없어. 그건 아마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니 용모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검후께서는 그런 우리들의 수련을 봐주시겠다는 거지. 저렇게 괴수를 그대로 둘 수도 없고 조만간 한 번 더 힘을 모을 필요가 있으니 그 전까지는 최대한 본신의 이능을 키우라는 말씀이셔."

하긴 서울과 경기도 지역이 초토화가 된 마당에 언제까지고 이 상태를 유지 할 수는 없다. 당연히 경기 지역을 탈환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썬 방법이 없으니 힘을 키워 다시 한 번 서울로 가자는 말이렸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그토록 많은 이능력자들과 함께 했을 때도 실패했던 괴수퇴치였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 수도 부족한 상태고 다른 지원 역시 바랄 수가 없는 입장이다.

수현씨와 용모를 보니 그 눈빛에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오직 나만이 괴수와의 재전투에 회의적인 기분이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검후와 눈이 마주쳤다. 투명한 눈동자가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는 듯해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래. 지난 전투보다 더욱 고되고 힘든 길이 될 테지. 고작 여기 있는 사람들로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정확하게 내 속을 짚어낸 검후의 말에 내 얼굴이 붉어졌다. 다 같이 전의를 다지는 중에 나 혼자 겁을 먹은 것 같아 못내 부끄러웠다.

"하지만 힘들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저 괴수는 누가 있어 막을 것이며, 또 누가 있어 우리를 대신 할 것이냐."

부드럽지만 질책의 기색이 다분한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지난 전투에서 배운 것이 많았으니 허준영 그자와 내가 너무 자만했던 것이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니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 말아라."

놀랍게도 자조가 가득한 음성이라 번쩍 고개를 들고 그녀를 보았다. 담담한 표

정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 속에 비통이 가득해 보였다.

잠시 숙연해진 분위기에 다들 고개를 떨궜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던 1등급 이능력자들 탓에 당시 원정대의 분위기도 손쉬운 승리를 예상하는 분위기 일색이었다. 그랬는데 결과는 참패다. 물론 그게 그들의 탓은 아니었지만 괴수와의 전투를 주도해야 할 두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허준영 그자도 나도 너무 오랜 세월을 세상모르고 지냈던 게야. 듣자하니 고조선의 멸망 역시 그 괴수의 탓이라 들었는데, 심마가 끼었던 거지. 선인들이 넘쳐났던 그 무렵에도 감당하지 못했던 괴수를 우리 둘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교만이 하늘을 찔렀었구나."

아무도 바라지 않았건만 점점 분위기가 그녀가 자책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마음만 무거워질 듯 해서 입을 열려 했는데 검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러니 나와 허준영은 우리가 거두지 못한 괴수의 목을 거두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일단은 뜻을 함께 할 사람을 모으고 있으니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게야."

검후의 말에 용모를 바라보니 그가 설명을 보충했다.

"허준영님은 대한민국의 다른 1등급 능력자분들 찾으러 가셨어."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다른 1등급 이능력자라면?

"둘로 모자랐으면 셋으로, 셋이 모자르다면 다섯, 여섯이 가면 되겠지."

검후의 담담한 말이다. 평생 보기도 힘든 1등급 능력자들을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여상스럽기만 하다. 하긴 그녀 자신이 1등급의 이능력자니 그들과 동등한 위치다. 그녀가 그들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너희들은 우리들을 1등급 능력자라고 부른다지?"

검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고운 눈썹이 찌푸려진다.

"대체 1등급이니 2등급이니 누가 정해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괴상한 일이다. 어찌 사람의 힘을 등급으로 나눈 다는 말인가. 마치 저 대륙의 지나족과 같은 행태지 않은가."

그녀의 어조가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가득하다. 대륙의 지나족? 혹시 중국인들

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저 대륙이야 예전부터 무사들의 등급을 일류, 이류, 삼류등으로 나누곤 했지. 그것만 해도 우스꽝스러운 일이건만 우리 민족이 그들과 같은 짓을 하다니,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실로 통탄할 일이다. 어찌 수련의 정도를 숫자로 나눈단 말인가."

전부터 느껴왔지만 상상 이상으로 나이가 많은 듯한 검후의 말투다. 말하는 것만 보면 마치 몇백살은 훌쩍 넘긴 사람 같아서 위화감이 들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그게 더 하다.

"어쨋건 오랫동안 수련을 해온 이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이번에 그들의 힘을 최대한 빌려볼 작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가 얼마 되지 않는 1등급 이능력자건만 그녀의 말을 듣다보면 당장 열명이고 스무명이고 달려올 듯한 느낌이다.

"저기 죄송하지만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될는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묻자 검후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최소한 둘은 힘을 빌려줄 테고 둘은 모르겠구나."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에 그런 대단한 사람이 그리도 많았던가. 검후와 허준영 그 둘을 제외하고도 넷이나 더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검후가 말해준 사실을 유니온의 인물이 듣는다면, 이번 참사로 약해진 전력 탓에 타국의 세력에게 끌려다닐까 하는 염려를 단번에 날려버릴 테지.

"그렇게나 많습니까?"

내가 얼떨떨하게 묻자 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심산유곡에서 유유자적하며 지냈었지. 하지만 이 불운한 땅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만 해도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그들의 의기가 지금 있었다면 큰 힘이 되었을 터인데."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녀의 말에 놀라움이 더욱 커진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런 이들이 수십은 되는 것 같았다.

"왜란이니 외침이니. 그간 스러져간 이들만 해도 그 수가 수십은 넘을 터.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죽음이 너무 아깝기만 하구나."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검후에게 질문했다. 입을 여는 그 순간에도 내 질문이 큰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지만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검후께서는 대체 나이가 어떻게?"

내 질문에 용모와 수현씨가 뜨악한 얼굴을 해 보인다. 내가 그런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던지 그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내 나이라. 이백을 넘기면서 세는 것을 그만두었구나."

이번에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이백살이라고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건만 이백살에서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면 그 실제 나이는 대체 얼마란 말인가. 내가 질문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를 질책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용모와 수현씨도 지금만큼은 놀라서 까무러치고 싶은 표정이다.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이 가능합니까?"

이번에는 용모가 물었다. 그 말에 검후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질긴 목숨 끊지 않고 살다보면 이리 되는 것이지."

그 표정에 담긴 회한과 비통이 너무나 커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참이나 먹먹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검후가 다시 입을 뗐다. 그 말에 담긴 회한이 너무나 깊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가 먼저 갔어야 했는데 먼저 간 이들이 너무도 아깝구나."

마치 노인의 푸념 같기도 하지만 그 감정이 너무나 깊어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련한 빛을 했던 검후의 눈동자가 일순 번뜩였다. 그 강렬한 기세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하지만 내가 이리 남은 것도 다 하늘의 뜻이 있었을 터, 지금에서야 내 숙명을 깨닫게 되었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친 노인과도 같은 기색이었던 그녀의 눈빛이 강렬하게 번뜩인다.

"나는 너희들이 힘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해 조력하겠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에 찾아올 괴수와의 전투에 내 온 힘을 다 쏟으리라."

비장하기까지 한 그녀의 말에 좌중이 말을 잊는다. 오직 현지만이 분위기를 모르고 멀뚱거리며 사람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 배고파."

짤막한 그녀의 한마디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사라져버린다. 검후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현지를 끌어당긴다.

"아이야. 배가 고픈 게로구나. 같이 뭐라도 먹자꾸나."

외모만 봐서는 현지의 이모뻘도 되보이지 않는 그녀건만 말하는 투나 분위기만 보면 마치 손주를 돌보는 노파와도 같아서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녀의 실제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손 치더라도 저리 외모가 젊기만 해서야.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따르지 않았던 현지가 검후의 손짓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이끌려갔다.

============================ 작품 후기

늦잠잤습니다. 일어나보니 한국시간으로 저녁 11시가 넘었더군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후다닥 써서 한 편 올립니다.

선추코쿠로 제게 힘을 주소서. ㅎㅎㅎ오늘은 리리플 쉬겠습니다. 마눌님이 단매를 들고 저를 기다리고 계신지라 컴터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ㅜㅜ

터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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