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 강해지다. -- >
한참이나 계속된 침묵을 깨고 용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준아. 너희 부모님은 우리가 모시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용모의 말에 절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들은 유니온의 복잡한 상황을 봤을 때 인질 취급을 받을까 염려되던 부분이 있었는데, 한시름 덜었다.
"잘 계신다고는 들었는데 별 일 없지? 그리고 우리라니?"
우리라는 말이 묘하게 신경 쓰여서 물으니 용모가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에 안개 속에서 헤맬 때 같이 있었던 그 친구들 기억나지? 그 친구들이랑 있어."
아. 그렇다면 안심이다. 그들이라면 지옥을 같이 헤쳐나간 전우들과 마찬가지인 이들이다. 게다가 고위등급 이능력자들은 아니지만 사지를 헤쳐나온 역전의 용사들이기도 하니, 걱정 하나 덜었다. 그 친구들이라면 믿을만하지. 인성도 능력도.
"그 친구들이라면 안심이다. 근데 민아가 어제 조치한다고 하더니 빠르기도 하네. 바로 해결해버리고 말이야."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져 내 목소리가 부드럽기만 하다. 바로 지부를 떠나도록 준비를 해두었다지만 가장 마음이 걸렸던 게 부모님의 존재였는데 다행이다.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가슴 위에 눌러 앉아 있다가 이제야 사라진 기분이다.
"뭐 윤민아 팀장이 호들갑을 어찌나 떨던지 난 또 그런 모습은 또 처음 봤네. 그렇게 길게 말하는 것도 처음 봤다고. 뭐 덕분에 인질구조라 생각하고 갔는데 감시도 없더만. 아. 형준아 너 김희선이라는 여자 알아?"
또다시 나온 희선씨의 이름에 룸미러로 비치는 용모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본다.
"유니온의 감시자인줄 알았더니 너한테 메시지 전해달래. 다음에 볼 때는 좀 더 반겨달라던데? 아는 아가씨야?"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희선씨가 있었어?"
사실 짧은 재회였지만 찝찝함이 더 컸었던 만남이었던지라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던지라 잊고 있었다.
"응. 꽤 이쁜 아가씨던데? 너랑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부모님하고도 상당히 친밀해 보이던 게 한 두번 만난 사이가 아닌 거 같더라. 어쨌건 감시자인 줄 알고 어떻게 하나 했더니 오히려 네 부모님 짐 챙기는 거 도와주고 여러모로 협조적이더라고."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피해버린 생각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혹시나 나를 이용하려는 유니온의 수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 구석에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부모님을 잊고 있던 그 간에도 부모님이 적적하지 않도록 찾아 뵌 모양이다.
그녀에 대한 의심이 희석이 되간다. 완전히 의심을 거두기에는 내가 부산지부에 방문한 것을 어찌 알고 왔나부터 시작해서 걸리는 바가 많지만, 부모님의 일만 해도 그녀에게 큰 빛을 진 것이다.
"근데 무슨 사이야? 보통 사이는 아닌 거 같던데."
용모의 웃음이 음흉해진다. 무겁게 가라앉던 기분을 떨치고 마주 미소를 지었
다.
"짜식. 형님 하는 일을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한껏 거들먹거리며 뽐내는 투로 말하니 용모의 얼굴이 와락 찌그러졌다. 운전을 하는둥 마는둥 룸미러로 한참이나 나를 어이 없다는 듯 바라보던 용모가 다시 정색을 했다.
"어떤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네 부모님한테 듣기로도 꽤나 정성을 쏟은 거 같더라. 네 부모님도 거의 며느리감 대하듯이 하시던데... 이런 이야기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유니온의 상황이 복잡하다는 건 알지?"
용모의 진지한 어투에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래. 좋은 아가씨인 거 같긴 한데, 지금은 상황이 좀 묘하니 조심하도록 해. 너하고 인연이 있다면야 내가 말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같아선 조심하는 게 좋아."
다시금 지금의 상황을 인식시켜주는 용모의 말이다.
"걱정 마. 지금 같아선 누구도 안 만나고 그냥 잠잠해질 때까지 어디 숨어있고
싶은 심정이야."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으니 용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조용해진 차 안의 침묵을 다시 깬건 용모였다.
"그런데 어쩌냐. 아무도 만나기 싫다는 데 지금 너 누구 만나러 가야겠는데..."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듣지 못한 이야긴데?
"누구를 만나?"
내 말에 용모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든든한 아군."
덩달아 나까지 마음이 가벼워질만큼 자신감 어린 미소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 만나러 가는 사람이라면 꽤나 믿음직스러운 이겠지. 딱히 이야기해줄 생각도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무니 용모가 실망한 표정이다.
분명 내가 애 태우는 모습을 보다가 으스대며 말할 생각이었으렸다!
거구에도 불구하고 천진하기만 용모의 태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용모가 낮게 말했다.
"역시... 이대로 둘리가 없지. 꼬리가 붙었다."
방금 전과 똑같은 표정이지만 왠지 사납게만 느껴지는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쳐진다. 딱히 위기감을 느낀다기보다는 재미있다는 표정 같기도 해서 나 역시 그런가보다 하고 뒷좌석의 창을 확인했다.
한적한 도로 저 뒤에 검정색 세단 몇 대가 이쪽 차의 속도에 맞추어 달려오고 있다. 미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모습이라 실소가 나왔다. 용모는 뒷차를 몇 번 쳐다보았지만 딱히 속도를 올린다거나 하진 않았다.
"저대로 둬도 돼?"
잠시 뒤척이는 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이게 습관이 되니까 나도 모르게 현지가 품에 안기면 자꾸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니까.
"아아.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고 해. 지들이 뭘 어쩌겠어."
무사태평한 그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준비해둔 한 수가 있는
거 같은데 역시 내게 설명해주기보단 애를 태우려는 기색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절도 있고 칼 같은 무인같은 용모였지만 안개 속에서 헤매던 그 시간을 기점으로 저렇게 망가져버렸다. 이제는 건들거리는 게 어디 건달이라고 해도 믿겠다.
내가 궁금한 기색이 없자 용모의 입이 혼자 몇 번이고 오물거린다. 입이 근질거리는 게 뻔히 보이는 모습이라 적당히 장단을 맞춰준다.
"뭐 준비해둔 거라도 있어? 저대로 꼬리 붙이고 가면 피곤한 일 생길 거 아냐."
내가 물어보자마자 용모의 표정이 바뀐다. 한껏 으스대는 표정이라 꽤나 우스꽝스럽다. 제 딴에는 거드름을 피우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은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우습기만 했다.
"알고 싶어? 조금만 기다려봐.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게 될 거니까."
역시나 말해주지 않을 생각인 듯 하다. 마치 철 덜 든 아이와도 같은 모습이라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는데 내 속도 모르는 용모는 날 놀래켜줄 생각에 한껏 들뜬 모습이다.
차 안의 분위기만 보면 미행이고 뭐고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모양새지만 저 멀리 떨어진 미행차량들은 착실하게 우리를 쫓고 있다.
잘 닦인 도로가 끝이 나고 차는 비포장의 흙길로 들어선다. 품 안의 현지는 덜컹거리는 진동에도 미동도 없이 잠만 자고 있다. 얼핏 그 모습만 봐서는 수백의 몬스터와 수십명의 사람들을 불태운 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차의 진동이 심해진다. 우리가 탄 차는 이제 흙길도 아니고 간신히 길인가 싶은 그런 곳을 통과해가고 있다.
"자. 뒤에 차보고 있어. 이제 놀랄만한 일이 벌어질 테니."
흥분한 듯한 용모의 음성에 고개를 돌려 뒤쪽에서 따라오는 차량들을 주시했다. 꽤나 고급스러운 차종의 세단들이 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은 채로 이쪽을 따르고 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막 용모에게 핀잔을 주려는 찰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뒤따르는 차량들이 갑작스럽게 차체를 틀더니 급정거를 한다. 마침 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지라 이쪽 차도 서행 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냥을 전부 살펴볼 수 있었다.
급정거를 한 차에서 몇 명인가 사람들이 내리더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마치 마임이라도 하는 듯 손을 들어 허공을 짚는데, 그 모습이 마치 벽이라도 짚는 모양세다.
"놀랐지?"
좀 신기한 일이긴 했지만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기대하는 용모의 눈빛에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이유를 물으니 용모의 콧구멍이 한껏 넓어진다. 저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오두방정이구나.
"엣헴. 저게 바로 진(陳)이라는 거야. 진. 들어는 봤어?"
잔뜩 눈을 빛내며 말하는 모습의 용모다. 이번만은 나도 진심으로 호기심이 생겼던 차라 눈을 크게 뜨고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지금은 잊혀진 기술이라는데 저치들의 눈에는 아마 길이 끝나고 절벽이 나타
난 걸로 보일걸? 우리 차는 갑자기 사라진 걸로 보일 테고."
진이라더니 환상이라도 보여주는 건가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만져보고 확인해봐도 절대 저게 가짜라는 것을 모른 다는 거지."
그러면 그렇지. 단순한 환상이라면 저쪽도 이능력자들일 텐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누구 작품이야?"
얘기를 들어보니 꽤나 대단한 기술 같은데 대체 누가 저런 준비를 해둔 건지 궁금하게 그지없었다. 저 정도라면 꽤나 고위의 이능인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 대한민국에 저런 이능을 쓰는 이능력자는 없다.
"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은 용모가 입을 꾹 다물고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길 같지도 않은 길을 따라가는 차량의 진동이 멈춘 건 숲을 만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서였다.
차가 멈추기가 무섭게 내 품에서 고개를 든 현지가 주변을 둘러본다. 잠이 덜 깼는지 연신 눈을 비비며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꽤나 천진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이럴때면 꽤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그녀인지라 보는 나조차도 흐뭇하다.
"내려 임마. 아주 조련시켰어. 조련."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틱틱대는 음성의 용모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차에서 내리고 나니 그림 같은 전경이 펼쳐져 있다.
좁은 차에서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꽤나 싱그러운 풍경인데다가 저 멀리 숲의 공터에 보이는 오두막 한 채가 마치 풍경화의 한 장면 같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그나마 넓은 길이 끊기고 나타난 소로를 따라 오두막으로 가고 있는데 저 멀리 나와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검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용모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네가 그렇게 되고 허준영이라는 그 분 있잖아? 그분이 소개해준 자신의 거처야. 조만간 필요할 일이 있을 거라 하더니 진짜 대단해 그 양반."
좀 뜬금없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준영 그 사람이 이런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고? 게다가 그의 거처라면서 나와있는 이는 왜 검후지?
"네가 서울로 가자마자 몇몇 인물들하고 이쪽으로 넘어왔어. 아무래도 유니온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던데다가 검후께서 그걸 원하시기도 했고."
그의 말투에서 검후나 허준영에 대한 경의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의외의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게 호들갑을 떨만한 일도 아니라 검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으랏차차! 저는 오늘부터 부활절 연휴입니다! 마눌님하고 하루 여행 다녀오는 것 빼면 할 일도 없으니 당분간은 연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감사드립니다.
또한 선작과 추천 코멘트 쿠폰을 날려주신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앙러야지 / 민폐녀라고 다들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들 좋아해주셔서 다행입니다^^진지무적독자 / 앞으로의 전개에 중요한 인물인데 다들 좋아해주시니 마음이 어찌나 편한지 ㅎㅎㅎ破天魔痕 / ㅋㅋㅋㅋ 앞으로 현지에게도 콜싸인이라는 게 생기겠죠. 헬파이어를 한국말로 해볼까요?
헬룬 / 연참 엣헴. 저는 어필하지 않았습니다. ㅋㅋ파카사리 / 돌아오셨군요! 한참이나 안 보이셔서 어디 가셨나 했었습니다.
^^ 반갑습니다!
Sergei / 우와 첫코를 주시다니 감동입니다! 한번 다셨으니 앞으로도 ㅎㅎㅎTheDaybreak / 감사합니다 ㅜㅜ 늘 변함없는 코멘트 제게 정말 큰 힘이에요 ㅜㅜ에르시리나 / !! 그런가요! 그럼 쿨하지 않았군요!!
OLD-BOY / 어디 다녀오셨나봐요^^ 다시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
만능의자 / 이제 주인공은 마음 비웠습니다. 앞으로는 좀 시원시원해질 거라 생각합니다^^천겁혈신천무존 / 네 맞습니다! 앞으로도 타 노블 작가님들 등장 자주 하실겁니다. ㅎㅎㅎ 허락은 받은 상태고요.
천겁혈신천무존 / 무존님을 위한 깜짝 이벤트였습죠 ㅋㅋ(魔皇笑)地獄音 / ㅋㅋㅋ 사고뭉치 캐릭터 등장!!
유운처럼 / 걸렸나요 ㅋㅋㅋ 지성 저는 쿨하지 못합니다 ㅜㅜ
고룡의반란 / 자주 뵜으면 좋겠습니다!!!
dddfaaaf / 전개를 좀 빠르게 해서 음모 설정부분은 넘어갔습니다. 이제는 좀 호쾌한 전개 쪽으로 갈테니 기대해주세요!
석이형 / 그건 아직 말씀 드릴 수 없어요 ㅜㅜ 중후반에 설명될 내용이라 지금 하면 네타 ㅎㅎads123 / 저의 처음도 다음도 그 다음도 다 가져가셨군요... 이제 책임 지세요 ㅋ
하면 네타 ㅎㅎads123 / 저의 처음도 다음도 그 다음도 다 가져가셨군요... 이제 책임 지세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