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59화 (59/223)

< --  1-6. 강해지다.  -- >

몇 마디인가 더 대화를 나누던 민아가 자리를 떴다. 잔뜩 얼굴이 붉어진 채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간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자꾸만 피식거리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저런 원피스도 가지고 있다니 말투야 어찌 됐건 간에 여자다 이거지. 똑똑혼자서 키득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도망치듯 빠져나간 민아라 뭘 두고 갔나 싶어 문을 벌컥 열었다.

"왜 뭐 두고 갔어?"

당연히 민아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낯선 이들이 문 앞에 늘어서 있다. 검은 정장을 멀끔하게 차려 입은 남녀가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한다.

"김형준씨?"

실내에서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들이 꽤나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처음 보는 이들이기도 하고 해서 몸이 자연스럽게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 내 태도에 남녀중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 그렇게 수상한 사람들 쳐다보듯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갑습니다. 유니온 소속 이능력자 오선명입니다. 이쪽은 제 동료 장신애씨고요."

손까지 내밀며 인사하는 남자의 모습에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 마주 손을 내민다.

"반갑습니다. 김형준입니다."

어차피 유니온의 심장부와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지만, 석연치 않은 민아의 태도가 떠올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연치 않은 민아의 태도가 떠올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 내 태도가 부담스러웠는지 오선명이라는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고,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실례했습니다. 이게 습관이 되어서 가끔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꽤나 날카로운 인상이었던 남자의 얼굴이 선글라스를 벗은 것만으로 굉장히 푸근해진다. 날렵한 얼굴 선에 비해 커다란 눈이 서글서글한게 절로 경계심이 누그러진다고 할까.

"그런데 무슨 일로?"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문을 닫았다. 민아가 그토록 보안, 보안 노래를 부른 탓에 나도 모르게 그리 한 것이다. 내가 문을 닫자 오선명이 다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상부의 명령으로 김형준씨와 함께 온 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현지를 데리러 왔다는 오선명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아는 그런 말 안 했었는데?

"죄송하지만 윤민아 팀장이 아는 일입니까?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가 없어서요."

민아를 언급하자 잠시간이지만 남자의 얼굴이 경직되는 게 보였다. 이제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다. 민아와의 대화를 통해 유니온의 분위기가 왠지 심상치 않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던가 싶다.

"아. 윤민아 팀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아닙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남자의 태도에 그런가 하고 넘어갈 성도 싶지만, 이미 내 경계심이 잔뜩 고개를 들고 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는 유니온 직속도 아니고 윤민아 팀장과의 인연 때문에 온 거라서요. 죄송하지만 윤민아 팀장의 확인이 없다면 어떤 대답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당장 민아가 온다고 해도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현지를 넘겨줄 생각이 없다. 내가 유니온을 찾아온 건 어디까지나 정보수집과 현지의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서였지, 이들의 수상한 행보에 휘말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라니요?"

현지를 데려가는데 무슨 프로젝트 운운을 하나 싶어 바로 되물으니 남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경직됐다.

"유니온의 내부 일이라 외부인인 김형준씨에게는 말씀드릴 수 없군요."

갑작스럽게 끼어든 장신애라는 여자가 남자의 앞을 가로 막는다. 이 사람들 머리가 나쁜가? 어떻게 하는 말마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을 수 있는가.

"유니온이 비밀로 하는 내부 프로젝트라. 그런데 내 동행이 왜 필요한지요? 제 동행은 유니온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만."

슬슬 내 말투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앞뒤 안 맞는 이들의 태도도 그렇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나를 부추키고 있다.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다만 이번 일은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의 미래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만큼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보다는 조금 더 능숙하게 대답하는 여자였지만 그녀의 대답은 여전히 의혹투성이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와 제 동행은 유니온 직속도 아니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니만큼 이런 강압적인 태도에 그 어떤 협조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윤민아 팀장이 이 일을 아는 것 같진 않군요. 그녀라면 이런 행동을 용납할 리가 없을 텐데요?"

말투가 싸가지 없긴 하지만 강압적인 구석은 없는 민아다. 그런 그녀가 이들의 방문을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애초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그녀가 먼저 언질을 주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내가 단호하게 앞을 막아서자 오선명과 장신애 두남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꽤나 곤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더 이상 이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탓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그고 방의 한구석 구석을 살펴봤다. 왜 첩보 영화를 보면 이럴 때 감시카메라나 도청기가 있지 않은가. 께름칙한 유니온의 분위기가 거슬려 혹시 몰라 방을 뒤져봤다.

"음... 없나?"

한참이나 방을 뒤졌지만 별다른 것은 없다. 하긴 이 방은 민아가 안내해준 방이니만큼 그런 꼼수가 있었을 것 같진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해도 나 같은 보통사람이 그런 걸 발견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일전에 받아둔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금 유니온의 사람이 다녀갔어. 오선명, 장신애라고 아는 사람들이야?"

인사도 생략하고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민아는 전혀 모르고 있던 눈치였다.

'아니.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 뭐라고 하던가?'

꽤나 심각한 어조로 되묻는 그녀의 말에 방금 있던 일을 그대로 전해줬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가 한참이나 말이 없다.

"어떻게 되가는 거야? 프로젝트는 뭐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대답을 재촉했지만 그녀의 말소리가 다시 들려온건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일단 전화로는 설명하기 힘든 문제니만큼 내가 다시 가도록 하겠다. 나 이외의 사람들에겐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금방 갈 테니 기다려라.'

그러마 하고 통화를 종료하고 나니 더욱 불안해졌다. 민아의 태도 탓에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고 몸이 굳는다. 그냥 분위기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뭔가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음이 편치 않아 방을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과는 달리 문고리를 붙잡고 상대를 먼저 확인했다.

"누구십니까?"

문가에 바짝 몸을 붙이고 몸을 긴장시키고 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음성이 문가에 바짝 몸을 붙이고 몸을 긴장시키고 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에요. 형준씨."

낯익은 목소리가 상당히 그리운 느낌이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꽤나 깊은 관계를 가졌던 그녀, 희선씨의 목소리다.

"희선씨?"

문 너머에서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 저에요."

문고리를 잡은 손이 절로 손잡이를 돌렸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청순한 얼굴의 그녀가 보였다. 그간 고생이 심했는지 초췌한 모습을 한 희선씨가 눈물을 그렁그렁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희선씨..."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의 눈가에 고여 있던 맑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작게 어깨를 들썩인 그녀가 내게 안겨왔다. 풍만하지만 한 없이 가녀리기만 한 그녀의 육체가 내 품에 들어왔다.

"너무해요. 연락 한 번 없고..."

애처롭게 어깨를 떨며 나를 나무라는 그녀에게 나는 차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의외의 상황에서 만난 그녀, 한때는 사랑한다고 내게 속삭이던 음성이 그저 숨죽여 흐느끼고 있을 뿐이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졌던 애틋한 마음이야 전과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늘어져 있던 손을 들어 그녀의 등을 감싸 안고 토닥였다.

"미안해요..."

서럽게 흐느끼는 그녀의 등을 두들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께름칙한 기분이 자

리한다. 한참이나 만나지 못했던 그녀가 왜 하필 지금 나타났을까?

"걱정 많이 했단 말이에요... 흑.."

가슴팍을 온통 적시며 흐느끼는 그녀의 태도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그녀는 그런 내 기색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 상처 입은 새처럼 내 품에 얼굴을 비비고 있다.

"미안해요..."

단지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한다. 그녀의 방문을 순수하게 반기지 못하는 내가 미안하고, 그간 무심했던 내가 미안했다. 그대로 문가에 서 있기도 뭐해서 그녀를 잠시 떼어내고 방으로 이끌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민아의 말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예외의 상황이니까.

방에 들어선 그녀를 그저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의 흐느낌이 잦아들어간다.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애써 미소를 지은 그녀가 내게 물었다.

"저 안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연락을 많이 했는데 왜 연락도 없었어요..."

말 끝에 가서는 다시금 흐느낌이 섞여들지만 그녀가 입술을 앙다물고 나를 똑

바로 쳐다본다.

"여러가지로 머리가 복잡해서요."

내 짤막한 대답에 그녀의 눈빛에 서러운 기색이 스쳐갔다. 입가가 씰룩대는 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녀와의 애틋한 마음은 안개 속에서 지옥을 겪으면서 희석되고 사라져버려 지금은 희미하게 그 잔재만이 남아있다. 그녀에게는 단지 몇 달도 안 되는 시간이었겠지만 내게는 억겁과도 같았던 그 시간들이, 차마 그녀를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게 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는 얼굴을 한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저 형준씨 원망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제 일방적인 감정이었는 걸요. 그리고 형준씨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들었어요. 저 형준씨한테 원망하는 감정 하나도 없어요. 근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말끝에 가서는 다시 울음을 터트린 그녀다. 절절하게 전해져오는 감정에 나까지 눈시울이 붉어지려고 하지만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 그보다 희선씨도 부산 지부에 와 있었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반가움을 표하는 말투지만 그 속에는 그녀가 이곳에 왜 있는지를 탐색하는 기색이 담겨 있다. 내 질문에 그녀는 다시 울음을 멈추곤 대답했다.

"처음부터 비전투계열 인원들은 부산으로 파견 왔었어요.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쓸데 없는 희생을 막는다고 하던데요."

유니온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뒀었던 듯 싶다.

"미안해요. 정말."

그녀를 대하는 내 심정이 복잡하긴 했지만 미안함만은 진심이라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내가 미안하다 말할 때마다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에 더욱 죄책감이 커졌다.

"괜찮아요. 저야말로 형준씨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찾아가질 못했어요. 유니온에서 당시 능력자들의 위치를 알려주질 않아서."

뭔가 겉도는 기분의 대화가 오고 간다. 진심으로 부딪히는 그녀지만 정작 내

대답이 두루뭉술하다보니 대화가 길게 이어가질 않았다. 그런 분위기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어두워졌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제 와서 그녀에게 살갑게 대하기엔 지나온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고마워요.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있어줘서..."

애절한 그녀의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다시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 작품 후기 오전 업무가 한꺼번에 밀려서 업뎃 못할 뻔 했네요. 아 전업 글쟁이가 되고 싶지만 실력도 모자르고, 지금의 노블 수익 같아서야 엄두도 못 내겠네요. ㅜㅜ 수익 베스트에 들어가신 분들이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분들은 글만 쓰셔도 될테니까요 ㅜㅜ선추코쿠로 힘을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극중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갑갑하다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여기서 설명을 드리자면 원래 태평한 성격인데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꽤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는 주인공인지라 매사 수동적이게 되었지요. 위기가 있어도 곧잘 해결을 해왔기때문에 전투 외적인 부분에서는 낙천적이고 좀 바보스러운 모습도 보였고요.

나름 제가 생각한 주인공의 모습이었고 후반 쯤에 변화를 줄 예정이었지만 보기 갑갑하다는 분들도 많고, 읽으면서 스트레스 받는 분들도 많으시다고 하니 전개를 좀 시원한 쪽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원래 떡밥 회수를 엄청 늦게하고 설명을 뒤늦게 하는 허접 글쟁이라;;앞으로는 좀 시원한 전개가 될 수 있도록 방향을 틀어보겠습니다!!!

오늘부터 리리플 다시 들어갑니다.

破天魔痕, open, 어설픈후니, OLOF / hq는 이미 독자입죠. 리메 전부터 보고 리메 후에도 보고 있었는데 요즘은 노블 정액이 끝나서 못본지 좀 됐네요.

붉은빛마녀/현지 나름 공을 들이는 캐릭터이고 또 전개에 꽤나 중요한 인물이

기도 합니다. 민폐녀지만 귀엽지 않나요? 이쁜 강아지라고 생각하고 봐주세요.

제르미스/아. 저 유료 보안 프로그램 덕지덕지 도배되어 있어서 바이러스나 그런 건 크게 걱정 없어요. 백업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고요. 하지만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12유현이/민아의 인기가 생각보다 대단하더라고요^^ 앞으로 기대 해주세요!!

지리산의늑대/아름다운세계는 이번주에 교정본 받아서 출판 준비 작업 이제 시작할 거 같아요 ㅜㅜ 멋대로 삭제해서 죄송합니다 ㅜㅜ휴식중임/오오. 생존시대 모르는 작품입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추천 감사드려요.

천겁혈신천무존/ 무존님의 무한 민아 사랑에 제가 졌습니다. 꼭 썸씽을 만들도록 합지요 ㅋㅋㅋ미르모니 / 저도 마음은 연참이지만 요즘 본업이 바뻐져서요. 조만간 부활절 연휴니만큼 그때 비축을 잔뜩 하겠습니다!!

전설이란이름하에/ 김도연도 조만간 다시 등장할 겁니다. 제 글에서 여캐는 늘

소중합니다. ㅋㅋㅋ뱃살앙마/ 확인하고 곧 수정하겠습니다!! 일일연재에 쫓기다보니 오타나 비문이 넘쳐나네요 ㅜㅜ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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