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51화 (51/223)

< --  1-5.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 >

야차와 아귀들의 싸움을 참혹했다. 거리낌 없이 서로의 살과 뼈를 물어뜯고 찢어버린다. 할퀴고 갈라버리는 그 원초적인 싸움에 남매들의 눈이 전에 없이 공포에 질려 버린다.

생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참혹한 전투가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그걸 견디기엔 남매의 정신이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들을 구조할 헬리콥터는 저 먼 곳에 있기만 한데 아귀와 야차의 싸움이 끝나간다.

아귀의 유일한 공격수단인 날카로운 이와 손톱은 야차의 질긴 털과 피부에 생채기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저 처절할 뿐이었던 싸움은 야차의 일방적인 학살로 그렇게 끝이 났다.

질펀한 육편과 흉물스러운 살점들이 더운 피를 모락모락 뿜어내는 가운데 옥상에 남은 것은 남매와 야차뿐. 광폭한 눈빛으로 남매를 훑어 본 야차가 이내 그들에게 다가선다.

성큼 성큼 다가오는 야차의 모습이 눈에 박힐 듯 들어왔지만 남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몸을 웅크리고 서로를 더욱 굳게 끌어안는 것 뿐. 야차는 곧 벌어질 만찬에 기분이 좋은지 그 흉악한 주둥이를 한껏 치켜올린다.

"꾸후후후후후"

인간을 반쯤 섞어놓은 모습이지만 웃음소리는 고릴라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 추악한 소음을 들으며 이종혁은 생각했다. 이것이 꿈이라면 어서 깨어나기를. 다시 일어나면 언제나와 같이 자신의 누나에게 투정을 부리겠지.

그리고는 야차의 손에 그대로 쓰윽 끌려간다. 아무런 비명도 저항도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 손목 끌어당기는 어른의 손길에 이끌리듯 끌려간 그의 몸이 이내 양분되어 버린다. 장난처럼 양손으로 이종혁의 몸을 찢어버린 야차가 게걸스럽게 더운 피를 뿜어내는 이종혁의 시체에 주둥이를 들이박고 아구아구 거린다.

자신의 동생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먹혀버리는 모습을 눈조차 피하지 못하고 본 이현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는다. 야차는 오랜만에 먹어보는 별미에 정신이 팔려 그녀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주저앉아있던 그녀가 유령처럼 자리에서 일어난다.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야차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위험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참을 아구아구거리는데 먹잇감이 다가서는 것을 느낀 야차는 눈동자만 움직여 그녀를 일별하곤 다시 식사에 열중한다.

그리고 다가선 그녀가 마침내 야차에게 닿는다.

"목표물에 구조대상자가 접근 중, 저 아가씨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라이플을 들고 망원렌즈로 목표물의 거대한 머리통을 조준하고 있던 김중사가 말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제발로 저런 괴물에게 다가갈 리는 없으니 충격으로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그대로 발포 해. 설마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에서 빗 맞출 일은 없겠지?"

옆에서 이죽거리는 동료 박중사의 말에 김중사가 발끈했지만 조심스럽게 겨냥을 하는데 열중한다. 빗나갈 일이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구조대상자가 다쳐서야 곤란한 일이다. UH-60 블랙호크의 진동이 심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간다. 곧 이어 귀를 찢는 총성이 울려퍼진다.

명중을 확신했지만 그간 보아온 놈들의 질긴 생명력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다음 한발을 준비한다. 라이플의 망원렌즈에 눈을 들이대고 있던 김중사가 헉 하고 신음성을 내지른다.

"왜 그래? 너 설마 사람 맞춘 거 아냐?"

곁에서 본인의 속도 모르고 호들갑을 떨던 박중사도 경악성을 내지른다.

"저건 뭐야?"

김중사가 중얼거리는 말이 얼빠진 말이라 박중사가 핀잔을 줄 만도 하여간 그 역시 저 멀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있다. 그들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모든 특임대가 소란을 떨며 저 너머를 살핀다.

방금 전까지 구조대상자가 있던 옥상이 지금 화염에 휩싸여있다. 넘실거리는 불길은 갑자기 나타났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세게 타오른다.

"미친. 누가 소이탄이라도 터트린 거 아냐?"

애초에 무장하지도 않은 소이탄을 누군가 터트렸을 리도 만무하건만 워낙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인지라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다. 비상시니만큼 어느 미친놈

이 소이탄을 실어 왔을지 모르지만 범위가 너무 좁다.

그들이 경악을 하던 말던 그들의 몸을 실은 대한민국 육군 소속의 블랙호크는 점차 구조대상자가 있던 건물에 다가선다. 마침내 구조 대상자가 있는 곳의 바로 상공까지 다다른 그들은 별다른 탈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한 화염에 넌덜머리를 낸다.

"불길이 장난이 아닌데? 저 안에 생존자가 있을 리가 없지."

한참 떨어진 상공이건만 느껴지는 열기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라 박중사가 고개를 절레 절레 젓는다. 화염의 원인은 모르겠으나 불길이 저렇게 거세서야 생존자의 구조 이전에 하강을 하는 것도 불가능할 지경이다.

막 특임대를 실은 헬리콥터가 불길의 상공을 지나가려는데 김중사가 외쳤다.

"잠깐만! 저기 사람이 있어!"

그의 말에 고개를 내밀어 보니 화염의 한 귀퉁이가 움푹 파여 있다. 유일하게 불길이 닿지 않은 그곳은 보이지 않는 막에 둘러싸이기라도 한 듯 불씨 한점 보이지 않는다. 그 곳에 구조대상자로 보이는 여인이 있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지만 그들은 자긍심 높은 특임대. 이유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조대상자를 구조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지금도 넘실거리며 혀를 날름대는 화염 탓에 하강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고 딱히 다른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고민을 하고 있는 그 순간에 화염에 둘러싸인 여인의 고개가 하늘로 향그들이 고민을 하고 있는 그 순간에 화염에 둘러싸인 여인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

"구조 대상자가 우릴 봤어! 곧 구해 드리겠습니다아아아! 조금만 참으세..."

딱 저만한 여동생이 있는 김중사가 내내 아래를 내려다보던 차라 바로 구조자에게 외친다. 하지만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화염이 그를 감싼다.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그의 온몸을 불사른 화염이 탐욕스럽게 퍼져나간다. 결국 그들이 타고 있던 블랙호크가 화염에 휩싸이고 길게 꼬리를 남기며 추락한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이현지는 상공에 있던 헬리콥터가 폭발하는 것을

무감정하게 바라본다. 한참을 추락하는 헬리콥터의 꼬리를 눈으로 쫓던 그녀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쓰러져버린다. 그녀가 쓰러짐과 동시에 옥상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더니 이윽고 자취를 감춘다.

그녀가 그렇게 의식을 잃고 있던 사이에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의 곳곳에서 구조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거의 포기하고 있었건만 의외로 많은 생존자들의 수에 군부가 바뻐진다. 헬리콥터등을 주로 내세웠던 작전을 수정하고 지상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나선다. 격렬한 전투를 예상했으나 생존자들의 은신처 주변에는 의외로 몬스터들이 없던 덕에 구조의 속도가 빨라진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온 이능력자들과 일전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던 대다수의 능력자들이 참가한 작전은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현지는 정처 없이 폐허를 떠돌았다. 자신의 동생이 눈 앞에서 찢겨지는 걸 본 그녀는 반쯤 실성한 듯 비척거리며 서울을 떠돌았다. 한눈에 보아도 위태로운 모습이지만 그녀는 한결 같다. 반쯤 풀린 눈으로 그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을 뿐이다.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은 오직 괴물이 그녀를 습격할 때가 유일하다. 초점도 없이 풀려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비칠거리는 몸놀림이 금세 단호해진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는 괴물들을 태워버린다. 그렇게 화염에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간 괴물들이 얼마나 될까. 그녀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폐허를 헤매며 몬스터들을 태워 죽인다. 오직 그것만이 목적인양 식사도 잠도 거른 채 며칠을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그녀 스스로 인식조차 못한다.

길을 걷던 그녀의 앞에 또 다른 괴수가 나타났다. 언제나처럼 화염을 일으켰지만 늘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켜주던 화염이 이번만은 무용하다. 화염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괴물이 여전히 그녀를 노려보고 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괴물은 그녀가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강대한 존재다. D섹터에서도 꽤나 상위에 있는 포식자 '불범'이다. 붉은 줄무늬를 제외하곤 호랑이

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풍기는 누린내와 울음소리가 닮았다 하여 그리 이름 지어진 4등급의 몬스터다. 게다가 이름 그대로 불을 다루는 놈이라 그런지 그녀와 꽤나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다시 한 번 화염을 일으킨다. 방금 전보다 더욱 거칠고 탐욕스러운 불길이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크아아앙!"

단 한 번의 포효다. 두 번도 아닌 그 짧은 포효에 그녀가 일으킨 화염이 사그라든다. 여전히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몬스터가 그녀의 주변을 빙글 빙글 돌기 시작한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그녀의 부름에 늘 응답해주었던 화염이 묵묵부답이다. 원래대로라면 진즉에 무력해졌어야 할 그녀가 하필 지금 그 힘을 잃는다. 여태 만났던 적들 중에 가장 강대한 녀석 앞에서 그렇게 무방비로 드러난 그녀가 기괴한 신음 소리를 낸다.

"이익!"

공포라기보다는 안타까움과 분노. 억울함이 가득한 그 신음소리에도 불범은 아

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주위를 돌 뿐이다. 원체 습성이 사냥감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고 새디스틱한 면이 있는 놈인지라 어쩔 줄 몰라하는 이현지의 모습을 좀 더 즐기려나보다.

이현지는 그렇게 궁지에 몰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눈 앞의 괴물을 죽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라 실로 기괴하다. 4미터는 될법한 괴물을 가녀린 여인이 죽어라고 노려보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기묘한 대치상황도 10여분이 흐르자 금세 질려버린 불범이 포효를 하면서 끝을 알린다.

"크와아아아앙!"

몸을 한껏 낮추는 불범, 반사적으로 이현지의 몸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그건 절대 겁을 먹어서가 아니다. 불범의 도약에 맞추어 마주 뛰어 들어가기 위한 자세. 가녀린 여인의 몸이지만 괴물을 향한 무한한 증오가 그녀를 이끈다.

그리고 4미터는 넘는 덩치가 무색하게 소리도 없이 도약하는 불범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금세 깔리는 그림자에 무의식중에 하늘을 바라보니 불범의 발톱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증오심만으로 상대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녀의 어설픈 몸짓이 불범의 앞발에 위태롭게 흔들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괴물을 불태울 화염을 소망하지만 그녀의 부질없는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나려나보다. 거의 지척까지 다다른 불범의 거대한 앞발에 그녀가 눈을 부릅뜬다.

"켕!"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내며 불범이 갑자기 튕겨나간다. 영문을 모르는 그녀의 눈이 불범을 쫓는데 붉은 그림자가 불범의 뒤를 따른다.

너무 빠른 움직임에 희미하게 붉은 잔영만이 그녀의 눈에 담기는데 붉은 그림자가 불범을 덮쳐간다. 그리고 끝이었다. 불범의 몸이 참혹하게 양단되어 더운 피를 꿀럭이며 뿜어낸다. 그 거대한 피 분수 사이에 어느새 멈춰선 붉은 그림자가 온 몸을 적시고 있다.

마치 중세시대에서나 있었을법한 갑주로 온몸을 감싼 남자의 온 몸이 피처럼 붉다. 양손을 벌리고 피에 흠뻑 몸을 적시고 있는 그의 몸짓이 마치 긴 가뭄 뒤에 단비를 맞는 농부와 같이 경건하기 그지없다.

이 현지는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피처럼 붉은 기사가 피보라 속에서 오연히 서있는 모습. 그녀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평생 잊지

못할 화인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 작품 후기 아. 오늘은 좀 늦었습니다. 앞으로 가급적 12시 초에 올리는 걸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신 독자분들 감사드립니다.

이번편부터는 주인고 ㅇ다시 등장하니 10초만에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ㅋㅋㅋ그럼 다시 다음 편에서 찾아뵐께요!

첨언. 염려해주신 모든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이 팔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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