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50화 (50/223)

< --  1-5.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 >

남매가 서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보듬고 있는 그 순간 듣기 싫은 쇳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서로를 끌어안은 상태 그대로 몸이 굳은 이들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이종혁이다.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인터폰을 다시 확인한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복도를 서성이던 괴물이 한집 한집 문을 통째로 뜯어내고 있다. 문을 종잇장처럼 뜯어낸 괴물이 다시 옆집으로 가 문을 뜯어낸다. 단단하기만 한 문짝이 종이짝처럼 찢겨지고 구겨진다. 상상도 못한 광경에 잠시 말을 잃은 이종혁은 화들짝 놀라 달려간다. 아직까지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자신의 누나를 일으켜 그대로 방으로 끌고 간다. 다리가 풀린 듯 비칠거리는 그녀를 숫제 끌고가다시피 해서 방으로 데려간 그가 누나를 바라본다.

반쯤 풀린 눈동자는 초점이 없고,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흐른다.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던 그녀가 공포에 거의 실성한 듯 보인다. 이종혁은 이를 악물고 그런 그녀의 뺨을 올려붙인다. 어찌나 거세게 때렸던지 가녀린 그녀의 몸이 방바닥을 나뒹군다. 그런 그녀를 따라가 다시 한번 뺨을 올려붙이는 이종혁. 눈시울이 붉게 충혈된 그가 한자 한자 씹어뱉듯이 말한다.

"잘 들어. 우린 살아야 해. 우리만 보고 사신 엄마, 아빠를 생각해서라도 살아

야 해. 그러니까 병신처럼 있지 말고 정신 단단히 차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 이현지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이 종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까딱이곤 방을 나선다. 그리곤 까맣게 불이 꺼진 인터폰을 다시 켜서 확인한다. 괴물 놈이 장난처럼 문을 뜯어내고는 문 앞에서 괴성을 지르고 있다. 금세 터져 나오는 비명이 문을 너머서 바로 곁에서 지르듯 생생하다. 자신들처럼 숨어있던 사람들이 지르는 아우성에 그는 이를 악문다.2미터는 넘을 듯한 거구에 흉악한 근육질의 몸매. 온몸에 돋아난 털마저도 괴물의 흉포함을 나타내듯 강인해보이기만 한다.

인터폰 카메라 저 건너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이종혁의 표정이 비장해지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조금은 정신을 차린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누나의 손을 잡아끌고 거실까지 다시 나온 그가 이야기한다.

"누나. 잘 들어. 이대로 있으면 우리 틀림없이 죽어. 그러니까 도망가자. 문 바로 옆이 비상계단이니까 잘만 하면 도망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 악물고 따라와."

겁에질린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린 그녀가 고개를 도리질 치자 그가 다시 한 번 강하게 말했다.

"어리광 부리지 말고 잘 들어. 나 살고 싶어. 이런 곳에서 저런 괴물 먹이로 죽고 싶진 않아. 근데 나는 누나랑 같이 살아남고 싶다고."

고 싶진 않아. 근데 나는 누나랑 같이 살아남고 싶다고."

나직하지만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와 이현지의 눈에 조금이지만 생기가 돌아온다. 사춘기가 지난 이후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기만 하던 동생의 진심 어린 염려가 느껴져 조금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슴에 스며든 그 온기가 그녀에게 조금이지만 용기를 불어넣는다.

제 딴에는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이종혁의 눈에는 여전히 겁에 질린 모습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이종혁 역시 얼굴에 긴장감을 가득 담고는 그녀를 이끈다.

거실에 들어선 그는 다시 인터폰을 확인했다.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통조림 따듯 뜯어낸 문을 비집고 들어가 또 다른 희생자를 찾고 있겠지. 바짝 마른입을 혀로 한번 축이고는 문고리를 잡는다. 3단으로 되어있는 장치를 조심스럽게 푸는데 달칵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그의 몸이 저 혼자 움찔거린다.

"누나. 아까 내 말 들었지? 지금부터는 정신 바짝 차려."

침을 꼴깍 삼키곤 문을 살며시 열어 바깥을 살펴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조심스럽게 누나를 이끌고 집을 나서는 이종혁이다. 복도 가장 끝에 위치한 그의 집인지라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곁에 비상계단이 보인다.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걷는 그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다.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려는지 비상계단까지 가는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던 이종혁의 숨통이 막 트이려는 찰나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둠만이 가득한 비상계단의 모습이 마치 괴물의 주둥이처럼 보여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데 갑자기 이현지가 그의 손목을 잡는다.

저도 모르게 소스라친 그가 질책을 담은 눈빛으로 자신의 누나를 노려보는데 그녀의 표정이 또 다시 겁에 질려있다. 지금은 그녀를 달래고 말고 할 여유가 없는지라 그대로 걸음을 옮기려는 그를 다시 한 번 잡아당기는 그녀의 손길. 의아함을 표하기도 전에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흐으으으으"

낮고 희미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숨소리. 숨넘어가기 직전의 노인이 내 뱉는 가는 호흡과도 같은 그 소리가 계단의 어둠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의 주둥이에 누나를 이끌고 들어갈 뻔 했던 이종혁의 온몸이 굳어버린다.

가만히 있자니 어둠 너머에서 들리던 숨소리가 조금씩 빨라진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념들을 떠올리던 그는 조심스럽게 누나를 이끌고 계단의 위쪽으로 오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니 복도에 있던 괴물에게 살해당할까 두렵고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올라가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올라가 봐야 옥상뿐이고 그마저도 잠겨 있을 가능성도 있건만 그는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지 그저 누나를 이끌어 계단을 오를 뿐이다.

몇 번이나 뒤 돌아봤는지 모른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의 숨소리가 계속 뒤를 따르는 것 같아 자꾸만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는 이종혁이다. 그의 불안한 기색을 눈치 챘는지 이현지 역시 덩달아 뒤를 돌아본다.

"흐으으."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남매의 뒤를 따르는 괴이한 숨소리는 정말로 존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매만이 연신 뒤를 돌아보며 계단을 오르기를 한참. 마침내

옥상의 입구에 다다른 그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옥상 문을 열어 재꼈다. 천만다행으로 옥상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들이 문을 닫고는 잠금장치를 찾아보지만, 안에서 밖으로 잠글 수 있는 형태의 문이라 불안하지만 그대로 방치할 수 밖에 없다. 그저 괴물이 이곳까지 오지 않기를 바랄 뿐.

하지만 그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그들이 오른 비상계단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꾸물거린다. 짧게 들이마시는 듯한 숨소리가 간간히 튀어나오는 데 그 수가 한둘이 아니다. 소란스럽게 웅성대는 어둠의 존재도 모른 채 남매는 숨을 곳을 찾는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뻥 뚫린 옥상의 그 어디에 숨을 공간이 있겠는가. 결국 어린아이들 숨바꼭질 놀이 하듯 간신히 몸만 가린 그들이다. 자꾸만 불안한 눈으로 자신들이 빠져나온 문을 살펴보는 그들의 얼굴이 겁에 질려있다. 얼마나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었을까. 이제는 괴물이 돌아갔나 싶어 몸의 긴장이 풀리려는 찰나 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린다. 끼이익 하고 슬며시 열린 문이 조금씩 그 틈을 벌려간다. 다시금 몸이 굳어버린 남매가 눈을 크게 뜨고 문을 바라보는데 열려진 문 너머의 어둠이 잠잠하다. 한참을 그리 보다가 문이 바람에 열린 건가 하는 되도 않을 생각을 한 이종혁이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는다.

그렇게 어둠을 노려보기를 또 한참. 이제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닌가 보다 싶어 마음을 놓는 남매다. 타타타타그때 들려오는 낯익은 소리.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헬리콥터의 로터소리다. 갑작스럽게 들린 헬리콥터 소리에 남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멀리 셀 수도 없는 수의 헬리콥터가 날고 있다. 아직 초저녁이건만 불빛 하나 없는 유령도시 같은 그 곳의 위를 힘차게 날고 있는 헬리콥터들.

"야! 살았어! 군대가 돌아왔어!"

자신도 모르게 환호 한 그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고 양 손을 열렬하게 흔든다. 아직은 멀기만 한 거리라 그들이 남매를 발견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개중 여러 대가 남매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온다.

시끄러운 로터음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 타타타 거리는 소리마저 감미롭게 들릴 지경이다. 남매의 얼굴이 희망으로 밝게 변한다.

하지만 그들 남매의 행운은 길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잠잠하던 어둠 속에서

뭔가가 아우성을 친다. 헬리콥터를 발견한 남매는 워낙 흥분했던지라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듯 하지만 하나도 아닌 여러 개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그림자 속에서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에서 몸을 쑥 빼내는 그림자 하나. 파르스름한 얼굴 빛은 마치 시체와 같고 퀭하게 뚫린 동공에는 있어야할 것이 없다. 길게 찢어진 입술을 비집고 나온 날카로운 이와 비쩍 마른 몸에 긴 팔과 허리, 또 상대적으로 짧은 다리가 기이한 모습이다. 남매가 알리 없지만 D섹터의 9등급 몬스터 '아귀'다. 무한한 식욕만이 존재의 이유인 이들이 비칠거리며 남매에게 다가선다. 여전히 하늘만 바라보며 손을 흔들기 바쁜 그들은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아귀의 존재도 모른 채 희망에 부풀어있다.

다가오던 헬리콥터들이 몇 갈래로 갈라지는 바람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헬리콥터 한 대의 존재에 희망을 놓지 않았다.

"여기! 여기요! 사람 있다고요!"

열렬히 소리를 치던 이종혁이 이상한 조짐을 눈치 챈건 자신의 누나가 또 다시 자신을 잡아왔기 때문이다. 참사 이후 처음으로 밝은 얼굴을 하고 있던 누나가

또 다시 바들바들 떨며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왜 그래? 우리 이제 살았다니..."

기분 좋게 그녀를 핀잔 주던 그의 음성이 딱 멈춰버린다. 어둠에서 꾸물대며 기어나온 아귀들을 그제야 발견한 이 종혁이 순간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기어나온 아귀들을 그제야 발견한 이 종혁이 순간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런 씨발! 저게 뭐야!"

비쩍 마른 기괴한 모습에 배만 볼록하니 튀어나온 아귀들의 섬뜩함이 이종혁을 또 다시 공포로 몰아넣는다.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자신들을 발견한 게 분명해 보이는 헬리콥터가 아직은 먼 곳에 있다. 미약하게 타오르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금 꺼져간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의 모습에 그저 공포에 질린다. 이제껏 그를 지탱해왔던 누나에 대한 책임감도 지금만큼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옥상의 끄트머리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들은 도망 갈 곳도 없이 그렇게 아귀들에게 둘러싸였다. 벌써부터 식욕이 도는지 그 쭉 찢어진 입을 텁텁 거리며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는 아귀들이다.

이종혁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누나를 끌어안는다. 지키겠다 그런 거창한 생각이 아니다. 그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그렇게 하게 된 것이랄까.

가련한 남매의 곁으로 시시각각 다가서는 아귀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귀들의 걸음은 느리기만 하다. 조금만 냉정했다면 남매가 아귀들의 틈에서 도망치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텐데 평정심을 유지하기엔 아귀들의 모슴이 너무도 끔찍했다.

"크아아아앙!"

아귀들의 저 뒤편에서 갑작스럽게 괴성이 터져나온다.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흉폭한 맹수의 포효. 아귀들의 저 너머에 고릴라와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 사납게 달려들고 있다.

설상가상이라고 아귀보다 몇배는 흉포하고 강인해 보이는 또 다른 괴물의 출현에 남매는 그냥 주저 앉아버렸다.

"끄으으으."

남매가 그러거나 말거나 갑자기 난입한 괴물이 지쳐든다. 그런 괴물의 모습이

지나치게 공포스러웠던 탓에 눈을 꼭 감은 남매. 비명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그 비명은 남매의 것이 아닌 생소한 것.

"끼에에에엑!"

끔찍한 비명을 터뜨린 것은 아귀다. 갑자기 달려든 괴물이 아귀 한 마리를 잡아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피가 솟구치고 그 피분수 안에서 괴물이 흉포하게 포효했다. 남매를 향해 다가가고 있던 아귀들이 그제야 새로운 적의 출현에 몸을 돌린다. 그래봐야 아귀들이 괴물의 상대가 될 것 같진 않지만.

더운 피를 꿀럭이며 바닥에서 꿈틀대는 아귀의 머리통을 장난스럽게 툭툭 치던 괴물이 이내 주먹을 내질러 으깨버린다. 역겨운 덩어리들이 바닥에 짓뭉개지고 그제야 만족한 빛으로 다른 아귀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괴물.

주춤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아귀들과는 다르게 그 모습에 한껏 여유가 담겨 있다. 그럴만도 한게 아귀는 D섹터에서도 가장 하등한 9등급의 몬스터.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그것들의 주식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자신의 동족 뿐이다. D섹터에 있는 존재들 중 아귀들에게 사냥 당할 만큼 허약한 존재는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리라.

그와는 다르게 고릴라와 인간을 반반 섞어놓은 듯한 괴물의 이름은 '야차'. 8등

급에 속하는 그래도 아귀보다는 상위의 포식자다. 힘의 차이가 명백하니만큼 야차가 여유를 부리는 것은 당현한 것이다.

야차의 태도가 여유롭다. 아귀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성큼 성큼 다가서는 모습에 아귀들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든다.

============================ 작품 후기 코멘트로 염려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말씀대로 당분간은 연참 없이 몸 회복하는 데 전념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선작과 추천과 코멘트, 쿠폰을 주신 모든 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 글구 제가 깜박하고 챕터 구분을 안 바꿨네요.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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