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 다시 안개 속으로... -- >
그 뒤로도 한참이나 바닥에 내려설 방법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만 도와줄 이가 있을 턱이 있나. 그나마 도움을 청해볼 이라고는 두명의 1등급 이능력자들 뿐이었는데 그중 한명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남은 한명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저 웃고 있을 뿐이다.
포기하고 그냥 그대로 있는데 갑자기 몸이 쑥 꺼진다. 다행스럽게도 바닥에 나뒹굴진 않았지만 정작 포기하고 나니 사라지는 날개가 황당하기만 하다.
바닥에 내려서니 예비대의 사람들이 앞 다투어 달려든다. 무슨 영문인지 묻는 그들에게 나도 모른다고 대충 둘러대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이호상이 크게 외친다.
"1파가 끝났습니다! 2파가 시작되기 전에 어서 출진을!"
그렇게도 기다리던 출진의 순간이 왔다. 내가 벌인 기행 탓에 어수선해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예비대의 이능력자들이 날카롭게 기세를 돋운다.
"선두는 김형준과 나. 죽을힘을 다해 따르도록."
위기감 하나 없는 음성으로 말한 그녀가 앞장서자 정확하게 스물여덟 명의 예비대원들이 뒤를 따른다. 자신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서는 우리를 바라보는 이능력자들의 시선이 묘하다. 염려와 기대가 가득한 그 시선을 무시하고 그녀를 따른다. 어느덧 방진의 테두리에 이른 눈앞에 살벌한 전투가 그대로 드러난다. 1파가 끝이 났다고 말했지만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치열한 전장이다.
거창한 외침도 없었다. 그저 동네 산보하듯이 진 밖으로 나서는 전지현을 따랐을 뿐. 단지 몇 걸음 내딛은 걸로 전장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진다. 진 안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욱 살벌한 기세가 송곳처럼 가슴을 찌른다. 이를 악물고 주먹을 다진다.
"앞장서라. 뒤를 봐주마."
턱짓으로 선두에 설 것을 지시하는 전지현. 그녀의 말을 따라 선두에 서서 심호홉을 했다. 벌써부터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몬스터 한 마리가 뒤편에서 날아온 불덩이에 맞고 나가떨어진다.
"그럼 달립니다."
나직하게 외치고 발을 박찼다. 앞 편에 바글거리는 몬스터들이 포효하지만 나는 그대로 내달렸다.
소수로 몬스터들과 맞붙었을 때와는 다르게 기세라는 게 느껴진다. 나를 중심으로 뾰족하게 날을 세운 예비대의 기세와 단단하게 주변을 둘러친 몬스터들의 기세가 그대로 느껴진다. 거대한 몬스터들의 벽에 비해 미약한 기세지만 나는 투지를 불태웠다.
그대로 뚫는다!
투지를 일으키자마자 온몸에 힘이 넘친다. 전에 없었을 정도로 전신의 기력이 충만하다. 그 힘을 그대로 주먹에 모아 앞으로 쏘아낸다.
똑바로 쏘아져가는 기운에 마주 달려오던 야차 한 마리가 피 떡이 되어 날아간다. 한 놈을 처리했으나 여전히 바글바글한 몬스터들.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질러간다. 이번에는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쉴 세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가 거둬들이고 다시 내질렀다.
하급한 놈들은 단 한방에 피를 뿌리며 날아가고 조금 강한 놈들은 한 두방은 견디다가 나가떨어진다. 거치적거리는 몬스터들의 대열을 거침없이 가른다. 뒤를 따르는 이능력자들이 그렇게 나가떨어진 몬스터들을 처리한다. 쉼 없이 들리는 폭음을 뒤로 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돌격한다.
지원대에 속한 이능력자들의 원호인지, 몬스터들의 대열에 불꽃과 벼락, 얼음 무수한 공격이 내려 꽃힌다. 우리가 막바로 뚫고 나가야 할 그 경로에 파상적인 공격이 쏟아지고 나는 용기백배해서 발을 내딛는다.
제대로 서 있을 공간도 없이 빽빽하게 늘어선 몬스터들의 틈으로 온 힘을 다해 파고든다. 놈들이 달려들 틈도 없이 주먹을 내지르고 손끝에 창을 만들어 쏘아낸다. 주먹에 나가떨어지고 창대에 꿰여 비명을 지른다. 몬스터들의 비명과 괴성이 내 몸 안의 투지를 더욱 고조시킨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내 공격에 나자빠질 때마다 전신에 생명력이 차오른다.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유물의 힘이 공격마다 섞여든다. 돌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몬스터들의 시체는 끔찍할 정도로 바싹 말라있겠지.
넘치는 생명력을 주체 못하고 나는 닥치는 대로 주먹을 내지른다. 생명력이 쑤욱 빠져나가고 더욱 커져서 돌아온다. 그 반동에 더욱 날뛰듯 몬스터들의 틈을 가로지른다. 이놈을 공격하는 건지 저놈을 공격하는 건지조차 모호하다. 그저 전방을 향해 닥치는 대로 공격을 할 뿐.
"키에에엑!"
죽어라고 몬스터들을 두들기며 달리고 있는데 전장의 혼란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몬스터 한 마리가 달려든다. 세 개의 머리통과 여덟 개의 팔, 그리고 거대한 덩치. '용아병'이다. 제길. 여기서 막히면 포위된다.
갑자기 등장한 강적에게 최대한의 힘을 모아 주먹을 내지른다. 놈을 처리할 필요는 없다. 단지 예비대가 갈 길을 열기만 하면 된다. 주먹 끝에 생명력을 모아 넓게 밀어내듯 질러간다. 마치 불도저와도 같은 기세로 놈을 밀어 가는데 용아병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한 놈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 속도를 늦추지 마라."
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음성, 전지현이다. 그녀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아병은 단박에 나가떨어졌다. 3등급 몬스터의 최후치고는 너무 허무하지만 상대가 1등급의 이능력자임에야. 놈을 상대하기 위해 모았던 생명력을 그대로 앞으로 밀어간다.
전방에 몰려있던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쓸려버린다. 비명이고 뭐고 이제는 먹먹해져버린 귓가에 그저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전장의 소음에 귀가 먹어버리기라도 한 듯하다. 이제는 반쯤 무아지경 상태에서 앞으로 내달린다. 반사
적으로 내지르는 공격에 몬스터들이 입을 쩍 벌리며 나가 떨어진다. 몬스터들의 사체를 밟고 넘어서 그대로 전장을 가로지른다.
얼마나 그렇게 정신없이 몬스터들의 틈에서 날뛰었을까.
속도가 늦춰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저 너머를 바라보니 이제 겨우 반 정도 도착했다. 괴수와의 거리는 약 1km미터정도. 제법 먼 거리지만 조금만 더 뚫어내면 몬스터들의 밀집 지역을 벗어난다.
넘치는 생명력 덕에 체력이 모자를 리도 없건만 벌써부터 지치는듯한 기분이다. 벌써 수십 수백은 넘는 몬스터들을 밀쳐가며 달려왔는데 이제 반이라니.
이를 악물고 다시 속도를 올린다.
간간히 전지현의 도움을 받아가며 몬스터들을 무리를 가로지르기를 한참, 마침내 몬스터들의 밀집지역을 빠져나왔다. 바글바글하던 몬스터들 탓에 가려졌던 시야가 탁 트이며 숨통이 뚫린다.
이제는 거침없이 달리는 일만 남았다. 숨을 깊게 한번 들이 마시곤 바로 바닥을 차고 나간다.
괴수와의 거리를 300m 정도를 남기고 예비대가 걸음을 멈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자연스럽게 제 자리에 멈춰 서서 괴수를 올려다본다. 괴수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니 자연스럽게 놈의 강대한 기운에 몸이 반응한다.
단지 마주했을 뿐인데 몸이 제 멋대로 꿈틀거릴 정도의 기세. 과연 1등급 몬스터의 위용이다.
모든 에너지가 놈의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 절로 일어나 난리를 친다. 생명력을 제물로 소환한 피의 갑옷이 멋대로 크기를 불리고 등 뒤로 무언가가 불쑥 돋아난다. 보지 않아도 좀 전의 날개가 다시 돋아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명력이 미쳐 날뛰며 요동을 친다. 양 손 끝에 붉은 덩어리가 뭉쳤다가 사라지고 다시 뭉친다.
주변을 둘러보니 예비대의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요동을 치는 자신들의 힘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오직 허준영과 전지현 만이 평온한 표정으로 있을 뿐.
"여기까지다. 김형준을 제외하고는 전부 대기하도록. 더 들어서면 괴수의 권역
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포위망을 뚫고 왔지만 사실 본 게임은 이제부터다. 어차피 다른 몬스터들 따위야 저 괴수만 처리 되면 어떻게든 처리가 될 테니, 이 전투가 이번 원정대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저도 대충은 기운을 추슬렀지만 아직은 부족한 감이 있네요. 김형준씨. 부담스럽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조금만 힘을 보태주세요."
여태 힘을 회복하느라 그랬는지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던 허준영이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들긴다. 액면가만 봐서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허준영이지만 이런 행동이 어색하지 않는 건 그 본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겠지.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후달리긴 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데에야 어쩔 수 없지. 딱히 준비할 것도 없이 이미 전력으로 전개된 이능의 힘이 온 몸을 휘감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거대하기만한 괴수의 모습에 손발이 후들거릴 지경이다.
으아. 잠시 뒤에 저 놈한테 달려들어야 한단 말이지?
바짝 마른 입에 괜스레 침을 꿀떡 삼킨다. 속으로 오만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예비대의 이능력자들이 지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건투를 빕니다."
"꼭 생환하시길."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제각각 건승을 기원하는 말을 하거나 무사를 빈다. 단지 하루 만났을 뿐이지만 사지를 뚫고 이 곳까지 달려온 끈끈함이 진정성을 더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형준씨. 무리 마시고 꼭 살아남으세요."
마지막으로 김수현이 다가와 포옹을 해준다. 평소라면 아름다운 미녀와의 포옹에 얼씨구나 했었을 테지만 그 포옹에 담긴 염려와 진정이 그저 내게 기운을 북돋아줄 뿐이다. 그것이 단지 갑옷 위를 감싸 안는 단순한 행위일지라도.
"인사 대충 했으면 출발한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니 표정 그만 풀어라."
나도 모르게 표정에 두려움이 드러났었나 보다. 그녀의 핀잔 아닌 핀잔에 괜히
겸연쩍어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두에게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내 말에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꼭 건승하시길!"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들을 뒤로 하고 나는 전지현의 곁에 바짝 다가섰다. 예비대 이능력자들의 격려에 다소 용기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괴수의 위용이라 몸이 굳는다.
"주공은 나다. 괴수의 신경을 조금이라도 분산시켜준다면 그것만 해도 제 소임은 끝난거니 무리 말거라."
애초에 저 거대한 괴수에게 무작정 달려들 생각은 없었던지라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데 허준영이 입을 뗀다.
"지닌 바 힘을 다 사용한다면 허무하게 죽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요. 그저 무리하지 말고 살아남는데 주력하시길."
이게 염려인지 악담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말을 한 그가 바로 눈을 감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흔히 가부좌라고 부르는 자세다.
"자. 그럼 준비해라. 바로 시작하겠다."
준비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진즉부터 괴수의 기운에 반응해 일어난 생명력의 흐름이 투지로 바뀐다. 해 보는 거다. 김형준!
1등급은커녕 2등급 몬스터조차 구경도 못해본 나지만 투지를 일으킨다. 온 몸에 뻗어나가는 충만한 생명력이 자신감을 일으켜 세운다. 등 뒤로 곧게 뻗은 날개가 스스로 홰를 친다. 그때 바로 곁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터져 나온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장엄하면서도 칼날 같은 기세가 눈에 보일 듯 온 사방을 어우른다. 고개를 돌리니 언제 빼어들었는지 모를 묵직한 검을 꺼내든 전지현이 있다. 주변을 휘몰아치는 기운이 용권풍처럼 그녀를 중심으로 치솟는다.
입이 벌어지고 손발이 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운이다. 좀 전의 허준영이 보여줬던 기운조차 그녀에게 미치지 못할 지경이다. 인간이라고 하기 힘든 거대
한 존재감을 드러낸 그녀가 낮게 속삭인다.
"간다."
굉음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쏘아져나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괴수의 지척까지 접근한 그녀를 보며 나 역시 괴수에게 날듯이 달려간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우리를 발견한 괴수가 울부짖는다.
"아아아아아아아"
그래. 지금 많이 울부짖어라! 곧 있으면 그마저도 못 하게 될 테니!
============================ 작품 후기 오랜만에 시간 맞춰서 업뎃!!!
ㅎㅎㅎㅎ 연참대전의 참가 작가는 현재는 세명입니다.'짐승'의 작가 쟈베트님과'로벨리아'의 작가 소이정님
그리고 접니다.
현재 더 모집중이니 이후엔 어케 됄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이렇습니다. 그날 최소 6연참은 할 각오이니 기대들 해주세요!
그리고 캐릭터 인기투표 설문으로 진행중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추가로 선추코쿠를 주신 분들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중에도 쓰시는 글이 있으신 분이 있으면 연참대전 참가 신청 하셔도 됩니다! 승자에게는 딱지 몰빵이! 패자는 두번다시 키보드를 못잡게 손모가지를 댕강!
비축분 없이 그날 하루 써서 지르는 24시간 배틀로얄! 쪽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