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43화 (43/223)

< --  1-4. 다시 안개 속으로...  -- >

거칠 것 없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몬스터들. 그 수가 수이니만큼 지축을 흔드는 굉음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맹렬하게 달려드는 놈들에 비해서 이쪽은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다. 허준영의 비술 덕에 한껏 높아졌던 사기가 괴수의 포효에 바닥까지 내려갔다. 다들 불안한 눈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보며 제각각의 전투를 준비한다.

하지만 투지를 잃었다고 해서 그 가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방진의 안쪽이 잠시 부산스러워진다 했더니 뭔가가 잔뜩 떠올라 몬스터들에게 돌진한다.

거대한 불덩이도 있고, 날카로운 얼음의 창도 있다.

새하얗게 백열하는 빛 덩이가 있는가 하면 그 곁을 꿀렁대는 어둠이 따른다.

사방으로 그 제각각의 에너지덩어리들이 퍼져나가고 금세 하늘을 뒤덮을 만큼 무수한 공격이 이어진다.

방진의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능력자들이 이능을 발현한 것이다.

여기 저기서 더욱 거세게 공격할 것을 독려하는 유니온 소속의 능력자들의 음성이 들린다. 일전의 술법으로 태반이 사라진 몬스터들이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수다. 근접전이 벌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수를 줄여놔야 피해가 덜할 것이다.

폭음이 일고 몬스터들의 괴성이 하늘을 찢는다. 굉음과 비명이 전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가운데에 끝도 없이 이어지던 공격이 잦아든다. 힘이 달려서? 아니다. 끔찍한 이능의 폭격을 지나 몬스터들이 어느 사이엔가 방진의 지척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전열 대기이이이!"

유니온 직속 타격대일 거라 짐작이 되는 누군가가 쉴 사이 없이 고함치고, 하늘을 까맣게 덮던 공격들이 이제는 무차별 폭격이 아니라 정밀하게 몬스터들의 후열을 저격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방진의 외곽이 벌써부터 몬스터들과 부딪혀 고함이 터져 나온다.

안쪽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전황이지만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심각한 위기는 없는 듯 하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곁에 다가온 전지현이 말하자 허준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예비대의 능력자분들은 전부 이쪽으로 와주세요."

허준영의 호출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의 이능력자들이 전부 모여든다. 서른명에 가까운 이들이 허준영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다. 서른명에 가까운 이들이 허준영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보시다시피 제 술법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은 여전히 압도적인 수입니다. 이대로 기다리고 있다가 괴수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상당히 곤란해질 겁니다. 그러니 이쪽에서 먼저 들어가죠."

위기감 전혀 없는 얼굴로 지껄이는 말이 저 몬스터들의 무리를 뚫고 괴수에게 돌격하잔다. 다들 어이가 없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미 선수는 뺏겼지만 지금에 와서는 방법이 이거 하나군요. 다들 내키지는 않겠지만 이번 전투의 승패가 여러분에게 달렸으니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선택권도 없던 상태였던 차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는 그의 말에 다들 입술을 짓씹는다. 누군들 저 바글거리는 몬스터들의 틈으로 달려들고 싶으랴.

"선두는 나와 저 자가 설 거다. 나머지는 뒤에서 지원을 하도록."

허준영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전지현이 전면으로 나서며 하는 말이다. 그리고 하필 가리키는 사람이 나인지라 한숨부터 나온다.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나를 주목한다. 1등급 이능력자인 그녀야 선두에 서는 게 당연하지만 고작 4등급으로 알려진 내가 그녀와 함께라니 다들 의아해 하는 눈치다. 조 편성 때 얼핏 들은 것만으로도 이 곳에 있는 이들 중 3등급 아래인 사람은 없었으니까.

"어쨌건 다들 알아들었다고 믿겠습니다. 저쪽에서 신호가 오면 바로 돌격합니다."

하필이면 괴수가 있는 쪽에 가장 강한 몬스터들이 바글거린다. 그런 쪽을 뚫고 저 괴수에게까지 달려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등가에 식은 땀이 흘렀다.

대충 설명을 끝낸 두 남녀가 소란스러운 방진을 가로질러 가니 한창 전투를 지켜보던 이호상이 아는체를 해온다.

"일단 1파를 막아낸 뒤에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온통 몬스터들 천진데 1파가 어디있고 2파가 어디있다는 말이겠냐마는 이호상의 눈에는 그런 게 보이나 보다.

잠시 지원조 곁에서 방진의 외곽을 살펴보는데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여태까지 희생이 없던 것이 마치 거짓처럼 능력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나간다. 방진의 안쪽으로 튕긴 사람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고 그나마 바깥 쪽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그대로 발기발기 찢겨지고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최소 4등급 이상의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지만 상대가 워낙 많은데다가 중간중간 보이는 3등급이 몬스터들 탓에 전황은 절망 적이다.1파고 나발이고 막을 수나 있을까.

눈을 깜빡이기 무서울 정도로 늘어만 가는 피해건만 이호상의 얼굴은 침착하기만 하다. 결국 참지 못한 내가 그에게 다그친다.

"1파고 뭐고 다 죽게 생겼는데 뭘 기다립니까!"

전장의 소란 탓에 제대로 전달됐을까 싶지만 이호상이 내게 시선을 돌린다.

"기다리십시오. 지금 나갔다가는 몰살입니다."

그 한마디를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는 그에게 더 뭐라고 하려는데 김수현이 내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젓는다.

"저 사람의 말이 맞아요. 지금 방진을 열고 나갔다가는 진이 무너집니다."

바로 코앞에서 덧없이 스러져가는 능력자들의 모습이 눈에 박힌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건만 너무나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가는 이들의 모습에 분기가 치솟는다. 능력자의 특성상 다들 젊어 보이는 이들이라 더욱 가슴이 답답하다.

"으아아아아아!"

분기가 목구멍을 타고 입 바깥으로 터진다. 결국 참지 못하고 손끝에 거대한 창을 만들어 던진다. 다시 만들고 다시 던진다. 정신을 집중할 사이도 없이 충동적으로 날린 창대들이지만 위력은 가볍지 않다.

저 방진 너머에서 능력자들에게 이빨을 들이대는 몬스터 몇몇이 그대로 꼬치에 꿰이듯 창대에 관통 당한다.

몇 번인가 더 창을 만들어 몬스터들의 무리에 던진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전장을 살펴보다가는 나까지 미쳐버릴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들이지만 눈 앞에서 누군가가 허무하게 죽어간다는 것은 지독스럽게 끔찍한 일이다. 안개에 갇혀있던 시간동안 무수히도 많이 겪었고, 또 그래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기억을 더또 그래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기억을 더욱 헤집어대는 비명소리 따위에 귀라도 막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잠잠해지고 조금이나마 진정이 된다. 괜스레 또 억지를 부린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니 전지현이 다가온다.

"부끄러워 할 것 없다. 경지에 이르기 전 심마를 겪는 것은 당연한 것. 지난 번에 안개 속에서 꽤나 고생을 했다지.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그녀의 음성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별 거 아닌 한 마디지만 요즘 이상하게 예민해진 나 스스로가 평정을 찾는다.

"요즘 이능력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능력을 지니고 있다지? 그래서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니 마음을 편히 먹도록 해라."

마치 자신은 요즘의 이능력자가 아닌 것처럼 말하는 그녀다. 강대한 힘을 지닌 이일수록 노화가 더디게 진행이 된다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더욱 세월의 깊이가 보이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지적인 얼굴에 떠오른 것은 거만과 도도함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현기가 느껴진다. 새까만 눈동자가 투명해 보이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지혜와 현기가 진리를 어우르기 때문이리라.

새삼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많은 것들이 보인다. 침착하다고 생각했던 이호상의 얼굴에 숨은 초조함과 괴로움이. 진을 이루고 있는 모든 능력자들의 필사적인 마음이 느껴진다. 각기 다른 이유로 이번 원정에 참여했겠지만 그런 이들도 지금만은 한마음 한 뜻으로 싸우고 있다.

갑작스럽게 전장의 전체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 없는 경험에 당혹감이 고개를 든다. 요동치는 제각각의 투지와 의지, 또는 본능이 흘러들어온다.

'제기랄. 몬스터들 따위...'

,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

'지원대는 뭐 하는 거야!'

,

'살려줘...'

.

수많은 상념과 생각들이 내게 흘러들어오고 그 흐름 속에 숨이 막혀버린다. 수

십, 수백의 의식이 홍수를 이루고 나를 잡아 삼킨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지만 숨이 턱 막힌다.

누군가의 단발마가, 또 누군가의 기합이 뒤섞이고 엉망으로 뒤죽박죽이 된 의식의 흐름이 정신없이 몰아친다. 이제는 누구의 생각인지, 아니 이게 내 생각인지 그들의 생각인지조차 경계가 희미해진다.

생전 겪어보지도 못한 일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어어 하는 사이에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침착한 여인의 음성이 그 흐름을 찢고 내 의식으로 박혀든다. 머릿속에 가득 휘몰아치던 의식의 흐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시 시야가 원상태로 돌아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생소한 경험의 연속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질적인 감각이 등가에 느껴진다. 마치 한 몸과도 같은 붉은 갑옷의 등 부분에 길다란 무언가가 매달려있다. 눈동자를 데구르 굴리니 저 멀리까지 펼쳐진 붉은 무언가가 보였다.

"날... 개?"

말도 안되게 등에서 돋아난 무언가는 날개였다. 어안이 벙벙해서 양 날개를 번갈아 바라보는데 다시 한 번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깨달음이 왔으나 때가 좋지 않구나. 한 번 오르기를 실패했다면 그 때가 다시 올지는 알 수 없는 것. 하지만 그대로 두자니 탈이 날게 자명할 터, 그저 안타까워 할 뿐이다."

맞은편에 몸을 띄운 전지현 그녀가 내게 말한다. 1등급 이능력자인 그녀가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이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았으나 그녀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마치 무협영화에 나오는 신선이라도 되는 냥 말하는 투가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안타깝구나하고 연신 중얼거리는 모습이 무언가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듯 한데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다.

투명한 눈동자에 가득 서린 현기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방금 무슨 일이..."

의식의 흐름 속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는데 깨어보니 날개가 돋아나 있고 맞은편에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그녀가 있다.

"무슨 일로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방금 전에 깨달음이 찾아왔다. 당신들 말로는 그걸 각성이라고 한다지?"

그제야 상황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된다. 일전에 한번 겪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훨씬 이질적인 경험이었건만 그게 각성이었다니.

그렇다면 나는 강해질 기회를 놓친거로구나!

나도 모르게 아쉬움이 얼굴에 드러났던가. 그녀가 호되게 꾸지람을 내린다.

"인연도 아닌 깨달음에 욕심을 내봐야 또 다른 심마가 될 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찾아온 인연이니 머릿속에서 지워라. 그렇지 않으면 후일 큰 탈이 될 터."

깨달음이니 뭐니 알 수 없는 말이지만 대충 알아듣기는 하겠다. 결국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각성을 하다간 자멸할 것이니 다음 기회를 기다리라는 말이렸다.

아직까지도 고풍스러운 말투를 고수하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전에 없던 흐름이 보인다. 마치 그녀의 주변을 휘감는 듯한 보이지 않는 흐름이 그녀의 발치를 떠받들고 있다.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니로다. 그 촉망 중에 건진 것이 아예 없진 않으니 이것이 다 인연이로다."

그녀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나도 모르게 덩달아 웃음이 나온다.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음을 짓고 있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겨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내려가죠?"

순간 자애로운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녀의 얼굴에 다시 냉담하게 변해버린다. 그리고는 쑥 바닥으로 혼자 내려가는 데 방금 전까지 보였던 현기는커녕 싸늘함만이 감돌았다============================ 작품 후기 연참입니다. 생각도 못하고 계실 때 연참하는 그 쏠쏠함.

방심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 기분이 어떠십니까들 ㅋㅋㅋㅋ

알러지때문에 괴롭긴 하지만 너무 쉬는 것 같아서 한편 더 투척합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일지 나쁜 소식일지 모르지만 아마 독자님들께는 좋은 소식일거라 생각하는 신상정보가 있습죠.

이번주 일요일 00:00시를 기해 몇몇 작가님들과 연참 배틀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그날 아마 못해도 네편 이상은 연참할 것 같네요. 다들 제가 이길 수 있도록 선추코로 응원해주세요.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드리며, 선추코쿠를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직 이르긴 하고 누가 투표해주실까 하지만 캐릭터 인기투표를 설문으로 진행하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예시에 없는 캐릭은 따로 코멘트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전 설문조사결과중 1위, 갑질은 앞으로 스토리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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